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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민씨 등 연예인과 경로잔치 공연 |
제1회 대한민국 시인대회 사회자 문태성 시인
▲ 자원봉사라기보다는 문화운동이다. 나는 시인으로서 대한민국의 시를 널리 알리고 싶다. 앞에 언급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시를 쓴 것도 그런 문화운동의 일환이었다. 우리나라에 등단시인이 만 명쯤 되는데, 전국 단위의 1천명 이상 시인이 모이는 대규모 시인대회를 열어본 역사가 없었다. 나는 독일에 괴테가 대표적 시인이라면 우리나라는 강원도 영월에 묘소가 있는 김삿갓(김병연)이 그러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분은 해학과 풍자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아주 아름다운 서정시도 많이 남기신 분이다. 그래서 나는 김삿갓이 돌아가신 지 200주년 되는 2007년에 제 10회 김삿갓 문화제와 맞물려서 전국에 계신 천 명의 시인들을 영월에 모아보자고 한국문인협회 김년균 이사장에게 건의했다. 그래서 강원도와 영월군의 재정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제1회 대한민국 시인대회’를 열 수 있었다. 나는 이 일을 기획하고 사무총장으로 일을 도왔다. 당시 원로시인이신 황금찬 선생께서 그 자리에 모인 1,200명이 넘는 시인들을 보고 “내가 구십 평생 이렇게 많은 시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을 본 적이 없다”며 감격스러워하신 기억이 난다. - 문화운동과 더불어 통일운동을 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였나?▲ 통일은 도적같이 다가온다. 우리나라에게 통일은 분명한 과업이자 숙원이 분명한데 그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적다.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나는 통일에 대해 주변 4국과 남북한을 연구한 학위논문을 3년 동안 썼고, 그 논문을 재편집해 <한국 통일과 주변 4국의 겉과 속>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당시 그 책이 교보문고에서 8개월 동안 ‘통일’관련 분야 판매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지금은 내가 소장으로 있는 한국평화미래연구소에서 통일한국을 위하여 평화연구, 평화통일정책을 연구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고,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저서가 있는데 몇 권이며 어떤 책인지? ▲ 출간된 것만 세어보면 5권이다. 그 중에는 1999년에 낸 첫 시집 <동강 어라연>, 2004년에 낸 <국민 앞에 무릎을 꿇자>라는 시사칼럼, 2007년에 낸 <한국통일과 주변 4국의 겉과 속>이라는 인문서가 있다. 그 외 2권은 석·박사학위 논문이다. 출간을 앞둔 책으로는 두 번째 시집인 <검정 고무신>이 있다. 이는 아까 말한 대로 잊혀져가는 우리나라 토속문화를 주제로 쓴 향토시 100편 정도를 묶은 것으로 독특한 시모음집이다. 세 번째 시집은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을 모아 펴낼 계획이다. 그 외에도 저술을 끝내 놓은 원고들과 집필을 마치고 2012년초 출간할 넌픽션 ‘구리 아들’등이 있다. -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도 많이 하는지? ▲ 소통을 위해 많이 노력한다. 대개 다른 사람들은 보통 누군가 나의 팔로워(43,000명)가 되면 자동으로 그 사람을 팔로우를 하는 어플리케이션의 도움을 받지만,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찾아보고 팔로잉을 한다. 트위터(@tsmoon1)로 하고 있는 일은 우선 시인으로서 나의 시를 ‘행복한 시’라는 주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있고, 사회를 맑게 하기 위한 개인적인 아이디어와 소재, 이슈들을 트윗하는 편이다. 트위터 만큼 자주 하지는 않지만, 페이스북에도 약 5,000 여 명의 친구가 있다. 스마트폰에서 카카오톡으로도 대화를 나눈다. - 개인적으로 힘든 역경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난 대학교 이상을 22년 간이나 다녔다. 대학을 두 곳 졸업하고(동국대 5년, 고려대 6년) 고려대 대학원을 나온 뒤(3년), 건국대 대학원까지 마치자니(8년) 세월이 걸렸다. 오래 걸린 이유는 직접 돈을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상경할 때는 수중에 단돈 9천 원이 전부였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제적당했다가 재입학하기를 여러 번 했다. 그 때는 나 말고도 그런 학생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학교를 다닌 것이 내가 신앙을 키운 계기가 되기도 했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기간이 되기도 했다. 내가 선택한 전공도 돈이 되는 과목은 아니었다. “통일 연구하다가는 밥 굶는다.”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그 동안 인내하며 공부하였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 나를 도와준 분들이 참 많았다. 그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지금도 서울 시내 웬만한 곳에 갈 때는 자전거를 이용한다. 오늘 여기(신촌 세브란스병원) 올 때에도 집(응암동)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 2007년에는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낙동강, 한강변을 5일 동안 주파한 기록이 있고 목포-광주(영산강)와 군산-대전(금강)도 자전거를 탔다. 4대강 전체를 자전거를 탄 셈이다. 