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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 선생 강연 원고--초등학교 한자교육을 반대한다
(주)
아래 글은 송현 선생이 3월 25일 한글학회 강당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반대 토론회에서 강연한 원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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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빙의족 연구(1)
--애들을 잡고 교육을 낭비하는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반대한다.
송현(시인. 초등학교 한자교육반대 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 한글문화원장. 한글독립군본부 수도사단장)
{저서}
한글기계화개론. 한글을 기계로 옳게 쓰기. 한글기계화운동, 한글자형학 외
1.한자빙의족이란?
사람이 많이 타고 있는 지하철 안에서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외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의 몰상식한 전도(?)행위는 동기가 아무리 순수하다 해도 공공장소에서 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제 딴에는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누가 “조용히 하세요”라고 한마디 하면 마치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더 큰소리로 고함을 치고 대든다. 이런 사람을 기독교인이라고 불러야 할까? 기독교 광신도라고 불러야 할까? 예수빙의족이라고 불러야 할까?
“한글전용론자들은 좌파들이다.”
“한글전용론자들은 빨갱이들이다.”
“한자를 쓰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문맹률이 세계최고이다.”
“초등학교에 한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큰일 난다.”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 도가 지나친 사람은 한자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한자 귀신에 들린 사람들이지 싶다. 한자 귀신이 들지 않고서야 위와 같은 상식 이하의 주장을 밤중에 하는 잠꼬대도 아니고 백주에 공공장소나 공공지면에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주장하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 겉으로 멀쩡한 사람이 그딴 주장을 잠꼬대로 한다고 해도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닌데, 백주에 공공장소나 공공지면에서 한다는 것은 그 개인의 앞날을 생각해서 대단히 심각한 정신적 장애이지 싶다.
앞으로 나는 그들을 지칭할 때 그들의 편의를 위해서 “한자 귀신 들린 이”라고 쉬운 말로 하지 않고 굳이 “한자빙의족”이라고 유식하게 부르기로 한다. 이런 사람은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외치는 자들과 같은 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분야의 정신적 장애가 심하면 정신과의원에 가서 전문가와 상담을 하고 증세에 맞는 치료를 받고 완치가 될 때까지 꾸준히 의사가 주는 약도 먹고 병원에 오라고 하는 날 빠지지 않고 가야 한다.
그런데 한자빙의족에게 듣는 약이 없지 싶다! 이는 마치 지하철에서 전도(?)하는 기독교 광신도 내지 예수빙의족에게 약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미 그 사람의 의식에는 살아생전에 단 한명이라도 예수를 영접하게 하여 구원을 받게 일깨우는 것이 자신의 전도적 사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 중에는 순교도(?) 할 각오가 되어 있는 이도 있지 싶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게 무슨 약이 들을까?
신약이 아무리 개발되고, 한방비법이 아무리 용하다 해도 아직 한자빙의족을 고치는 신약과 비법은 없고, 앞으로도 좀처럼 개발되지 않을 것 같다. 자고로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귀신이 들리면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되거나 귀신을 쫒는 굿을 하였다.
귀신을 쫒는 사람을 퇴마사라고 하는데, 아무리 용한 퇴마사라도 한자빙의족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지 싶다. 왜냐면 예수빙의족이 자기 딴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그딴 짓을 하는 바람에 누구도 말릴 방법이 없다. 왜곡된 구원의 확신은 누구도 막지 못하고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자빙의족들도 한자를 초등학교 애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고 진정한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자기 확신을 하고 있다.
그 동안 나는 지하철 안에서 예수빙의족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저 멀쩡하게 생긴 사람을 누가 저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아마 저이에게 성경을 처음 가르칠 때 잘못 가르친 것이 가장 큰 원이지 싶다. 이렇게 보면 저이에게 성경을 잘못 가르친 목사나 집사나 전도사나 엉터리 서적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기독교는 이제라도 크게 반성하고 참회의 통성기도를 주일마다 해야 한다.
