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뛰어난 정확도를 자랑하는 스위스의 K31 소총
스위스는 1815년 빈 회의에서 영세중립을 보장받은 후 지금껏 있었던 유럽의 수많은 이합집산과 전쟁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독립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종종 이와 관련하여 오해를 사는 부분이 있다. 다자간 조약에 따라 영세중립을 보장받았기에 그 어떤 이유로도 외세의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고, 만일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엔 주변국에서 달려와 도와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이나 역사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제1차 대전 당시의 벨기에도 영세중립국이었지만 단지 파리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독일의 침공을 받았다. 이를 명분으로 영국이 참전했지만 엄밀히 말해 벨기에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독일의 패권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면 영세중립은 유지하기 힘들다. 즉, 문서상의 약속과 관련 없이 자주국방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스위스도 무장중립(武裝中立)이 주요 정책 기조일 만큼 국방력 구축에 그 어느 나라보다 열심이다. 상비군의 숫자가 적은 편이 아니고 동원 체계도 훌륭하며 최신 무기의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소화기(小火器) 같은 일부 무기는 자체 생산하기도 하는데 당대 최고의 정확도를 가진 소총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K31(Karabiner Model 1931)도 스위스의 자주국방 의지를 상징하는 무기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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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31 총구에 모의 총류탄을 부착하고 훈련 중인 스위스군 병사
19세기에 베이스가 개발된 소총
제식부호에서 알 수 있듯이 K31은 카빈이다. 원래 카빈은 기병대가 사용하기 편하도록 보병용 소총의 총신을 단축한 변형을 의미한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 기병의 일선 전투 부대로서의 역할이 현격히 줄어든데다, 기술의 개발로 총신을 단축했음에도 정확도나 사거리가 약화되지 않은 까닭에, 카빈은 독일의 Kar98k이 그러했듯 보병용 제식화기처럼 사용되었다. 따라서 제2차 대전 직전부터 사용된 카빈은 일반 소총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K31은 1931년에 개발되고 유럽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1933년부터 양산에 들어갔기에 동시대에 주력으로 사용된 여타 국가의 주력 볼트액션 소총들에 비하면 상당히 최신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롭게 제작된 소총은 아니며, 1889년 개발되어 20세기 중반까지 스위스군의 주력 제식화기로 사용된 슈미트-루빈(Schmidt–Rubin) 소총에서 기술적 기반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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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며 20세기 중반까지 사용된 슈미트-루빈은 K31의 베이스가 된 소총이다. 종종 K31을 슈미트-루빈의 카빈형으로 언급하기도 하지만 기술적으로 다른 소총이다. <출처: (cc) Rama at Wikimedia.org>
19세기 말 현역 군인이던 에두아르트 루빈(Eduard Rubin)은 탄두를 구리로 감싼 최초의 동갑탄(銅甲彈)인 7.5×53.5mm탄을 개발했다. 이로써 관통력이 대폭 향상되었고 기존 철갑탄에 비해 부식에 강해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다. 탄자 직경이 7.77mm여서 많이 사용되는 7.62mm 구경 탄과도 쉽게 호환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역시 현역 군인이던 루돌프 슈미트(Rudolf Schmidt)는 루빈이 제작한 탄을 기반으로 하는 총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 새로운 총은 이후 K31의 상징이 되기도 한 스트레이트-풀(Straight-pull) 방식이 적용되었다. 일반적인 볼트액션 소총은 볼트를 90도 꺾은 후 당겨서 탄피를 배출하고 장전하는 방식인데, 스트레이트-풀 방식은 볼트를 당기면 내부에서 노리쇠가 회전하여 다음 동작을 자동적으로 하게 된다. 이처럼 슈미트와 루빈의 노력으로 탄생한 슈미트-루빈 소총은 1950년대까지 스위스군의 주력 소화기 역할을 담당했고 예비군용으로는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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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이트-풀 방식을 채택하였던 슈미트-루빈 M1889.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어 이후 개량형은 일반적인 볼트액션 방식으로 돌아갔으나 K31 개발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출처: (cc) Grzegorz Wiśniewolski/PK-U “Parabellum” Sp. z o.o. at Wikimedia.org>
같은 듯하지만 다른
