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만 14살의 충북여중 2학년 학생 장미화 입니다.
2003년에 충북여중을 입학하였고, 1학년 7반에 배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장이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게 되어 교복도 입고 반장도 되어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들뜬 기분으로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충북여중은 매년 11월에 다음해 회장단을 미리 선출하고 다음해가 되면 곧바로 회장단 일을 합니다. 친구들이 추천장을 써줘서 저도 관심을 갖고 2학년 학년장에 출마하여 밤을 새워가면서 피켓과 벽보를 만들고 유세를 하러 다니게 되었던 날이었습니다.
선거도중 수학시간에 최모 수학선생님 선생님께서 저희 반에 들어오셔서 제 옆에 있는 피켓을 보시더니, 교무실에서 이 모선생님 말씀이 장미화 선거유세 때문에 저희 반 친구들 모두가 무용 수행평가 점수를 5점씩 깎았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선거유세 때문에 감점을 당했다 하더라도 저희 반 친구들 모두가 저의 선거유세를 도와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희 반 친구들은 저를 하나둘 이상하게 쳐다보았고 서로 속닥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1학년 7반은 항상 시험 결과에서 다른 반 보다 많은 평균 차이가 나게 1등을 차지했기 때문에 무용 수행평가 5점이 깎였어도 1학년 전체에서 반1등을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선거당일 투표가 끝나고 음악실에 가서 설레는 마음으로 각 반에서 나온 표의 개수를 보는데 저희 반에서 많은 표를 얻지 못해서 속상하기도하고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도 아침 조회 시간에 “1학년 7반엔 배신자가 많았다” 하시면서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학년 때의 생활이 끝나고 2학년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도 만나고, 같은 반이된 친구들, 무엇보다도 1학년 때 선출된 2학년장이라는 일을 하게 되어 나름대로 책임감도 느끼고, 학교를 다니는 하루하루가 천국에 가는 듯 했습니다.
복도에서 교감선생님을 만날 때 면 매일 볼을 꼬집어 주시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이모 체육 선생님께서는 매일 체육 시간마다 말장난도 치시고 웃어주셨습니다.
작년 담임선생님 이셨던 김모 과학 선생님께서는 아침마다 선도를 서고 있을 때면 사탕도 주셨습니다.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해 학교 현관에서 3학년 간부언니들과 선도를 서고 언니들과 함께 교실로 향하고 있는데, 무용선생님이신 이 모선생님께서 갑자기 저를 언니들 사이에서 부르시더니 “장미화, 선도만 서면 다냐? 네 똥자루가 그렇게 굵냐” 하시며 아침부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언니들은 옆에서 웃고 있었고, 저는 그게 무슨 뜻이고 도대체 제가 그 꾸지람을 왜 들어야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날 하루 종일 생각해보고 지금까지 생각을 해봐도 그 뜻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 학교 가는 것이 기뻤지만, 매일 선도를 서고 있을 때면 제 인사도 받아주시지 않고 째려보시며 지나가시는 이 모선생님, 무용시간이 될 때마다 전 이 모선생님의 얼굴을 처다 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매번 수업시간마다 머리와 등을 주먹으로 때리시며 갖은 욕설을 하시고, 그러셔서 반친구들도 “왜 저 선생님은 매일 너만 갖고 그러냐” 면서 위로도 해주었습니다.
방과 후에도 쓰레기통에 묻은 이물질 등을 손으로 닦아놓고 가라고 하셔서 수돗가에서 쓰레기통을 닦아서 교무실에 가져다놓고 집에 갔는데, 다음날 무용선생님께서는 또다시 “왜 닦아다 놓았다고 말을 하지 않고 그냥 갔냐.” 면서 꾸지람을 하시는 등 사소한 일에 매일 꾸지람을 당하기 일 수였습니다.
매일매일 학교에 가는 게 힘들고 무섭고, 학교에 가기도 싫었습니다. 게다가 3학년 15명의 선배언니들이 욕도 하고, 방과 후에 집에도 가지 못하게 하고, 저를 둘러싸서 때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언니들은 선생님들이 아직 퇴근하시지 않았다고 밖으로 나가자고 하며 저를 끌고 가려는 도중 3학년 선생님이신 윤 선생님께서 보시고, 교무실로 저랑 언니들을 데려 가셨습니다.