그 동안 나는 공공지면이나 공공장소에서 한자빙의족을 볼 때도 역시 가슴이 아팠다. 저 멀쩡하게 생긴 사람을 누가 저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아마 저이에게 한자를 처음 가르칠 때 잘못 가르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 싶다. 이렇게 보면 저이에게 한자를 잘못 가르친 학교 선생이나 교수나 한자에 대해서 왜곡 설명한 엉터리 서적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한문학과 교수들이나 한문 전문가들은 크게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
그 동안 한자빙의족들이 해온 주장들이 너무나 상식을 벗어나 있고 너무나 황당하여 일일이 대꾸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 그렇지만 “초등학교에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자빙의족들이 최근에 벌이는 수면 위의 움직임과 수면 아래의 움직임이 하수상하여 이를 방치하거나 묵과하면 아무 죄도 없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괴롭히고, 학교교육을 혼란스럽게 하고, 학부모에게 과중한 교육비 부담을 줄 것 등이 우려되어 외면할 수가 없는 지경에 온 것 같다.
평소에 나는 간이 작고 겁이 많아 남들과 좀처럼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유언으로 “네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남과 싸우지 말고 엔간하면 다 용서해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엔간한 것으로는 안 싸우고 내가 포기하고 만다. 내가 젊은 날에 한글기계화의 아버지 공병우 박사와 함께 박정희 유신독재 정권의 잘못된 한글기계화정책과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운 것은 정부에서 “공병우식과 김동훈식의 단점만 모은 졸작”이라는 엉터리 글자판을 표준자판으로 정해서 관권으로 강행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이딴 글을 쓰는 것 때문에 한자빙의족들과 본의 아니게 싸우는 꼴이 되지 않을까 매우 걱정된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그들과 싸울 시간도 없고, 싸울 생각도 없고, 이 일로는 싸울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싸움은 이미 끝난 싸움이란 사실이다. 이 싸움은 한자빙의족이 무슨 짓을 해도 무슨 난동을 부려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한글전용자들이 아무 대꾸를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한자빙의족이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다. 이 싸움은 갑오경장 무렵에 끝냈어야 할 싸움이다.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 어쩌고 할 때 끝난 싸움이다!
지금은 집집마다 사무실마다 컴퓨터가 있고 초등학생도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세상이다. 이런 최첨단 세상에 한자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어렵고 불편한 한자를 버리지 못해서 할 수 없이 간자를 만들어 쓰면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한글을 두고도 굳이 한자를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개가 웃고 소가 웃을 일이지 싶다.
예수빙의족들이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예수 믿으면 천국가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건전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들은 체도 안한다. 한자빙의족들이 아무리 “한글전용론자들은 좌파니 빨갱이”니 “한국은 문맹률이 세계 최고”라고 떠들어도 건전한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들은 체도 안하고 눈하나 깜짝 안 한다.
2.얼핏 들으면 일리 있어 보이지만 따져보면 황당한 주장들
1970년에 발간한 외솔 최 현배 선생의 유고집 “한글만 쓰기의 주장”에는 한자빙의족들의 주장을 낱낱이 아주 설득력 있게 반박하고 한글만 써야 한다는 주장을 논리 정연하게 풀어 밝히고 있다. 아마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 한권만 읽어도 한자빙의족들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지를 벼락맞은듯이 깨달을 것이다.
한자빙의족들의 주장을 얼핏 들으면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 그런지 순진한 사람들 중에는 한자빙의족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지하철에서 예수빙의족들이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하는 소리에 겁을 먹고 가까운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더러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런 치졸한 전도(?)도 약간의 효과는 있기에 요즘도 지하철에서 예수빙의족을 가끔 볼 수 있지 싶다.
나는 이 글에서 한자빙의족들의 황당한 주장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1)“우리의 고전들이 다 한문자로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정신문화 유산을 제대로 알려면 한문자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핏 들으면 아주 그럴싸하다. 그런데 이 주장은 따져보면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백보 양보해서 한자빙의족들의 주장대로 상용한자 1800여자를 다 왼다고 치다. 그래도 한문으로 된 우리 고전을 단 한 페이지도 해석할 수 없다. 아니 단 한 줄도 해석할 수 없다. 다음은 삼국유사 “고조선편” 원문 일부이다.
魏書云.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高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周以封箕子爲朝鮮. 漢分置三郡. 謂玄菟(艸+兎], 樂浪, 帶方.[北帶方.] 通典亦同此說.[漢書則眞臨樂玄四郡. 今云三郡, 名又不同. 何耶.]
