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카르도나 스키장에서 하산하자마자 이원장과 유석이네 집 뒤 뜰을 삽으로 파 헤쳤다. 나는 땅속을 파기만 하면 지렁이가 뭉쳐 있어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줄 알았다. 한 삽의 흙을 파서 뭉친 흙을 잘게 부수어 가며 한 마리씩 찾아내는 작업은 나 혼자서 했다면 실패했을 뻔만큼 섬세하고 귀찮은 수고였다. 이원장의 익숙한 손놀림에 20여 마리를 잡았다. 점심식사 후, 막상 밖에 나와 보니 바람이 많이 불어 낚시하기에 부적합했고, 결국 내가 눈 여겨 보아 두었던 다리 밑 낚시는 포기하게 되었다.
오늘(20일)은 지난 밤사이 비가 제법 내렸고 흐리긴 했으나 많이 춥거나 바람이 강할 것 같지 않아 출조 하기로 작정하였다. 여러 번 탐색한 Ruby Island 앞 바위에 올라섰다. 바다 같이 넓은 호수라서 송어를 잡을 수 있다는 미련은 갖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이미테이션이 아닌 살아있는 미끼 지렁이에 대한 가냘픈 기대는 있을 수밖에 없다. 물새 똥이 채 마르지도 않은 바위에 밑 바침을 설치하고 큰 돌을 얹어 고정시켰다. 드디어 3칸대 외 바늘에 굵은 지렁이 한 마리를 꿰어 던져 넣었다. 찌는 높게 조절하였다.
송어란 놈의 입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만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큰 입으로 덥석 물고 들어간다면 찌 높이가 낮아서는 판단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바닥은 굵은 모래인 것 같다. 낮은 수심에는 자갈밭이고, 그 바위 무더기 앞에만 깊은 수심이 유지되었는데, 3칸대로 5m 정도였다. 일부러 조금 얕은 3.5m수심에서 10분간 기다리다가 꺼내어 보통 크기 지렁이 2마리를 더하여 다시 투입하였다. 맑고 깨끗한 호수에 지렁이 냄새가 사방으로 흩어져 근처에 있는 송어들이 그 냄새를 맡고 몰려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송어 회와 찌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외의 사건이겠지만 잡히기만 하면 모두가 즐거워하고 또 기대하면서 스키나 골프가 아닌 낚시에 관한 얘기로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번 꺼내어 확인했고 릴대로 유인하기 위한 캐스팅도 하면서 1시간을 기다렸다. 물론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러나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졌다. 비 온 뒤의 청명하고 진한 모습의 눈 덮인 산과 숲이, 무대 위의 가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백댄서 같이 호수를 더 아름답게 조명하고 있었다. 햇살이라도 비친다면 눈이 부셔 바로 쳐다 볼 수 없을 만큼 수려하고 아름다울 것 같은 풍광이었다. 이 자연의 아름다움이면 족하지 않은가? 송어는 분명 이 호수 안에 있을 것이고, 오늘 나와 약속이 어긋나 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언제 어디서고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송어를 잡지 못한 미련보다는 매력적인 아프로디테를 닮은 이 호수의 아름다움을 직접 대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더 크다.
떠날 때까지 와나카 호수를 더 자주 찾아야 하겠다. 옥같이 맑은 물빛, 숲과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답게 들어앉은 가옥들, 그 뒤로 길게 누운 검푸른 산, 그리고 그 위에 덮여 있는 하얀 눈, 이 모두를 사진 화면이 아닌 실제의 모습으로 기억하기 위해 내 눈과 뇌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움직여 봤자 돌로 만들어 진 내 머리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할 리는 없을 터인데도 ...
첫댓글 가보진 못했어도 파노라마처럼 영상이 흐릅니다...많은 정화를 빌어요...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