마침 학생부장 선생님이신 음악담당 박모 선생님이 퇴근 전이었고, 그 음악선생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언니들이 속해 있는 동아리가 불량하다”고 하시면서, 언니들이 돌아가고 난 뒤 박모 음악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이 미화를 키워주신다고 하시면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평상시 보다 한참이나 늦게 집에 돌아온 저는 엄마가 주시는 우황청심환을 먹고 학원을 갔습니다. 그중 한 언니가 같은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같은 차를 탔는데 차안에서도 제가 탄 좌석 바로 앞에 서서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학원차의 좌석에 가만히 앉아 듣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 차에서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악물고 참았습니다. 저를 위해서 고생하시는 엄마 생각을 하며...눈물도 몰래 많이 흘리고 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며 견뎌냈습니다. 그 다음날 학교 에서 선도를 서고 있는 데 담임선생님이 교무실로 끌고 가셔서 어제 있었던 일을 다 이야기하는 바람에 이 사실을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정모선생님(진로담당)께서 제게 전화번호를 물어보시고, 집으로 엄마한테 전화를 하시면서 “자모님, 걱정하지 마세요. 선생님들이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되고, 국어 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셔서 허 모국어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장미화랑 할 말이 있다”며 수업시간에 저를 교실 옆으로 부르셨습니다.
시험 기간이기도 했고 국어 선생님께서 시험 대비로 요점 정리를 해주신다는 날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저를 부르시자 최모 수학선생님께서도 올라오셨습니다. 그때 최모 수학선생님은 그 언니들이 속해 있던 ‘막시부’ 라는 동아리의 담당 선생님 이셨는데 잘못한 일이 없는 저더러 선배들에게 사과를 하라는 것이었어요. “선배니까 앞으로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만나면 니가 손해다.” 하시면서 강제로 저를 끌고 상담실로 갔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들어갔는데 거기 그 언니들 중 가운데, 동아리 회장 언니가 느닷없이 “너한테 사과 안받고 가면 애들이(3학년 자기친구) 욕할지도 몰라 사과안해? ” 하는 것이었습니다.
최 모수학 선생님 과 우리반 담임선생님께서는 양쪽에서 번갈아 가며 사과하라고 야단을 쳐서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잘못 한게 없는데도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라고 해서 사과를 했을 뿐 너무너무 속상하고 억울했습니다.
그러던 중 6월 2일 수행평가 준비로 바쁘던 하루였습니다. 시험 점수를 많이 받지 못하면 학기말 고사에는 수행평가가 환산되어 점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 선생님께서는 문제를 내시고 그 문제를 알아오는 학생에게 선착순으로 점수를 주시기 때문에 아침자습 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과학 선생님께 가려는데 저희 반 서기인 홍OO이라는 친구가 저에게 학급일지를 가져와야한다며 같이 가자며 손을 잡고 교무실을 들어갔는데 안 계셔서 다음시간 끝나고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저희 2학년 5반 교실은 3층이기 때문에 계단으로 손을 잡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던 도중 2층에서 이모 무용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다시 내려가서 가”하시며 소리를 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와 함께 다시 계단으로 내려가 교실로 돌아갔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교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 저희 반 앞문을 무언가로 팍팍 크게 치셔서 친구들 모두가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장미화랑 아까 옆에 같이 있던 애 나와!” 하셨습니다.
친구들도 자리에 앉아 있었던 때였고, 아침 쉬는 시간 이였기 때문에 복도에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모 무용 규 선생님이 계신 앞문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는 많은 친구들이 복도에 있는 가운데 왜 실내화를 찍찍 끄냐며 친구는 때리지 않고 저만 머리를 주먹으로 계속 때리시더니 신발을 신고 있던 발로 저의 배와 허벅지를 발로 차 넘어져서 옆에 있던 친구 홍OO 친구가 손을 잡아줘서 다시 일어나기도 했는데 왜 엄살 부리냐며 성질을 더 내시고 머리를 때리셨습니다.
