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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폭풍(暴風)의 날
이월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고공(高空)에서 거대한 거위털 베개가 터지기라도 한 듯 회색의 눈,
깃털들이 펄펄 흩날리기 시작했다.
이날, 이월 일일, 무림사(武林史)에 하나의 신화가 아로새겨지고 있
었다. 구만리대천하(九萬里大天下) 드넓게 보이지 않는 손이 대륙의
목을 졸라 버리듯이, 적어도 오십여 개 지역에서 겁(劫)이 시작되고
있었다.
실로 치밀한 안배에 따라 시작이 되는 무림 정복의 안배. 그것은 폭
설이 뿌려지는 태행산의 여명(黎明)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었다.
창 너머에는 흰 눈이 퍼부어지고 있다. 그 방은 핏빛의 양탄자에 의
해 뒤덮여 있었으며, 방 천장에 박힌 야명주의 빛이 양탄자의 빛깔과
어우러져 현란한 조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위, 건장한 체격을 지닌 청년 하나가 엎드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
는 짧은 바지 하나를 걸치고 있었으며, 그의 가슴에는 푹신한 베개
하나가 안겨 있었다.
그는 느긋한 시선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침상의 오른쪽과
왼쪽에, 묘령의 미녀들이 머물러 있었다.
미녀들은 손바닥에 흑룡유액(黑龍油液)을 묻힌 채 그 자의 등판과 다
리의 장딴지를 안마하고 있었다. 흑룡유액은 열 가지 영약으로 만든
진득한 기름약으로서, 그것을 피부에 바를 경우 피부는 도검불침(刀
劍不侵)으로 변화하게 된다.
"매우 오랫동안 이 새벽을 기다렸다!"
느긋함에 가득 찬 목소리이다.
나이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자, 그는 거효(巨梟)의 면모를 여실히
엿보이고 있었다.
"오늘 새벽, 천하무림은 죽련에게 장악이 된다. 훗훗……, 아무도 알
지 못하는 가운데 천하 일백 개 거대 방파가 나의 휘하에 굴복하게
되는 것이다. 훗날의 사가(史家)들은 오늘이야말로 무림 오천년사 가
운데 가장 위대했던 새벽이었다고 기록하게 될 것이다!"
웃는 자, 그는 폭설에 잠기는 산야(山野)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두 미인의 안마를 받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세 개의
노고수들이 있는데, 그들 또한 흥분에 휘어감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라대제(修羅大帝) 공야중달(公冶仲達),
적발염왕(赤髮閻王) 적리목염(赤里木焰),
유성마혼(流星魔魂) 사마무위(司馬武威).
세 사람은 죽련의 이삼사위자(二三四位者)였으며, 철무옥의 심복들이
었다. 이들은 오래 전에 철무옥을 소주인으로 선택하였으며, 철무옥
을 통해 대륙마검회를 장악하는 데에 헌신한 바 있었다.
결국 이들은 죽련을 통해 대륙마검회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거대한 기반으로 천하무림을 휘어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오늘 새벽, 이들이 십 년 간 준비한 것이 시작될 것이다. 그 일은 십
만 무사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며, 그 일이 마무리지어질 때쯤이면
당시의 어떠한 무림세력이라 하더라도 죽련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훗훗……, 누구도 악마의 바람을 막지 못하리라!"
철무옥은 웃기 시작했다.
세 명의 노고수들 또한 여유 있는 웃음을 지었다.
하긴, 누가 악마의 바람을 막을 수 있겠는가.
몇 가지 불안한 일이 있기는 하나, 그러한 일로는 대세가 뒤바뀌어지
지 않는다. 그들은 십 년 넘게 일을 준비하였으며, 무려 십만에 달하
는 정예무사(精銳武士)들이 그들의 안배에 따라 천하도처로 흩어져
나갔다.
이제 누구도 그들을 막지 못할 것이며, 오늘 새벽에 이루어지는 신화
는 무림 사상 가장 위대했던 전설로서 영원히 기록되게 될 것이다.
흰 눈이 산하(山河)에 뿌려졌으며, 새벽은 암울하게나마 시작이 되었
다.
