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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사 7:1-14)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보는 순간, 오늘 새벽 5시 3분에, 포항 북부에서 4.6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여진에 주의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신나고 즐거운 온 세계의 스포츠가 열리고 있고, 한편에서는 지진으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보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두려운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지진이 평창이나 강릉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으면서, 온 세계의 스포츠를 즐겨야 할 것입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시작되었습니다.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500미터에서 임효준 선수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첫 번째 금메달을 땄습니다.
금메달을 따기 전, 2월 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실패도 있었지만 그토록 꿈꾸던 평창올림픽에 출전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운동을 하면서, 오른쪽 발목 골절 부상을 당하는 등, 7번의 크고 작은 수술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결승에 오른 황대헌은 비록 넘어지는 바람에, 메달권에 들지 못했지만, 레이스 중반까지 그와 함께 레이스를 이끌면서, 금메달의 숨은 조력자가 됐습니다.
스포츠에 푹 빠지면 안되지만,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함으로, 남북, 여야, 노사, 분열된 마음들이 한마음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스포츠와 같이 정정당당한 경기가 있는 반면에, 힘의 논리에 의하여, 이기고 지는 정정당당하지 못한 싸움이 있습니다.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영웅들은 대부분 전쟁의 영웅들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도, 전쟁 중에 주신 말씀입니다.
2월 9일, 시리아 영토 안에, 친이란 무장세력의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 표적을 공습하고, 복귀하던 이스라엘 F-16 전투기가, 시리아 대공 공격을 받고, 이스라엘 북부에 추락했습니다.
10일, 이스라엘이 내전 중인 시리아의 친정부ㆍ친이란 무장세력을 표적으로 삼아 대규모 공습을 진행했습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공습의 책임을 이란에 돌리며, 이란이 시리아 내에 군사 기지를 구축하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은 평화를 원하지만 공격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고, 시리아나 다른 지역에 이란의 군사력이 확장하는 것을 결연히 막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리아의 현 정권을 지지하는 러시아 외교부는 타스통신을 통해, “시리아와 다른 국가들의 주권과 영토 보전권이 보장돼야 한다”며 긴장 자제를 주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했다며, 양국의 군사협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국무부의 헤더 노어트 대변인은 “미국은 이스라엘의 영토 주권 보호 행위를 지지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지금 중동은 이란(시아파)을 중심으로 하여,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연합과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를 중심으로 하여, 이집트, 이스라엘 연합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란 뒤에는 러시아가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이스라엘 뒤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는 이슬람 수니파입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적이지만, 시아파 이란을 견제하기 위하여, 이슬람 수니파와 유대교가 손을 잡았습니다.
여러분! 이런 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남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남유다를 침략하였습니다. 여기서,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의 분단된 형제의 나라이고, 아람은 지금의 시리아입니다.
예를 들면,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손을 잡고, 남한을 침략했습니다. 6.25전쟁의 도발과 같은 양상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하였다”고 말하였을 때, 왕과 백성들의 마음은,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아하스를 만나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그들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대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 7: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굳게 믿어야 합니다.
민수기 23: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말했습니다.
시편 33:9절을 보면,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침략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강력한 외적의 침입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아하스 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 홍해 앞에 섰을 때, 애굽의 바로와 그의 군사들이 그들을 잡으려고 왔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그들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에게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 14:11-12)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앞에서 가만히 있어야 했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의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위급한 순간에, 배를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어디 가서, 배를 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장정만 60만 명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홍해를 건너려면, 엄청난 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애굽의 병사들과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왕이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추격하였습니다.
훈련된 병사들과 어떻게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에게는 아무런 무기도 없습니다. 맨몸으로 그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들은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에게 응답하시는가를 지켜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출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다 건넌 후에,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
멈추었던 물이 다시 흘렀습니다.
이스라엘을 따라, 바다에 들어온 바로의 군대는 하나도 남지 않고 수장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를 믿었습니다.
여러분!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고난의 파도가 밀려올 때, 사람마다 이를 대처하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허둥지둥, 안절부절 하다가, 대개 고난의 파도에 떠밀려 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궁리를 하면서, 파도와 맞서 싸웁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 34:4절을 보면,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두려움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여러분! 설마 했는데, 정말 왔습니다.
북한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남한 땅을 밟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했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습니다.
북한 예술단이 강릉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이선희의 J라는 곡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공연을 할 것입니다.
남북한 선수단들이 함께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을 했습니다.
북한 응원단원들이 경기장에서, 한반도기를 흔들면서, 열심히 응원을 했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되는 아름다운 순간들입니다.
여러분! 이런 하나되는 모습이 계속 되어지기를 바라지만, 어느 순간, 북한이 핵미사일을 남한을 향하여, 발사한다고 하면, 어디로 숨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디로 도망갈 수가 있겠습니까?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고, 남유다를 침략했을 때, 어떻게 침착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세력이 물밀 듯 밀려내려오는 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병사들이 달려오는데,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두려워, 혼비백산할 것입니다.
그들의 말발굽 아래에, 무참히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가옥들은 불에 타고, 모든 양식들은 다 빼앗기고, 모든 사람들은 무참히 죽임을 당하거나,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외적의 침입을 앞두고, 어쩌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고 있던 아하스를 위해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너는 삼가며, 조용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라.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군대보다 압도적으로 막강한 적이 쳐들어온다는데, 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침착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북이스라엘과 아람을 가리켜,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불과하다”(사 7: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이, 사람의 눈에는 아무리 강해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부지깽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적군의 의도가 달성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적군이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아하스 왕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승리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주인입니다.
