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피렌체 관광의 하일라이트라고 하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으로 바로 가자.
정식 명칭은 꽃의 두오모 성당이라고 하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대성당이 들어선 광장을 두오모 광장이라고 하는데 항상 큰 성당이 들어서면 주변에 공사자재를 쌓고 여러가지 작업 공간이 필요하니 공사 후 저절로 생겨나는 공간이 광장이다
이 광장의 주요 건축물이 대성당, 조토의 종탑, 산 조반니 세례당,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성당 지하 박물관.
내가 먼저 구경한 곳이 이 곳 산 조반니 세례당(1059~1128년)인데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본래 고대 로마 신전이 있던 곳을 헐고 지은 카톨릭 예배당이다.
단테도 여기서 세례를 받았고 가까운 곳에 단테 생가도 있는데 방문도 했다
이 세례당이라고 하는 곳은 세계의 공통점이 팔각형인데 기독교에서 8이라는 숫자는 재탄생을 의미한다
세례당 입구에는 3개의 청동문이 있는데 남문(안드레아 피사노, 1330~1336년) 동문( 1425~1452년) 북문(1403~1424년)이다.
이 청동문을 제작한 기베르티가 죽은 후 20년 후에 태어난 미켈란젤로가 이 동쪽문을 보고 감탄해 천국의 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동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1401년 피렌체에서 두 명의 천재가 벌리는 세기의 대결이 한 판 벌어진다.
피렌체 정부에서 세례당의 문을 영구한 청동장식으로 교체를 하는데 당시의 흑사병과 이웃 공국들의 침략으로
엉망된 나라를 세우고 민심을 북돋우기 위해 시작하는 사업.
대단히 중요한 국가사업인 만큼 조각가 선정의 엄중을 기하는 방법에 공모제를 택하고 주제를 던져 주면서 그기 맞춰 1년 내에 작품을 제출 하라고 공고.
도나텔로등 내노라 하는 7명의 작가들이 이 중요한 공모전에 참여했는데 최종 선발된 사람은 22살의 기베르티(1378~1455년), 25살의 브루넬리스키(1377~1446년),
피렌체 정부는 이 때 34인의 시민위원회를 조직해서 그들에게 결정을 위임.
공모전의 주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구약성서의 내용으로,
아브라함의 늦게 얻은 소중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극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이 피렌체라는 나라도 피폐하고 절망의 상황에서 일어나기를 염원하는 소망을 담는 것.
심사위원들은 최종 기베르티의 손을 들어줬고,
여기서 두 사람의 천성에 관한 언급.
기베르티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고 1년 동안 작품을 만들어서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조언과 의견을 구하고,
브루넬리스키는 은행가 집안의 부잣집 출신이고 그 성정은 한 세대 나중에 태어나는 미켈란젤로 조상쯤 되는 과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부터 완료 까지 문 꼭꼭 걸어잠그고 철통 같은 보안 유지.
낙마 먹은 후, 여기서 기죽은 브루넬리스키도 급여받고 살아야 하니 기베르티 아래서 한 동안 청동문 제작에 참여도 했지만 도중에 로마로 훌쩍 날아가버린다
그리고 콜로세움, 판테온 건축물에 몰두해서 나중에 피렌체 "도시의 건축 천재"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이제 두오모 대성당 쿠폴라 (돔) 이야기.
한 마디로 피렌체를 벗어나 이탈리아의 랜드마크다.
규모가 전체 길이 153미터 전체 너비 90미터 높이 114.5 돔 직경 45.52( 판테온 43.4, 로마 성베드로 성당 42.3)으로 당연 돔의 직경이 내가 알기로 세계최고.
이 성당은 처음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이자리에 있었지만 5세기에 세워진 후 900년이 흐르는 동안 보수 개축을 아무리 해도 이제 손을 쓸 수 없이 낡아버렸다. 그리고 너무 작았다. 한창 모직물 무역이 번창, 경제적 번영이 진행되든 피렌체 국위를 고양시키고자 피사나 시애나를 같은 도시에 뒤지지 않는 성당을 신축하기로 결정.
최초 1294년 피렌체 시의회로 부터 새로운 대성당 설계를 의뢰 받은 조각가 건축가인 아르놀포 디 캄비오는 옛 성당의 권역은 새로운 랑(신랑)으로 포함하고 (어느 성당을 신축하더라도 이전 건물을 전부 없앨수는 없고 대부분 지하시설은 유물로 남겨둔다), 중앙은 팔각형 돔이 올라올게 설계한다.
이어 1296년 교황청에서 파견한 발레리나 추기경이 첫 돌을 놓으며 대역사가 시작됐지만 여러차레 중단 되는 곡절을 격으며
설계는 오히려 규모가 크지고 당대 유럽의 최대급 성당이 돼버렸다. 이 무렵 조토가 설계한 종탑이 완성.
결국 1380년 신랑이 완성 되었는데 남은 것은 거대한 돔이었다.
