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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Audio_이채율사회_책대화_합본
2026.10.28 수 오후 11:39 ・ 41분 37초
이채율
이채율 00:00
지금부터 책 대화 시작할게. 첫 번째 질문이야. 우리 책 1984의 핵심 바탕이 되는 전체주의란 무엇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와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해 먼저 박예성말해 볼래
박예성 00:19
전체주의는 한 정당이나 한 명의 지도자가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 언어, 교육, 심지어 생각까지 전부 통제하려는 체제를 말해.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가 이데올로기와 테러로 유지되고 사람들을 서로 고립시켜서 흩어 놓는다고 설명했는데, 이건 1984의 오세아니아에 거의 그대로 들이 들어맞는다고 생각해.
오세아니아에서는 빅 브라더라는 상징 아래 당이 모든 걸 독점하고 텔레스크린과 사상, 경찰이 감시해 어린이 스파이단 같은 조직은 아이들이 부모를 고발하게 만들어서 가족 사이에 신뢰까지 무너뜨려 보통의 독재와 다른 점은 겉으로는 복종하기만 하면 만족하는 게 아니라 마음속까지 바꾸려 한다는 거야.
그래서 오브라이언도 이단자를 그냥 죽이지 않고 속마음까지 돌려 당을 따르게 만든 뒤에 해야 처리하겠다고 말해.
박예성 01:19
표정만 이상해도 죄 표정 범죄가 되고 잠꼬대 한마디로 이웃이 잡혀가는 걸 보면 이 사회에는 사적인 영역이 아예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민주주의와 가장 다른 점은 권력이 틀린 걸 인정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해.
민주주의에는 선거 삼권 분립, 언론의 자유 야당과 같이 비판할 권리가 있어서 권력이 잘못하면 비판하고 바꿀 수 있어.
반대로 전체주의의 당은 당은 틀리지 않는다 는 믿음 위에 서 있어서 틀렸다는 증거인 기록과 비판하는 사람, 심지어 비판하는 언어 그러니까 신어까지 없애야 해.
진실 부가 기록을 고치고 기업 구멍의 원본을 버리고 신호를 단어로 줄이는 게 다 한 줄로 없어지는 이유야.
또 민주주의에서는 법이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지만 오세아니아에서는 법 자체가 없어서 당이 정하는 대로 처벌이 정해져 역사적으로는 나치 독일과 스탈린 시기에 소련이 대표적이고 오늘날에는 북한처럼 한 사람과 한 정당의 권력이 집중된 체제와 자주 비교돼.
박예성 02:27
그런데 전체주의라는 건 꼭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야.
히틀러도 선거에서 제1당이 된 뒤 합법적인 절차를 이용해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렸어.
그래서 나는 민주주의가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권력을 계속 의심하고 감시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해.
1984가 지금 읽어도 의미 있는 이유는 그 의심을 멈추는 순간 비슷한 일이 시작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책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이채율 02:56
그렇구나. 그러면 한지호 너는 어떻게 생각해?
한지호 03:01
전체주의란 국가나 권력이 국민의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 자유까지 통제하는 정치 체제야.
민주주의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지만, 전체주의는 권력에 반대하는 의견을 억압하고 국민이 지도자에게 복종하도록 만들어 작품에서도 텔레스크린과 사상, 경찰을 이용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역사적 기록까지 바꾸면서 역사
한지호 03:32
기록까지 바꾸면서 국민들이 당의 주장만 듣도록 만들어.
한지호 03:36
이런 점에서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개인의 자유와 다양함을 인정하느냐에 있다고 생각이 들어.
이채율 03:46
그렇구나. 나의 생각은 나는 전체주의가 개인의 존엄성이나 기본적
이채율 03:54
자유보다 국가나
이채율 03:59
집단을 절대적으로 위에 두고 인간을 사생활은 물론 내면의 사상까지 완전히 통제하려는 극단적인 지배 체제라고 생각해.
소설 속 오세아니아의 당처럼 신호로 언어의 폭을 줄여서 복잡한 생각 자체를 마비시키고, 집마다 설치된 텔레스트림과 사생계 정찰, 그리고 부모까지 밀고하게 만드는 어린 소년단까지.
이채율 04:56
동원해서 24시간 개인의 삶을 감시하는 게 대표적인 예시지.
민주주의 사회도 공공의 안전이나 질서를 위해
이채율 05:16
법적인 최소한의 통제를 하긴 하지만 민주주의 권력을 직접 비판하고 바꿀 수 있는 자유와 개인의 존엄성이 최우선으로 보장되잖아.
반면에 전체주의는 권력에 대한 작은 의구심이나 비판 자체를 사상범죄로 몰아서 개인의 영혼과 인격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점이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봐.