인생의 모든 성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이 그를 향하여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돌매를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향하여 던졌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다윗이 승리하였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이번 전쟁에서, 동맹군으로부터, 남유다를 지켜 줄 것이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행동하고,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 환난 중에, 사람이 의지해야 할 마지막 피난처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평안할 때만 하나님을 잘 믿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난 중에 하나님을 더 굳게 믿어야 합니다.
한 여행자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고는 간신히 매달렸습니다.
그는 겁에 질려 소리쳤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없소? 날 좀 구해줘요.”
그러자 어떤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구해 주마. 너는 나를 믿느냐?”
“주님, 제가 확실히 믿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네가 붙들고 있는 그 나뭇가지에서 이제 손을 떼어라.”
그러나 그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거기 위에, 누구 다른 사람 없소!”
이 사람은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평안할 때나, 어려울 때나,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믿고 손을 놓아라”고 말씀하시면, 정말 손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만 바라보아라”고 말씀하사면, 정말 주님만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그 여행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참 믿음이 아니라 거짓 믿음입니다.
여러분! 지난 주에, 노회 임원수련회 관계로, 부부동반으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를 다녀왔습니다.
인천 1터미널에서, 이스타 항공을 타고, 5시간 정도를 비행했습니다.
큰 비행기가 아니라 조금은 작은 비행기였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날씨가 나쁘면, 바람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가는 비행 중에, 같은 라인에 있는 어떤 분은 멀미를 했는지, 토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비행기에서는 중간에 내릴 수가 없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비행기 동체가 흔들리므로, 중간에 내리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는 한 번 타면, 끝까지 가야 합니다. 목적지까지 가야만 합니다.
지금껏 비행기를 탈 때, 조종석 자리에 앉아 있는 비행기 조종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조종사가 베테랑 조종사인지, 아니면, 처음 비행기 조종을 하는 초보 조종사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라는 조종사의 말만 무조건 믿고 비행기를 타는 것입니다.
의심을 하면, 비행기를 타는 내내 불안할 것입니다.
한 번 타면,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제 시간에, 목적지까지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 줄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가는 중에, 심하게 흔들거려도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조종석에 앉아, 비행기를 몰고 가겠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미려한 일입니다. 기체가 흔들거리므로, 중간에 내리겠다고, 문 열어달라고 하는 것도 어리석고 미련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이 운전하시는 비행기를 타고 가는 승객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도중에 “여기 내려 주세요, 저기 내려 주세요.”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 동체가 흔들거린다고, “내가 직접 운전하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직접 핸들을 잡고 운전하시고 계시니, 우리는 오직 주님을 의지할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평안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실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 7:9)
우리는 주님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굳게 믿지 아니하면, 우리는 굳게 서지 못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10-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아멘.
하나님께서 아하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여라.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하여라.”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게 징조를 구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아하스 왕이 하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
아하스 왕은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하스 왕에게,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달라.”고, 다시 말해,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하스 왕에게 “무엇이든지 나에게 기도하라. 내가 들어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았을까요? 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아하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그의 불신앙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하스 왕은 아람과 북이스라엘 동맹군을 대적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앗수르를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대신, 앗수르라는 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여,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동맹군을 물리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하나님의 징조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도움을 청하는 대신, 앗수르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힘센 앗수르를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사 7:13)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야 합니다.
징조를 구하지 않음으로, 기도하지 않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괴롭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하라”고 말씀하시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면,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시면, 징조를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라”고 말씀하시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기회를 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직장과 배우자를 구할 것이며,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건강을 구할 것입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구할 것입니다.
심한 바람에, 비행기 동체가 흔들리면, “주여”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잘 하게 해달라고, 사업가들은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징조를 구하라. 무엇이든지 구하라.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아하스 왕에게 기회를 주었는데, 그는 “나는 구하지 않겠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만약에, 제가 아하스였다면, “하나님,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을 물리쳐 주옵소서.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지켜 주옵소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많이 따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간섭하시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는데, 아하스는 그 기회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하므로, 기도하지 않겠다고 하므로, 하나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여러분!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잘못된 사람입니다. 영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다.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힘센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하스 왕은 앗수르의 도움을 받아,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동맹군을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남유다는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엄청난 양의 금은 보화를 앗수르에게 바쳐야 했고, 결국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금은 그릇들도 모두 다 빼앗겨야 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과 아람 뿐만 아니라, 남유다를 침략하였습니다.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한 아하스는 오히려 앗수르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도움을 구한 결과였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아멘.
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만하고 영적으로 잘못된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기적을 보여주시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약 700년 후에 마리아라는 처녀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잉태되고 탄생할 것이다. 그가 인류의 죄를 사할 것이며,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
훗날,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했을 때,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7-38)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문제는 여러분과 저입니다. 우리입니다.
아하스 왕처럼, 믿음이 없어서, 영적으로 게을러서, 영적으로 교만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내가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징조를 구하라. 도움을 구하라. 기도하라.”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왜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지 않습니까?
아주 위급한 상황인데, 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까?
“도와 달라. 살려 달라. 구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하스 왕은 앗수르를 믿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앗수르는 아하스왕의 요청을 받고, 북이스라엘과 아람 동맹군을 물리쳐 주었습니다. 아예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움을 청한 남유다를 집어삼키고자,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아하스 왕은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야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훗날,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경험과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훗날,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잉태하므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임마누엘”은 무슨 뜻입니까?
이사야 8:10절을 보면,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그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남유다와 아하스 왕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악으로 버려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늘 계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고,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의 나아가는 길에 늘 함께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여 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어제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내일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때나, 의심할 때나
기도할 때나 기도하지 않을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변함없는 사랑,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