이월 일일, 실로 많은 무사들이 암흑의 행진을 시작하고 있었다. 무
림사를 바꾸기 위해, 가장 혹독한 악마의 새벽을 시작하기 위해 무려
십만 무사들이 천하도처에서 일제히 검을 쳐드는 것이다.
― 백로(百路)에 걸쳐 동시에 천하혈세(天下血洗)를 시작하라!
그것은 실로 가공스러운 악마의 명령이었다.
무수한 전서구(傳書鳩)들이 허공으로 떠올랐으며, 비둘기들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철통 안에 있는 밀명서는 천하각지에 있는 죽련 휘하
세력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전서구들이 태행산의 하늘을 휘어감을 때 기이한 움직임이 시
작되었다.
스으읏―!
빠르게 움직이는 자들.
이들은 태행산 외곽을 드넓게 포위하고 있었는데, 패천검성의 무사들
은 그들이 접근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몇 마리 전서구가 그들에게 잡혔으며, 철통에 담겨 있던 밀지가 꺼내
졌다. 전서구들은 다시 날아올랐고, 밀지 안의 내용은 필사되어 태행
산 외곽으로 이동되었다.
밀지는 몇 번의 경로를 거친 끝에 한 사람의 손에 전달되었다. 무림
에 폭풍을 몰고 오는 한 명의 풍운아에게로.
* * *
하나의 거대한 배(船).
그 배는 야음을 틈타서 해남도(海南島)의 남단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배는 상선(商船)으로 보였으며, 거대한 돛을 이십여 개 달고 있었다
.
머나먼 천방국(天方國:아라비아)에 가서 물자를 호송해 주고 있는 상
선이라 알려진 그 배의 선실. 그곳에는 여타한 가정에서는 분재로 기
르지 않는 대나무 화분이 무수히 널려 있었다.
핏빛의 대나무, 그것은 혈죽(血竹)이라 불렸으며, 그것은 바로 죽련
의 독문표식이 되는 종자였다.
거대한 원탁(圓卓) 하나가 있다. 원탁 둘레에는 십 인의 무사들이 머
물러 있었으며, 원탁의 표면은 선실 천장에 박혀 있는 야광주의 불빛
으로 인해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끼이이익― 끼익!
배는 좌우로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탁 둘레에 있는 무사
들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우리들이 하나의 장소에 모였소!"
상좌(上座).
그곳에는 안색이 음침한 노문사(老文士) 하나가 머물러 있었다. 그의
눈알에서는 암자색 광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눈빛은 악마혈사
공(惡魔血死功)을 터득한 사람의 전형적인 눈빛이다.
악마혈사공은 바로 지옥철가문(地獄鐵家門)의 비전절예이다.
지옥철가문은 북방의 명가(名家)로서, 이백여 년 전 원(元)에 의해
무너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한데, 그들의 가문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
었던 것이다.
그들의 맥은 실로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다. 사실, 그들이야
말로 죽련의 최후 세력이라 할 수 있었다. 죽련의 배후에 암흑철가의
노신(老臣)들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철무옥 한 사람뿐
이다.
암흑철가의 후예들은 하나같이 악마들로서, 강호마가(江湖魔家)의 무
사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이단시여기고 있다.
다시 말해, 철무옥은 자신의 포악한 혈통(血統)을 감추기 위하여 자
신의 측근 가신들을 죽련 안에 끌어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드디어 죽막(竹幕)이 설치된 곳이오. 천하혈세(天下血洗)를 단행할
혈세대본영(血洗大本營)으로!"
우우……, 혈세대본영!
그 이름만으로도 소름을 싹 돋우게 할 만하다.
환유천하를 피로 씻기 위한 모임이며, 그 모임에서는 천하를 상대로
한 대혈전(大血戰)을 지휘하게 된다.
죽련의 내부인들은 혈세대본영의 위치도 몰랐으며, 그러한 집단이 이
룩되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죽련의 상부기관이라 할 수 있었다.
제일좌(第一座) 폭풍마공(暴風魔公).