이채율 05:42
전체주의는 권력에 대한 작은 의구심이나 비판 자체를 사상 범죄로 몰아서 개인의 영혼과 인격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점이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생각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
두 번째 질문이야. 이 책이 출간 1949년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직후이자 스탈린의 홍독한 독재 나치즘의 잔혹한 상처, 그리고 본격적인 냉전 구도가 시작된 시기였잖아.
작가 조지 오웰은 왜 이런 어두운 디스토피아 소설을 썼을까?
나는 조지 오웰리 당대 현실에서 직접 목격했던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 같은 권력의 독재가 극단으로 쳐달랐을 때 인류에게 얼마나 비극적인 시스토피아가 닥치는지 강력하게 경고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생각해.
전쟁 직후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가 대중이 정치 공력에 거짓말과 어른에 무감각해지면서 눈앞에서 당이 2 더하기 2는 5라고 강요해도 비판 없이 믿게 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지.
이채율 07:12
즉 조지 오웰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표현의 자유, 진실을 알 권리,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비판적 사고를 한시도 경계하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현실 역시 소설 속 오세아니아처럼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엄중하게 일깨워주려 했던 것 같아.
박예성 너의 생각은 어때?
박예성 07:37
1949년 6월에 1984가 나온 시점은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지 약 4년밖에 안 되던 때였어.
전쟁으로 수천만 명이 죽었고,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는 사실과 원자 폭탄의 충격이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했어.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는 한 국가가 체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선전으로 국민을 동원했다는 게 드러났어.
동시에 스탈린 체제의 소련에서는 1930년 연대 대숙청과 모스크바 재판 고문으로 만들어진 자백 수용소 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도 서방에 알려지고 있었어.
전쟁에서 함께 싸운 미국과 소년은 곧 갈라졌고, 1946년 첫 칠의 철의 장막 연설, 1947년 트루먼 독트린, 1948년 베를린 봉쇄, 1949년 4월 나토 창설로 냉전이 본격화됐어.
영국도 전쟁이 끝났는데 식량 배급제가 계속되었고, 런던에는 폭격 맞은 페어가 남아 있었는데, 소설 속 승리 맨션의 낡은 건물과 부족한 물자가 이런 모습과 굉장히 유사해.
박예성 08:58
우리나라로 보면 1948년에 남북에 각각 정부가 세워지고 이 소설이 나오고 약 1년 뒤 한국 전쟁이 터지는 시기였어.
이런 배경에 오엘의 개인적인 배경까지 경험까지 더해져서 이 소설이 나왔다고 생각해.
그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서 목에 총상까지 입었었는데, 그때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공산당 세력이 다른 좌파를 탄압하고 신문이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는 걸 직접 봤어.
역사가 일어난 일이 아니라 권력이 원하는 대로 쓰인다는 충격을 거기서 받은 거야.
또 2차 세계 2차 대전 중에서 BBC에서 그는 일하면서 선전과 검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적으로 가까이에서 보았고 목격했고, 진실 문화 101호실도 이런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엘은 동물농장으로 소련식 혁명의 타락을 비판한 뒤 그 생각을 미래 배경의 소설로 확장해서 1984라는 책을 썼어.
박예성 10:00
외딴 섬에서 결핵으로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까지 그 책을 마무리했고, 이 책을 마무리했고, 책이 나오고 약 7개월 뒤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 책은 그에게 마지막 경고에 가까웠다고 생각해.
내가 보기에는 그가 디스토피아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는 예측이 아니라 경고를 하기 위해서야.
소설의 무대가 소련이 아니라 영국 에어스트립 원인 것도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려는 장치라고 생각해.
오엘 스스로도 이 책에 이 책이 특정 이념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전체주의적 사고가 어디서든 생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거라고 밝혔어.
말과 기록을 조작하는 방식은 그가 SA 정치와 영어에서 이미 비판했던 주제라서 신화라는 설정도 그의 연장선이야.
논문보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더 깊이 공감되고 오래 기억되기 때문에 소설이라는 단지 하나의 포맷을 선택했다고 생각해.
박예성 11:00
그래서 이 책은 배경은 1949년이지만 감시 기술이 훨씬 발달한 지금 시대에 더 무겁게 읽히고 더 중요하고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경고라고 생각해.
이채율 11:12
그렇구나. 한지호 너의 생각은 어때?
한지호 11:15
1949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어.
사람들은 나치 독일 독재와 스탈린 체제의 강압적인 통치를 경험하거나 지켜보면서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졌을 때 생기는 문제를 알게 되었어.