올 가을에도 자전거 일주를 계획하고 있는데 휴전선 쪽을 갈까 생각하고 있고, 자전거로 서울에서 평양도 가보고 싶다. - 고향에 대한 애착이 큰 것 같은데 강원도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대학 등록금을 내려면 쌀 50가마가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그건 대농이나 부잣집의 자제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대학등록금은 무척 비쌌는데 나는 형제자매가 많았고, 아버지는 막노동팔이와 고물상을 하시는 분이었다. 그런 어려운 시절에 내가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건 강원도민들이 지역의 인재를 키우고자 힘을 모아 서울에 마련해 준 장학사인 ‘강원학사’ 덕분이었다. 숙식과 학업 여건 문제를 해결해 주었는데, 지금까지 36년 간 3천5백여 명의 인재들이 강원학사에서 배출되었다. 이를 모델 삼아 서울 여기저기에 경기장학관, 전라남도 남도학숙, 전라북도 서울장학숙, 충북학사, 탐라영재관 등 각 도마다 장학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강원도는 사회엘리트를 길러내는 데 선구적인 일을 하였고, 나 역시 그 노력에 혜택을 입은 이들 중 한 사람으로 늘 고향 강원도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보은을 생각한다. 특히 수능을 군단위 현지에서 보도록 2003년 수능시험에 응시하는 등 투쟁에 앞장서 현지 고사장을 유치하였고, 영월고 후배이자 강원학사 후배인 고 전재규 남극대원을 추모하기 위해 추진위원장을 맡아 동상 건립, 관련법 제정과 국립묘지 안장의 결실을 맺는 등의 열정을 쏟았다.
-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대한의 남아로 어찌 소망이 없겠는가. 대장부로서 국가를 바르게 경영하고 싶다. 우리사회가 선진한국이 되려면 정치부터 깨끗해야 하는데 지금은 지나치게 가진 자 위주의 정치가 되고 있다. 나는 이를 ‘귀족정치’라고 정의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돈을 많이 벌어서 뭔가 명예를 얻고 싶을 때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많다.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나의 소망은 돈이 없는 사람도 정치가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치 풍토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곧 ‘서민정치’다. 서민의 자녀가 돈을 안 쓰고도 공천을 받을 수 있고 국회의원에 당선 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와야 하고 곧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선진화된 조국을 위한 제2의 건국, 그런 사회를 함께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 준다면?▲ ‘도전 중인 사람’이 ‘도전’을 섣불리 정의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마음에 품은 일은 다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 열심히 기도하고 행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했다. 물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도 있으니 항상 노력하고 있다. 나는 기도를 할 때 날짜와 제목을 쭉 적어 놓는데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 그것이 어느 사이에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니 마음 먹은 일이 당장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으면 그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고 현실로 다가온다. 명저자 ‘나폴레온 힐’의 비법처럼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면 결국엔 반드시 이루어진다.
- 기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의 인생의 결과물을 들춰 보이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감이 있다. 동계 올림픽을 이야기하기에도 나 말고 기여한 분들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 정말 의외다. 10라운드 인생 중에 이제 6라운드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성경 창세기 말씀, “충만하라. 정복하라.”처럼 ‘진실된 봉사자’로 사회에 봉사하고 싶고, 노년에 은퇴를 하게 되면 서당문을 나선 마지막 세대로서 한문과 한자를 무료로 가르쳐 주는 ‘훈장님’을 하고 싶은 바램이 있다.
<평창! 여기로 오라!> 문태성 하늘이 내린 살아 숨 쉬는 땅 기다려온 강원도 평창! 맑은 산 높은 곳에서부터 눈부신 빛이 있었어라 백설화(白雪花)가 뿌려졌어라. 전후 마지막 남은 분단국 허리 잘린 한반도 백두대간 질끈 동여맨 반세기의 처절한 아픔 이제 평창이 그 한을 풀어가네. 여기서부터 평화의 깃발! 지축을 흔들어라 천상(天上)으로 솟구쳐라. 통일의 꿈! 용광로에 붓고 휘저어라 강대국의 패권다툼! 인종과 피부는 다르지만 세계인이 하나 되어 지구를 순백(純白)으로 물들여라 만방에 찬란하게 빛나라 평화의 언덕에서 만난 사도(使徒)들. 우리 손꼽아 기다린 그날 우주는 하나 되네 흥겨워 한민족이 뭉치네 조국은 어깨동무로 하나 되어 세계를 향해 평화를 앞장 서 부르짖네 어느새 대한민국은 뜨겁게 달아올라 세계 속에 평화의 보금자리를 틀어가네 평화의 향연(饗宴)을 맞이하네 오~ 예스 평창 이리로 오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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