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先驅) 1945년 12월호 pp.45~51 (편집인 安峰守. 발행인 高麟燦)
김남식, 이정식, 한홍구, 한국현대사 자료 총서 7권 pp.696~699.
잡지 선구(先驅)의 1945.10.10 ~ 11.09 기간 정치 지도자 여론조사 -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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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백년3 : 등사판으로 만든 정치잡지 《선구(先驅)》 - 1945. 10
《선구(先驅)》는 1945년 10월 15일자로 창간된 정치잡지이다. 활자를 쓰지 못하고 등사판으로 인쇄 발행했다. 일제의 ‘한글 말살’에 따라, 각 인쇄소의 한글 활자가 쓸 데 없게 되자 납이라도 건질 셈으로 활자를 녹여버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겼다. 판권장을 보면, 편찬자 안봉수(安峯守), 발행자 고인찬(高麟燦), 발행소 선구회 본부(서울·당주동 22), B5판 90면, 정가는 없다. 그 해 12월호까지 통권 3호를 냈다.
목차를 본다. ‘창간사’ ··· 양희석(梁熙錫)/ ‘속히 정부(政府)를 수립하여야’ ··· 국민당 위원장 안재홍(安在鴻)/ ‘은행(銀行) 국영(國營)의 고찰(考察)’ ··· 대한민국임시정부환국준비회 강무학(姜舞鶴)/ ‘나도 3천만 동포의 하나로 부르짖는다’ ··· 이각경(李珏卿)/ ‘자주(自主)·자강(自彊)·자치적(自治的)으로’ ··· 청우당(靑友黨) 이응진(李應辰)/ ‘반성하여 정리하자’ ··· 통일정당결성준비회 김남주(金南柱)/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취(取)하라’ ··· 조선민주당 총무부장 이병찬(李秉瓚)/ ‘지도자 제위의 반성을 요구함’ ··· 통일정당결성준비회 박문희(朴文憙)/ ‘국민대중에게 제의하는 기본국책(基本國策)’ ··· 대한인민정치당 문화부장 유기열(柳驥烈)/ ‘민중당대강(民衆黨大綱)’/ ‘대중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 ··· 국민대회준비회 정보부장 설의식(薛義植)/ ‘나를 버리고 남을 섬기라’ ··· 김지환(金智煥)/ ‘여러분에게 보내는 말’ ··· 여자국민당 부위원장 김선(金善),
‘민족건설의 지도자가 되라’ ··· 건국준비위원회 양정(糧政)부장 이광(李珖)/ ‘나는 대중에게 다음 몇가지를 말하고 싶다’ ··· 대한독립협회 총무부장 고정휘(高政輝)/ ‘대중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 ··· 유병민(劉秉敏)/ ‘소리(小利)를 버리고 대의(大義)에 순(殉)하라’ ··· 한국민주당 권희(權熙)/ ‘청년과 조선’ ··· 한척(韓拓)/ ‘조선정치계단의 면면’ ··· 양묵당(梁默堂)/ ‘각 정당 소개’ 등으로 짜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기사 일색이다. 일제하에서 정치 이야기를 얼마나 쉬쉬했으면 이처럼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을까 하고 아연할 따름이다.
〈창간사〉에서 몇 구절을 옮긴다.