작가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권력이 국민의 행동뿐 행동뿐이 아니라 생각과 기억까지 통제하는 사회를 그렸다고 생각해.
작가는 독재와 감시의 위험성을 알리고 자유와 진실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달하기 위해 소셜을 썼다고 생각해
이채율 11:53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 세 번째 질문이야. 위스터는 왜 사상 경찰과 감시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끝까지 타인을 믿으려 했을까 그리고 결국 사상 경찰이었던 오브라이언을 믿었던 건 순진하고 어리석은 선택이었을까?
나는 위스턴에게 타인을 선택, 신뢰하려는 노력 자체가 단순한 순진함이 아니라 인간성을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정황의 형태였기 때문에 결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해.
오세아니아는 텔레스크린과 밀고 문화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를 의심하거나 의심해야 하는 완전히 비인간적인 공포 사회잖아.
이러한 혹독한 환경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를 보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당의 비인간적인 통제와 세뇌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였으니까.
이채율 12:54
비교 비록 오브라이언의 정교한 함정에 빠져서 101호실로 끌려가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긴 했지만, 인간다운 따뜻한 감정과 신뢰라는 가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위스턴의 절박한 몸부림으로 해석되는 것 같아.
박예성 너는 위스턴의 선택을 어떻게 해봐?
박예성 13:19
내 생각은 윈스턴이 끝까지 사람을 믿고 싶어 했던 건 그가 느끼던 고독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오세아니아에서는 이웃도 동료도, 아이들도 고발자가 될 수 있어서 그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고, 윈스터는 일기장에 혼자 말하는 것으로 겨우 버텨.
그런 그에게 이 세계가 틀렸다는 걸 같이 아는 사람이 있다는 확신은 목숨보다 절실한 희망이었을 거야.
그의 증언은 2분의 시간에 오브라이언이 당에 반감을 품은 듯한 눈빛을 보였다고 느꼈고, 어둠을 어둠이 없는 곳에서 만나자는 목소리가 나오는 꿈을 꿨어.
또 신화 사전을 빌려주겠다는 핑계로 집 주소를 받은 걸 초대로 받아들이 받아들인 것이었지.
객관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었는데 직감과 희망으로만 믿은 것이야.
결과만 보면 오브라이언은 7년 동안 윈스턴을 지켜봐 온 사상 경찰이었고, 형제단 가입 의식도 함정이었으니 어리석은 선택처럼 보여.
하지만 나는 믿은 것 자체가 어리석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박예성 14:30
아무도 믿지 않으면 저항은 시작조차 할 수 없고, 혼자서는 당을 흔들 수 없으니까.
그래서 동료를 찾는 건 저항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해.
문제는 믿음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인데, 당이 사람들을 서로 고발하게 만들어서 신뢰를 검증할 수단을 일부러 없애놨기 때문이야.
게다가 골동품 가게 주인 캐링턴처럼 따뜻한 과거의 얼굴로 다가오는 덫도 있어서 윈스턴처럼 외로운 사람일수록 속기 쉽게 되어 있었어.
그러니까 윈스턴의 실수는 믿음 그 자체가 아니라 확인하지 않고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는 점이라고 봐.
더 아이러니한 건 고문 당하는 동안에도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에게 묘한 친밀감과 의존을 느낀다는 거야.
박예성 15:16
이건 당이 사람의 외로움까지 이용하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결말에서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는 것과도 이어져, 현실에서도 보이스피싱이나 사기가 간절하고 외로운 사람을 노리는 것처럼 상대의 절실함을 이용하는 방식은 지금과도 똑같아.
그래서 나는 윈스턴의 믿음을 어리석다고 비난하기보다 사람의 믿음을 덫으로 쓰는 시스템이 더 무섭다고 생각해.
다만 나였다면 믿음을 완전히 접진 않되 한 사람에게 모든 걸 걸지 않고 조금 조금씩 확인해 가면서 신뢰의 벽을 허물어 가면서 믿음의 정도를 올려 나가는 점진적인 방식을 선택했을 것 같아.
이채율 15:57
그렇구나. 한지호 너는 위스턴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해?
한지호 16:02
윈스턴은 당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 혼자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고 생각해 가지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믿고 싶어했어 싶어 했어.
특히 오브라이언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면서 그에게 희망을 걸었어.
하지만 오브라이언을 믿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타인을 믿고 싶어하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하진 않아.
오히려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의심해야 하는 사회 속에서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자유를 되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보여준다고 생각해.
이채율 16:50
그렇구나.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 네 번째 질문이야.
소설 속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장면이지 101호실에서 윈스턴이 가장 극도로 두려워하는 쥐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줄리아에게 바쳐라 하면서 배신한 사건이야.