배짱과 주변국과의 자존심으로 건물은 엄청 키우고 늘였는데 문제는 그기 걸맞는 돔을 올려야 하는데 이미 신랑이 완성되기 전인 1367년에 돔을 지름 42터 짜리로 짓기로 최종 결정된 것.
당시 아치나 돔을 만들려면 그 아래에 나무로 비계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거대한 돔을 건설키 위한 틀을 만들려고 목재의 양을 계산해보니 엄청난 산정으로 답이 안나오는 구덩이에 빠진 것.
결국 중앙에 천장이 뻥 뚫린 성당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 상태가 51년 동안 공사가 중단되는 우스운 모양이 돼버렸다
" 언젠가는 하느님이 이것을 해결해 주시겠지" 하면서도 주변 국의 웃음꺼리가 된 성당.
두껑도 없는 성당.......
이 난국을 타계하기 위해 1418년 돔 공사 해결을 위한 대책을 공개모집 하기에 이르렀고,
응모자 10여명을 제치고 선택된 사람이 금 세공사이자 시계공이었든 필리포 브루넬리스키(1377~1446년).
앞서 설계자들(탈렌티와 네리라는 인물들)이 싸지른 설계를 수습해 실제로 돔을 올린 사람은 혜성처럼 등장한 그였다.
이번에도 세례당 청동제작 공모전에서 패했든 악연 로렌초 기베르티도 참여했지만 그도 역시 건축에는 한 줄 경력이 없는 터.
허지만 브루넬리스키는 이미 로마에 가서 몇 해를 머물면서 판테온을 연구끝에 원근법의 수학적 법칙을 발견, 발굴을 하였고
이 덕에 성당의 공사에 참여할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공사 담당자는 브루넬리스키였지만 이미 피렌체의 유명한 예술가인 기베르티는 부 담당자가 되었고,
명성만으로 함께 일하게 된 기베르티가 탐탁치 않았든 브루넬리스키는 그에게 공사에 관해 거의 알려주지 않았고 1420년에는 몸이 아프다는 핑게로 요양을 떠나게 된다.
그 사이에 공사를 담당하게 된 기베르티는 자신이 아는 바 없다고 실토, 3년 후에 돌아온 브루넬리스키는 단독 책임자가 되고,
급료도 많이 오르지만 기베르티는 존재감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공사 시작전 위원회에서 건축에 경력없는 이 건축가에게 고아원 건물을 지어보라고 과제, 훌륭히 통과.
그는 당시로써는 전대미문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돔을 건축하겠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과거는 나무 틀을 세우고 그 위에 벽돌을 쌓은 방법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을 올리겠다면서 그 비계틀 없이 올리겠다니 돌이 기울어지면 전부 바닥으로 낙마할텐데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다.
결국 1420년 8월7일, 반 세기가 지나도록 손을 못댔던 돔 공사가 시작.
원래 대성당 벽체 높이 42미터에 얹어진 팔각형의 드럼 높이 9미터를 더한 51미터였다
그는 완성돼 있던 드럼 위에 다시 13.6미터 높이 까지 드럼을 연장했고 그 위의 경사진 돔 부터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벽돌과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쌓아올렸다. 드럼 팔각형인 관계로 돔 역시 팔각형이 되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왜 어려운 위기나 예기치 못한 변수가 없었을까.
공사비가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고 재정적 곤란으로 힘든 일들이 생긴다. 이때 다행이도 코시모 디 조반니 데 메디치의 후원을 받아 많은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악연의 시작인 기베르티와의 음모 등으로 여러가지 우유곡절을 격기도 하지만 드디어 1436년 3월 26일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대성당의 축성식을 거행하고 나서 5개월 후인 같은해 8월 30일 피에솔레 주교가 돔의 마지막 돌을 놓으면서 완공되었다.
공사가 시작된지 16년 23일 만이었다
그리고 1446년 4월 15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위 무덤은 대성당 남쪽 측랑 지하에 안장되었고 무덤을 덮은 석판에는 다음과 같은 라틴어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피렌체의 위대한 천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여기 잠들다.
어느 해에 홍수로 인해 피해가 생기자 원판 문은 박물관으로 보내 관리하고 일본 어느 업체가 제작한 모의 청동문을 달았다
지금 올라선 곳은 조토의 종탑에서 올라선 후 성당 돔을 향해 찍은 사진.
종탑에는 뛰어 내리는 사람들로 인해 이 같이 철망이 쳐져 있다.
이 계단이 414개, 돔 올라가는데 계단이 423개.
무식하면 가진게 용감함 밖에 없다고 했든가, 보통 무릎이 힘들다고 한 곳 정도만 오르는데 내일 일정이 우피치 미술관이라 달리 방도가 없어 솔직히 거침없이 당일에 두 곳을 다 올라버렸다.
무릎 관절염 퇴행성 2기 초기를 안고.
10여년 전에 페키지 여행으로로 여기를 왔을 때 아래에서 저 위에 올라선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신기해 하면서도
언제 나도 저기 오를 날이 있을것이다.......
종탑 오르는 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