“우리의 역사적 위업(偉業)은 창조적 건설로 시작되었다. 3천리 강산이 우렁차게 보조를 맞추어 건설로 힘있게 진행한다. 3천만 동포는 한 깃발 아래에 모여 조선을 사랑한다. 조선민족을 사랑한다는 순정(純正)하고도 열렬한 정열의 의기(意氣)에서 씩씩히 신건설을 부르짖으며 전진하고 있다. 〈중략〉
조선은 조선으로만 해결될 것이 아니고 조선의 가부(可否)는 전세계의 가부를 정하게 된다. 우리는 조선의 조그만 구성분자인 동시에 전세계의 구성분자의 한 사람이다. 우리는 자유·평등·평화를 위하여 싸우는 세계의 한 분자이다. 생각할수록 우리는 유쾌하지 않은가. 우리는 세계의 어떠한 무대에도 참가할 수 있으며, 어떠한 국제기구에도 관여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를 갖게 된 것은 우리 조선이 독립국인 까닭이다. 〈하략〉”
〈각 정당 소개〉를 보면, 해방 한달 남짓한 사이에 정치단체가 15개나 생겼으니 그 혼란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단체명은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국민대회준비회(國民大會準備會)·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국민당(國民黨)·건국동맹(建國同盟)·조선여자국민당(朝鮮女子國民黨)·고려동지회(高麗同志會)·대한민국인민정치당(大韓民國人民政治黨)·건국부녀동맹(建國婦女同盟)·민중당(民衆黨)·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대한독립협회(大韓獨立協會)·대한의열당(大韓義烈黨)·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통일정당결성준비회(統一政黨結成準備會) 등이다. 그중 대표적인 ‘조선인민공화국’과 ‘한국민주당’의 조직과 인물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 중앙위원회(中央委員會) : 1945년 9월 6일 경기고녀(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 강당에서 건준(建準 :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이 주도하여 각계 각층의 인사 1천여명을 모아 ‘전국인민대표회의’를 개최, 이 자리에서 국호를 ‘조선인민공화국’이라 선포하고 인민위원 55명·후보위원 20명·고문 12명을 선출했으며, 다음과 같이 ‘중앙인민위원회’의 부서와 명단을 발표했다.
주석 이승만(李承晩) 부주석 여운형(呂運亨) 국무총리 허 헌(許 憲) 내정부장 김 구(金 九, 임시대리 허 헌(許 憲)) 대리 조동우(趙東祐) 김계림(金桂林), 외교부장 김규식(金奎植, 임시대리 여운형(呂運亨)) 대리 최근우(崔謹愚) 강 진(姜 進), 재정부장 조만식(曺晩植) 대리 박문규(朴文圭) 강병도(姜炳度), 군사부장 김원봉(金元鳳, 임시대리 김세용(金世鎔)) 대리 김세용(金世鎔) 장기욱(張基郁), 보안부장 최용달(崔容達) 대리 김무정(金武丁) 이기석(李基錫), 사법부장 김병로(金炳魯, 임시대리 허 헌(許 憲)) 대리 이승엽(李承燁) 정진태(鄭鎭泰), 문교부장 김성수(金性洙) 대리 김태준(金台俊) 김기전(金起田), 선전부장 이관술(李觀述) 대리 이여성(李如星) 서중석(徐重錫), 경제부장 하필원(河弼源) 대리 김형선(金炯善) 정태식(鄭泰植), 농림부장 강기덕(康基德) 대리 유축운(柳丑運) 이 광(李 珖), 보건부장 이만규(李萬珪) 대리 이정윤(李廷允) 김점권(金占權), 교통부장 홍남표(洪南杓) 대리 이순근(李舜根) 정종근(鄭鍾根), 체신부장 신익희(申翼熙, 임시대리 이강국(李康國)) 대리 김철수(金綴洙) 조두원(趙斗元), 노동부장 이주상(李胄相) 대리 김상혁(金相赫) 이순금(李順今), 서기장 이강국(李康國) 대리 최성환(崔星煥), 법제국장 최익학(崔益翰) 대리 김용암(金龍岩), 기획국장 정 백(鄭 栢) 대리 안기성(安基成)
또 전국인민위원(全國人民委員) 55명은 이승만(李承晩) 여운형(呂運亨) 허 헌(許 憲) 김규식(金奎植) 이관술(李觀述) 김 구(金 九) 김성수(金性洙) 김원봉(金元鳳) 이용설(李容卨) 홍남표(洪南杓) 김병로(金炳魯) 신익희(申翼熙) 안재홍(安在鴻) 이주상(李胄相) 조만식(曺晩植) 김기전(金起田) 최익학(崔益翰) 최용달(崔容達) 이강국(李康國) 김용암(金龍岩) 강 진(姜 進) 이주하(李舟河) 하필원(河弼源) 김계림(金桂林) 박낙종(朴洛鍾) 김태준(金台俊) 이만규(李萬珪) 이여성(李如星) 김일성(金一成) 정 백(鄭 栢) 김형선(金炯善) 이정윤(李廷允) 김정권(金正權) 한명찬(韓明燦) 유축운(柳丑運) 이승엽(李承燁) 강기덕(康基德) 조두원(趙斗元) 이기석(李基錫) 김철수(金綴洙) 김상혁(金相赫) 정태극(鄭泰極) 정종근(鄭鍾根) 조동우(趙東祐) 서중석(徐重錫) 박문규(朴文圭) 박광희(朴光熙) 김세용(金世鎔) 강병도(姜炳度) 이순근(李舜根) 최무정(崔武丁) 장기욱(張基郁) 정진태(鄭鎭泰) 이순금(李順今) 이상훈(李相勳) 등이다. (뒤에 나오는 《백민(白民)》 창간호에서 〈조선인민공화국 탄생의 경위〉를 보시라.)