한자빙의족 주장대로 상용한자 1800자를 다 알면 위의 자료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 아니, 덤으로 1000자를 더 주겠다. 2800자를 알면 위의 자료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까? 아니, 덤으로 또 1000자를 더 주겠다. 3800자를 알면 위의 자료를 해석할 수 있을까? 아니, 덤으로 강희자전을 주겠다. 강희자전을 보면서 해석하라고 하면 해석할 수 있을까? 결론을 말하면 옥편을 준다고 해도 한자 몇천자 알아서는 위의 자료를 한 페이지는커녕 단 한 줄도 해석할 수 없다!
옥편을 줘도 삼국유사 원문만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팔만대장경판 단 한 장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한 장이 아니라 단 한 줄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하다 못해 마을 뒷산 묘지에 있는 비문도 단 한 줄도 해석할 수 없다!
가령 영어 사전을 준다고 해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헤밍웨이의 소설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한자의 글자를 몇 천자 안다고 한문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영어 단어를 몇 천개 안다고 영어 문장을 해석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나는 우리의 중요한 고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상용한자 1800자는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자빙의족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인은 누구나 성경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성경 원문을 적은 히브리어를 공부해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주장인가? 이게 제 정신 박힌 사람의 온당한 주장인가? 히브리어는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신학자나 목사들이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일반 교인들은 히브리어 전문가가 한글로 번역한 한글성경을 읽으면 된다. 예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 말을 굳이 히브리어로 적고 이해해야 제대로 아는 것일까? 한글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면 예수님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런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을 하는 한자빙의족들 때문에 이딴 글을 쓰는 내 자신이 정말 한심하고 슬프다. 아마 우리 어머니가 이 일을 알면 다음과 같이 나를 나무라지 싶다.
“야, 이 자슥아, 비싼 밥 먹고 그리도 할 일이 없나?”
2)“우리 말의 70-80%가 한문자로 되어 있다. 그래서 한문자로 적어야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도 얼핏 들으면 아주 그럴싸하다. 그런데 이 주장도 따져보면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가)명사의 경우
帽子(모자): “사모의 아들”이 모자인가? 그리고 사모는 또 뭔가?
電氣(전기): “번개의 기운”이 전기인가? 그리고 기운은 또 뭔가?
大學(대학): “큰 배울” 대학인가?
나)학술용어의 경우
實存主義(실존주의): 實자와 存자와 主자와 義자를 알면 실존주의가 무엇인지 알수 있을까?
相對性理論(상대성이론): 相자와對자와 性성자와 理자와 論자를 알면 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 알수 있을까?
一次方程式(일차방정식): 一자와 次자와 方자와 程자와 式자만 알면 일차방정식을 알 수 있을까?
3)“어린이는 기억력도 좋고 학습능력도 뛰어나기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
이 주장도 얼핏 들으면 아주 그럴싸하다. 그런데 이 주장도 따져보면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어리석은 주장이다. 물론 꼭 필요한 것이라면 초등학교 때가 아니라 유치원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자는 굳이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야 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현행 중등학교 때부터 가르쳐도 충분하다!
효도의 예를 들어보자. 어릴 때부터 제 애비 에미에게 효도하는 것을 똑바로 가르쳐야 한다. 왜냐면 자기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은 사람 도리의 기본이고 근본이기 때문이다.. 제 부모에게 효도할 줄 모르고 남의 부모에게 잘한다면 이런 놈을 뭐라고 해야 할까? 제 나라 말과 글을 똑 바로 배우고 사랑할 줄 아는 것이 먼저이다. 모국어란 말뜻이 뭔가? 제나라 말과 글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 사랑의 첫걸음이다.
2010년 02/03일자 환타임스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한글문화연대(대표 고경희)는 '공공언어 바로 세우기' 운동의 하나로 전국 246개 지방자치단체 누리집의 구호(슬로건)를 조사해 우리말 사랑꾼 · 해침꾼 구호를 1일 뽑았다. 그 중 외국어를 이용해 구호를 만든 지방자치단체는 총 108군데로, 지방자치단체가 선호하는 말은 'First, Pride, Let's go, Yes'로 나타났고 'Amenity(쾌적한)'와 같이 어려운 영어 단어를 이용해 구호를 만든 곳도 있었다.
