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바람이 혼재된 꽃샘추위가 섬에 몰아닥치니 더욱 을씨년스럽고 움츠러들게 됩니다. 우리처럼 여기 주민이 아닌 이방인들은 이런 날씨가 오면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해집니다. 마감이 정해진 체류 시간을 두고 사는 것은 좋은 점도 있고 스트레스가 되는 점도 있습니다.
좋은 점은 역시 좀더 계획적이 된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떠날 날짜를 헤아리고 살다보니 끝물로 갈수록 부담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일상을 늘 이벤트처럼 살아가는 게 저의 대체적인 삶의 모습인데 제주에서의 생활은 어쨌든 저에게는 신선한 깨달음이자 하나의 전환점으로 삼아도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많은 끈들이 제 몸을 이리저리 사방으로 끌거나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점도 있지만 학교정리하고 나니 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와진 것은 사실입니다. 대학 때 한 친구가 저를 보고 '너는 황량한 사막에 가도 살아남을꺼다' 그렇게 말하곤 했지만 이방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저의 오래된 습관입니다.
오늘의 목표는 완이의 단것탐닉을 종일 끊어보는 것입니다. 저몰래 요플레 몇 개 꺼내먹다 들켜 혼이 났지만 단것만 탐닉하는 식습관이 점점 식사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맞습니다. 마치 중독치료하는 것처럼, 단 것들로부터 자유로와져도 얼마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은지를 인정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비가 차겁게 뿌려대니 어디갈 수도 없어 서귀포 대규모 농장 속 농가에 머물고 있는 대학동기에게 놀러갔습니다. 무려 17만평이나 되는 대형 감귤밭이 장관입니다. 한라산 봉우리가 지척으로 보이는 풍경도 대형 걸개그림을 벽처럼 둘러 걸어놓은 듯 합니다.
여기 농장주도 대학 과선배라고 하는데 지체장애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명문대학에서 박사까지 했지만 교단이 아닌 부모님이 물려주신 감귤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역시 미국 유학 중에 만난 여성분이 지금의 와이프인데 교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대학강의도 나가면서 감귤밭 일할 때는 농촌아낙네 차림 그 자체입니다.
제주 도착 첫날 인사를 나누었었는데 다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7만 평 중에 2-3천 평만 우리 아이들 시설로 활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규모 감귤밭 가운데 우리 아이들 시설이라... 상상만으로도 기분은 좋습니다. 아 나는 왜 이런 밭도 없을까? 제 팔자란 그리 복이 넘치는 케이스는 아니지요... ㅋ
그런 묘한 인연들이 제주도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요? 집터도 너무 아름답고 동떨어져 있는데다 집이 이쁜데도 막 쓰기 좋은 이 펜션건물 주인도 대학선배입니다. 이 펜션은 제가 제주도 단기임대 사이트에서 직접 선택했던 장소였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인연들로 구성된 갑작스런 인맥들이 마치 제주도가 저를 불러대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버액션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제주도에서 하고싶은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서예가이자 시인이며 다양한 직업을 거쳤기도 하지만 세계 구석구석 안 돌아다닌 데가 없는 감귤농장의 상주 빈객인 대학동기도 제주도만큼 좋은 데가 없다고 맞장구칩니다. 제주도에서도 이것저것 행사에서 이 친구를 불러주니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머물지않고 흘러다니며 살고있는, 재주가 너무 넘쳐 한 자리에 멈춰 설 수가 없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뉴스N제주][시화전]수국시인 정영심, 제주경찰청서 아홉 번째 전시 개막 - https://youtu.be/LdL-2EYOed4
완이를 위해 쇠고기를 사가지고 오면서 이걸 시발점으로 제대로된 식사에 매번 동참하길 기대해봅니다. 완이덕에 모두 간만의 쇠고기 구이파티가 되었네요. 물론 완이도 다른 때에 비해 많이 먹었죠. 물론 저녁먹기 전, 사과도 먹고 있었는데... 사과먹다 쇠고기 한 점 씹어대다가, 다시 사과먹고, 그러다가 된장찌개 뒤적이다가, 아이고 정말 그 놈의 충동성이 잡히는 날은 언제나 될까요?
첫댓글 오늘 제주도 전역이 같은 날씨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