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베트남 전역에서 150만이 넘는 군대가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탐색 및 격파, 수색 및 매복, 중요시설 경계 등의 작전이 무수히 전개되고 있었으나 전선이 없는 게릴라전이어서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를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통계에 의한 분석이었다. 당시 미 국방성 및 기타 행정부서에서 정책결정의 기준이 되었던 체계분석 기법을 사용하여 적 병력, 적 손실, 아군 작전횟수, 항공기 쇼티, 무력화된 적 기지, 정부 통제 지역, 도로 통제, 농촌 인구추세, 평정비율 등의 수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항목에 대하여 예하부대로부터 월별로 보고를 받아 수량분석을 하였다.
이 통계분석은 주먹구구식 판단보다는 차원이 다른 어느 정도의 사실에 근거한 것이어서 적합한 분야도 있으나 이것이 전쟁의 본질을 파악하고 전반적인 전쟁지도의 기초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적 기지가 무력화되었다는 지역이 작전종료 다음날 다시 베트콩들이 점령하여 활동하고 있었고, 어느 도로가 작전을 전개하여 개통되었다 하더라도 베트콩이 다음날이라도 병력을 투입하여 얼마든지 차단이 가능한 것이다. 몇 배로 과장되고 왜곡된 적 사살 보고를 집계하여 놓고(과장보고에 가장 우수한 군대는 남베트남군이었다) 만족하고 있을 때 적은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였던 것이다.
미 국방성 체계분석국에서는 이 통계를 책으로 발간하였으며 맥나마라(McNamara) 국방장관도 장시간 이 분석보고를 받은 후에 1967년 6월 병력증파를 승인하였다. 전후의 통계에 의하면 북베트남정규군, 베트콩은 최고병력 수준이 약 100만 명이었는데 1965년부터 1973년까지의 총사상자 수는 250만으로 집계되었다. 적은 최고병력 수준의 2.5배의 손실을 입은 셈이다.
이 분석은 전반적인 전쟁지도에 영향을 미친 것 외에도 군 내부에 상호불신을 심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휘관들은 재임기간의 전과 대 피해비율이 타 부대와 비교되고 그것은 지휘성패, 지휘고과, 보직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고 있었다.
필연적으로 전과는 과장되기 마련이고 이를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가 생겨나고 이를 본 병사들이 지휘관을 불신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인 것이다.
첫댓글 북베트남은어땟을까요 미제앞잡이들때려눕힌회수과장할거같은 느낌드는데...
전장에서 전과의 과장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미국과 남베트남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북베트남에선 수치나 통계가 그렇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지만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통계수치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죠.
암시장에서 사온무기로 전과보고한 어느낙지가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