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7월 12일 수요일 맑음
오늘은 아산행이다
한 시간 하고도 10분을 더 가야하는 길이다.
자주 다니다 보니 점점 가까워지지만 대전 정산 길 만큼 익숙하지는 않다.
먼저 면사무소에 들러 아버지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아버지를 아주 떠나 보내드리는 절차라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아버지 사망신고를 하러 왔습니다” 괜히 얼굴이 상기된다.
마치 면사무소 직원에게 내 치부를 고백하는 것처럼.....
사무장님이 따로 부르더니 아버지의 재산 내역을 조회해 보시겠냐를 묻는다. 정부 3.0 서비스라나 뭐라나.
‘뭐 별거 있겠나’ 생각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문자로 온댄다.
사망등록이 완료된 제적등본과 피상속인의 제적등본을 발급받았다. 아버지는 이제 모든 서류에서 사망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젠 완전히 떠나신 것이다.
다음으로 농협에 들렸다. 아버지 농협조합원 탈퇴와 통장의 잔금 처리를 위해서였다. 창구 직원에게 서류를 내미는 데 “어머, 선생님 오셨어요 ?” 반갑게 맞이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달려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
탕정초 제자 영신이다. 탕정 농협 본점의 상무로 있단다.
“선생님 이리 오세요” 서둘러 편안한 자리로 안내하더니 음료수부터 들이댄다.
창구 직원을 젖히고 제가 직접 처리해 드리겠다고 나선다.
‘허, 제자가 좋긴 좋구나. 선생을 했으니 이런 대접을 받지’
“선생님 상속 문제는 굉장히 까다로워요. 형제가 몇분이시죠 ? 다 오셔야 하는데....” “일곱이 다 와야 해 ? 예금도 얼마 안 되는데....”
“그래도 다 오셔야 원칙이지만 누구 한 분이 보증을 서시는 방법이 있어요”
“등본에 일곱 명이야. 우리 엄마에게서 5남매, 엄마가 각각 다른 형제가 둘이야. 마산에 산다는 여자 형제 하나는 소식도 모르고, 남자 형제 하나는 죽었고, 여동생 하나는 캐나다 사는데.....”
“그럼 동네 분 한 분이 보증을 서시고, 일곱 명 중에서 네 분이 오시던지. 어머님과 선생님 두분이 네 분 형제들이 위임장과 본인이 직접 뗀 인감증명서 한 통, 그리고 인감 도장을 지참하시고 오시면 됩니다.”
“원 뭐가 그렇게 복잡해. 몇 푼 되지도 않는 걸 가지고....”
영신이가 서류 한 장 한 장을 챙기고,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이 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영신이 아니었다면 낭패를 볼 뻔 했다.
“영신아 네 자리에 가서 앉아 봐. 네가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 좀 보게. 선생은 제자 잘 되는 것보다 좋은 게 없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다음은 탕정농협동산지점에 들렀다.
여기 지점장은 동덕초 제자 근철이다. 제자 복이 터졌다. 고향만 오면 제자들이 버글버글하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나.
근철이도 뛰어나와 시원한 지점장실로 모시더니 대접이 극진하다.,
“근철아. 우량농지 조성사업 건은 어떻게 돌아가니 ?”
“선생님 안 되겠어요. 선생님 의사대로 하셔야 되겠어요”
“그래, 그럼 메밀을 심어야 겠구나” “예, 그렇게 하세요”
“우리 엄마 농사 중 지금은 뭘 해드려야 되겠니 ?”
“요즘 참깨 대삭음병과 살충제를 해야 돼요” “그럼 그 농약 좀 사자”
농약을 사고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반색을 하신다.
아버지가 안 계신 쓸쓸한 집안 분위기에서 엄마가 꿋꿋하셔야 할 텐데....
대전 집으로 모시고 싶어도 짓던 농사 눈에 삼삼하여 병이 나실 것이다.
“엄마 식사 많이 하셨어요 ?” “그럼 걱정 마. 많이 먹고 있으니까”
“엄마 참깨 농약을 해야 한 대서 농약을 사 왔는데....”
“아니 얘. 청양에서 일하고 여기 와서 또 일만 하면 너 지쳐서 안 돼”
엄마는 늘 내 걱정이 우선이다. “엄마 걱정 마세요. 그 정도 일은 나한테는 쉬는 거예요” “그 게 쉬는 거면 어떻게 한다니” 얼굴이 굳어지신다.
“엄마 궁개 논에 메밀을 심으려면 포크레인 대서 무너진 둑을 고치고 고랑을 만들어야 겠어요.” “너 그거까지 어떻게 한다니 ?” 또 걱정이시다.
포크레인 기사도 제자다. 나 없어도 잘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참깨 농약을 하는데 엄마가 둑에 앉아 보고 계신다.

힘든 일을 하는 아들이 안타까워서 이실 것이다.
나는 엄마가 보시는 앞에서 하는 일에 더 힘이 나고.... 우리 엄마 !
“오늘 자고 갈래 ?” “엄마 자고 싶어도 내 할 일을 못해서 안 되겠어요”
“밤에 무슨 일을 해 ?”
“컴퓨터로 글을 쓰고, 올려야 하는데 여긴 컴퓨터가 없잖아요”
“그래” 하시면서도 이해가 안 되시나 보다.
어두운 밤에 엄마만 남겨놓고 정산으로 향하는 마음이 무겁다.
떠나가는 아들이 사라질 때까지 창밖으로 내다보시는 엄마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정산으로 향했다.
단 잠을 깨울까봐 잘 왔다는 전화도 못 드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