이 배신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생존을 생존 한계로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사랑과 신념을 버렸으니깐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을까?
나는 윤리적으로 이 배신이 정당하다고 볼 순 없지만, 북한의 공포 앞에 놓인 인간을 어쩔 수 없는 본능적 한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
양은 단순히 매를 때리거나 원하는 수준을 넘어서 스턴이 무의식 한 곳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지라는 존재를 용의, 정신적 육체적 공포를 극강까지 끌어올렸잖아.
이채율 17:47
그 지경에 이르면 고결한 사랑이나 신념보다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물학적 생존 본능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 당은 인간의 혁명적 약점을 이용하여 이스턴이 스스로 자신의 영혼과 마지막 존엄성을 파괴하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이야.
박예성 너의 생각은 어때?
박예성 18:13
나는 윈스턴의 배신을 인간의 한계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 먼저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윈스턴이 101호실 전에 이미 오랫동안 구타와 전기고문 굶주림을 버티면서도 줄리아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는 줄리아만은 배신하지 않겠다고 믿었고, 몸은 굴복해도 속마음까지는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오브라이언은 쥐가 든 우리를 얼굴 앞에 가져와서 윈스턴이 평생 가장 무서워한 걸 정확히 겨냥해 윈스턴이 자기 대신 줄리아에게 하라고 외치는 순간은 개선된 선택이라기보다 극한의 공포 앞에서 자기 존 자기 보존 본능이 튀어나온 반응에 가까워.
우리나라 형법 제12조가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협박에 강요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압박 아래에서 한 행동은 평소의 선택과 똑같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박예성 19:08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도 극한 상황에서 시스템에 얽혀버린 사람들을 회색지대라는 말로 설명하면서 그들을 쉽게 단죄하지 말라고 말했어.
우리나라에서도 군사정권 시절 고문 끝에 허위 자백을 했다가 훗날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사건들도 있는 것을 보면 고문 앞에서 무너지는 건 특별히 나약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어.
게다가 줄리아도 나중에 자기도 똑같이 배신했다고 말하고 그 순간에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게 되는 거라고 털어놓아.
이건 윈스턴 한 사람의 결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정신적인 한계야.
하지만 정당화까지 가면 문제가 달라진다고 생각해.
이해한다는 건 왜 그랬는지를 설명하는 것이고, 정당화한다는 것은 그 행동이 옳았다고 말하는 거라서 다르다고 생각해.
줄리아가 겪어야 할 고통을 대신 넘기려 한 건 분명 상처를 남긴 행동이고, 윈스턴 자신도 그 사실을 안고 살아야 했어.
그리고 이 배신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그 뒤에 일어난 일이야.
박예성 20:09
풀려난 뒤 공원에서 다시 만난 윈스턴과 줄리아는 서로 배신했다고 인정하지만, 더는 예전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해.
오브라이언의 목적은 줄레아를 잡는 게 아니라 사랑과 신뢰라는 인간 사이의 마지막 끈을 끊는 것이었고, 그게 성공한 거야.
그래서 나는 책임의 대부분이 사람을 그 지경까지 몰아붙이도록 설계된 단과 101호실이라는 시스템에 있다고 봐.
윈스턴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나라면 끝까지 버텼을까를.
솔직히 생각해 보면 나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돌을 쉽게 던질 수 없다고 느꼈어.
이채율 20:44
그렇구나. 그럼 한지호 너의 생각은 어때?
한지호 20:54
나는 윈스턴이 줄리아를 배신한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101호실은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이용해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는 공간이고, 윈스턴은 극심한 공포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사랑까지 포기하게 돼 이런 상황에서 평소와 같은 판단력을 유지하기에는 매우 어려웠을 거야.
따라서 윈스턴의 행동을 단순히 비겁하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
하지만 줄리아를 배신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이 장면은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가치조차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
결국 윈스턴의 행동은 인간의 한계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행동은 옳았다고 말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이채율 21:45
다음 마지막 다섯 번째 질문이야. 소설 결말에서 지독한 고문과 사상 개조 끝에 결국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위스턴의 모습이 나오잖아.
차라리 끝까지 당해 분노하며 신념을 지키고 죽는 편이 나았을까 아니면 비참하더라도 살아남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내면의 신념과 존엄성을 끝까지 지키며 당에 분노한 채 죽는 편이 훨씬 나았을 거라고 생각해.
당한테 고문을 당해서 육체는 살아남을지 몰라도 위스턴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객관적 진실, 줄리아에 대한 진실된 사랑, 그리고 주체적인 비판적 생각마저 완전히 개조돼서 빅브라더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체제의 부속품이 되어 버렸잖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조작된 사상만 고뇌 없이 받아들이는 로봇처럼 변해버린 삶은 위스턴이라는 인간으로서 이미 영원히 중후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해.
