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린 <레이디 샬롯>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흰옷을 입은 아리따운 여인이 배에 몸을 싣고 정처 없이 흘러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왠지 현실이 아니라 꿈속의 풍경인 것만 같습니다. 이제 곧 해가 질 것 같은데, 여인은 이 배에서 떠날 생각이 없는 듯 깊은 상념에 빠져 있습니다. 그 상념이 아련한 노래가 되어 우리의 마음 속으로 아득히 밀려들어옵니다.
이 그림은 아더왕 시대를 배경으로 한 테니슨의 시를 토대로 한 그림입니다. 여인은 그릇이 아니라 거울을 깨 버린 사람 입니다. 자신을 가두려는 운명의 힘에 결연히 저항한 그녀는 그로 인해 홀로 강을 따라 끝없는 여행을 떠나야 했습니다. 어쩌면 진정으로 자유와 해방의 여행을 떠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이디 샬롯은 어두운 탑 안에 갇혀 세상을 거울로만 보도록 허락 받은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운명에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씩씩하고 잘 생긴 원탁의 기사 랜슬롯 경을 처음 본 순간 그녀는 그를 향한 뜨거운 열정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사랑을 위해 숙명을 어기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탑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거울은 그렇게 깨져버렸고, 그녀는 랜슬럿 경이 있는 카멜롯으로 흐르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정처 없이 흘러가게 됩니다. 며칠 후 배가 카멜롯에 이르렀을 때 기사들이 본 것은 그 배 안에 자는 듯이 누워 있는 레이디 샬롯의 아름다운 주검이었다고 합니다.
그림 속의 레이디 샬롯은 지금 저물어 가는 해뿐 아니라 저물어 가는 자신의 인생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자존은 목숨보다 귀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해서는 껍질을 깨고 나오는 아픔쯤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 아픔을 레이디 샬롯은 평생의 마지막 노래로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유리처럼 투명한 표정으로 십자고상(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고통 당하는 모습의 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서 영롱한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 |
첫댓글 참으로 멋진 작품과 그에 얽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사랑을 찾아 떠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