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에게
정군수
박새야, 너는 참 좋겠다
보증금 한 푼 내지 않고 보금자리 얻어
아롱이다롱이 알까지 낳았으니
여산재 주인이 아무리 마음 착하다 해도
미리 편지라도 하지
편지하기 바빠서 우체통을 무단점거하다니
어미 박새야
너는 학동마을의 전설을 다시 낳았다
너는 여산재 사랑을 품고 있다
비 오고 바람 불어도 너를 감싸주리니
온산 푸르러 손짓하거든
떠난다는 소식 대신
너의 식구 우체통 위에서 합창 한번하고
학동마을과 여산재 하늘을 훨훨 날아가렴
날아서 하늘과 땅과 산을 노래하며
다른 식구 얻어 푸른 이야기를 지어내려므나
너희들이 태어난 주소를 잊어도 좋으니.
(2012년 5월 19일. 국중하 회장님의 ‘여산재 경사났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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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에 둥지 튼 새집
우신산업(주) 국 중 하
겨울이 가고 봄을 알리는 산수유, 홍매화, 회양목, 개나리꽃과 함께 ‘우체통에 둥지 튼 새집’을 찍은 사진들이 나란히 출근길 책상위에 놓여있다. 게다가 새둥지 사진은 핸드폰으로도 들어왔다.
우리나라 7대 오지였다는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학동마을과 다자미 마을 중간에 위치한 여산 교육문화관으로 달려갔다. 문화관 앞마당 잔디밭 끝의 차도 변 출입구에 네모난 빨간 우체통을 둥글고 긴 파이프가 받치고 서있다. 편지를 받는 용도로 쓰이지만 조경을 겸한 깜찍한 사설우체통인 것이다.
녹색자연 속에 빨간 우체통, 새하얗게 ‘餘山齋 POST’라 새겨놓은 글자가 유난히 시선을 잡아끈다. 우체통 안은 넓은 방이 될 수 있겠지만 닫아두면 편지봉투를 투입할 수 있도록 가로로 낸 틈새 하나가 있을 뿐이다. 출입할 수 있는 장치라는 게 고작 고 좁다란 틈새일 뿐인데 저 어미 새는 어떻게 그곳에 잠입하여 제 새끼들의 둥지를 지었을까? 얼마나 작은 체구인지 또한 얼마나 다부지게 생긴 새인지 등등으로 부쩍 궁금증이 발동을 했다. 나는 행여나 새가 놀랠까 봐 조심조심 문을 열어 보았다. 다행이도 주인공 새는 안 보였고 90% 이상의 공정인, 건축기술(둥지)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입지선정에서 철제우체통인 전천후시설을 택했고, 우체통 안인만큼 절대로 안전하고, 반영구적인 세계 유일의 특제품 새둥지였다. 우체통 안 둥지 밖에서는 커다란 벚나무가 버티고 서있다. 강렬한 직사광선을 방어하고 마치 에어컨 역할이라도 해줄 양 아닌가. 뿐인가. 울타리격인 한쪽의 라일락 제군을 지휘하며 저들의 꽃향기를 새장 안에 감돌아들게도······. 게다가 진진(jin jin-眞珍)이와 지순이가 영빈각과 교육문화관을 나누어 상호공조 하에 방범을 책임지고 있으니 외부로부터의 여하한 위해에도 안심하리라.
실내 장식은 항온항습효과에 무슨 공법인지 알을 낳을 부분에는 어미 새 목만 보일정도로 오목하게 파서 융단을 깔았고 현관을 마른초록색 이끼로 마감한 것이 정말 깜찍하고 앙증스런 건축이다. 건축학을 배운 것도 아닐 텐데 고 작은 새대가리 속에서 어떻게 저리 과학적인, 고도의 건축기술을 동원하고 제 둥지에 완벽성을 부여했을까? 입지선정에서부터 건축설계, 시공 시기에 맞춰 완공하고 알을 낳아 부화하여 육아에 이르기까지의 시점관리時点管理 등등, 나로서는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깨우치고 배워야 할 점들이었다.
2002년 여산재에서 3박4일간 산업디자인 국제행사를 치른 바 있었는데, 어쩌면 이 박새가 그때의 행사를 지켜보며 국제조류건축 세미나를 열어 건축 신공법을 발표할 계획을 세웠던 것일까? 그동안 집배원이 수도 없이 편지를 찔러 넣어 생명에 위협을 느꼈을 턴데도 집짓기를 포기하지 않고 그 작은 입(부리)으로 그렇게나 많은 실내 장식용 재료를 물어다 날라 기어이 준공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여산가족 회의를 소집하였다. 우체통으로서의 기능을 종료하고 새에게 둥지의 건축을 허가하기로 가결한 후, 우선 새의 안전을 위해 우체통 근처의 접근을 자제해야한다는 팻말을 세웠다. 연후 우체국에 연락하여 우체통의 폐쇄신고를 마쳤다. 둥지 지을 곳을 물색할 또 다른 새들을 위해서 목재로 빨갛고 예쁜 새집을 만들어 동서남북의 나무 위에 설치도 했다. 그런데 여러 새들이 그 집을 기웃거리며 좋아들 하는 것 같은데도 선뜻 들어가지는 않았다. 아마도 올해는 탐색으로 그치고 다음을 기약하나보았다. 내년에는 여산가족으로 등록하겠거니 싶은 바다.
둥지를 튼 어미 새의 모습을 도감에 비추어보고 박새(Parus major Great 四十雀)로 명명했다. 박새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로 배와 뺨이 흰색이고 날개는 회색빛을 띈다. 배 가운데로 넥타이 같은 검은 줄무늬가 나 있다.
