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봄 런던, 자유프랑스 내무담당부 책상에 보고서가 하나 올라왔다. 독일이 물러난 뒤 프랑스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
요구받은 것은 행정 설계도였다.
'시몬 베유'가 내놓은 것은 영혼이 굶는 것들의 목록이었고, 그 마지막 자리에 뿌리내림이 놓였다.
/L'enracinement est peut-être le besoin le plus important et le plus méconnu de l'âme humaine. 뿌리내림은 아마도 인간 영혼의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알아보지 못하는 욕구일 것이다./
정작 중요한 문장은 그다음이다.
베유는 뿌리가 무엇인지 정의해 두었다.
/Un être humain a une racine par sa participation réelle, active et naturelle à l'existence d'une collectivité qui conserve vivants certains trésors du passé. 인간은 과거의 어떤 보물을 살아 있는 채로 간직하는 공동체의 삶에 실제로, 능동적으로, 자연스럽게 참여함으로써 뿌리를 갖는다./
읽고 나면 뿌리라는 말의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뿌리는 혈통이 아니다. 유전자도 아니고 증명서도 아니다.
베유가 말한 뿌리는 행위다. 누군가 과거의 무엇을 살아 있는 상태로 지키고 있고, 내가 거기에 실제로 참여할 때 뿌리가 생긴다. 그러니 뿌리내림은 상속이 아니라 노동이다. 계승하고 전승하는 그 동작 자체가 뿌리다.
이 정의를 손에 쥐고 물어야 한다.
"단군은 우리의 뿌리인가."
답은 논쟁이 아니라 기록에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놀랄 만큼 길다.
1264년, 고려 원종이 강화 마니산 참성단에 올라 몸소 초제를 지냈다. 공민왕 대에도 우왕 대에도 제사는 이어졌다. 1281년 일연이 삼국유사 고조선조를 썼고, 1287년 이승휴가 제왕운기에 단군을 적었다. 몽골의 말발굽 아래서 이 나라 사람들이 붙든 것이 그것이었다.
조선이 이어받았다. 1429년 세종은 평양에 단군묘를 세웠고, 이 사당은 훗날 숭령전이 된다.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는 환인과 환웅과 단군을 함께 제사했다. 이것은 민간의 풍습이 아니라 국가 제사, 그중 중사(中祀)였다. 조선왕조는 오백 년 동안 국가의 이름으로 시조에게 절했다.
1909년 음력 1월 15일, 나철이 단군대황조 신위를 모시고 제천의 예를 올렸다. 대종교는 이를 '창교'라 부르지 않고 '중광'이라 부른다.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꺼진 불을 다시 밝혔다는 뜻이다. 같은 해 대종교는 음력 10월 3일을 개천일로 이름 짓고 의식을 봉행했다. 나라가 넘어가던 해에 제단부터 다시 세운 것이다.
그리고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그 날짜를 들고 망명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처음 제정한 국경일은 둘이었다.
'독립선언일'과 '건국기원절'.
앞의 것이 오늘의 3·1절이고, 뒤의 것이 오늘의 개천절이다. 임시정부는 국토도 청사도 없이 상하이 셋방에 있었지만 시조의 생일만은 국경일로 지켰다.
광복이 오자 그 목록이 그대로 법이 됐다.
1945년 12월 '조선교육심의회'는 고조선 건국사화에서 '홍익인간'을 끌어내 '교육이념'으로 정했다. 1948년 제헌헌법은 전문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었다.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대한민국의 첫 헌법은 자기가 태어난 날짜를 '단군기원'으로 적었다. 같은 해 법률 제4호가 공용연호를 '단군기원'으로 정했다. 이듬해 교육법 제1조에 '홍익인간'이 들어갔고, 법률 제53호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10월 3일을 '개천절'로 확정했다. 1955년에는 참성단의 제천의식이 전국체전 성화 채화를 계기로 되살아나 개천대제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진다.
1264년의 참성단과 2026년의 참성단 사이에 760여 년이 놓여 있다. 그 사이를 고려의 국왕과 조선의 예조와 만주의 망명객과 대한민국의 입법자가 차례로 이었다. 이것은 해석이 아니다. '실록'과 '법률'과 '관보'에 남은 사실이다.
베유의 정의로 되돌아가 보라. "과거의 보물을 살아 있는 채로 간직하는 공동체에 실제로, 능동적으로,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일."
우리는 그 일을 760년 넘게 해왔다. 왕조가 세 번 바뀌고 나라가 한 번 없어지고 체제가 두 번 갈렸는데도 끊기지 않았다. 이보다 더 분명한 뿌리내림의 증거를 어디서 찾겠는가.
끊으려는 힘도 물론 있었다.
그 힘 역시 문서로 남았다.
일제강점기, 1925년 6월 칙령 제218호로 조선사편수회 관제가 공포됐다. 총독 직할 관청이었고 회장은 정무총감이 맡았다. 앞 단계인 조선사편찬위원회에서 일본인 위원과 한국인 위원 사이에 고조선 문제와 민족성 배제 문제를 두고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결과는 총독부 의도대로였다.