그의 나이 이미 이백사십 세를 넘어서고 있다. 그는 원(元)이 일어나
는 것과 무너지는 것을 본 사람이다. 그는 천뇌마유(天腦魔儒)라는
이름으로 보다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죽련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자였으며, 과거 한때 대륙마황과 쟁
패하다가 패자의 자리를 물려주고 대륙을 떠나 원황실(元皇室)로 숨
어 들어간 바가 있다.
또한 철무옥을 대륙마검회에 들여보낸 장본인도 바로 천뇌마유였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흩어져서 힘을 길렀소. 그리고 지금, 모든 저력
이 하나로 뭉치게 된 것이오! 우리들의 모임 죽막평의회(竹幕評議會)
가 십 주야(晝夜)에 걸쳐 개최되는 가운데, 천하의 백대 거대 방파의
편액(扁額)이 땅에 떼어지게 될 것이오!"
차고 강인한 목소리이다.
죽막평의회에 머물러 있는 인물들, 이들은 하나같이 철가(鐵家)의 인
물들이었다.
즉, 이들은 모조리 철무옥과 한 핏줄들이었다.
제이좌(第二座), 별호 척살마공(天煞魔公) 철뇌룡(鐵雷龍).
특기는 화기(火器) 제조(製造), 그는 죽련에 화기를 대어 주었던 변
황철병창(邊荒鐵兵倉)의 태상지존(太上至尊)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
또한 죽련의 심장부 인물이었다.
이제까지 그를 비웃었던 죽련의 내단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아
마도 까무러치듯이 놀라고 말았을 것이다.
제삼좌 혈마대공(血魔大公).
그는 마의(魔醫) 중의 우두머리였으며, 죽련의 오늘을 있게 하는데
가장 혁혁한 공로를 세운 사람이었다.
화타와 편작에 버금가는 의술을 지니고 있으되, 그는 사람을 살리는
쪽이 아니라 죽이는 쪽에 의학지식을 활용했다.
쌍혈을 탄생시킨 장본인도 바로 그였다.
제사좌 단천대공(斷天大公) 철사영(鐵獅英).
그는 서장(西藏)에 상주하고 있으며, 언제나 라마승의 복장을 하고
있다. 그는 홍교(紅敎)에 침입해 들어갔으며, 현재 그의 신분은 홍교
의 부달뢰(副達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또한 상당히 흥분된 표정으
로 죽막평의회장에 나타나 있었다.
제오좌 열화대공(熱火大公) 철목환(鐵木環).
그는 기련산(祁連山)에서 기거하고 있으며, 그가 했던 일은 극독(極
毒)을 제조하는 일이었다. 그의 독술(毒術)은 사멸사십결(死滅四十訣
)에서 유래되고 있으며, 그가 제조한 해독약을 쓰지 않을 경우에는
독이 풀리지 않는다.
철무옥이 대륙마검회의 중심 인물들을 제거하는 데 사용한 독약은 모
두 열화대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제육좌 금판대공(金判大公).
그는 철욱(鐵旭)이라는 자로, 너무나도 놀랍게도 그의 현재 지위는
대명조(大明朝)의 금군도독(禁軍到督)이라는 지위였다.
죽련, 그들은 사악한 마수(魔手)를 황실(皇室)에까지 뻗을 작정을 하
고 있었다. 그들은 무림을 정복하는 즉시 그 기세를 몰아 대명왕조마
저 무너뜨려 버릴 작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칠좌 비천대공(飛天大公).
철괴리(鐵怪利)라는 자로, 그는 금수(禽獸)를 가르는 데에는 가히 천
신(天神)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였다. 그는 죽련이 사용하는 비응(
飛鷹)과 전서구를 무수히 길러낸 장본인으로서, 그가 길러낸 전서구
와 비응이 없었더라면 죽련의 소식망은 지금보다 십분지일의 규모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는 실로 오랫동안 은거지에 틀어박혀 있었다. 죽막평의회가 아니었
더라면 제일좌 폭풍마공이라 하더라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을 것
이다.
제팔좌 암흑대공(暗黑大公).
