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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아버지의 우산
강촌 추천 0 조회 142 07.01.24 07:51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아버지의 우산

 

(사진-중국 장가계의 용석채 설경)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지는 하루하루 마른 꽃잎처럼 시들어 가셨다.
우리 가족은 조그만 집들이 들꽃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변두리 산동네로 이사를

해야만 했고, 아버지는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 되어 가셨다.

 

 



예전처럼 어린 우리들을 대해주시지 않으셨고, 웃음마저 잃어 가시는 듯 했다.
공부를 방해하는 우리 형제 때문에 누나가 공부방을 조를 때마다

아버지는 말없이 아픔 을 삼킬 뿐이었다.

 

 

 

 

 

하루는 내가 다 떨어진 운동화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볼멘소리로 어머니 를 향해 말했다.

 

“엄마, 아이들이 내 운동화보고 뭐라는 줄 알아? 거지 신발이래,

거지 신발!”  옆에 있던 형이 나를 툭 쳤다.

아무 말이 없던 아버지는 곧 어머니로부터 천 원짜리 한 장을 받아들고 술 한 병을

사 가지고 들어오셨다. 그러고는 곰팡이 핀 벽을 행해 돌아앉아 말없이 술만 마시셨다.

 

 

 

산동네로 이사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밤늦은 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동네 조그만 집들을 송두리째 날려 보내려는 듯 사나운 비바람도 몰아쳤다.

칼날 같은 번개가 캄캄한 하늘을 쩍하고 갈라놓으면,

곧이어 천둥소리가 사납게 으르렁 거렸다.

 

 

 

비 오는 날이 계속되면서 곰팡이 핀 천장에는 동그랗게 물이 고였다.
그리고 빗물이 한 두 방울 씩 떨어지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빗물이 방울져 내렸다.

 

 어머니는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걸레대신 양동이를 벋쳐놓았다.
“이걸 어쩌나, 이렇게 비가 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손 좀 볼걸 그랬어요.”

엄마의 다급해진 목소리에도 돌아누운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 며칠 전, 오토바이와 부딪쳐 팔에 깁스를 하고 계시는 형편이었다.

 


 

 

잠시 후, 아버지는 한쪽 손에 깁스를 한 불편한 몸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어머니에게 천원을

받아들고 천둥치는 밤거리로 나가셨다.

 

 


 

그런데 밤 12시가 다되도록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창밖에선 여전히 천둥소리가 요란했고,

밤이 깊을수록 우리들의 불안은 점점 더 커져갔다.

 

 어머니와 누나는 우산을 받들고 대문 밖을 나섰다.
“우리도 나가볼까?”

 

 

 

 

아버지를 찾으러 나간 어머니와 누나마저도 감감 무소식이자 형이 불쑥 말했다.
“그래.”

식구들을 찾아 동네 이곳저곳을 헤맸지만 비바람 소리만

장례행렬처럼 웅성거릴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집 앞 골목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우산을 받쳐 든 어머니와 누나가 지붕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저기 봐....”
누나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순간 나는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지붕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검은 그림자는 분명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천둥치는 지붕 위에서 온몸으로 사나운 비를 맞으며 앉아있었다.
깁스한 팔을 겨우 가누며 빗물이 새는 깨어진 기와 위에 우산을 받치고 계셨다.

비바람에 우산이 날아 갈까봐 한 손으로 간신히 우산을 붙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형과 나는 엄마 뒤로 천천히 걸어갔다.

 

 

 

 

누나가 아버지를 부르려 하자 어머니는 누나의 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아빠가 가엾어도 지금은 아빠를 부르지 말자. 너희들과 엄마를 위해서 아빠가 저것마저

하실 수 없다면 더 슬퍼하실 지도 모르잖아.”
어머니는 그때 목이 매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빠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에도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가난을 안겨주고 아버지는 늘 마음 아파하셨다.

하지만 그 날 밤, 아버지는 천둥치는 지붕 위에 앉아 우리들의

가난을 아슬아슬하게 받쳐 들고 계셨다.

아버지는 가족들의 지붕이 되려 하셨던 것이다.
비가 그치고, 하얗게 새벽이 올 때까지....

 


 

<행복한 고물상>저자 이철환님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로 혼자 가슴에 담기에 너무 벅차서

같이 공유하고자 공개합니다.

 

 

사진은 1월초 중국 장가계의 용석채의 설경을 담아 올립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시고 평강이 가득하소서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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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1.24 14:05

    첫댓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그림자가 가득한 내용입니다. 그림자는 정말 무섭습니다. 칼 융이 말한 그림자의 원형은 전쟁을 이야기하는 고호의 그림입니다. 가난과의 전쟁 정말 머리끝이 쭈뼛합니다. 그러나 그림자를 잘 달래야 우리 마음속이 그림자가 폭발하지 않습니다. 읽는 동안 그림자를 많이 달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 혹은 신화입니다. 건강하세요.

  • 작성자 07.01.24 23:53

    선생님, 요즈음도 건강하시죠. 그리고 하시는 작업도 뜻대로 되시는지요. 네, 위의 글은 너무 감동적이라 퍼왔죠. 댓글 감사합니다. 늘 선생님의 건필을 기원드립니다.

  • 07.01.25 07:09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해야겠다는 아버지의 의무감, 그 그늘 아래서 우리는 배우고 자랐다.

  • 작성자 07.01.27 05:46

    그렇죠. 따뜻한 감정 느껴지죠. ㅎㅎㅎ

  • 07.01.25 22:11

    아마도 '연탄길'인가 하는 그 책을 쓴 분이 이철환이라는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 이런 이야기는 사실상 널려 있습니다. 아무리 과학적 진실을 초월하여 문학적 진실을 형상화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 작위적이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작위도 어느 정도일 때 감동을 주는 것이지 지나치면 역효과를 내지 않을까요.문장의 비만도 문제이지만 내용의 비만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동 한 그릇'이라는 일본의 동화가 처음에는 실화로 소개되어 백만인의 심금을 울리다가 나중에 꾸민 이야기라고 알려지면서 많은 독자를 실망시킨 일이 있지요. 그 이야기를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좋은 사진은 잘 감상했습니다

  • 작성자 07.01.27 05:52

    성의있는 댓글 감사합니다.ㅎㅎ 그냥 가볍게 읽으시죠. 작품으로 보다가는 아버지의 역할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수필 난이 아니고 자유로운 계시판이니 올려보았답니다. 늘 건필하시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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