'조선사'의 첫 권은 1932년에 나온 제1편 '신라통일 이전'이다. 이 편의 붓을 잡은 사람이 '이마니시 류'였고, 그는 오늘날 학계가 단군 부정론의 대표 논자로 지목하는 인물이다. 편년의 첫 장을 누가 잡느냐는 실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목차다.
1942년 11월에는 더 직접적인 방식이 동원됐다. 일제는 조선어학회 간부 검거와 시기를 맞춰 대종교 교주 윤세복 외 25명을 잡아들였고, 그 가운데 열 사람이 고문과 옥살이 끝에 목숨을 잃었다. 대종교는 이들을 '순국십현'이라 부른다. 말을 지키려던 사람들과 시조를 지키려던 사람들을 같은 달에 함께 가둔 것이다.
베유가 이 대목을 미리 써두었다.
/Le déracinement est de loin la plus dangereuse maladie des sociétés humaines, car il se multiplie lui-même. 뿌리뽑힘은 인간 사회 질병 가운데 단연 가장 위험하다. 스스로 증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를 보라. 총독부가 편년의 첫 장을 다시 짜던 그 시기에, 상하이에서는 임시정부가 '건국기원절'을 국경일로 경축하고 있었다. 옥에서 열 사람이 죽던 해로부터 3년 뒤, 교육심의회는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세웠다. 뿌리뽑기가 실패했다는 말이 아니다. 값은 치렀고 손실은 컸다. 다만 전승은 끊기지 않았다. 끊으려는 쪽이 관청과 예산과 형무소를 동원했는데도 끊지 못했다면,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 있었는지는 저절로 증명된다.
단군을 전하는 현존 최고 기록은 1281년 '삼국유사'이고, 그다음이 1287년 '제왕운기'다. 13세기 문헌이다. 그 시차를 학문이 문제 삼는 것은 정당한 일이고 숨길 이유도 없다.
다만 물음의 층위를 섞지 말아야 한다.
사료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다투고, 사화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전한다.
앞의 물음에 뒤의 답을 들이대면 위서가 되고, 뒤의 물음에 앞의 답을 들이대면 허무가 된다.
그리고 베유의 정의를 다시 보라. 그가 뿌리의 조건으로 요구한 것은 연대 확정이 아니라 참여의 지속이었다. 고조선의 건국 연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러나 760년 동안 이 땅의 국가와 사람들이 단군을 시조로 모셔왔다는 사실은 논쟁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실증됐다. 뿌리내림에 관한 한, 우리가 가진 증거는 부족한 쪽이 아니라 넘치는 쪽이다.
그리고 이 전승에는 처음부터 안전장치가 붙어 있었다. 1958년 문교부는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삼은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의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라는 뜻이며 민주주의 기본정신과 부합한다는 것"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문장은 애초에 남을 밟고 서라는 말이 아니었다. 베유도 같은 자리에 못을 박았다. 그는 정복의 성공을 근거로 삼는 애국심을 경계했고, 연민에 뿌리를 둔 애국심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조국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부서지기 쉽고 언젠가 사라질 것이기에 사랑한다는 것.
/Chaque être humain a besoin d'avoir de multiples racines. 모든 인간은 여러 개의 뿌리를 가질 필요가 있다./
베유의 뿌리는 하나가 아니다.
사는 곳, 태어난 자리, 직업, 이웃, 언어.
뿌리는 겹으로 자란다. 단군이 뿌리라는 말은 다른 뿌리를 뽑자는 말이 아니다. 가장 깊이 내려간 뿌리 하나를 확인하자는 말이다. 깊은 뿌리를 가진 나무일수록 옆의 나무를 밀어내지 않는다. 베유가 남긴 문장이 정확히 그것이다.
/Qui est déraciné déracine. Qui est enraciné ne déracine pas.뿌리 뽑힌 자가 뿌리를 뽑는다. 뿌리내린 자는 뽑지 않는다./
그러니 단군의 뿌리내림을 부정하는 일이 어리석은 이유는 분명하다. 증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760년치 증명이 우리 손에 쥐여 있기 때문이다.
원종이 참성단에 올랐고,
세종이 사당을 세웠고,
나철이 불을 다시 밝혔고,
임시정부가 셋방에서 국경일을 지켰고,
제헌국회가 헌법에 단기를 적었다.
그 사슬 끝에 우리가 서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슬은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마지막 고리를 잡은 사람이 손을 놓으면 그 자리에서 끊긴다.
오늘 개천절에 태극기가 걸리고 교육기본법 제2조는 개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조문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고 최근까지도 조문을 없애려는 시도는 지속되고 있다. 국경일인 개천절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지도 오래되었다. 베유의 표현대로라면 이것이 가장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다.
뿌리는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매년 다시 심는 것이다.
760년 동안 앞사람들이 해온 일이 그것이었고, 이제 우리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