그는 황금의 산(山)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죽련이 천하각지
에서 끌어모은 금은보화를 관장하고 있었으며, 지금부터 그가 해야
할 일은 죽련의 무사들이 일백 개 방파의 현판을 내리는 가운데 얻을
막대한 전리품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그의 이름은 철검마(鐵劍魔).
그는 철무옥의 증조부뻘이 된다 할 수 있었다.
제구좌 야화대공(夜花大公).
죽음의 꽃을 기르는 자, 죽련의 여마두들은 대부분이 그의 손에 의해
길러졌다. 그는 여인을 짐승처럼 사육하며, 그네들의 천성이 어떠하
든 간에 단 반년의 철저한 교육으로 그네들을 탕녀로 화신시키는 재
간을 지니고 있었다.
제십좌 만절대공(萬絶大公).
그는 잠입살수의 명수들을 길러내었던 자며, 헌화(獻花) 세력을 구축
하는 데 진짜 공을 세웠던 사람은 바로 그였다.
분위기는 실로 엄숙했다.
강호인들은 천 년에 걸쳐 암흑철가, 이들을 이단시해 왔다. 하나 이
들은 천 년에 걸쳐 악마의 힘을 길렀으며, 드디어 지금 만천하를 상
대로 하여 세력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원탁 위 하나의 거대한 도형이 그려져 있었으며, 강은 은색으로 산은
검은색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오악(五嶽)과 구주(九州).
천하 이백 주(州)가 모조리 표시되어 있었으며, 이것으로 인해 죽막
은 천하 정복의 계획을 이룩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지휘를 하게 되는 것이오! 모든 것이 안배에 따라 진행이
된다면 우리들은 정체를 노출시킬 필요도 없을 것이오!"
천뇌마유!
그는 암흑철가의 최고 연장자 자격으로 말하고 있었다.
혈세대본영(血洗大本營).
이곳에서 거론되는 사항은 바로 법이다. 죽어야 할 자로 지목되는 자
는 죽어야 하며, 혈판을 내려야 하는 방파로 지목이 되는 방파는 현
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
"먼저 무림의 본산(本山)을 격파해야 하오!"
"……."
"……."
"이미 소림(少林)과 무당(武當)을 향해 각 오천 무사들이 떠나갔소.
그들은 이제까지 강호의 거인으로 행세를 했던 숭산 소림사를 초토화
시켜 버릴 것이며, 무당산은 재로 만들어 버릴 것이오!"
"우우……."
"큿큿……, 숭산의 비루먹은 중놈들이 꽤나 허둥지둥거리겠군!"
"큿큿……."
모두 손에 술잔을 들고 있다.
어쩌면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멋진 축배를 들어야만 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과거 하나의 영웅이 있었고, 그는 천하일통의 위업을 후손
에게 물려주었다.
그는 바로 천외천황(天外天皇).
그가 바로 암흑철가의 창건자라 할 수 있었다.
"그곳이 무너지는 동시에 하락무림계(河洛武林界)의 명문거파들은 모
조리 무너져 버릴 것이오!"
"……."
"무사들의 거점은 낙양(洛陽)이며, 그곳의 평원(平原)에서 회합이 벌
어진 후에 무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나가 태백(太白), 진령(秦嶺),
하수(河水), 낙수(洛水) 일대의 무림세력을 군멸시킬 것이오!"
"……."
"그 가운데에는 개방( )이 끼어 있으며, 태백파(太白派)와 종남파
(終南派)가 끼어 있소!"
천뇌마유는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지도를 지적했다.
그는 숭산을 손으로 점하였으며, 이어 무당산을 점했다. 그리고 그의
손은 황하(黃河)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황하는 중원에서 가장 혼탁한 강물이다.
본시 중원이라는 이름은 황하 일대의 지역에 국한된다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말이 있다.
― 중원(中原)을 얻는 자, 능히 천하(天下)를 얻으리라!
천뇌마유는 철무옥에게 모든 지략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과거, 그
와 더불어 지혜를 비교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武)를 몰랐던 사람으로, 일평생을 문도(文道)에서 살아 왔던
사람이었다. 그의 별호는 초의노자(草衣老子).
