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을동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성 화진포
드라마 ‘가을동화’를 기억하는 이는 노땅이다. 어르신이면 어쩌랴. 23년 전 드라마 보는 내내 최고로 가슴이 두근거렸으니까? 그런 순수한 때가 있었으니까. 청순가련형의 송혜교가 글로리에서는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했으니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가을동화는 한류드라마의 문을 열었는데 고성의 화진포는 가을동화의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촬영지였다. 어린 시절 해변에 그림을 그리며 추억을 쌓은 곳이며 준서(송승헌 분)가 사랑하는 여인 은서(송혜교 분)를 등에 업고 마지막을 보낸 곳이 화진포해변이다. 여인이 마지막 눈을 감았을 때 그 라스트 신을 보고 많이도 눈물을 쏟아냈다. 지금은 뭘 봐도 감흥이 없으니 무뎌버린 내 마음을 탓해야 할 것 같다.
가뜩이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무지개까지 하늘을 수놓았으니 그야말로 대박. 왠지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라고 할까
파란 바다는 연신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얼마 전 보았던 서해바다와는 색부터 다르다. 바다 건너 적당한 위치에 금구도란 예쁜 섬이 자리 잡고 있어 품격마저 높여준다.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화진포에는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세 인물(김일성, 이승만, 이기붕)의 별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주변 경치가 탁월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세 별장을 통틀어 '역사안보전시관'이라고 부른다.
김일성 별장은 해변에서 한참 계단을 올라야 만날 수 있다. 경치로 따진다면 세 별장 중에서는 단연 최고다. 송림 사이로 예쁜 화진포 해변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 짜릿한 풍경을 안겨준다. 광복 후 3.8선이 그어지면서 북한땅이 되었다. 1948년부터 김일성과 그 가족들이 하계휴양지로 사용했으며 원래는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이었으나 전쟁 중에 훼손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별장 안에는 김일성의 단란했던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가족만큼이나 우리 민족을 사랑했다면 6.25의 비극은 없었으리라. 이곳에서 찍은 김정일의 6살 사진은 너무나 천진난만해 시선을 고정시키게 한다. 바다 쪽으로는 아직도 철조망으로 둘러쳐 있어 차갑다.
김일성 별장에서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 소나무 숲 사이에 그림 같은 집이 보인다. 바로 이기붕 별장이다. 앞에는 화진포 호수가 보이고 뒤는 해변이 펼쳐져 있다. 별장 옆의 소나무길을 사부작사부작 거닐어 보라.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양 의기양양. 이기붕 별장이야말로 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되다가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 간부 휴양소로 이용되었고,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처 박마리아의 개인별장으로 사용되었다. 이기붕 가족이 사용했던 침대와 책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어쩌면 이승만이 독재의 길을 걸었던 것도 이기붕의 책임이 상당수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부정하게 사용하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가르쳐준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별장을 가려면 화진포 호수를 빙 둘러가야만 한다. 화진포호수는 72만 평이나 되고 둘레만 16km로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다.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이어지고 있으며 운 좋으면 청둥오리의 군무도 볼 수 있는 행운도 얻게 된다. 겨울엔 천연기념물인 고니가 찾아온다.
겨울의 매력은 갈대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흔들리는 갈대를 보노라면 가을동화의 달콤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하다.
화진포 다리를 건너면 이승만 별장이 나온다. 권력자의 별장치고는 수수하게 꾸며져 있다. 청년시절 자료사진과 프란체스카 여사의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별장엔 침실과 집무실 그리고 응접실이 꾸며져 있다. 1954년 별장이 지어져 사용되다가 5.16혁명이 일어나자 폐허가 되어 철거되었다가 1997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시켜 놓았다.
화진포 응봉
시간 여유가 있다면 김일성별장 뒤쪽에 응봉 등산을 추천한다. 바다색에 취하고 나면 울창한 금강송군락지. 흙길과 데크길을 20여 분 쯤 타박타박 걸으면 응봉 정상(122m). 화진포 호수를 가장 멋지게 볼 수 있는 절경 포인트. 편안히 감상할 수 있도록 나무의자도 만들어 놓았다.
한쪽은 호수, 한쪽은 바다. 북쪽 바다 끝은 해금강.
특히 화진포 호수가 하트형상을 하고 있으며 고운 백사장의 화진포 해수욕장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호수 뒤편으로는 금강산.
싱가포르 리센룽 총리 부부가 개인 휴가를 즐기기 위해 고성에 왔는데 이곳 응봉에서 내려다본 절경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통일전망대
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자. 부산서 출발하는 7번 국도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고성 통일전망대가 나온다. 그곳까지 가는 해변 드라이브코스가 일품이다. 비무장지대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미터 고지에 통일 전망대가 서있다. 북위 38도 35분이다. 남한에서 최북단이 바로 이곳이다. 금강산과 해금강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한나절 울음을 터뜨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통일을 염원하는 성모상과 미륵불상이 나란히 금강산을 바라보고 있어 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
오래전 육로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관광객을 만났다.
“금강산 멋있어요?”
“멋으로 봅니까? 마음으로 봐야지요.”
첫댓글 무지개 대박 멋집니다.
웅봉에서 바라보는 화진포 너무 멋있지요.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