그런데 스트레이트-풀 방식은 구조가 복잡해 유지 보수가 까다롭고 이물질이 끼면 작동 불능이 되는 경우가 많아, 후기형 모델인 M1896, M1911(K11)은 일반적인 볼트액션 방식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1931년 베른 조병창(Waffenfabrik Bern)이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 다시 이 총의 개량에 나섰다. 총신을 좀 더 단축해 휴대성을 높이고, 화력이 보다 강화된 7.5x55mm탄(GP 11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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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명 스위스탄이라 불리는 7.5×55mm 규격의 GP 11탄. 흔히 NATO탄이라 불리는 7.62mm 구경 탄과 호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당시 개발에 참여한 현역 군인 아돌프 퍼러(Adolf Furrer)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슈미트-루빈이 처음에 채택했던 스트레이트-풀 방식에 주목했다. 이를 적용하면 연사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본 그는 캐나다의 로스(Ross) 소총을 비롯해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여타 총들을 분석한 뒤 개량에 나섰다. 또한 명중률을 향상시키기 위해 프리플로팅 배럴(Free-floating barrel)을 적용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소총이 바로 K31이다. 외관이 비슷하고 개량 중에 탄생했다는 이유로 K31을 슈미트-루빈의 카빈형으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전혀 새로운 별개의 소총이다. 하지만 야심만만하게 도입한 스트레이트-풀 방식은 예상보다 K31의 연사 속도를 높이지는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구조가 복잡하다 보니 내부에서 작동하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고 당시의 가공 기술로 더 이상의 개량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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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이트-풀 방식으로 작동되는 K31의 볼트와 부품들 <출처: (cc) Bouterolle at Wikimedia.org>
정확도를 추구한 이유
▲ 6발 장착이 가능한 스트리퍼 클립을 이용하여 삽탄하는 모습 <출처: (cc) GaryArgh at Wikimedia.org>
그럼에도 일반 볼트액션 방식보다 편리해 일선에서는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슈미트-루빈에 비해 정확도가 놀라울 만큼 향상되어 호평을 받았다. K31의 정확도는 1 MOA(minute of arc)인데 이는 300m 거리에서 조준 사격했을 때 지름 8.72cm 안에 탄착군이 형성된다는 의미다. 보통의 소총이 3~6 MOA 정도임을 감안하면 K31의 정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유추할 수 있다. 일반 보병용 제식화기로는 매우 뛰어난 편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볼트액션 방식 소총들이 정확도가 높은 편이지만 K31은 처음부터 평균 이상의 정확도를 목표로 개발이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방어 위주로 수립된 스위스의 군사 전략과 관련이 깊다. 만일 스위스가 전쟁을 벌인다면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와의 충돌이 예상되는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모두 정면으로 상대하기가 버거운 나라들이다. 단순히 수적으로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열세다.
그래서 스위스는 험한 산악지대를 최대한 활용하는 지구전을 펼쳐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전략과 전술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방어시설에 매복한 상태로 원거리에서 적을 제거할 수 있을 만큼 정확도가 뛰어난 소총이 요구되었다. 제2차 대전 이후 보병용 제식화기가 돌격소총으로 바뀌었지만, 그 이전까지의 주력 소총들은 단발의 볼트액션 방식이어서 정확도가 수적 열세를 만회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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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지간한 저격총과 맞먹는 정확도를 자랑하는 K31의 가늠자 <출처: (cc) Sabianinnc at Wikimedia.org>
자주국방을 위한 노력
따라서 K31의 뛰어난 정확도는 한정된 소수의 자원으로 외세의 침략을 저지해야 하는 약소국의 고민이 낳은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소총의 성능을 상징하는 지표는 많지만 실전에서의 활약상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M14 자동소총의 경우, 미군 당국이 M1 개런드의 명성을 과신해 자신만만하게 도입했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끝에 주력 소총의 지위를 M16에 내준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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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준경을 달아 정확도를 더욱 향상한 ZfK55. 저격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 (cc) Bouterolle at Wikimedia.org>
그런 점에서 본다면 K31은 미지의 소총이라 할 수도 있다. 시기적으로 제2차 대전 당시에 제식화되었지만 스위스군과 바티칸에서 교황을 경호하는 소수의 스위스 용병만 사용하다 보니 실전에 투입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31의 명성이 높았던 이유는 볼트액션 방식이 주류였던 시기에 누구나 최고로 인정할 만큼 정확도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K31은 자주국방을 위한 스위스의 굳은 의지를 상징하는 무기여서 더욱 의의가 크다. 스위스가 나폴레옹 전쟁 이후 계속 평화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영세중립에만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평화를 지키려는 모든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상 최대의 전쟁이 연이어 벌어진 20세기에도 피바람을 피해 갈 수 있었다. K31은 비록 실전에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그 못지않은 역할을 해낸 스위스의 자부심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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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위스군 벙커의 거치대에 수납된 K31. 총 528,230정이 생산되어 1958년까지 제식 소총으로 사용되었다. <출처: (cc) Schweiz12 at Wikim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