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을 넘어, 삶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습관]
“습관이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결정짓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습관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하는 일’이 곧 습관이 됩니다.
매사에 쉽게 화를 내다 보면 어느새 화내는 것이 버릇이 되고, 반대로 작은 일에도 감탄하고 감동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자주 하면, 그 아름다운 고백이 삶의 자연스러운 습관이 됩니다.
우리가 날마다 좋은 습관을 정성껏 길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긍정적인 말을 건네고, 따뜻한 생각을 품으며, 습관처럼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 그리고 몸을 깨우는 운동을 하며 내 삶에 유익한 것들을 하나씩 채워갈 때, 우리 삶에는 자연스럽게 좋은 행동들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은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어 줍니다.
반대로, 나도 모르게 염려를 붙잡고 있거나,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뱉고 짜증과 불평을 일삼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불행히도 그 어두운 습관들이 언행에 고스란히 배어 나와, 결국 나 자신을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습관은 마치 우리를 태우고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자동차는 우리를 태운 채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지요. 그러다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몸이 앞으로 툭 튕겨 나가려고 합니다. 차는 멈추었지만, 그 안에 탄 사람은 차가 달리던 속도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성질, 바로 ‘관성의 법칙’ 때문입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기사님이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몸이 휘청하며 넘어질 뻔했던 기억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버스가 달릴 때 우리 몸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겉으로는 멈춘 것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성질이 남아 흔들리는 것이지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맸음에도 멍이 들거나 상처를 입는 것처럼, 한 번 붙은 속도를 멈추는 데는 늘 그만큼의 통증과 흔들림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이 ‘습관’이라는 자동차에 담겨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삶의 방향을 좋은 습관으로 정렬해야 합니다.
입술을 열 때마다 다정한 긍정의 말을 담고, 누군가를 마주할 때는 밝은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 마음속에 번지는 근심과 걱정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무엇보다 매일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며 신앙의 건강한 관성을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힘써야 할 아름다운 노력입니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의 젊은 시절 일화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청년 김유신은 천관녀라는 기생과 깊은 사랑에 빠져 자주 기방을 드나들었습니다. 자식이 바른길을 가기만을 밤낮으로 기도하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눈물로 꾸짖었습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눈물 앞에 정신이 번쩍 든 김유신은 다시는 기방에 발을 들이지 않겠노라 맹세했지요.
그러던 어느 나른한 오후, 친구들과 어울리다 집으로 돌아오던 김유신은 말 위에서 그만 잠깐 졸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말이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그곳은 다름 아닌 천관녀의 집 앞이었습니다. 주인이 졸고 있는 사이, 늘 가던 길을 기억한 말이 습관처럼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입니다.
버선발로 뛰어 나오는 천관녀를 뒤로한 채, 김유신은 서슬 푸른 칼을 뽑아 자신이 타고 온 말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지요. 훗날 사람들은 그 자리를 ‘천마항’이라 불렀고, 그의 위대한 대업은 바로 그 습관의 목을 베어낸 자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김유신이 타고 있던 말은 어쩌면 오랜 시간 길들여진 우리 안의 ‘부정적인 습관’일지도 모릅니다. 굳게 결심했음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한 옛자리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 거센 관성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보고, 듣고, 행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무심히 반복한 그 행동이, 내일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다줄 삶의 관성이 됩니다.
오늘 하루, 내 삶의 운전대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하고 선한 습관을 향해 부드럽게 틀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