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세 되신 할머니(1926년생)이야기이다. 젊은 시절 신랑 군대보내고 보따리 옷장수시절 오대산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뻔한 이야기를 움막에서 처음만난 날 부터 오늘까지 수차례나 반복해서 생생하게 들어왔기에 나는 이 할머니를 오대산할머니라고 내 스스로 이름지어 부른다. 이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금호2가동 9-21 낡은 철대문이 나온다. 난 동장님과 함께 할머니를 첨 만났다 전쟁 후 50년대, 아니면 6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그 당시의 보편적인 집이다 재개발로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금호 옥수지역 어딘가에, 지금도 이런 집이 있었다니~~~. 더군다나 이런집에 90대 할머니가 홀로 기거하고 계시다니 믿지 못할 사실이다. 겨울에 수도 얼까봐 덮어 놓았다며 곁에 선 할머니가 내게 설명해 주신다. 할머니의 안내로 방에 들어가 이불을 들춰내어 보니, 이렇게 전기장판이 과열 자칫 화재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하루 한끼로 연명하며 이곳에서 땡볕 삼복더위에도, 한겨울 추위도 웅크리고 지냈을 것을 생각하니 웬지모를 애련한 설움이 솟아난다 예전엔 흔했으나, 요즘은 보기 드문 창문 할머니집을 내려오는 계단조차 서글픈 내 마음인양 갈라져 있다. 오대산할머니가 이사를 했습니다. 쓰러져 가는 움막에서 일주일 만에 소금창고 앞 동네의 번듯한 궁궐로! 이사 한 다음 날 아침 일찍 할머니의 밤새 근황이 궁금해 찾아갔다. 노인이 밤새 학독(돌절구) 얘기만 하시면서 잠을 못 주무시고 계속 도로 그 집으로 가신다고해서 딸이 밤새 애를 먹었노라고 내게 실토했다. 할머니의 마음을 나는 안다. 전날 현장에서 만났을 때 계단입구의 돌절구를 가리키며 "이것을 꼭 가지고 가야할텐데, 이것 땜시 내가 산에도 댕길 수 있었고 다리도 튼튼해 졌는디, 어쩐대유?" "아자씨가 꼭 날라다 줄건가유?" 하고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겐 가장 애착이 가는 보물 1호나 진배없는 물건이다.
새끼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했다. 내가 그 돌절구를 가져오면 다시는 그곳으로 간다는 말씀 안하시며, 어제 이사 온 이 집에서 계속 살기로 한다는 다짐을 받고, 나는 그것을 차에 싣고오려고 산동네를 다시 올라갔다. 대문을 여니 바로 코 앞에 잘 덮어놓은 보물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 옮기려 애써 보았지만 내 혼자 힘으로는 엄두가 나지않아 동장님께 도움을 청했다. 주민센타 기초복지 팀장님도 합류해서 동장님과 셋이 일단 보물을 바깥으로 들어다 내어놓고 옮길 채비를 마쳤다. 오대산할머니의 보물덩어리 돌절구 수송작전이 진행중이다. 주민센타 젊은 직원들도 가세하여 가파른 골목길을 들고 올라간다 드디어 할머니의 새 집으로 일단 옮겨다 놓는데 성공. 작전완료 되었다 돌절구를 집에 들여놓은 날 저녁 할머니가 낮에 고맙다며 박카스를 한 박스 사들고 소금창고로 나를 찾아오셨다. 지금 기거하시는 집은 큰방도 있고 목욕탕도 있다. 작은 방에 할머니의 보물 돌절구도 두꺼운 이불 위에 안치되어 운동기구로 사용중이시다. ♡에필로그♡ 참으로 아름답고 오묘한 사건?이 착수한지 일주일 만에 상상도 못할 만큼의 보람을 성탄 전야에 우리 모두에게 안겨주었으니, 동장님을 비롯한 주민센타 관계자와 오대산할머니의 자녀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시작은 이러하다. 어느 날 저녁 맘씨 고운 사랑의 보안관 동장님께서 애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슴에 담고 헐레벌떡 소금창고에 들어오셨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금 전에 발견한 할머니의 실상을 내게 전하며 얼른 같이 가보자고 다그치신다. 난 동장님께 이끌려 둘이 황급히 그 할머니가 기거한다는 산동네를 향했다. 