천뇌마유는 과거, 그의 뛰어남에 대해 소식을 듣고서 변복(變服)을
한 채 낙양까지 가서 그를 만난 바 있었다. 당시 그는 만 권의 서적
내용을 골고루 인용해 가며 초의노자의 무식함을 깨우쳐 줄 작정이었
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으며, 그는 초의노자가 쉬
임없이 쏟아내는 팔만사천 고서(古書)의 내용에 압도되어 얼굴을 시
뻘겋게 물들이며 그곳을 떠난 바 있다.
초의노자가 죽은 후 그는 가히 대륙제일학(大陸第一學)이라 불릴 만
했다. 물론 초의노자에게 두 명의 제자가 있고, 그 중 좌옥린이라는
자는 초의노자를 능가한다고 하나, 그것은 낭설에 불과할 것이다.
그의 나이를 따져 볼 때, 그가 초의노자의 학문을 능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설사 그가 진정한 천재라 하더라
도 겁낼 것은 없다. 그는 폐인이 되어 떠돌다가 죽었다고 하니까.
"거의 동시에 변황의 요소 요소에도 피보라가 일어날 것이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죽음을 뜻하고 있었다.
"우리는 최후의 승리를 얻을 것이오! 대륙의 누가 우리 암흑철가의
힘을 거부하겠소?"
그는 손을 쳐들었다.
― 잔(盞)을……, 피와 죽음의, 그리고 영광의 잔을 들라!
암흑철가의 노가신(老家臣)들이 모여 이루어진 죽막평의회장!
이곳이 거선 위에 마련이 된 이유는, 늘 떠돌아다니는 가운데 일정한
거처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것 또한 천뇌마유의 치밀한 안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끝없이 흐르는 마왕선(魔王船).
누가 이곳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겠는가?
만에 하나, 천하대혈세가 실패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 배만 무사하
다면 이후 십 년 후에 다시 천하대혈세를 시작할 수가 있다. 암흑철
가의 무리들은 그 정도로 치밀한 자들이었다.
"건배(乾杯)를!"
천뇌마유는 목청껏 소리쳤다.
"건배를!"
"프핫핫……,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오!"
"큿큿……, 이제 천하는 우리들의 것이다!"
열 개의 잔이 쳐들렸다. 술 향기가 번지기 시작하였으며, 암흑철가의
십대마공(十大魔公)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잔을 입술에 갖
다대고자 했다.
바로 그때였다.
"실례하겠소!"
청아한 청년의 목소리, 그 소리는 허공에서 흘러내리듯이 들려왔다.
"아, 아니? 이 목소리는……."
"대, 대체 누가 장난을 쳤느냐?"
열 사람은 서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음색의 창노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장난? 빌어먹을 종자들. 큿큿! 너희들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얼마
나 고생을 했는데, 장난이란 말이냐?"
사납고 흉폭한 목소리였다. 그 소리 또한 허공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허공전어술(虛空傳語術).
천리전음술(千里傳音術)의 단계에서 가장 고도의 단계에 올라 있는
전어술이며, 대체 어디서 말을 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또한
그 소리를 팔방회성술(八方廻聲術)과 더불어 시전한다면 제아무리 청
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두 목소리, 그 중 젊은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아는 사람은 하
나도 없었다. 하지만 사납고 흉폭한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아는 사람은 있었다.
"이 목소리는……."
흠칫 놀라며 손을 푸르르 떠는 자, 그의 무릎 위로 술이 흘러내렸다.
그는 암흑철가에서 최고의 연장자라고 할 수 있는 천뇌마유였다.
대체 언제였을까, 방금 전 그 목소리를 들었던 시기는?
너무나도 오래된 일이다. 당시 천뇌마유는 겨우 장년의 나이에 불과
하였으며, 그 당시 그는 황하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황하 가에서 하나의 놀라운 인물을 발견한 바 있는데, 당시 그
는 단신으로 황하십오패(黃河十五覇)를 모조리 목을 베어 죽이며 인
근 십여 리를 들썩이는 광폭한 웃음소리를 터뜨린 바 있다.
