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4.日. 아쉬운 대로 이번 주 미세먼지수치만 같아도 걸을 수 있는데
05월14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오복상 아빠입니다.
조금 전에 우리 동네 밤길을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저번에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에서 이야기했던 우리 동네 외곽의 외진 모서리와 잠실 유수지가 만나는 횡단보도 오른편에 있는 맥도날드를 천천히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밤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도 차가 연방 들어 다니면서 불금의 드라이브 스루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알게 된 사실인데 5월20일, 내일 하루 동안이지요.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 플랫폼을 맥드라이브로 명칭을 바꾼 기념으로 차량 한 대당 불고기 버거 하나씩을 쏜다고 하니 스님, 행자님, 보살님, 거사님들께서도 근처 맥드라이브로 가서 간단한 것을 주문하고 불고기 버거 하나씩 선물을 받으십시오. 제법 너른 주차장이 있는 가운데 밝게 불이 켜진 일층과 이층 홀에도 사람들이 꽤 많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내부가 환하게 비치는 창가로 앉아있는 초등학생정도의 어린이가 쟁반에 뭔가 들고 오는 엄마를 쳐다보고 있는 광경은 금요일 저녁에 가족들이 나들이 겸 외식을 하는 정겨운 장면이라 어쩌면 저 어린아이에게는 어느 봄날 금요일 밤의 햄버거 맛은 평생 남을 행복한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런 풍경을 가만 지켜보고 있자니 나도 예전의 추억들이 가슴속에 몽실몽실 피어올랐습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어제 아침에는 뉴욕의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특별한 날이나 용무가 있으면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지만 딸아이는 한 주에 한 번 정도는 꼭 집으로 전화를 해줍니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돌아가면서 딸아이 전화를 받다보면 사오십 분은 금세 지나가 버리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이 많기도 합니다. 지금도 전화통화를 할 때면 나는 딸아이를 ‘오복상’ 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불러왔던 별명인데 아들 녀석은 쿤이라고 했고, 딸아이는 오복상이라고 불렀습니다. 한자로는 吾福常이라고 쓰고 ‘항상 복이 가득한 나’ 라는 뜻입니다. 원래 글을 짓고, 문장을 만들고, 이름 지어주기를 좋아해서 우리 아이들의 이름이나 별명은 내가 다 만들어주었답니다. 어제 아침에는 다른 때보다 긴 통화를 했는데, 딸아이 대학친구 독서모임인 북클럽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지요. 아빠가 추천을 해주었던 중국계 미국 여류작가 에이미 탄Amy Tan의 조이 럭 클럽The Joy Luck Club도 읽었고, 요즘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름다운 해변을 배경으로 한 쉽게 들어나지 않은 어두운 인간관계를 추적한 Big little lies를 읽고 있는 중이랍니다.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모임을 가지면서 회원들끼리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데, 지난달에는 걸밧인가를 읽었다고 했습니다. 좋아하던 일을 즐겁게 하다 보니 어느새 사업으로 성공시킨 서른두 살인 여자 사장님의 창업성공기인 셈인데, 딸아이가 책 제목을 평소 대화처럼 빨리 말하고 지나가버려 정확하게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앞선 책 제목인 Big little lies도 다시 한 번 부탁을 해서 알아들었는데, 또 그러자니 아빠의 체면도 있고 해서 그냥 알아들은 척을 했습니다. 언젠가 딸아이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미국 도시 이야기를 하다가 ‘씨아를’과 ‘악스훠~드’ 라는 지명을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다시 발음해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북부 워싱턴 주州의 ‘시애틀’과 남부 미시시피 주州의 ‘옥스퍼드’ 였는데, 한국식 귀로는 못 알아듣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는 악스훠~드 라는 지명을 가진 도시가 여러 군데 있습니다. 이십 몇 년 전 내 아이들에게 영어 알파벳과 R과 L, 그리고 V와 B의 발음 차이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Zero와 Milk등의 발음을 정성들여가면서 가르치던 기억이 생생한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꾸만 어리숙해지는 아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제부터는 가족이 모두 한데 모여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유학을 떠난 해가 2004년도부터이니 아이들과 떨어져서 산지가 벌써 14년이나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아이들을 구태여 한국으로 오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미국으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은 해봅니다. 영어공부를 다시 열심히 시작해서 말하고 읽고 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다면 영어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미국생활도 조금씩 꿈을 꾸어 봅니다.
내 아이들이 어렸던 1990년대 초반에는 아직 패스트 푸드점인 맥도날드나 버거킹이나 KFC는 보기 쉽지 않았고, 오히려 피자전문점인 스바로Sbarro와 쌍갈래 빨강머리 앤 그림의 Wendy’s 햄버거와 별모양 로고의 하디스 햄버거가 더 많이 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이 Wendy’s 햄버거를 가장 좋아해서 집에서 가까운 코엑스점이나 조계사를 다녀오면서는 종로에 있는 영풍문고점을 즐겨 들어 다녔습니다. 조금 전 맥드라이브 이층 창가에서 엄마가 쟁반에 수북하게 담아오는 것을 쳐다보고 있던 아이처럼 내 아이들도 그렇게 아빠를 쳐다보고 있던 검슬검슬한 눈동자가 생각났습니다. 몇 년 전 동북부 뉴욕 주州 시러큐스에 갔을 적에도 어쩌다보니 첫 번째 식사를 대학 안에 있는 샌드위치 전문점인 서브웨이Subway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날은 딸아이 졸업을 축하해주러 뉴멕시코에서 시러큐스까지 비행기로 날아온 홈스테이 엄마와 자리를 함께 했는데 처음 맛본 미국식 샌드위치의 날 것인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뉴욕 시에서 차로 네 시간가량 걸리는 뉴욕 주州 중부에 있는 대학도시인 시러큐스는 딸아이 졸업식이 아니라면 가볼 일이 없었을 도시였겠지만 참 매력 있는 도시였습니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고 매우 추워서 5월에도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고 아침에는 영상1도까지 떨어지는 차가운 날씨이지만 미국 초기에 형성된 유럽풍의 한가한 도시 분위기가 좋아보였습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주택들은 대략 100m에 한 채씩 뚝뚝 떨어져있었고, 주택들 주변 숲 사이로는 노루나 사슴보다 훨씬 거대한 짐승들이 가족 단위로 뛰어다녔습니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두어 시간씩 호텔 주변의 주택들을 구경하면서 걸어 다녔는데 차만 돌아다니지 사람은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란 집과 집 사이의 넓은 공간만큼이나 비어있어서 한적하고 들어차지 않아 고요했습니다. 애당초 주차난이라는 게 없고, 버려진 차가 숲 한켠에 녹슬어 방치되어있어도 그대로 풍경이 될 만큼 여백이 많은 공간을 철이 든 뒤로는 거의 본 적이 없어서 더 좋아보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