박새 알 알에서 깨어난 새끼 새 (사진이 나오지 않음)
여산재 박새가족은 4월14일에 6개의 알을 낳아, 21일 동안 어미의 체온으로 품어, 5월5일 어린이날에 맞춰 알을 깨고 새끼로 태어났다. 어느 날 영빈각迎賓閣 아래층 다실에서 커튼을 걷고 차(茶)를 내리다가 우연히 수형이 잘 잡힌 반송盤松 속으로 작은 새가 번갈아 먹이를 물고 드나드는 것을 보게 됐다. 머리와 윗가슴이 검정색이고 등은 회색 아랫면은 연한회색으로 덩치가 아주 작은 진 박새(parus ater)였다.
차를 다 마신 뒤 새집을 찾아 반송의 중앙부분을 뒤져보았다. 조심조심 나뭇가지를 제치면서 가까스로 새를 찾아냈다.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고음의 우짖음으로 경계령을 내렸다. 마치 응원군을 불러대는 양이어서 깜짝 놀라 비켜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응원군 새는 얼핏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앞 건물 세미나장 지붕위의 잘 보이는 곳에 파수막을 짓고 지키고 있거니 싶었지만······.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 상상을 초월하는 고음을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 스스로의 반성을 촉구했다. 내가 새들이 다 자라서 날아가기까지 방문객들에게 친환경을 너무 많이 자랑해서 새들이 위협을 느꼈기에 이듬해엔 보금자리를 옮겨가는 게 아닐는지?
또 한 번은 공연장 옥상을 자주오르내리는 새를 봤다. 공연장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축조되어 새가 붙을 곳이 없다 그런데도 건물의 옥상 물받이 홈통으로 작은 새가 드나드는 것을 보고 새의 모양새를 관찰했다. 머리꼭대기는 광택이 있는 검은색으로 크기가11cm, 박새 가운데 가장 덩치가 작은 쇠박새(parus palustris)였다. 산이나 들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열매 따는 귀염둥이 쇠박새 사진을 지면에 올린다.
박새의 번식시기를 조사하여 우리나라의 온난화 속도를 파악한다는 연구가 한참 이라는데 우체통 속의 박새가 온난화 속도의 지표가 되는 것 같아 더욱 안전하게 지켜야할 책임을 느낀다. 소백산 설악산 지리산 등 7개 국립공원에서 박새의 번식시기를 조사한 결과 3월에 산란하여 지리산에서 가장 빨리 번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박새는 가슴에 검은 줄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고 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화사한 봄 햇살이 좋아 문을 열어놓고 커피를 마시는데 박새가 문지방에 날아와 두리번거리다가 차방 안까지 날아들어 소란을 피운다는 기사를 불교신문에서 읽은 바 있다. 사람과 가까이할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오경까지 알을 품었다는 박새가 5월5일 오후 5시경 새집을 열었을 때다. 알에서 갓 태어난 아기 새들이 먹이를 찾느라 고개를 빼들고 있었다. 생명의 신비로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미 새는 먹이를 구하러 거미라도 찾아 나갔는지 안 보였다.
언제쯤 나는 연습을 시키려는지 어미 새의 일정을 몰라 일지감치 새집 아래에 새끼마중 쿠션을 설치하고 뛰어 내릴 날을 기다린다.
검정 넥타이맨 어미박새 쇠박새 열매 따기(사진이 나오지 않음)
박새가 날갯짓하며 푸닥거릴 때 대자연의 여산 공연단을 창설하여 자연과 함께하고 싶다. 구성단원을 생각해본다. 박새가족 중심으로 여산재 주변의 자연을 모두 참여시켜 화합하는 공연단을 만들리라. 방범 책 진진(jinjin-眞珍), 시간을 알리는 토종닭, 재롱둥이 단비와 다람쥐, 두더지 들쥐들도 부르고 분수대 개구리와 맹꽁이 간혹 들여다보는 토끼와 고라니, 새벽길에 마주했던 멧돼지도 불러오고, 노래 잘 부르는 꾀꼬리, 뻐꾸기, 꿩, 삼광조, 소쩍새, 때까치들과 끊임없이 흐르는 하천의 송사리 떼까지 함께하면 천지간天地間이 공간무대가 될 것이다.
중국서안의 장한가무長恨歌舞쇼는 여산을 배경으로 한 연못무대여서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무대가 화려했다면 여산공연단은 여산재를 중심으로 학동산과 원등 산을 배경으로 화청지가무 쇼보다 더 자연을 사랑하고 친환경적인 공연단으로 창단될 것이다. 토끼 발맞추기,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 단비 높은 나무타기, 두더지 땅굴파기, 닭싸움하기, 참새 떼 지어 나르기 등이며 시인은 언어로, 음악가는 선율로, 화가는 채색으로 모든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듯 어떤 의미를 낳기 위해서든 광장은 열릴수록 바람직하리라. 내레이션(narration)은 혼불 문학 초대수상작 <난설헌>의 작가 최문희 선생에게 부탁해 볼까싶다.
첫댓글 여산재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참으로 반갑습니다. 빨간 우체통을 저도 봤는데 세상에 그좁은 편지투입구를 박새는 어떻게 들어갔을까요? 국회장님께서 직접 전해주시는 여산재 소식이라서 더욱 감동이 짙습니다. 거기다가 교수님의 답시가 또한 일품입니다. 박새가 자자손손 그대로 빨간 우체통을 종갓집으로 정해놓고 살것만 같습니다. 박새에게 쓰는 편지가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요즘 여러 장르의 글을 쓰고 계시는 교수님! 감성이 갈수록 풍부해지시니 비결 알려주시고 그리고 존경스럽습니다. 국회장님은기업인이지만 또한 문학을 사랑하여 이렇게 고운 수필을 쓰시다니 다시 한번 뵙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