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이의 우편번호 1984. 7. 24
우연한 아침 식사의 기억
어떤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치 어제 일처럼. 1984년 여름, 울산역의 그 새벽 풍경이 그렇다. 젊음의 무모함으로 시작한 여행길에서 만난 낯선 이의 다정함은 41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켠에 따스하게 자리하고 있다.
기차에서 내리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그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생생하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지만, 배고픔은 더 절실했다. 학생이라는 건 늘 배고픈 존재니까. 몰골은 말이 아니었겠지. 밤새 기차에서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한 채 도착한 낯선 도시. 우리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아저씨는 갑자기 나타났다. 점퍼 차림의 그 사람.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던 시선이 지금도 기억난다. 처음엔 경계했지만, 그 눈빛에는 위협이 아닌 무언가 다른 것이 담겨 있었다. 나이가 들어 알게 되었지만, 사람의 진심은 말보다 눈빛에 더 많이 담긴다.
"멀리서 온 것 같은데, 학생들 식사는 했나? 해장국 먹으러 가자."
단 한 마디였다. 그 시절엔 그런 게 가능했다. 낯선 이가 건네는 호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시대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그저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작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는 말 그대로 '게걸스러웠다'. 배고픈 학생들에게 따뜻한 한 끼는 그 무엇보다 값진 선물이었다. 해장국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며, 우리는 별 말도 나누지 않았다. 가끔 그는 고향이 어디냐, 무슨 공부를 하느냐 정도의 질문을 던졌을 뿐.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많은 말 대신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것.
식사를 마치고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인사를 하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러나 잊히지 않는 만남.
요즘은 이런 만남이 가능할까 생각해본다. 의심과 경계가 일상이 된 시대에, 낯선 이의 선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행지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의 식사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일 대학생이 있을까? 아마도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리뷰를 검색하거나, 위치를 공유하느라 바쁠 것이다.
그 시절의 순수함이 그립다. 말없이도 통하던 마음, 별다른 조건 없이 건네던 도움의 손길. 인심이란 게 그런 거였다. 그저 '사람'이기에 베푸는 따뜻함. 나이가 들수록 그 가치를 더 깊이 느낀다.
간혹 오래된 기차역을 지날 때면, 그 아침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름 모를 그 아저씨는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아마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은 친절은 내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때로는 짧은 만남이 평생의 추억이 되는 법이니까.
젊은 시절 여행길에서 배운 것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보여준 따스한 마음이었다. 그 정신만은 우리도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낯선 이에게 건네는 작은 친절이, 누군가의 평생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아침 식사의 기억을 품고, 가끔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