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불봉 연봉
명산을 명산이게 한 첫째 요인은 그 놓임새에 있다. 천을 훨씬 넘어서는 고산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강원도의 어느 큰 산덩어리 속에 묻혀 있으며, 드러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세상에
널리 알려질 리도 없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활짝 사방이 트인 평야 한가운데 솟은 산은 실제
높이야 대단치도 않으면서 멀리 수십리 밖에서도 조석으로 우러르게 되는 것이니, 인근 동리
에서 그 산그늘을 그리워하다 뿐인가, 신화가 깃들고 전설이 감싸이게 되면서 그 이름이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이다.
――― 김장호, 『韓國名山記』(계룡산)에서
▶ 산행일시 : 2013년 4월 30일(화), 맑음, 바람 약간 붐
▶ 산행인원 : 6명(오기산악회 화요산행)
▶ 산행시간 : 6시간 37분(휴식과 중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9.0㎞
▶ 교 통 편 : 이계하 님 카니발로 가고 옴
▶ 시간별 구간
07 : 37 - 천호대교 동단 굴다리 주차장 출발
09 : 58 - 동학사 입구 주차장, 산행시작
10 : 36 - 동학사(東鶴寺)
11 : 27 - 상원암(上元庵), 남매탑
12 : 02 - 삼불봉(三佛峰, △777.1m)
14 : 10 - 관음봉(觀音峰, 766m)
14 : 56 - 연천봉(連天峰, 743m)
16 : 06 - 갑사(甲寺)
16 : 35 - 갑사주차장, 산행종료
1. 갑사 오리숲길
▶ 상원암, 남매탑, 삼불봉(三佛峰, △777.1m)
나는 동학사 경내에 있다는 문화재를 보지 않겠으니 문화재관람료 2,000원을 내지 않아도 되
지 않느냐고 건장한 청년인 검표원과 실랑이 해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이상한 사
람 취급 받는다. 위정자들이나 실컷 욕하면서 일주문을 지난다. 일주문 현판의 중후한 글씨와
계곡의 신록을 보니 상한 기분이 다소 누그러진다. 일주문 현판은 여초 김응현(如初, 金應顯)
선생의 글씨이고, 동학사 계곡의 신록은 계룡8경의 하나이다.
신록 또한 갓 핀 꽃이나 다름없다. 눈부시다. 혹시 놓친 경치 있을까 가다가 연신 뒤돌아 다시
훑어본다. 동학사 절집 100m 전에 오른쪽 계곡으로 남매탑, 삼불봉을 오른다. 문화재관람료
낸 값으로 동학사 절집을 들린다. 절집 마당에서 바로 건너편 천왕봉과 눈 돌려 쌀개봉 연봉
을 우러르기 좋아서다.
동학사(東鶴寺)라는 절 이름의 유래에 여러 설이 있다.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
로 동학사라고 했다 하고,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의 조종인 정몽주를 이 절에 제향했으므
로 동학사라고도 하며, ‘진인출어동방(眞人出於東方)’이라 하여「東」자를 따고 ‘사판국청학
귀소형(寺版局靑鶴歸巢形)’이라 하여「鶴」자를 따서 동학사라 명명했다는 설도 있다.
상원암 남매탑 가는 골짜기 길은 박석 깔아 놓은 돌길이다. 이런 돌길은 연천봉 넘어 갑사로
내리는 길까지도 이어진다. 흙 밟기가 어렵다. 돌길 옆으로 중소와폭 포말 이는 계류 소리가
제법 낭랑하다. 등로는 계류가 밭기 전에 왼쪽 사면으로 급히 질러 오른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 두 분이 쉬고 있다. 계룡산 등산안내도에 심우정사(尋牛精舍)로 오르는 길이 빠진 연유
를 물었더니, 그 등로가 험하여 사고가 몇 번 나는 바람에 폐쇄하였다고 한다.
그들과 잠시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도 목초(木樵) 스님을 알고 있었다. 목초 스님은 서
울대 농대를 나와 서울에서 의사를 하다 39세에 입산하여 계룡산이 좋아 심우정사라는 암자
를 짓고 스님으로 수도하고 있었다. 심우정사는 삼불봉 오르내리는 길목에 있어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쉼터였다. 등산객들은 심우정사 마당 장의자에서 산을 오를 때는 입산주를, 산을
내려갈 때는 하산주를 목초 스님과 나누었다. 스님은 허구한 날 종일 취해 있었다.
무슨 스님이 등산객들과 만날 술 마시고 취해 있느냐며 조계종 총무원에 진정이 잦았다. 총무
원에서 감사를 나왔다. 감사 나온 스님은 목초 스님에게 남의 이목을 생각하여 제발 술 좀 작
작 드시라고 하나마나한 권고나 할뿐이었다. 스님은 정이 많았고 글씨 또한 알아주는 명필이
었다고 한다. 1997년 어느 날이었던가. 신문에서 스님의 짤막한 입적 소식을 알았다. 그때 참
헛헛했다.
2. 벚꽃, 끝물이다
3. 벚꽃
4. 동학사 가는 길에서 본 천왕봉(605m)
5. 동학사 계곡의 신록, 계룡8경 중 제5경이다
6. 동학사 절집에서 바라본 천왕봉(605m)
7. 남매탑 가는 돌길 옆의 골짜기
8. 남매탑, 보물이다. 정식 명칭은 청량사지 5층 석탑과 7층 석탑이다
8-1. 상원암 묘봉(?)
남매탑. 주변은 쉼터다. 단체로 온 등산객들이 많다. 남매탑이 실은 각각 보물 1284호와 1285
호인 청량사지 5층 석탑과 7층 석탑이라 하니 다시 찬찬히 들여다본다. 남매탑 주변 풍경은
‘계룡사 상원암 禪園 및 산신재단 모연문(募緣文)’에서 새긴 대로다. 그 일부다.