2)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 : 9월 16일 천도교기념관에서 발기인 1천여명이 모여 창당대회를 가졌는데, 조선인민공화국 타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중경(重慶)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나섰다. 임원 명단은 자료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먼저 《선구》 창간호에 실린 것을 옮긴다.
총무위원 백관수(白寬洙) 송진우(宋鎭禹) 원세훈(元世勳) 서상일(徐相日) 김동원(金東元) 조병옥(趙炳玉) 백남훈(白南薰) 김도연(金度演) 허 정(許 政), 당무부장 이 인(李 仁) 조직부장 김약수(金若水) 외교부장 장덕수(張德秀) 재무부장 박용희(朴容喜) 영농부장 홍성하(洪性夏) 선전부장 함상훈(咸尙勳) 정보부장 박찬희(朴瓚熙) 문교부장 김용무(金用茂) 후생부장 이 운(李 雲) 조사부장 유진희(兪鎭熙) 연락부장 최윤동(崔允東) 사무국장 나용균(羅容均)
또 하나의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총무수석 송진우(宋鎭禹) 총무 원세훈(元世勳) 백관수(白寬洙) 허 정(許 政) 백남훈(白南薰) 조병옥(趙炳玉) 김도연(金度演) 서상일(徐相日) 김동원(金東元), 사무국장 나용균(羅容均) 서무 이병헌(李炳憲) 문서 정광호(鄭光好) 수급 서기준(徐基俊) 회계 유흥산(劉興山), 당무부장 이 인(李 仁), 신윤국(申允局) 조헌영(趙憲泳) 현동완(玄東完) 김적음(金寂音) 외 5인, 조직부장 김약수(金若水), 홍종숙(洪鍾肅) 김종범(金鍾範) 김재학(金載學) 송재영(宋在英) 외 15인, 외무부장 장덕수(張德秀), 윤보선(尹潽善) 윤치영(尹致暎) 구자옥(具滋玉) 이 활(李 活) 외 5인, 재무부장 박용희(朴容喜), 장진섭(張震燮) 한학수(韓學洙) 이석주(李錫柱) 고광표(高光表) 외 4인, 선전부장 함상훈(咸尙勳), 백낙준(白樂濬) 유기원(柳基元) 송남헌(宋南憲) 이하윤(異河潤) 외 10인, 정보부장 박찬희(朴瓚熙), 임봉순(任鳳淳) 고병남(高炳南) 이길용(李吉用) 김덕은(金德殷) 외 5인, 노무부장 홍성하(洪性夏), 나경석(羅景錫) 최태욱(崔泰旭) 이 헌(李 憲) 옥선진(玉璿珍) 외 14인, 문교부장 김용무(金用茂), 양원모(梁元模) 신도성(愼道晟) 양주동(梁柱東) 현제명(玄濟明) 외 5인, 후생부장 이 운(李 雲), 김효석(金孝錫) 유자후(柳子厚) 유용탁(柳容鐸) 한진희(韓軫熙) 외 5인, 조사부장 유진희(兪鎭熙), 이관구(李寬求) 오희병(吳熙秉) 나명균(羅明均) 이창환(李昌煥) 외 5인, 연락부장 최윤동(崔允東), 이수영(李遂榮) 서상천(徐相天) 김법린(金法麟) 김 산(金 山) 외 5인, 중앙감찰위원장 김병로(金炳魯), 이중화(李重華) 최승만(崔承萬) 이경희(李慶熙) 서정도(徐廷禱) 외 25인
‘조선공산당’은 자료가 없어 기재하지 못하거니와, 이 양당의 인맥만 보아도 당시의 좌우 정치세력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이 무렵까지 해외에서 망명 중이던 이승만(李承晩) 김구(金九)는 귀국하지 않았다.
김남식, 이정식, 한홍구, 한국현대사 자료 총서 7권 pp.696~699.