그 때 제 실내화는 두꺼운 고무로 되어있어서 소리 나지 않는 실내화였고 실내화를 끌지 않았던 것이기에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이모 무용 선생님은 운동장 세 바퀴 뛰라고 소리를 버럭 지르시더니 신발 갖고 나오라 그러셨습니다. 제 신발은 실내화 주머니 안에 넣어서 보관하기 때문에 교실 책상 옆에 걸어 놓아서 신발을 가지러 교실로 들어갔더니 왜 신발을 교실에 놓냐며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를 비롯해서 다른 친구들 모두도 신발을 항상 책상 옆에 걸어 놓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신발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체육수업이 들지 않았던 날이어서 구두를 신고 뛰기 힘들 것 같아 앞자리에 앉아있던 고모 친구에게 운동화를 빌려서 이모 무용 선생님께 갔더니 “니신발 갖고오라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울면서 “선생님 오늘 체육수업이 들지 않아서 운동화를 신고 오지 못했습니다 ”라고 하자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는 “구두 신고 그냥 뛰어” 라고 운동화도 빌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운동장 세 바퀴를 정신없이 뛰었고, 하늘이 빙빙 돌았습니다.
옆에 있던 홍OO 친구도 같이 뛰었습니다.
홍OO 친구는 제가 넘어질 때마다 손을 잡고 일으켜 주었습니다. 홍OO 친구가 하는 말이 “너 요즘 이모 무용 선생님이 왜 그러는지 나 다 알아, 너네 엄마하고 학교에서 무슨 일 있는 거 다 알아” 라고 하며, 미화 너 불쌍하다고 하면서 같이 울먹이면서 저에게 위로도 해주었습니다. 운동장을 기어 다니듯이 다 뛰고 현관 앞에서 팔짱을 끼고 계시는 이모 무용 선생님을 보고 그쪽으로 갔습니다.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넌 착각만하고 산다 . 니엄마는 왜 그러냐 ” 그러시면서 욕을 하시기 시작했고. 홍OO 친구는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제 오른 팔을 잡고 끌고 아무도 없는 상담실로 들어가시려 해서 제가 안 들어가려고 하자 머리와 팔을 마구 잡고 끌고 들어가셔서 문을 닫았습니다.
들어가자마자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문자가 와서 진동이 느껴져 꺼내보았더니 지금 핸드폰을 왜 꺼내냐며, 전화하지 말라면서 제 핸드폰을 뺏아갔습니다. 니 엄마 성격 몰라서 전화를 꺼내냐고 소리소리 지르시며 너네 집은 있니? 너네 집 전화는 있니? 니 엄마랑 내가 전화를 한 적이라도 있냐면서 자꾸 하나하나 질문마다 옆에 있던 의자로 들고 배와 옆구리를 심하게 때리시고 발로 계속 허리와 배를 수없이 차고, 의자로 던지고 밀고 너네 집은 있냐. 전화는 있냐, 니 엄마는 대체 왜 그러냐 하시는 데 제가 마땅히 답변을 할말도 없었고, 무섭기만 하고 눈물만 나와서 계속 울고 있으니 운다고 뭐라 하시며 옆에 있던 의자로 허리와 배 부분을 때리셨고, 상담실에서 넘어져 있는데도 계속 의자와 발로 왜 대답안하냐고 하시면서 계속해서 수없이 많이 맞았습니다. 그 날 생각을 하면 수업을 하나도 받지 못하고 아직도 악몽을 꾸는 것 같아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너무너무 무섭기만 합니다.
