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2편 방황의 땅>
⑨ 새낮다리 장터에서-7
용훈이도 방금 본 수말의 놀랍고 신기한 광경을 보자, 잔존감각이 머릿속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해는 조금 기운듯하여 정오를 지난 게 틀림없었는데, 말 구루마는 다시금 굽이굽이 내리막길을 거듭 휘돌아서 내리어가기 시작하였다.
눈 아래로 새파랗게 흐르는 벽천냇물의 물줄기가 환히 내리어다보이었다. 물줄기는 맞은편 남쪽을 향하여 뻗어나간 우산(牛山)의 산자락을 따라서 흐르다가는 건너편 산허리에 부딪치어서 방향을 서쪽으로 돌리고 굽이쳐흐르는 거였다.
마부 김씨는 내리막굽잇길을 다 가서는 길가에 말 구루마를 또 세워놓았다. 그리고 그는 수레 앞에 실었던 검정보퉁이를 손에 들고서 풀숲을 헤치어가면서 물가로 다가가더니 소리치는 거였다.
“싸기덜 이리오유.”
경산과 정읍댁은 수레 앞에 검정보퉁이를 한번 스치어보기는 하였으나, 그게 무엇인지 의문을 품지는 아니하였다. 그런데 마부가 냇가로 들고 가면서 오라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밥을 싸온 거라고 짐작하였다.
점심끼니는 당초 생각지도 않았다. 장쇠가 자박자박 가벼운 발걸음으로 잘도 가기에 목적지인 새낮다리를 다 간 뒤에는 장터거리 어디선가 늦은 점심이나마 때우리라고 작정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마부는 냇가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물가의 바윗돌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검정보자기를 풀고 있었다. 아이를 하나씩 업은 경산과 정읍댁, 그리고 용훈이가 무심코 그리로 따라갔다.
마부는 검정보자기를 푼 뒤에 반합뚜껑을 열었다. 하얀 쌀밥이 모둠이로 담기어있고, 반찬은 따로따로 작은 그릇에 담아서 정갈하게 뚜껑이 덮이어있었다. 보자기를 풀어놓은 대로 그냥 펴놓고, 그 위에 음식을 늘어놓았는데, 숟가락젓가락까지 사람 수대로 맞추어서 챙긴 건만 보더라도 꽤나 정성을 기우린 게 분명하였다.
“울 아씨가 요키 증성끗 싸준규.”
마부가 말하는 아씨란 배성태의 아내를 가리키는 거라고 경산과 정읍댁은 얼른 알아차리었다. 배성태의 아내인 그녀는 처음 보기에도 태생이 여자답게 곱상하면서 차분해 보이는 게 부잣집 맏며느리가 될 만한 여자로 보이었다.
기름이 잘잘 흐르는 하얀 쌀밥에다 소갈비 찜과 고추와 양념을 알맞게 버무리어 담근 배추김치에, 풋고추멸치조림과 다꾸앙(단무지)같은 반찬을 제대로 갖추어 음식을 장만한 솜씨가 점심끼니로서는 너무도 훌륭하였다.
마부가 배성태의 아내이야기를 내놓자, 정읍댁은 아직도 잊히어지지 않는 그 남자가, 밥숟갈을 입으로 가지어갈 적마다 솔깃하게 되살아나는 거였다. 마부의 말마따나 이 음식이 그의 아내가 장만한 거라면 속이 메슥거리었다. 까닭에 정읍댁은 밥을 몇 술 입으로 가지어가다가 말고, 업힌 명훈이를 품에 안고서 젖을 빨리었다.
경산도 등에 업은 기훈이를 내리어 앉히고, 밥을 한 술씩 아이에게 떠먹이면서 밥을 먹었다.
“이제 이십 리쯤 남았지요?”
“그깐 잠깐유.”
경산이 묻자 마부 김씨는 잠깐이면 간다고 하였다.
이렇게 물가에서 끼니를 때운 뒤에는 모두들 말 구루마에 다시 올라타고 달리기 시작하였다.
“저기 보이는 세 채집이 아니겠어요?”
말 구루마가 벽천나무다리를 건너서 돌담불동네 앞을 지날 때에 경산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물었다.
첫댓글 무공해 물가의 바위에 앉아 까먹는 도시락 맛이란 말로 표현이 안되겠지요^^*
울타리 밖에만 나가면 모두가 무공해였지요. 요즘 콩나물국 먹고 집단배탈이 났답니다. 대기업이 빵장수는 물론이고 콩나물장수까지 하는 모양인데 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성장제 항생제 방부제가 난무하니 콩나물은 물론이고 상추 쑥갓 시금치 아욱 같은 것도 채전에 직접 갈아서 자급자족해야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게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군요. 농약이 전쟁무기라는데 한국사람들은 밥을 먹듯하고 있으니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