잡지 선구(先驅)의 1945.10.10 ~ 11.09 기간 정치 지도자 여론조사 - 김일성
잡지 선구(先驅) 1945년 12월호 여론조사 원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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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백년3 : 등사판으로 만든 정치잡지 《선구(先驅)》 - 1945. 10
《선구(先驅)》는 1945년 10월 15일자로 창간된 정치잡지이다. 활자를 쓰지 못하고 등사판으로 인쇄 발행했다. 일제의 ‘한글 말살’에 따라, 각 인쇄소의 한글 활자가 쓸 데 없게 되자 납이라도 건질 셈으로 활자를 녹여버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겼다. 판권장을 보면, 편찬자 안봉수(安峯守), 발행자 고인찬(高麟燦), 발행소 선구회 본부(서울·당주동 22), B5판 90면, 정가는 없다. 그 해 12월호까지 통권 3호를 냈다.
목차를 본다. ‘창간사’ ··· 양희석(梁熙錫)/ ‘속히 정부(政府)를 수립하여야’ ··· 국민당 위원장 안재홍(安在鴻)/ ‘은행(銀行) 국영(國營)의 고찰(考察)’ ··· 대한민국임시정부환국준비회 강무학(姜舞鶴)/ ‘나도 3천만 동포의 하나로 부르짖는다’ ··· 이각경(李珏卿)/ ‘자주(自主)·자강(自彊)·자치적(自治的)으로’ ··· 청우당(靑友黨) 이응진(李應辰)/ ‘반성하여 정리하자’ ··· 통일정당결성준비회 김남주(金南柱)/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취(取)하라’ ··· 조선민주당 총무부장 이병찬(李秉瓚)/ ‘지도자 제위의 반성을 요구함’ ··· 통일정당결성준비회 박문희(朴文憙)/ ‘국민대중에게 제의하는 기본국책(基本國策)’ ··· 대한인민정치당 문화부장 유기열(柳驥烈)/ ‘민중당대강(民衆黨大綱)’/ ‘대중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 ··· 국민대회준비회 정보부장 설의식(薛義植)/ ‘나를 버리고 남을 섬기라’ ··· 김지환(金智煥)/ ‘여러분에게 보내는 말’ ··· 여자국민당 부위원장 김선(金善),
‘민족건설의 지도자가 되라’ ··· 건국준비위원회 양정(糧政)부장 이광(李珖)/ ‘나는 대중에게 다음 몇가지를 말하고 싶다’ ··· 대한독립협회 총무부장 고정휘(高政輝)/ ‘대중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 ··· 유병민(劉秉敏)/ ‘소리(小利)를 버리고 대의(大義)에 순(殉)하라’ ··· 한국민주당 권희(權熙)/ ‘청년과 조선’ ··· 한척(韓拓)/ ‘조선정치계단의 면면’ ··· 양묵당(梁默堂)/ ‘각 정당 소개’ 등으로 짜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기사 일색이다. 일제하에서 정치 이야기를 얼마나 쉬쉬했으면 이처럼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을까 하고 아연할 따름이다.
〈창간사〉에서 몇 구절을 옮긴다.
“우리의 역사적 위업(偉業)은 창조적 건설로 시작되었다. 3천리 강산이 우렁차게 보조를 맞추어 건설로 힘있게 진행한다. 3천만 동포는 한 깃발 아래에 모여 조선을 사랑한다. 조선민족을 사랑한다는 순정(純正)하고도 열렬한 정열의 의기(意氣)에서 씩씩히 신건설을 부르짖으며 전진하고 있다. 〈중략〉
조선은 조선으로만 해결될 것이 아니고 조선의 가부(可否)는 전세계의 가부를 정하게 된다. 우리는 조선의 조그만 구성분자인 동시에 전세계의 구성분자의 한 사람이다. 우리는 자유·평등·평화를 위하여 싸우는 세계의 한 분자이다. 생각할수록 우리는 유쾌하지 않은가. 우리는 세계의 어떠한 무대에도 참가할 수 있으며, 어떠한 국제기구에도 관여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를 갖게 된 것은 우리 조선이 독립국인 까닭이다. 〈하략〉”
〈각 정당 소개〉를 보면, 해방 한달 남짓한 사이에 정치단체가 15개나 생겼으니 그 혼란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단체명은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국민대회준비회(國民大會準備會)·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국민당(國民黨)·건국동맹(建國同盟)·조선여자국민당(朝鮮女子國民黨)·고려동지회(高麗同志會)·대한민국인민정치당(大韓民國人民政治黨)·건국부녀동맹(建國婦女同盟)·민중당(民衆黨)·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대한독립협회(大韓獨立協會)·대한의열당(大韓義烈黨)·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통일정당결성준비회(統一政黨結成準備會) 등이다. 그중 대표적인 ‘조선인민공화국’과 ‘한국민주당’의 조직과 인물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조선인민공화국(朝鮮人民共和國) 중앙위원회(中央委員會) : 1945년 9월 6일 경기고녀(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 강당에서 건준(建準 :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이 주도하여 각계 각층의 인사 1천여명을 모아 ‘전국인민대표회의’를 개최, 이 자리에서 국호를 ‘조선인민공화국’이라 선포하고 인민위원 55명·후보위원 20명·고문 12명을 선출했으며, 다음과 같이 ‘중앙인민위원회’의 부서와 명단을 발표했다.