박예성 너의 생각은 어때?
박예성 22:49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윈스턴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살아남은 것 자체에는 의미를 두기 어렵다고 생각해.
먼저 이 질문에 전제부터 당이 막아놓은 거라는 점이 중요해.
오브라이언은 당의 순교자를 만들지 않으려고 속마음까지 완전히 바꾼 뒤에야 총을 쏜다고 말해.
윈스타는 감옥에서 빅 브라더를 증오하면서 죽는 것을 마지막 승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당은 처음부터 그 선택지를 먼저 없애둔 거야.
결말에서 윈스터는 밤나무 카페에서 진을 마시고 먼지 위에 손가락으로 2 더하기, 2는 5를 쓰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모든 게 괜찮다고 느껴.
그리고 마음속 투쟁이 끝났고 자신을 이겼다고 생각하며 빅브라더를 살아가게 돼.
하지만 이건 진짜 승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지워진 거라서 더 비극적이게 느껴지는 것이야.
웨인스턴이 일기장에 진실을 남기려 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의 위에 진실이 지워지기 쉬운 먼지 위에 거짓으로 바뀐 거라서 대비가 더 크게 느껴져.
박예성 23:47
만약 끝까지 분노하며 죽었다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기 생각을 지킨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 거야.
그래서 존엄이라는 면에서는 분노하며 죽는 쪽이 낫다고 더 생각해.
하지만 살아남은 게 무의미하다고만 하기도 어려운 이유가 있어.
프리모 랩이나 솔제니친처럼 극한의 억압을 겪고 살아남아서 그 경험을 증언한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진실을 알게 된 사례가 있거든.
윈스턴이 이들과 다른 점은 살아남았지만 기억하고 증언할 자기 자신을 잃었다는 거야.
그래서 의미를 만드는 건 살아남은 것 자체가 아니라 살아남아서 자기 생각을 지키고 증언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해.
한편, 소설 맨디 브록은 시어를 과거형으로 설명하는데 신화와 당의 체제가 언젠가 끝났다는 점을 암시한다는 해석이 있어.
그렇다면 윈스턴의 이야기가 이렇게 남아서 읽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당의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는 희망의 단서일 수도 있다고 해석될 수 있어.
박예성 24:45
또 자유가 없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 아니라는 기준으로 보면,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윈스탄의 평온도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라 만들어진 상태라서 진짜 구원이라고 보기 어려워.
결국 이 결말의 비극은 윈스턴이 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조차 자기 뜻대로 선택할 수 없게 만드는 권력이 뒤에 있었다는 것이야.
그래서 나는 윈스턴이 어떤 선택을 했어야 했는지를 따지기보단 이런 결말이 다시는 현실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권력을 계속 의심하고 기록과 진실을 지켜야 한다는 걸 이 결말이 말해준다고 봐.
이채율 25:20
그렇구나. 그럼 한지호 너의 생각은 어때?
한지호 25:26
나는 윈스턴이 단순히 살아남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당은 윈스턴의 행동만 통제한 것이 아니라 결국 당을 미워하던 그의 마음까지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야.
윈스턴은 마지막에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면서 당에 대한 저항 의지를 잃어버려 겉으로는 살아남았지만, 자신이 믿었던 가치와 자유로운 생각을 이렇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생존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해.
물론 극심한 고통 속에서 끝까지 저항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윈스턴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가 끝까지 당의 주장을 믿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유지했다면 당이 그의 정신까지 완전히 지배하지는 못했다는 의미가 있을 거야.
따라서 나는 단순히 목숨을 유지하는 것보다 자신의 신념과 자유로운 생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이 결말은 권력이 인간의 정신까지 지배할 때 지배할 때 얼마나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생기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해.
이채율 26:37
여기서 추가 질문 두 개만 더 할게. 첫 번째 질문이야.
그렇다면 만약 우리 사회에서 전체주의적 통제가 은밀하게 시작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걸 감지하고 대비할 수 있을까?
일단 나는 언어의 통제와 정보의 편향을 경계하는 것이 첫 번째 신호이자 대비책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
또한 소설 속 당이 신호를 통해 대중의 비판적 사상 자체를 없애려고 했던 것처럼, 권력이 언론을 통제하거나 특정 가짜 뉴스 알고리즘을 대중의 생각을 한쪽으로 몰아갈 때 전체주의의 징후가 시작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정보의 진위를 비판적으로 따져보고 표현의 자유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끝까지 지켜내야 되지 않을까?