너무나 많이 맞아서 쓰러진 상태에서 하늘도 빙빙 돌고 너무 아파서 조퇴 좀 시켜 달라고 선생님 다리를 잡고 애원해도 조퇴는 무슨 조퇴냐면서, 지금가면 너네엄마 성격 모르느냐면서 지금 집에는 왜 가느냐고 조퇴를 시켜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보건실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보건실로 갈 때 제 핸드폰을 돌려주시고 이모 무용선생님은 저한테 “집에 가지 말고 여기 있으라”고 하시고는 나가셨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엄마한테 연락을 할려고 하는데 보건선생님이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셔서, 화장실에 가서 엄마께 연락을 드리려고, 그러면 제가 화장실을 좀 다녀온다고 말씀드리니, 바깥화장실에 가지 말고 보건실내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보건실 내 화장실에 잠깐 들려서 손을 닦고 나오면서 그때 복도를 지나가는 남모 국어 선생님(교무부장)을 불러서 “선생님, 이모 무용 선생님한테 많이 맞아서 너무 아파요 조퇴 좀 시켜주세요. 우리 담임선생님은 출장 가셨어요” 라고 말씀 드렸더니 나한테 말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시면서 그냥 가셨습니다.
너무 많이 맞아서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온몸이 아파서 보건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보건실 선생님께서는 “아프지도 않은데 왜 침대에 누워 있냐”면서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더니 코코아를 타주셨습니다. 춥고 머리가 아파서 그걸 마시고 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그날 부담임 선생님이었던 김모 미술 선생님과 정모 (영어담당) 선생님께서 보건실로 오셨습니다.
정모 영어 선생님께서는 저의 팔을 붙잡고 질질 끌고 교실로 가면서 “미친X 니가 거기서 무슨 궁상을 떨고 있냐” 면서 저희 반 까지 제 팔, 어깨, 머리를 닿는대로 잡고 끌고 교실로 올라가서 교실에 들어가라 하시고 정모 영어 선생님은 교무실로 가셨습니다. 교실에 가서 가방을 챙겨서 힘겹게 계단 난간의 손잡이를 잡고 보건실로 내려와서 엄마한테 이모 무용 선생님께 맞아서 아프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고, 조퇴하고 집으로 오라고 말씀하셔서 선생님들이 모두 조퇴를 시켜주시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니 엄마가 급히 학교로 오셨습니다.
엄마가 보건실에 도착하자 부담임 선생님인 김모 미술선생님, 김모 윤리선생님, 최모 교감선생님, 이모 무용선생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이모 무용선생님께서는 갑자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친절한 태도로 제 머리를 만지려 했고, 엄마께서는 만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갑자기 이모 무용선생님께서 어떤 학생한테 시켜서 “엄모씨(전산보조원) 언니 불러서 디카 갖고 오라고 해” 그래서 사진기를 들고 엄모씨라는 분이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와서 이모 무용선생님이 엄모씨라는 분한테 “사진좀 찍어라 나는 작동 하는 법을 모른다” 라고 말씀하시니까, 엄마가 가로막으며 “사진을 왜 찍느냐 지금 무엇을 하고들 계시는 거냐. 사진 찍지마라” 그러셔서 그러면 엄마도 “이모 무용선생님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하시니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 “안된다. 나는 찍지마라 왜 남의 초상화 침해 뭐라고 하시면서 큰일 나는 일이다.” 하셨습니다. 김모 미술 선생님께서는 들어 오시자마자 저희 엄마께 하시는 말씀이 “아줌마 당장 나가, 왜 꺼뜩하면 학교 와서 난리야, KBS기자고 뭐고 다불러, 검찰청에 신고해.” 라는 섬뜩한 말을 하시면서 보건실에 놓여있던 탁자에 들고 계시던 책을 내리치시며 소리소리 지르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저희 엄마가 무슨 커다란 잘못이라도 했다는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무서웠고 저희 엄마께서 왜 그런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엄마는 아무말씀도 하시지 않고 계셨는데 김모 미술선생님서는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엄마께서 “여기가 무슨 조폭도 아니고, 들어가셔서 수업들 하세요”하셨는데 김사성 선생님께서는 또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안되겠네” 이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셨습니다. 그러자 교감선생님께서는 선생님들 모두를 나가라 하시더니 의자에 앉아서 제 머리위에 뭐가 묻어있다고 떼어주시기도 하고 저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일을 다 말씀 드렸고 엄마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냥 아무 말씀 안 하시더니 나가셨습니다.