― 이제 황하는 내 것이다! 푸하하하핫……, 누가 은색마루(銀色魔樓
)를 거역하겠는가!
천뇌마유는 문득 그날의 순간을 기억할 수 있었다.
문득, 그의 얼굴은 실로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은색악령(銀色惡靈)이란 말인가?"
그는 너무나도 놀라 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쨍그렁!
잔은 바닥에 깨어져 뒹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가 이백십 년
전에 들은 그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프훗훗! 노부의 목소리만으로 노부를 알아주는 자가 있다니……. 죽
어 마땅할 자만 아니었더라면 업고 천 리를 뛰었을 텐데!"
콰르르르― 쾅! 쾅!
선실이 통째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실 바닥에서부터 뿌연
그림자 하나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쩌어어억―!
그는 강기를 발휘하여 선실 바닥을 그대로 부수며 치솟아 올랐다.
실로 비대한 체구의 노거마, 그는 어기충소(馭氣 )로 치솟아 올랐
으며, 오른손에는 이미 천뇌마유의 목덜미를 거머쥐고 있었고, 왼손
으로는 막 독탄(毒彈)을 꺼내는 열화대공(熱火大公)의 맥문을 거머쥐
고 있었다.
"크하하핫……, 노부에게는 자비심이 없다. 빌어먹을 자비심은 소림
사에서 이백 년 간 참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노부 가슴에는 일어나지
않는구나. 아마도 석가세존이 생각하기에 이 혼탁한 세상에는 노부
의 손에 맞아 죽을 자가 아직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은색악령은 광폭한 목소리를 터뜨리며 더욱 높이 치솟아 올랐다.
우지끈! 콰쾅!
그의 신체는 찰나적으로 선실 천장을 뚫고 치솟아 올랐다. 모든 것은
거의 한순간에 벌어졌다.
선실 안에 남은 사람들은 팔 인. 그들은 은색악령이 두 명의 노봉공
을 납치하여 허공으로 까마득히 날아오르자 넋 나간 얼굴이 되고 말
았다. 그리고 누군가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운이 그래도 좋았소이다!"
"으으……, 어서 피합시다. 빌어먹을!"
"무,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소!"
"속히 가주에게 알리고 피합시다!"
팔대봉공이 겁을 집어먹고 말을 할 때였다.
슷! 슷! 슷! 슷!
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여덟 개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나타나 봉
공들의 뒤쪽으로 사뿐사뿐 떨어져 내렸다.
"피할 장소는 없다!"
"훗훗……, 우리 은환팔정(銀環八精)도 자비심은 없지. 제자들은 대
저 사부님을 닮기 마련이거든."
여덟 명의 은의인들, 그들은 은환팔정이라 불리며 그들은 은색악령과
더불어 이백 년 간 번뇌정사에 갇혀 있었던 전설적인 살인마들이었
다.
"너, 너희들은…… 어디 소속이냐?"
누군가 겁먹은 가운데 물었다.
은환팔정 가운데 하나가 머리를 쳐들고 히죽 웃었다.
"대륙세가(大陸世家)!"
"대, 대륙세가……!"
"이후의 천 년을 지배할 가문이지. 훗훗……, 일명 옥린세가(玉鱗世
家)이기도 하다!"
"옥, 옥린세가……!"
팔대봉공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죽음의 사수가 그들 탐욕에 찌든 더러운 몸뚱이를 피모래로 산산이
바수어 버렸기 때문에.
* * *
마왕선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마왕선에는 칠백 무사들이 머물러 있었으며, 하나같이 초절정 무공을
익히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제압하는 데에는 백팔 인이
필요했을 뿐이다.
만 명보다도 강한 백팔 인, 그들은 좌옥린과 더불어 신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주역들이었다.
마왕선은 너무도 속절없이 패망했다. 비록 한 척의 배에 불과했으나
그 배가 지닌 의미는 실로 크다 할 수 있다.