주석 이승만(李承晩) 부주석 여운형(呂運亨) 국무총리 허 헌(許 憲) 내정부장 김 구(金 九, 임시대리 허 헌(許 憲)) 대리 조동우(趙東祐) 김계림(金桂林), 외교부장 김규식(金奎植, 임시대리 여운형(呂運亨)) 대리 최근우(崔謹愚) 강 진(姜 進), 재정부장 조만식(曺晩植) 대리 박문규(朴文圭) 강병도(姜炳度), 군사부장 김원봉(金元鳳, 임시대리 김세용(金世鎔)) 대리 김세용(金世鎔) 장기욱(張基郁), 보안부장 최용달(崔容達) 대리 김무정(金武丁) 이기석(李基錫), 사법부장 김병로(金炳魯, 임시대리 허 헌(許 憲)) 대리 이승엽(李承燁) 정진태(鄭鎭泰), 문교부장 김성수(金性洙) 대리 김태준(金台俊) 김기전(金起田), 선전부장 이관술(李觀述) 대리 이여성(李如星) 서중석(徐重錫), 경제부장 하필원(河弼源) 대리 김형선(金炯善) 정태식(鄭泰植), 농림부장 강기덕(康基德) 대리 유축운(柳丑運) 이 광(李 珖), 보건부장 이만규(李萬珪) 대리 이정윤(李廷允) 김점권(金占權), 교통부장 홍남표(洪南杓) 대리 이순근(李舜根) 정종근(鄭鍾根), 체신부장 신익희(申翼熙, 임시대리 이강국(李康國)) 대리 김철수(金綴洙) 조두원(趙斗元), 노동부장 이주상(李胄相) 대리 김상혁(金相赫) 이순금(李順今), 서기장 이강국(李康國) 대리 최성환(崔星煥), 법제국장 최익학(崔益翰) 대리 김용암(金龍岩), 기획국장 정 백(鄭 栢) 대리 안기성(安基成)
또 전국인민위원(全國人民委員) 55명은 이승만(李承晩) 여운형(呂運亨) 허 헌(許 憲) 김규식(金奎植) 이관술(李觀述) 김 구(金 九) 김성수(金性洙) 김원봉(金元鳳) 이용설(李容卨) 홍남표(洪南杓) 김병로(金炳魯) 신익희(申翼熙) 안재홍(安在鴻) 이주상(李胄相) 조만식(曺晩植) 김기전(金起田) 최익학(崔益翰) 최용달(崔容達) 이강국(李康國) 김용암(金龍岩) 강 진(姜 進) 이주하(李舟河) 하필원(河弼源) 김계림(金桂林) 박낙종(朴洛鍾) 김태준(金台俊) 이만규(李萬珪) 이여성(李如星) 김일성(金一成) 정 백(鄭 栢) 김형선(金炯善) 이정윤(李廷允) 김정권(金正權) 한명찬(韓明燦) 유축운(柳丑運) 이승엽(李承燁) 강기덕(康基德) 조두원(趙斗元) 이기석(李基錫) 김철수(金綴洙) 김상혁(金相赫) 정태극(鄭泰極) 정종근(鄭鍾根) 조동우(趙東祐) 서중석(徐重錫) 박문규(朴文圭) 박광희(朴光熙) 김세용(金世鎔) 강병도(姜炳度) 이순근(李舜根) 최무정(崔武丁) 장기욱(張基郁) 정진태(鄭鎭泰) 이순금(李順今) 이상훈(李相勳) 등이다. (뒤에 나오는 《백민(白民)》 창간호에서 〈조선인민공화국 탄생의 경위〉를 보시라.)