▲ 한글문화연대가 뽑은 우리말 해침꾼 구호
서울시 광진구의 'Great GwangJin', 경기도 고양시의 'Let's Goyang'
, 경기도 평택시의 'Super Pyeongtaek', 부산시 북구의 'Hu Nature Bukgu'
, 경북 상주시의 'Just+Sangju', 전라북도 익산군의 'Amazing Iksan'
, 충남 공주시의 'Hi-touch Gogngju'가 우리말 해침꾼 구호로 뽑혔다.
이 구호들은 우리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외국어로만 만들어져 지역의 특색이나 지향점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없어 선정하게 됐다고 문화연대는 밝혔다....
사랑꾼 구호로 뽑힌 것은
서울시 금천구의 (눈부신 금천), 서울시 중구의 (서울의 중심 중구), 강릉시의 (솔향 강릉) , 부산시 동래구의 (얼쑤 동래), 경기도 의정부시의 (의정부 행복 특별시), 전북 순창군의 (장하다 순창), 전북 전주시의 (한바탕 전주)세계를 비빈다."
위의 기사를 보니 속에 천불이 안날 수가 없다. 제 나라 말과 글을 사랑하는 것은 애국의 첫걸음일 뿐 아니라 국민된 도리이고 의무이기도 하다. 위의 기사에서 보듯이 자기나라 말을 관공서에서 저렇게 천대를 하는 놈들이 쌔고 쌨다는 것은 이 나라에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는 것이다. 저런 얼빠진 놈들이 나중에 어느 때가 되면 제 애비 애미도 서양놈들로 바꾸지 않을지 모르겠다. 세상이 정말 말세가 된 것 같다. 어쩌다 이 나라 꼴이 이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제 나라 말과 글을 사랑하고 갈고 닦아야 할 판인데 도리어 앞장서서 제 나라 말과 글을 이렇게 천대하다니!
이에 열거한 것처럼 우리말 천대하는 것은 제 아비 제 어미에게 불효하고 남의 부모에게 잘하는 것과 같은 한심한 노릇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을 과연 올바른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3)“한자는 남의 글자가 아니요, 우리 글자이라” 라고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외솔 최현배 선생은 앞서 소개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참 괴변의 이론이다. 남의 것이라도 오래 쓰기만 하면 내 것이라고. 이런 이론은 꼭 남의 돈을 빌려 쓰고 떼 먹기에 알맞은 이론이니, 어떤 비양심적 채무자들이 크게 환영할 만할 말이라 하겠다. ... 돈의 채무는 돌려받을 사람이 있지마는, 문화는 갚음을 받고자 기다리는 주체가 없음은 사실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 빌려 쓴 문화가 다른 이로부터 빌어온 것만은 틀림없지 않으냐? 세상에 ”지나문화권“ ”한문화권“이란 말의 개념은 , 지나 문화를 받아 소화는 다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중국으로부터 퍼지고 번진 문화란 뜻이다.
이웃집 외밭에서 ,지키는 주인이 없음을 기화로 ,참외 열 개를 따다 먹고 소화가 되어, 이미 그 몸의 일부를 “이뤘다” 하더라도, 또 그 일을 알지 못한 주인이 찾아와 그 반환을 청구하지 않더라도, 그가 남의 밭에서 참외를 따다먹은 사실만은 확실하지 않겠는가?
세계 언어사를 상고해 보면, 돌려주기를 독촉하는 채권자가 나타나지 않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온 국민이 남의 글과 말을 마음껏 빌어쓰기에 여념이 없이 지내다가 ,끝장에는 제 스스로의 겨레조차 그 관대한 채권자에게 다 넘겨주고, 자멸해 버린 실례가 한둘이 아니다. 만약 세종 대왕 같은 겨레의식의 고조자 ,통일자의 거룩한 업적--한글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주 말끔히 소중화인으로 중국의 한문화의 용광로 속에 녹아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15세기의 최만리 뿐 아니라 ,현재의 최 만리도 한가지로 한문화의 용광로로 즐겨서 뛰어드는 불나비와 다음 없다.“ (위의 책 97쪽)
제 죽을 줄 모르고 어리석게 한문화의 용광로로 즐겨 뛰어드는 사람을 외솔 최 현배 선생은
“현재 최만리”라 명명했고, 나는 한자빙의족이라고 다르게 명명했지만 같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www.songhyun.com)
첫댓글 잘 읽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