가는 도중 역시 그곳으로 향하던 주민센타 기초복지 박팀장도 만나 함께 산기슭을 올라갔다. 할머니의 쓰러져가는 움막안에서 우린 많은 얘길 듣게되었다. 이 때, 젊은 시절 고생하던 얘기랑, 소설같은 오대산 호랑이 이야기도 처음듣게 되었다. 정이 많으신 두 분은(동장과 팀장) 이러다 오늘 밤이라도 동사하시거나 무슨 일 있으면 큰일이라며 안절부절하신다. 곁에서 내가 만류하지 않았다면 들쳐업고 따스한 여관방으로라도 금시 모셔 갈 기세였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 놓고 향후 대책을 강구해 보자고 하시기에 내가 동장님께 정중히 제안을 드렸다.'이 십여년을 이곳에 정붙여 지내오던 할머니를 갑자기 거쳐를 옮겨드리면 심경에 변화도 있어 도리어 안정을 찾지 못 할 수도 있고, 또 우리가 잘 한다는 일이 경우에 따라서는 자식들이 효도할 기회를 가로채는 결과도 낳을 수 있으니 오늘은 할머니를 이곳에 그냥 이대로 두고, 내일 자녀들을 수소문해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만약 자녀들이 부양을 포기한다거나 형편이 어렵다면 그때가서 우리가 도와줍시다.'하였더니 고맙게도 두 분이 내 뜻을 받아들여주셨다. 다음 날 오전 동장님에게서 기쁜 소식이 왔다. 지금 주민센타로 큰 따님과 작은 딸이 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얘기로는 어머니를 모시려 하였으나 노인네가 할아버지와 오래도록 살던 그곳을 절대 떠날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하시는 바람에 지금까지 왔다고 했다. 이 말은 사실이다. 내가 할머니에게 별도로 '왜 좋은 곳으로 이사시켜 준다는데 안 가시는거에요.?'하고 물었더니 할머니의 대답은 '왜, 자식들에게 짐이 되냐고! 걔들에게 부담주면 안된다.'하셨다. 당신은 이 집이 좋다고. 사랑은 위대하다. 자녀들이 방 보증금을 마련하고 팀장님이 부동산에 집을 알아보고 나는 할머니랑 계속 얘기 반복청취하며 놀아 주었을 뿐인데 결국 할머니가 모두의 간곡한 청에 감동하시어 고집을 꺽었다. 그리하여 12월17일 처음 오대산할머니를 만난 날로부터 일주일 만인 지난 12월23일 할머니는 소금창고 앞동네 깨끗한 가옥으로 거처를 옮기시게 된 것이다. 나는 가까운 곳에 할머니가 계시니 수시로 올라가 본다. 자녀들이 와서 목욕도 시켜드리고, 큰 딸과 사위는 음식을 날라다 준다. 어느 날인가는 손녀 딸도 와 있었다. 아흔 한 살이 되신 노인이 이제 비로서 가족의 관심과 사랑을 먹으며 춥지 않게 겨울을 지내고 계신다. 이번 일을 돌아보며 우리는 얼마나 편견의 노예가 되어 있었는가? 자문해 본다. 한쪽 상황만 보고, 한쪽 얘기만 듣고서는 남을 단죄할 수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자녀를 만나보기 전에는 얼굴도 모르는 그들을 원망했다. 허지만 실상을 듣고보니 자녀들은 나름대로 겪어보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삶과 관계 속 상처의 피해자들이었다. 허지만 그 가슴 속 마음만은 따스한 사람들이였다. 다만 늙은 어머니의 고집을 이겨내지 못 했던 것이 이제까지의 자식들 불찰이었을 뿐이라 생각했다 아무튼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주인공 오대산 할머니! 남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않으려 하는 배려심, 자식에게 부담끼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숭고한 숨은 사랑을 누가알랴! 또한 작은 일에도 감사함을 잊지않으시는 오대산할머니는 이제보니 하늘에서 내게 보내주신 스승이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 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르코12.31)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야고보2.8) |
첫댓글 아멘
주님의 자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v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