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우산
(사진-중국 장가계의 용석채 설경)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는 하루하루 마른 꽃잎처럼 시들어 가셨다. 해야만 했고, 아버지는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 되어 가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픔 을 삼킬 뿐이었다.
하루는 내가 다 떨어진 운동화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볼멘소리로 어머니 를 향해 말했다.
“엄마, 아이들이 내 운동화보고 뭐라는 줄 알아? 거지 신발이래, 거지 신발!” 옆에 있던 형이 나를 툭 쳤다. 사 가지고 들어오셨다. 그러고는 곰팡이 핀 벽을 행해 돌아앉아 말없이 술만 마시셨다.
산동네로 이사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밤늦은 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천둥소리가 사납게 으르렁 거렸다.
비 오는 날이 계속되면서 곰팡이 핀 천장에는 동그랗게 물이 고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빗물이 방울져 내렸다.
어머니는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걸레대신 양동이를 벋쳐놓았다.
잠시 후, 아버지는 한쪽 손에 깁스를 한 불편한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받아들고 천둥치는 밤거리로 나가셨다.
그런데 밤 12시가 다되도록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밤이 깊을수록 우리들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다.
어머니와 누나는 우산을 받들고 대문 밖을 나섰다.
아버지를 찾으러 나간 어머니와 누나마저도 감감 무소식이자 형이 불쑥 말했다. 장례행렬처럼 웅성거릴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집 앞 골목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엄마.... 저기 봐....” 검은 그림자는 분명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천둥치는 지붕 위에서 온몸으로 사나운 비를 맞으며 앉아있었다. 모습이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형과 나는 엄마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누나가 아버지를 부르려 하자 어머니는 누나의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가난을 아슬아슬하게 받쳐 들고 계셨다.
<행복한 고물상>저자 이철환님 같이 공유하고자 공개합니다.
사진은 1월초 중국 장가계의 용석채의 설경을 담아 올립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시고 평강이 가득하소서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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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합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테리우스원
첫댓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그림자가 가득한 내용입니다. 그림자는 정말 무섭습니다. 칼 융이 말한 그림자의 원형은 전쟁을 이야기하는 고호의 그림입니다. 가난과의 전쟁 정말 머리끝이 쭈뼛합니다. 그러나 그림자를 잘 달래야 우리 마음속이 그림자가 폭발하지 않습니다. 읽는 동안 그림자를 많이 달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 혹은 신화입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 요즈음도 건강하시죠. 그리고 하시는 작업도 뜻대로 되시는지요. 네, 위의 글은 너무 감동적이라 퍼왔죠. 댓글 감사합니다. 늘 선생님의 건필을 기원드립니다.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해야겠다는 아버지의 의무감, 그 그늘 아래서 우리는 배우고 자랐다.
그렇죠. 따뜻한 감정 느껴지죠. ㅎㅎㅎ
아마도 '연탄길'인가 하는 그 책을 쓴 분이 이철환이라는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 이런 이야기는 사실상 널려 있습니다. 아무리 과학적 진실을 초월하여 문학적 진실을 형상화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 작위적이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작위도 어느 정도일 때 감동을 주는 것이지 지나치면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요.문장의 비만도 문제이지만 내용의 비만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동 한 그릇'이라는 일본의 동화가 처음에는 실화로 소개되어 백만인의 심금을 울리다가 나중에 꾸민 이야기라고 알려지면서 많은 독자를 실망시킨 일이 있지요. 그 이야기를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좋은 사진은 잘 감상했습니다
성의있는 댓글 감사합니다.ㅎㅎ 그냥 가볍게 읽으시죠. 작품으로 보다가는 아버지의 역할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수필 난이 아니고 자유로운 계시판이니 올려보았답니다. 늘 건필하시길...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