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경충(徐敬忠)
[생졸년] 1566년(명종 21)~1638년(인조 16) / 壽 72歲
조선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의 무신으로,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군보(君輔). 고려의 명신 서희(徐熙)의 후손이라 전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함경도에까지 침입해오자 순찰사(巡察使) 윤탁연(尹卓然)을 찾아가 적군을 토벌할 방략을 제안하여 복병장(伏兵將)으로 기용되었다.
이어 300여 명의 병사를 모집하여 함흥·홍원에서 왜군을 크게 섬멸하였으며, 그 공으로 군공일등(軍功一等)에 참록(參錄)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워 충무위좌부장(忠武衛左部將)에 임명되었다. 이러한 활약은 정문부(鄭文孚)의 의병활동과 더불어 함경도인의 기개를 크게 떨친 것으로 평가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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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 이재(李縡) 撰비문
증 첨정 서후 묘표(贈僉正徐矦墓表)
아, 이곳은 고(故) 선무 원종공신 서경충(徐敬忠)의 묘소이다. 만력(萬曆) 계사년(癸巳年,1593, 선조 26) 함경도 도순찰사 윤탁연(尹卓然)이 급히 장계를 올려 한 방면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장사의 등급을 나누어 보고하였는데, 경충이 일등이었다.
장계의 내용에,
“위 사람은 제가 도순찰할 때에 가장 먼저 앞으로 나왔습니다. 퇴조사(退朝社)의 복병장으로, 병사 300여 명을 모아 이유일(李惟一)의 부대에 소속되었으며, 10월 덕산사(德山社)와 11월 홍원(洪原)의 전투에서 많은 적들을 쏘아 죽였습니다.”
하였다.
정유년(丁酉年,1597, 선조 30), 또 별장 유응수(柳應秀,1558~1597)를 따라 영남(嶺南)의 남은 왜적을 토벌하였는데, 다섯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자, 병조에서 아뢰어 충무위 좌부장에 임명되었다. 을묘년(乙卯年,1615, 광해군 7), 또 조정의 명으로 길주(吉州)와 성진(城津)의 성을 축조하는 일을 감독하였으며, 집으로 돌아가 노년을 보내다가 73세의 나이로 무인년(戊寅年,1638, 인조 16)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정승 노봉(老峰) 민정중(閔鼎重,1628~1692)이 함경도를 안찰할 때에 임진년(壬辰年,1592)에 충의(忠義)를 다한 장사를 표창하여 드러내었는데, 서후만 누락되었다. 60여 년이 지난 뒤에 그의 후손 영후(永後)가 상언(上言)하여 호소하여 드디어 사재감 첨정에 추증되었다.
후의 자는 군보(君輔)이다. 서씨는 이천(利川)에서 나왔으니, 원조(遠祖)는 고려 장위공(章威公) 희(煕)이며, 11세 유(愈)는 우리 태종의 좌명 공신으로 판서를 역임하였는데, 시호가 양경(良景)이다. 9세조 인비(仁庇) 때부터 함경도로 옮겨 살았는데, 자손들이 그대로 함흥(咸興)에 머물러 살았다. 부친은 천수(千壽)이고, 조부는 한걸(漢傑)이며, 증조는 국의(國依)이다.
아내 한씨(韓氏)는 인봉(仁鳳)의 딸로, 슬하의 딸 둘은 한국준(韓國俊), 한흥업(韓興業)에게 각각 출가하였는데, 한국준의 후손이 가장 번성하다. 측실 소생 아들 덕윤(德潤)은 요절하였고, 인준(仁俊), 예준(禮俊), 지준(智俊), 신준(信俊)이 있는데, 인준이 실제 서후의 제사를 주관하니, 영후는 그의 증손이다.
영후가 천 리 길을 걸어서 나를 찾아와 몹시 부지런히 묘표를 부탁하였다. 듣기로 영후는 영부(營府)의 성시(城市)에 살면서 문을 닫고 예서(禮書)를 읽는다고 하니, 내가 그 사람을 가상히 여겨 이렇게 써서 그의 뜻을 충족시켜 주니, 돌아가서 묘지 앞에 새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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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解]
[주01] 증 …… 묘표 :
이 글은 서경충(徐敬忠, 1566~1638)의 묘표이다. 서경충의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군보(君輔)이다.
[주02] 정유년 …… 토벌하였는데 :
정유년에 유응수를 별장으로 임명하여 영남(嶺南)의 남은 왜적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유응수가 전투에서 늘 앞장서다가 경주(慶州)에
서 전사하였다. 서경충은 이때에 유응수를 따라 영남 전투에 참전한 것으로 보인다.《硏經齋全集 卷60 北方忠義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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