계룡산 남매탑(男妹塔) 청량(淸凉)한 바람
상원암(上元庵) 묘봉(妙峰)은 오늘도 의연(依然)한데
고승의 염불(念佛)소리에
돌거북 무리지어 산을 올랐다.
까마귀 모두 모여 저리 울어도
그들의 정진(精進)을 막지 못했다.
상원암 벽에 써놓은 ‘一步不離還到家’ 글귀 아래 해석을 덧붙였으나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
겠다. ‘한 발짝도 떼지 않아 홀연히 제 집에 와있도다.’
남매탑에서 한 피치 오르면 주릉에 다다르고 다시 한 피치를 돌길과 철계단 오르면 삼불봉 정
상이다. 조망은 사방팔방 다 트였다. 삼각점은 ╋자 방위표시만 보인다.
삼불봉 정상에 서면 계룡산의 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장호는 『韓國名山記』(계룡산)에
서 “이 산의 주맥은 삼불봉에서 관음봉을 거쳐 주봉에 이르는 척박한 칼날 능선이니, 이 능선
의 중심축을 자연능선, 그리고 거기서 주봉까지를 흔히 쌀개능선이라고들 부르지만, 옛날에
는 이 전체 바위능선길을 두루 쌀개능선이라 일렀다”고 한다.
삼불봉 다음의 암봉들은 올라갈 수 없다. 오른쪽 사면의 데크잔도로 돌고 돌아 넘는다. 능선
에 부는 바람은 상당히 차다. 자연성릉으로 내리기 직전 남쪽의 엷은 지능선 공터로 내려 점
심밥 먹는다. 바람 막힌 명당이다. 수십 길 암벽을 병풍으로 두르고 진달래 꽃그늘이 드리운
공터다. 반찬은 천황봉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푸짐하다.
9. 삼불봉에서 조망
10. 삼불봉에서 조망, 가운데 능선 끝으로 장군봉이 보인다
11. 삼불봉에서 관음봉, 연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12. 천황봉
13. 앞이 삼불봉
14. 삼불봉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15. 삼불봉 앞의 무명봉
16. 자연성릉
17. 동학사 계곡 주변
18. 쌀개능선과 천황봉
19. 산자락 절은 갑사다
20. 삼불봉 연봉
▶ 관음봉(觀音峰, 766m), 갑사(甲寺)
자연성릉 난간에 바짝 다가가 낭떠러지 내려다보아 오금저리며 암릉을 간다. 관음봉은 데크
계단을 허벅지 뻑적지근하게 올라야 한다. 숨 가쁘면 뒤돌아서 장쾌한 삼불봉 연봉 바라보아
숨 고른다. 관음봉. 혹자는 관음봉을 계룡산의 주봉이라고 한다. 이 산봉우리의 놓임새가 그
러하다. 좌로는 삼불봉, 우로는 천황봉, 뒤에는 연천봉, 앞은 무제(無際)로 트였다.
관음봉 정상에서 곧장 연천봉으로 가는 능선 길은 없다. 연천봉은 데크계단 내리고 ╋자 갈림
길 안부인 관음봉고개에서 오른쪽으로 산허리 돌아간다. 직진하여 천황봉 가는 길은 아직도
막아놓았다. 정용훈 님은 차를 회수하기 위하여, 정하 님은 초행이어서, 이광한 님은 잠자코
거리를 셈하여보더니 갑사보다 짧아 동학사 계곡으로 내린다.
나머지 셋은 연천봉 들려 갑사로 가기로 한다. 문필봉 가는 길도 없다. 아쉽다. 그저 산허리
돈다. 야트막한 안부는 ├자 갈림길인 연천봉고개다. 연천봉은 200m 떨어져 있다. 당연히 들
리러 간다. 헬기장 지나고, 등운암 갈림길 지나 연천봉이다. 이 연천봉에서의 낙조는 계룡8경
중 하나다. 조망 좋다. 낙조 아니래도 문필봉과 삼불봉, 천황봉 연릉, 향적산 바라보기가 아주
그만이다.
연천봉고개에서 만난 스님의 말씀 그대로다. 갑사 가는 길은 연천봉고개에서 내리는 수밖에
없다. 오지산행을 흉내하여 연천봉 아래 지능선을 더듬고 싶지만 일행의 만류로 참는다. 연천
봉고개에서 골짜기 따라 갑사로 내리는 길도 가파른 돌길이다. 무릎이 성하지 않을 것 같아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이라고 푸념한다.
계류 만나고서야 등로가 완만해지고 곱디고운 빛깔의 신록 드리워 춘흥을 느낀다. 계류는 용
문폭포 길 계류와 만나고부터 작심한 듯 호호탕탕 흐른다. 갑사. 절집을 샅샅이 구경한다. 그
러고 보니 석가탄신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봄날, 연등이 산사의 이질적인 장식이다. 갑사
오리숲길을 간다. 황매화 꽃길을 간다. 봄날을 간다.
21. 오른쪽 나지막한 산릉에 솟은 산봉우리는 향적산(香積山, 574m)이다
22. 문필봉에 가린 끝이 연천봉이고 그 아래 등운암이 보인다
25. 문필봉과 삼불봉(왼쪽 끝)
26. 천황봉과 쌀개능선
27. 향적산(香積山, 574m)
28. 황매화
29. 금낭화(Dicentra spectabilis), 현호색과의 여러해살이풀. 갑사 절집에서
30. 갑사 오리숲길
31. 갑사 오리숲길에서 바라본 삼불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