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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대사 묘(충남 기념물 15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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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병장 영규대사 묘역 전경 |
승병장인 영규대사(靈圭大師)의 묘소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계룡산의 갑사(甲寺) 진입로를 조금 지나 서쪽편에 위치한다. 영규대사는 밀양 박씨로 호는 기허(騎虛)이며,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제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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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에는 홍살문과 영정각이 있으며, 언덕을 조금 오르면 우측에 '의병승장기허당영규대사순의실적비(1994년)'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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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언덕 위에 영규대사 묘역이 있습니다. |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하면서 무예를 익혔는데 그 재능을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3일 동안 통곡하고 스스로 승병장이 되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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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규대사 묘역 전경(근래에 묘역 정화사업으로 봉분에 둘레석과 석물들을 추가로 조성) |
승병 1천명을 모집하여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청주성 전투와 금산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의주까지 피난을 갔던 선조는 승전 소식을 듣고 영규대사에게 벼슬과 옷을 하사하였는데, 하사한 선물이 도착하기도 전에 금산 전투에서 숨을 거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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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규대사 묘역 전경 |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이 일어난 것은 그가 최초로 전국 곳곳에서 승병이 일어나는 도화선이 되었다. 영규대사는 부상한 몸을 이끌고 현재의 묘소부근까지 와서 숨을 거두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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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규대사 묘역 측면과 뒤에서 내려다 본 모습 |
해발 150m의 산록 경사면을 깎아 만든 묘소는 최근에 봉분, 축대, 계단 등의 시설을 보수공사 하였다. 묘비는 순조 10년(1810)에 방계(傍系)의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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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규대사 묘의 예전 모습입니다.(문화재청 사진) |
영규대사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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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충남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 화살표 ↑ 위치 부근에 영규대사 묘역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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