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지역 유적 답사를 마치고/ 안성환
오늘은 울산향토사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한때 울산에 속했던 부산 기장군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답사는 장안사의 불교문화, 묘관음사의 근현대 선불교, 기장향교의 유교교육, 기장읍성의 군사, 행정 기능을 한 코스에서 살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장안사와 묘관음사에서는 김민정 문화해설사님이, 기장향교에서는 김두호 사무국장님이 정성껏 설명해 주셨다. 기장읍성에서는 기장근대역사관 김보숙 학예사님의 깊이 있는 해설을 통해 기장의 역사와 읍성의 역할을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첫 답사지는 장안사였다. 사찰 입구에 도착하니 기장군 문화해설사 김민정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조선시대에 중건되었으며, 특히 대웅전은 부산지역의 오래된 다포식 건축물로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했다. 사찰의 배치와 건축미를 살펴보니, 기장지역의 불교문화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대웅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었다. 약사여래는 동방 유리광정토를,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부처님이라고 했다.
해설사는 이를 우리 일상에 빗대어 친근하게 풀어주었다. “해가 뜨고 눈을 뜨면 온갖 걱정과 고단함이 시작되지만, 해가 지고 잠들면 잠시나마 근심을 잊습니다.” 동방과 서방 정토에 관한 교리 설명에 더해, 삶의 고통과 평안을 일상의 경험으로 풀어주니 한결 쉽게 와닿았다.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대웅전 기둥에 걸린 주련에 대한 설명이었다. 해설사는 여러 주련의 뜻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는데, 그중 ‘수연부감 미부주(隨緣赴感 靡不周)’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인연에 따라 중생의 부름에 응한다는 뜻을 설명하며, “사람마다 처한 형편과 인연은 달라도, 간절한 마음에는 차별 없이 응한다는 말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주련 앞에 한동안 머물렀다.
단청의 문양과 기법 하나하나를 짚어주는 설명도 인상 깊었다. 평소에는 아름다운 색채로만 바라보던 단청이 그날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장안사는 오래된 사찰을 둘러보는 곳을 넘어, 건축과 글귀 속에 담긴 뜻을 천천히 되새기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이어서 묘관음사로 향했다. 이곳은 한국 근현대 선불교의 수행 정신과 선맥을 엿볼 수 있는 사찰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에 운봉선사가 창건하고, 이후 향곡선사가 중창하여 선맥을 이어왔다. 경허와 혜월에서 운봉과 향곡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성철스님도 이곳에서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랜 역사나 웅장한 규모보다 수행자들이 지켜온 삶과 정신에 눈길을 두니, 사찰의 의미가 한층 깊게 다가왔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성철스님과 따님에 관한 일화였다. 아버지가 그리워 이곳을 찾아온 딸을 스님은 끝내 만나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수행의 길을 걷는 제자로서는 만날 수 있지만, 아버지와 딸의 관계로는 만날 수 없다”는 취지였다는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따님은 훗날 출가하여 불필스님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속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자녀를 향한 사랑과 수행자의 길 사이에서, 스님은 어떤 마음으로 그 선택을 하셨을까. 만나주지 않았다고 해서 딸을 향한 사랑마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리워 찾아온 딸의 마음을 헤아리니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선택은 어떤 의미일까. 수행을 그토록 엄격하게 지키려 했던 스님의 마음을 쉽게 헤아릴 수 없어, 묘관음사를 떠나는 길에도 그 물음은 오래 남았다.
기장향교에 도착하니 향교 사무국장이신 김두호 선생님께서 전통 의복을 갖춰 입고 우리를 맞아주셨다. 해박한 지식과 친절한 설명 덕분에 향교의 역사와 전통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장향교는 기록상 1617년(광해군 9)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앞쪽에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교육 공간이, 뒤쪽에는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자리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였다. 이를 통해 향교가 지방의 인재를 기르고 유교적 예절과 질서를 가르치던 지역사회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방문은 선생님의 해설을 통해 전통 예법의 의미를 배우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향교의 역할을 되새겨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번 답사의 마지막 코스인 기장읍성(機張邑城)으로 향했다. 왜구에 맞서 지역을 지키던 이곳에서는 기장근대역사관 김보식 학예사님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다.
학예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기장읍성은 옛 기장현의 행정과 군사 중심지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기존 읍성이 함락된 뒤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에 조성되었으며, 조선시대에 크게 증축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이 죽성리왜성을 쌓으면서 읍성의 돌을 가져가 상당 부분이 훼손되었다고 전한다.
성 안에는 동헌과 객사, 장관청 등 관아시설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예사님은 지금은 흔적을 확인하기 어려운 건물과 옛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사진 자료까지 준비해 주셨다. 세심하고 친절한 해설 덕분에 사라진 읍성의 모습을 그려 보며, 기장의 역사와 지역 방어의 의미를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기장 답사는 한 지역에 깃든 불교의 수행문화, 유교교육, 행정과 군사체계를 함께 살펴본 뜻깊은 현장 역사교육이었다. 장안사에서는 천년 불교문화의 깊이를 느끼고, 묘관음사에서는 근현대 선승들의 수행정신을 되새겼다. 기장향교에서는 배움과 예절을 중시한 선비정신을 익혔으며, 기장읍성에서는 왜구의 침입과 임진왜란을 겪은 지역민의 삶과 고장을 지키려는 노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수행정신과 선비정신, 호국정신을 함께 만난 이번 답사는 선조들이 지켜온 신앙과 배움, 공동체의 가치를 돌아보고, 지역문화유산을 소중히 보존해야 할 이유를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2026년 10월 3일 안성환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