다음으로 박예성 네가 발표해 볼래.
박예성 27:31
전체주의는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독재하라고 선언하고 시작되진 않아.
오히려 자꾸 그럴듯한 명분의 조치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시작돼.
그래서 감지하려면 큰 사건 하나가 아니라 작은 변화들이 같은 방향으로 쌓이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
히틀러도 쿠데타가 아니라 선거와 의회 절차를 거쳐서 집권을 하였고, 1943년 수권법이라는 합법적인 법을 통해 정부의 입법권을 몰아줬어.
독재를 하려는 쪽은 처음엔 한 번에 큰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저항이 적도록 조금씩 나눠서 가져가 이런 방식을 흔히 살라미 전술이라고 불러 한 조각씩 얇게 잘라 가져가면 그때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은 것을 이용하는 거야.
내가 생각하는 감지 신호는 크게 다섯 가지야. 첫 번째는 언어의 변화야.
1984에서 가 신어가 단어를 줄여서 생각의 범위를 좁혔듯이, 비판적 의견에 반국가 가짜 뉴스 적처럼 낙인 찍는 단어가 붙기 시작하면 위험 신호야.
박예성 28:30
반대 의견을 논리로 반박하지 않고 이름표를 붙여서 대화 자체를 끝내버리는 거니까.
소설은 소설의 증오의 이 분처럼 특정 집단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서 불만을 한 곳으로 몰아가는 것도 같은 종류야.
주제는 기록과 정보에 대한 통제야. 통계가 갑자기 중단되거나 바뀌고 공공 기록 공개가 막히고 역사를 한 가지 해석으로만 가르치려 하면 진실부가 시작되는 거야.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슬로건이 현실에서도 작동하는 방식이 바로 이거야.
셋째는 견제 기관이 약해지는 거야. 언론, 법원, 선거 관리, 감사 기관처럼 권력을 의심하고 감시하는 것이 흔들리는 거지.
우리나라도 1980년대에 정부가 언론사에 기사 내용과 제목을 지시한 보도 지침이 있었어.
이런 통제는 국민이 진실에 접근하는 통로 자체를 막는다는 점에서 텔레스크린과 진실부의 현실판이라고 생각해.
넷째는 감시가 안전과 편리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거야.
박예성 29:30
감시 기술은 대개 처음에는 범죄 예방이나 방역처럼 반대하기 어려운 명분으로 도입되고, 한 번 만들어진 시스템은 목적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고 용도로만 넓어져.
그래서 지금 이 정부는 믿을 만하더라도 그 시스템을 미래에 다른 권력이 어떻게 쓸지 모른다는 점도 같이 봐야 돼.
시민들끼리 서로 신고하고 장려하는 분위기도 이 신호에 들어가 소설에서 아이들이 부모를 고발하는 장면이 이 극단이야.
다섯 번째로 가장 중요한 건 내 안에 자기 검열이야.
이런 말 하면 불이익 받지 않을까 하고 말하기 전에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면 이미 텔레스크린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거야.
미실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이 바로 이런 원리인데, 실제로는 감시받지 않아도 감시받을 수 있다는 느낌만으로 사람들이 스스로를 통제하게 돼.
그래서 외부의 변화보다 내가 요즘 말을 줄이고 있나를 점검하는 게 가장 빠른 감지법이라고 생각해.
대비는 개인의 대비와 사회의 대비로 나눌 수 있어.
박예성 30:28
개인의 차원에서는 먼저 정보를 한 곳으로만 받지 않고 여러 출처를 비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기록이 지워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중요한 자료와 원본을 스스로 보관하고 출처를 확인하는 습관까지도 중요해.
윈스턴의 일기가 작은 저항이었던 것처럼 내가 직접 기록하는 것 자체가 방어 수단이 돼.
또 말을 정확하게 쓰는 훈련도 필요해. 단어가 뭉개지면 생각이 뭉개지는 거기 때문에 낙인 단어가 나올 때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야라고 대우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겨 사생활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야.
필요 이상으로 정보를 내놓지 않고 개인 정보 설정을 확인하는 건 숨길 게 있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생각할 공간을 미리 확보하는 일이야.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는 폭정에서 첫 번째 교훈으로 미리 순응하지 말라를 꼽았는데 권력이 요구하기도 전에 알아서 눈치를 보며 따라주는 순간이 가장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해.
박예성 31:20
그리고 이 질문의 답은 경계하면서도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거야.
모든 걸 의심하면 사회가 굴러가지 않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으면 권력이 마음대로 하게 되니까.
중요한 건 의심할 수 있는 권리와 제도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
1984의 가장 무서운 점은 당이 강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됐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첫 번째 탭이라고 생각해.