2) 한국민주당(韓國民主黨) : 9월 16일 천도교기념관에서 발기인 1천여명이 모여 창당대회를 가졌는데, 조선인민공화국 타도 성명서를 발표하고, 중경(重慶)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나섰다. 임원 명단은 자료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다. 먼저 《선구》 창간호에 실린 것을 옮긴다.
총무위원 백관수(白寬洙) 송진우(宋鎭禹) 원세훈(元世勳) 서상일(徐相日) 김동원(金東元) 조병옥(趙炳玉) 백남훈(白南薰) 김도연(金度演) 허 정(許 政), 당무부장 이 인(李 仁) 조직부장 김약수(金若水) 외교부장 장덕수(張德秀) 재무부장 박용희(朴容喜) 영농부장 홍성하(洪性夏) 선전부장 함상훈(咸尙勳) 정보부장 박찬희(朴瓚熙) 문교부장 김용무(金用茂) 후생부장 이 운(李 雲) 조사부장 유진희(兪鎭熙) 연락부장 최윤동(崔允東) 사무국장 나용균(羅容均)
또 하나의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총무수석 송진우(宋鎭禹) 총무 원세훈(元世勳) 백관수(白寬洙) 허 정(許 政) 백남훈(白南薰) 조병옥(趙炳玉) 김도연(金度演) 서상일(徐相日) 김동원(金東元), 사무국장 나용균(羅容均) 서무 이병헌(李炳憲) 문서 정광호(鄭光好) 수급 서기준(徐基俊) 회계 유흥산(劉興山), 당무부장 이 인(李 仁), 신윤국(申允局) 조헌영(趙憲泳) 현동완(玄東完) 김적음(金寂音) 외 5인, 조직부장 김약수(金若水), 홍종숙(洪鍾肅) 김종범(金鍾範) 김재학(金載學) 송재영(宋在英) 외 15인, 외무부장 장덕수(張德秀), 윤보선(尹潽善) 윤치영(尹致暎) 구자옥(具滋玉) 이 활(李 活) 외 5인, 재무부장 박용희(朴容喜), 장진섭(張震燮) 한학수(韓學洙) 이석주(李錫柱) 고광표(高光表) 외 4인, 선전부장 함상훈(咸尙勳), 백낙준(白樂濬) 유기원(柳基元) 송남헌(宋南憲) 이하윤(異河潤) 외 10인, 정보부장 박찬희(朴瓚熙), 임봉순(任鳳淳) 고병남(高炳南) 이길용(李吉用) 김덕은(金德殷) 외 5인, 노무부장 홍성하(洪性夏), 나경석(羅景錫) 최태욱(崔泰旭) 이 헌(李 憲) 옥선진(玉璿珍) 외 14인, 문교부장 김용무(金用茂), 양원모(梁元模) 신도성(愼道晟) 양주동(梁柱東) 현제명(玄濟明) 외 5인, 후생부장 이 운(李 雲), 김효석(金孝錫) 유자후(柳子厚) 유용탁(柳容鐸) 한진희(韓軫熙) 외 5인, 조사부장 유진희(兪鎭熙), 이관구(李寬求) 오희병(吳熙秉) 나명균(羅明均) 이창환(李昌煥) 외 5인, 연락부장 최윤동(崔允東), 이수영(李遂榮) 서상천(徐相天) 김법린(金法麟) 김 산(金 山) 외 5인, 중앙감찰위원장 김병로(金炳魯), 이중화(李重華) 최승만(崔承萬) 이경희(李慶熙) 서정도(徐廷禱) 외 25인
‘조선공산당’은 자료가 없어 기재하지 못하거니와, 이 양당의 인맥만 보아도 당시의 좌우 정치세력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이 무렵까지 해외에서 망명 중이던 이승만(李承晩) 김구(金九)는 귀국하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등사판으로 만든 정치잡지 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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