철무옥은 그 뿌리를 잘린 것이다.
좌옥린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혈세대본영(血洗大本營)을 격파하는 일을 지휘하기만 하였지,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그의 무릎까지 물이 차오른다.
거대한 강.
좌옥린의 숨결은 강물의 흐름과 하나로 합쳐진 듯했다.
"이 강이 피로 물들어서는 아니 된다."
그가 나직이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슷―!
그의 뒤쪽으로 거대한 은색 인영 하나가 훌훌 떨어져 내렸다.
"주공, 흥미 있는 사실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꽤나 흥분된 표정을 짓는 노마 은색악령.
"천하에 노인을 놀라게 하는 일도 있소?"
"큿큿……, 그러게 말이외다. 대체 이렇듯 오래 살고서도 놀랄 일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은색악령은 진짜 흥분하고 있었다.
선실 바닥이었다. 그 물체가 놓여 있는 장소는 마왕선의 바닥 부분에
있는 비밀 창고였다. 그곳은 매캐한 약향(藥香)에 휘어감겨 있었다.
좌옥린은 비밀 창고 안으로 접어들면서 콧등을 찡그렸다.
"거풍추습초분(去風追濕草粉)! 상당히 귀한 약재인데."
좌옥린은 냄새만으로 천 가지 약재를 감별할 수 있었다.
"보십시오!"
은색악령은 연날리기 대회장에 나가 있는 어린 소년처럼 흥분하고 있
었다. 그는 두 개의 나무 상자 사이에 서 있었다. 하나는 핏빛 칠이
되어 있었으며, 또 하나는 검은 칠이 되어 있었다.
"관(棺)입니다!"
"관?"
좌옥린은 검미를 꿈틀거리며 그곳으로 바짝 다가갔다.
두 개의 나무 상자 모두 관이었다. 실로 오랜 세월이 지난 관이었으
며, 관의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이것 때문에 속하가 놀란 것입니다!"
은색악령은 관 표면에 적힌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관 뚜껑에는 관에 누웠던 사람들의 신분을 알리는 독문표식이 되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은색악령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혈비룡(血飛龍)의 문장.
섬뜩한 핏빛으로 새겨진 문장의 용은 금방이라도 살아 오를 듯 꿈틀
대고 있다.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
"대체 무엇일까요? 텅 빈 관을 신주처럼 모셔 두었다니……."
은색악령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좌옥린은 이미 그것을
알아본 후였다.
혈비룡!
그것은 바로 천외천전(天外天殿)의 문장이다.
― 핏빛 하늘이 열리는 날, 죽련의 꿈이 실현되리라. 그날, 환우가
혈세(血洗)당하리라!
문장 가운데 그러한 글이 적혀 있다. 암호처럼 배열된 글이었으나 좌
옥린은 단숨에 그러한 글을 읽어 내렸다.
한순간 그의 미간이 찌푸려들었다.
"설마 쌍천(雙天)이란 말인가?"
― 쌍천.
결코 나타나서는 안 될 존재이다.
쌍혈은 쌍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그들은 단지 마의
학에 의해 만들어진 강시에 불과할 뿐이다.
쌍천은 천외천전에서 흘러나간 마공을 익힌 사령(死靈)을 이용해 만
드는 악마의 병기이다. 그것이 나타나면 하늘은 정녕 깨어질 수밖에
없다.
좌옥린은 묘한 기분에 휘말려들었다. 또한 그는 이전에 느끼지 못했
던 너무나도 강렬한 호승심에 휘어감기고 있었다.
승부에 대한 욕심을 갖는 자, 하수(下手)라고 한다. 그러나 진정 거
대한 호승심은 거대한 야망(野望)이며, 남자들에게 있어 그것은 차라
리 순수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들을 만나 싸워 꺾는다면, 정녕 검을 버릴 수 있으리라!"
* * *
마왕선은 침몰되기 이전에 이미 천하혈세의 명을 하달한 상태였다.
만에 하나, 그들이 명을 내리기 전에 침몰했더라면, 무림사는 또다시
달라졌을 것이다.
첫댓글 굿,,,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