이채율 31:46
그렇구나. 그럼 한지호 너의 생각은 어때?
한지호 31:53
나는 전체주의적인 통제가 시작되는지 알아보려면 정부가 정부를 독점하거나 언론을 통제하고 권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억압하는 모습이 나타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
전체주의는 처음부터 모든 자유를 빼앗는 방식으로 시작되기보다는 범죄 예방이나 국가의 안전, 또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감시와 통제를 조금씩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 처음에는 안전을 위해 개인 정보를 수집하더라도 나중에는 그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시민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데 이용할 수 있어.
작품에서도 당은 시민들을 감시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기록을 조작하고 사람들이 당의 주장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했어.
이처럼 정보와 진실을 독점하면 사람들은 무엇이 사실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어.
한지호 32:44
이런 상황에 이런 상황에 대비하려면 뉴스를 여러 출처에서 비교하고 정부나 언론이 전달하는 내용을 무조건 믿기보다 근거가 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또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해.
권력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언론과 시민들의 이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정부의 권한이 법과 제도에 따라 제한되는지도 중요해.
만약 사람들이 처벌이나 불이익이 두려워서 권력에 대한 비판을 포기한다면 잘못된 통제가 계속되더라도 이를 바로잡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야.
결국 전체주의적 통제는 처음에는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사회의 변화와 관심을 가지고 정보를 비판적으로 판단하며 권력이 정당하게 사용되는지 확인해야 된다고 생각해.
또한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보호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고 잘못된 일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채율 33:52
두 번째 질문이야. 오브라이언처럼 위스턴의 거짓으로 위로하면서 비판적 생각을 유도하고 결국 파멸시킨 권력의 잔혹함에 대해 어떻게 비평할 수 있을까?
일단 나는 당이 단순히 육체적인 폭력만 쓰는 게 아니라 개인의 신뢰와 희망이라는 가장 순수한 인간적 감정까지 이용해 영혼을 완전히 파괴하는 지독한 악랄함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오브라이언을 위스턴에게 형제단이라는 가짜의 희망을 줘서 굴 속에서 나오게 만든 지 151에서 가장 비참하게 무너뜨렸잖아.
권력이 개인의 통제 할 때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신념까지 요역해서 파괴한다는 걸 보여주는 잔혹한 장치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박예성 너의 생각은 어때?
박예성 34:40
내가 보기에 이 장면의 잔혹함은 고문의 고통 자체보다 인간이 가진 가장 좋은 마음을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에 있어 오브라이언는 윈스턴이 오랫동안 외로웠고 이 세계가 틀렸다는 걸 함께 하는 둥지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는 윈스턴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고 형제단에 드러나라는 듯 다가가고 골든 스타인의 책까지 직접 건네줘.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 책조차 오브라이언이 직접 만드는 데 참여한 거였다고 스스로 말해.
인스탄의 저항 욕구, 희망, 신뢰가 당이 파놓은 덫에 들어가는 먹이가 된 거야.
이걸 현실의 말로 하면 정보기관이 일부러 반체제 인물인 척 접근해서 사람을 걸려들게 하는 함정 수사와 같은 방식이야.
이 방식이 비열한 첫 번째 이유는 처벌받을 만한 행동을 한 사람을 잡는 게 아니라 처벌받게 될 행동을 하도록 유도해서 만든다는 점이야.
박예성 35:33
인스턴은 오브라이언을 만나기 전에는 일기를 쓴 것 말고는 조직적으로 한 일이 아예 없었는데, 오브라이언이 접근한 뒤에야 형제단 가입을 선서하고 아이들을 얼굴에 황상을 뿌릴 수도 있다는 질문까지 동의하게 돼 죄를 만들어 놓고 그 죄를 벌하는 구조라서 당의 처벌은 정의가 아니라 연출한 장면이야.
두 번째 이유는 목적의 잔혹함이야.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이 잡혀 온 뒤에 강은 이단자를 그냥 죽이지 않는다 속마음까지 바꿔서 진심으로 우리를 따르게 만들 뒤야 처리한다라고 말해.
즉 고문의 목적은 정보를 얻는 것도, 죄를 벌하는 것도 아니고 민스턴의 내면을 소유하는 것이야.
거기에 더해 오브라이언은 권력의 목적은 권력이고, 고통을 주는 것이 곧 권력이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짓밟는 장화를 미래의 그림이라고 말해.
이쯤 되면 고문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가 되는 거지.
이건 철학자 칸트가 말한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원칙을 완전히 뒤집은 거야.
박예성 36:27
당에게 윈스턴은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확인하기 위한 재료였을 뿐이지 세 번째는 고문자가 동시에 구원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야.