그런 뒤 119가 왔고 119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체육시간이고, 운동장으로 들어가는데가 막혀있어서 운동장 옆에 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저를 부축을 해주셔서 119구급차 근처 까지 가자, 구급 대원 분들이 와서 도와주셨습니다. 차에 타고 있을 때 산소 호흡기를 꽂았다고 숨을 편하게 쉬라고 했을 때부터 조금 안정되었습니다. 구급차 대원 분들이 효성 병원으로 데려다 주셨고, 응급실에 있을때 우모선생님(행정실직원)이 오셨습니다. 4시쯤 되었을 때 배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휠체어에 태워서 응급실 안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팬티에 피가 보였고, 배가 너무 아파서 간호사 선생님께 엄마가 말씀드리니, 산부인과로 가서 치료를 받고 산부인과 선생님께서는 스트레스와 충격으로 인해서 그럴 수 있다고 입원하라고 하셔서 엄마가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여러 군데 아픈데 어디에 입원을 해야 하냐고 여쭤보니 선생님께서는 신경외과에 입원하면서 산부인과 치료도 하면 된다고 신경외과에 입원하라고 하셔서 6시쯤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병원이라는 곳에서 입원을 한 적이 없고, 처음으로 링겔주사도 맞고 있는데, 너무 무섭고 눈물 만 났습니다. 사진도 많이 찍고 검사도 많이 했습니다.
신경외과 담당 선생님께서는 심하다고 그러시더니 이틀째 되는 날에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아프지도 않으면서 왜 누워있냐면서 자꾸 아픈 곳을 건드리며 괜찮다고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저는 너무 몸이 많이 아픈데, 아픈걸 보여 드릴 수도 없고 답답한 지경이었습니다.
또 그날 전모 체육선생님과 남모 국어 선생님, 그리고 우모 선생님께서 병원에 오셨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멍이 든 곳을 보여 달라 그러셔서 보여드렸더니 심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외삼촌이 병원을 오셨고, 그러던 중 선생님들께서 부모님을 학교 교장실에 가자고 하셔서 학교에 다녀오셨습니다. 단짝 지OO 친구가 과자를 사서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래서 외삼촌이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니 친구는 택시를 타고 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병문안을 와준 친구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온 다음 조금 있다가 이모담임선생님, 남모 국어 선생님 교감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엄마 아빠 어디 갔냐 면서 물어 보셨습니다 지OO 친구가 휠체어에 부축해서 태워주고 난 뒤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있는데 이모 담임선생님께서 병실 옆에 있는 자판기 옆 의자에 앉아서 지OO친구를 불렀습니다. 한참을 이야기 하고 지OO 친구가 들어왔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고, 죽을 떠먹으려고 하는데 지OO 친구가 반찬을 먹여준다며 젓가락을 들고 죽 위에 반찬을 올려 주기도 하고, 학교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정말이지 너무 학교에 가고 싶었고, 지OO 친구가 마냥 고맙기만 해 눈물이 날 지경 이였습니다.
그리고 지OO 친구는 학원에 가야 한다며, 토요일날 1학년 때 단짝인 양OO라는 친구와 같이 또 온다고 “안녕” 하면서 손을 흔들고 갔는데, 다시는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서 오지 않았나보구나 하고 생각도 했지만, 무슨 일이 있나하고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처음 입원했던 OO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고 그때까지 기다려도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지OO 친구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OO병원에 입원을 하고 몇일이 지나고 학교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제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나오게 되었고, 많은 기자 분 들이 병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기자 한분이 지OO 친구의 핸드폰 번호를 물어봐서 어쩔 수 없이 알려주게 되었고, 갑자기 지OO 친구한테 문자가 와서 보니 핸드폰 번호 바꾼다며, 기자한테 전화번호 알려주지 말라고 하는 황당한 문자가 왔습니다. 갑자기 변해버린 친구들 태도도 그렇고 병원에서의 적응도 안되고, 답답하기도 하고 몸도 너무 아프고 해서 너무 슬퍼서 눈물만 났습니다.
