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한산대첩. “반드시 이순신을 제거해야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시대에 가장 앞서 나갔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피살되자 혼란을 수습하고 일본을 통일한 인물이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발탁돼 밑바닥부터 시작해 점차 장수로 중용되다가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도도는 도요토미가 어떤 난관 속에서도 시기를 잘 잡고 시세를 처리하는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도요토미가 전국 통일 후 느닷없이 조선을 침략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도도는 조선 수군의 이순신을 이길 수 없는 현실을 솔직히 털어놓으면 도요토미가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금부터 조선 수군을 만나면 싸우지 말고 무조건 도망쳐.”
“넷?”
도도는 도요토미의 말에 깜짝 놀랐다. 뜻밖의 말이었지만 절묘한 답이기도 했다.
“대신 조선으로 가는 통로인 부산만은 반드시 지켜. 조선 수군을 이기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까진 그 수밖에 없어.”
“그, 그거야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육지에서는 달아나는 조선의 임금을 끝까지 추격하면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도읍인 한양을 버리고 또 나라까지 버린 채 명나라로 도망가려는 자가 무슨 임금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런 자는 살려두는 게 우리에게 오히려 더 득이 되는 법이야. 조선에서는 임금이 오히려 걸림돌인 셈이지. 그래서 자중지란이 벌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왕권을 지키기 위해 능력 있는 신하들을 쫓아내는 일도 생길 수 있어. 조선 수군의 이순신을 조선의 임금이 제거한다면 그거야말로 금상첨화겠지.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 또 그렇게 되도록 해야만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거야.”
도도는 도요토미의 말에 속으로 감탄했다. 일본 천하를 제패한 인물은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달랐다. 전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아도 정세를 파악하는 능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어차피 조선 수군이 있는 한 해상 보급로는 포기할 수밖에 없어. 대신 하루속히 조선 수군을 상대할 수 있도록 대형 군선을 건조하겠다. 이제부터 조선과의 싸움은 우리 편이나 마찬가지인 조선의 임금이 아니라 조선 수군의 이순신이다. 반드시 이순신을 제거해야 한다.”
“태합 전하, 명심하겠습니다.”
도도 다카토라는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조아리며 절대복종을 다짐했다.
며칠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는 조선침략전쟁에 참가한 왜군의 주요 장수들에게 일제히 전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