오브라이언은 고통을 주다가도 멈추고 위로하는 듯한 태도로 윈스턴을 수고를 드릴 만한 학생처럼 대해 윈스턴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주는 사람이 바로 그 고통을 준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브라이언에게 이상한 친밀감과 의존을 느껴 이건 가해자에게 정서적으로 묶이는 심리구조와 닮았는데, 상대의 마지막 심리적 버팀몸까지 빼앗아서 스스로 당을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교묘하고 무서운 방법이라고 생각해 폭력적으로 굴복시키는 것보다 위로를 이용해서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편이 더 철저한 지배니까.
박예성 37:10
이 소설은 구조도 비평할 만해 독자 역시 윈스턴처럼 오브라이언을 믿고 쉽게 만들어 놓게 해놓고 배신감을 느끼게 해.
그래서 우리는 민스턴의 순진함을 비웃기보다 나도 조상임을 믿었겠다라고 느끼게 되고, 이게 오엘이 의도한 효과라고 생각해 누구나 속일 수 있는 구조를 온몸으로 느끼게 한 거지.
다만 이 비판적으로 볼 부분도 있어 오엘은 당을 거의 완벽하고 전능한 권력으로 그려서 현실의 독재가 가진 균열과 허점은 잘 나타내지 않았어.
실제 역사에서는 독재 체제도, 내부 갈등, 비효율, 시민의 저항 등으로 무너진 사례가 많거든.
그래서 오브라이언의 승리를 인간은 결국 무너진다는 법칙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조금 잘못됐다고 생각해.
박예성 37:54
이 소설은 예언이 아니라 경고일 뿐이며, 경고라는 건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전제라는 거에서 의미가 있으니까 또 윈스턴이 무너졌다고 해서 윈스턴의 저항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야.
그 이야기가 이렇게 남아서 우리가 읽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당이 모든 걸 지우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내가 내리는 비평을 정리하자면 오브라이언의 잔혹함은 고통을 주는 능력이 아니라 사람의 희망과 신뢰를 무기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육체의 고통은 사람이 견디거나 증언할 수 있지만 내가 믿었던 것이 나를 파괴하는 도구였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권력은 약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인간다움을 가장 깊은 곳에서 모욕하는 권력이라고 강하게 말해야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 비판은 소설 속 당뿐만이 아니라 어떤 권력이든 사람을 목적으로 이 사람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쓰고 있지 않은가를 묻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봐.
이채율 38:50
그렇구나. 그럼 한지호 너의 생각은 어때?
한지호 38:57
나는 오브라의 연애 행동이 단순한 거짓말이나 배신을 넘어 사람의 신뢰와 희망을 이용해 정신까지 지배하려는 잔혹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윈스턴은 당의 통제에 의문을 품고 있었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당에 저항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했어.
하지만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의 이런 마음을 이용해서 자신이 같은 편인 것처럼 행동했고, 윈스턴이 자신을 믿도록 만들었어.
윈스턴에게 오브라이언은 단순히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 당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존재였다고 생각해.
그런데 오브라이언은 그 희망을 이용해서 윈스턴을 함정에 빠뜨렸고, 결국 윈스턴이 믿었던 것들을 하나씩 무너뜨렸어.
특히 오브라이언의 행동이 더욱 잔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윈스턴에게 단순히 당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강요하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야.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이 자신을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당의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이도록 만들려고 했어.
한지호 40:01
예를 들어 당이 주장하는 내용이 실제 사실과 다르더라도 윈스턴이 당의 말을 의심하지 못하고 그대로 믿도록 압박했어.
믿도록 압박했어. 이는 권력이 사람의 행동뿐만 아니라 기억과 판단 능력, 그리고 무엇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까지 빼앗으려 한다는 것을 보여줘.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겉으로 복종하는 시민이 아니라 당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는 시민인 거야.
나는 이런 모습이 작품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해.
누군가를 힘으로 억압하는 것도 잔혹하지만, 상대방이 믿었던 사람과 가치까지 이용해 스스로의 판단을 의심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야.
윈스턴은 처음에는 당의 거짓말을 의심하고 진실을 찾으려고 했지만, 오브라이언의 통제 속에서 결국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돼 이 결말은 권력이 개인의 몸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감정까지 지배하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참석자 4 41:04
결국 오브라이언의 행동은 권력이 사람을 지배하기 위해 신뢰와 희망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잔혹하다고 생각해.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판단하고 다른 사람을 믿을 권리가 있는데, 오브라이언은 그 권리마저 빼앗으려고 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인물은 전체주의가 단순히 사람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체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까지 없애려는 체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권력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