그렇게 매일 시간이 되면 물리치료를 하고 시간이 많이 흐르면 잠을 자고, 지루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마음은 얼른 학교에 가고 싶은데, 몸이 자꾸 제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아서 짜증만나고 눈물만 나왔습니다. 그런 중에도 저를 더욱더 슬프게 한 것은 친구들이 인터넷 사이트에 모두 다 제 욕을 하였고,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 친구들은 제가 복도에서 무용선생님한테 맞는 것을 뻔히 다 보았으면서 말입니다. 더 기가 막히고 답답한 점은 같이 울먹이며 운동장을 돌았던 홍OO친구, 제가 맞을 때 바로 옆에 있던 그 친구가 제가 거짓말을 한다며 기자분들에게 말하고, 서부경찰서에서 조사를 할 때도 자술서에다 적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도 어른들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그랬을 것이라는 것을요. 이제는 어른들과 선생님들이 다 무서워요.
그러던 중 담당 형사님이 엄마께 전화를 하셔서 병원에는 컴퓨터가 없으니 직접 경찰서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링거를 빨리 맞고, 목 보호대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했습니다.
정말 휠체어 위에 앉아 있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3주후 입원한 병원에서 퇴원을 했고, 그 뒤부터는 계속 통근 치료를 했습니다. 매일 병원에 다니는 것도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신경정신과병원에 다녀와서 약을 먹고 잠을 자면 잠을 잘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제가 겪고 있는 상황을 전혀 모르면서 제 욕을 하는 친구들과, 사람들이 떠올라서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변해버린 친구들과 그동안 잘해주었던 선생님들도 뭐라고 말하기도 생각하기도 싫었습니다.
기말고사 성적표를 보니 더욱 화가 나고 속상해서 몇 날 몇일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엄마께 중간고사 성적으로 처리해 주신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가 막히는 등수였습니다.
밖에 나가는 것도 무섭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었고, 억울하고 답답해서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다 무서웠고 엄마 아빠 할머니만 보고 싶었습니다. 저를 더욱더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이렇게 힘들고 가슴아픈 나날을 보내며 치료를 받고 있는데,
매일마다 발신번호를 숨기고 욕이 담긴 문자가 오고해서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친구들이 미웠습니다. 이때부터 제가 잘못한 일도 전혀 없는데 친구들을 보는 게 꺼려졌고 괜히 저희 학교 교복입은 학생만 봐도 움찔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학교에 너무 가고 싶었고 공부도 하고 싶었습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재적유예 처리한다며 등기우편으로 편지가 왔습니다. 검찰청에서 빨리 진실을 찾아주었으면 재적 처리 안 당하고 치료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이젠 재적 처리가 되어서 학교를 가고 싶어도 못가는 심정이 너무 너무 억울합니다.
9월 30일에 엄마한테 검찰청에서 연락이 왔다고 저랑 같이 월요일에 검찰청에 가야 한다고 말씀 하셨을 때, 계속 수사해 주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수사를 해 주시는구나 하는 고마운 생각과 이제는 제 억울한 사정을 법에서 알아서 처리해 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걸고 10월 4일날 1시 20분경에 검찰청에 갔습니다.
그런 곳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긴장감도 있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제야 진실이 밝혀지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엄마와 함께 검찰청 계단 하나하나를 올라서 209호 검사실을 찾아서 209호 방을 노크를 하니 방안에서 “예” 하는 소리가 들려 엄마께서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여는 순간 이모 무용 선생님이 검사와 계장님과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저는 너무너무 놀랍고 무서웠습니다.
검찰청 이라는 곳에서 그것도 검사님과 담당계장님이 이모 무용 선생님과 함께 웃고 계시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저를 때리시고도 저럴 수 있나 하는 마음과 무서운 마음에 눈물이 울컥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눈물을 닦고 엄마 손을 잡고 검사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들리는 첫 소리가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 저희 엄마께 “미화엄마 여기앉아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의자 3개가 나란히 모두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 잘못 하셨는데 검찰청에서는 벌을 주셔야지 이모 무용선생님은 조사를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선생님 노릇을 하러 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왜 저희 엄마한테 의자를 가르키면서 “미화엄마 여기 앉아요” 라고하는지, 그런 말을 하는 선생님이 너무 싫었습니다.
검찰청 검사님과 계장님이 지시를 해야 하는데 왜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지시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계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 어느 부위를 어느 쪽 손으로 어느 쪽을 주먹으로 아님 알밤으로 아님 손바닥으로 맞았냐 위에서 때렸냐 밑에서 때렸냐 정확히 이야기를 해라 몇 대 맞은 게 중요하다 정확히 몇 대 맞았느냐고 이야기안하면 올릴 수가 없다.”
그래서 저는 울면서 “많이 맞았어요. 많이 맞았어요.” 그냥 선생님이 부르셔서 나갔을 뿐 인데 느닷없이 때리시는 데 그걸 몇 대 맞았나 세면서 맞겠는 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그냥 많이 맞았다고 말씀드리자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 이라면서 자꾸 빨리 대답하라고 다그쳐서 할수없이 5~6대 가량 복도에서 맞고요 상담실에서 의자로 수없이 맞았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의자로 맞았다고 대답하니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의자로 들고 때렸냐 의자로 어디를 때렸냐” 그래서 제가 “옆구리, 배, 허리를 많이 맞았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억울한데 조사하시는 분께서는 자꾸 저를 거짓말 하는 사람으로 몰아갔습니다. 저는 그날 수업을 3시간동안 하지 못하고 상담실에 붙잡혀서 맞기만 했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해서 눈물만 났습니다.
그래도 이모 무용 선생님께서는 검찰청에 와서도 계속 거짓말 하시면서도 다리를 꼬고 앉아서 커피도 타 드시고 옆에서 저희가 조사를 받을 때 마다 비웃는 선생님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시는 선생님이 너무 미웠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나는 커서 저런 선생님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사를 하시는 분께서는 저와 엄마가 하나하나 질문에 대답할 때 마다 기분이 상할 정도로
‘피식’ 거리시면서 계속 비웃으셨습니다.
질문을 하시고도 이야기 도중 계속 말을 끊으시며 잘못되었다고 거짓말이라고 몰아가셨고
엄마와 저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뿐인데 왜 계속 저와 엄마를 죄인 취급 하시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 가슴을 열어서라도 정말 제 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
을 정도였습니다.
한참을 진술하다가 머리가 너무 화끈거리고 지끈 거렸습니다.
너무나 힘들어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는데, 엄마께서 계장님께 애원하다시피해서 부탁을 드리고 대기실에 가있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대기실 에 가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데 너무 추워서 쭈그리고 있었는데, 아빠가 데리러 오셔서 저는 집으로 돌아왔고 속이 계속 답답하고 울렁거려 밥도 먹지 못했습니다. 머리에서는 열이 나고 속에서는 무언가가 꽉 차 있는 것 같아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엄마께서는 한참 뒤 밤이 되서야 검찰정에서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나중에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서야 검찰청으로 오라고 걸려 왔던 전화에서부터 엄마께 안 좋게 말씀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 것도 모르고 검찰청에 오라고 해서 이제야 진실이 밝혀지는구나! 하고 신이 났던 제가 한심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날 머리도 너무 아프고 속이 답답해서 여러 병원에 다녀와서 좀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인지 지금은 저번처럼 무섭고 두려운 수사를 또 받고 싶지도 않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진실을 밀어내려는 수사도 받는 것이 너무 무섭고 생각하기 조차 싫습니다.
지금 무엇보다 힘든 것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들이 혼자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내뱉고 나중에는 기억도 못하는 친구들의 말 한마디와 양심 없이 행동하는 어른들이 무섭기만 합니다.
이번 일로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고 장래희망도 하나로 굳혀졌습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법조인이 되어 나처럼 어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에 파묻히게 다짐하고 매일 생각합니다.
저는 부모님과 저를 도와주시는 분들이 항상 말씀해주시는 것 같이 언젠가는 제 억울한 마음과 진실이 꼭 밝혀 질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 제가 이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저의 억울한 사정을 검사장님과 대검찰청총장님께 고함으로써 다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올린 저의 글은 모두 사실이며 만약 사실과 다를 경우, 어떠한 처벌도 받을 것임을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