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노 나쓰오의
도쿄섬

충격적인 이야기
나오키 상, 에도가와 란포 상, 추리작가 협회 상, 이즈미 교카 상, 시바타 렌자부로 상 등 대중 문학상을 휩쓸며 미야베 미유키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일본 여성 작가로 꼽히는 기리노 나쓰오의 최신 화제작 [도쿄 섬]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제44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기리노 나쓰오가 실제 일본을 뒤흔들었던 ‘아나타한 섬 사건’을 모티브로 쓴 소설이다. 30여명의 남자들과 단 한 명의 여자가 무인도에 표류되면서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기리노 나쓰오는 특유의 시니컬한 문체로 독특하게 완성시켰다.
아나타한 섬 사건이란?
1944년, 마리아나 제도의 아나타한 섬 근처에서 어선 두 척이 침몰한다. 간신히 섬으로 헤엄쳐 목숨을 건진 31명의 남자들과 섬에 거주하던 일본인 남녀의 동거는 이렇게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섬에 대한 공습이 사라지자 단 한 명의 여자를 둘러싼 남자들의 전쟁이 막을 올린다. 그녀와 관련된 남자들의 사망 사고가 잇따랐고, 결국 7년이 지나 미군에 의해 모두가 구조될 때 32명의 남자들 중 살아남은 남자들은 20명뿐이었다.
기리노 나쓰오가 선사하는 유머러스한 인류 문화학 보고서!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더욱 흥미진진한 무인도 이야기
[도쿄 섬]은 ‘아나타한 섬의 여왕벌’이라고 불리며 세간을 들끓게 했던 실존 일본 여성 히가 가즈코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마리아나 제도의 아나타한 섬에 고립되어 32명의 남성과 함께 7년간 거주하며 살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이들이 구조된 후 대대적인 보도가 이뤄지며 주목받았고, 가즈코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였다. 기리노 나쓰오는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이기적인 인간 군상들이 벌이는 애증과 애욕의 관계를 자신만의 문체로 그려냈다. 기리노 나쓰오 식의 인류 문화학 보고서라고 할 만한 이 책은, 출간 즉시 주목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32명의 젊은 남자들이 단 한 명의 여자와 함께 섬에 갇혔다!
어딘지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무인도, 과연 이곳은 낙원인가, 지옥인가?
도대체 어디쯤인지도 알 수 없는 태평양의 무인도에 각종 사고로 30여명의 남자들이 표류하게 된다. 그중 여자라고는 40대의 아줌마인 기요코 단 한 명뿐. 아무리 기다려 봐도 도와줄 배는 오지 않고, 섬에 표류한 일본 사람들은 이 무인도에 ‘도쿄 섬’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를 쓴다. 서바이벌 본능을 깨워 뱀도 쥐도 잡아먹으며 날로 통통해지는 기요코와 달리 남편 다카시는 식중독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만 한다. 젊은 남자들은 섬의 단 한 명의 여자, 기요코의 뒤를 쫓아다니기 시작하고, 기요코는 남자들의 관심 속에서 여왕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태어난 이래 가장 화려한 애욕의 시기를 경험하게 되는데…….
[로빈슨 크루소]? [15소년 표류기]?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하면 곤란한 기리노 나쓰오식 시니컬 표류기
무인도 표류기라고 해서 [도쿄 섬]에서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를 연상하면 곤란하다. 로빈슨 크루소가 보여 주는 창의력이나, 근면성, 노력하는 마음가짐 혹은 15명의 소년들이 보여 주는 용기나 우정, 믿음 등은 이곳 ‘도쿄 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도쿄 섬 주민들은 모두가 이기적이고, 욕구에 충실한 존재들이다. 기본적인 문화를 영위하기에 모든 것이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이 닥치자 너무나 쉽게 타인을 버리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모습은 우리들 자신에 무척이나 가깝다. 기리노 나쓰오는 자신의 주인공들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작중 인물에 대한 경멸감과 동시에 동질감이 들도록 만든다.
아나타한 섬 사건의 전말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마리아나 제도의 아나타한 섬 근처에서 어선 두 척이 미군 전투기에 공격을 받아 침몰한다. 간신히 섬으로 헤엄쳐 목숨을 건진 군인과 승무원들 31명은 당시 70명의 원주민과 야자 재배를 감독하던 농원 기술자와 그의 부하직원의 처 히가 가즈코가 살고 있던 아나타한 섬에 남게 된다. 본래 부부가 아닌 기술자와 가즈코는 가즈코의 남편이 행방불명된 이후로 자연스레 부부 행세를 하고 있었다.
남자들이 상륙한 지 1년 정도가 지나는 사이, 섬의 원주민들은 미군이 데려 가거나 탈출하여 언젠가부터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고, 뉴스를 알 수 없었던 이들은 종전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섬에 잔류한다. 공습이 사라지자 점차 생활은 평안해졌고, 섬의 단 한 명의 여자 가즈코를 둘러싼 남자들의 전쟁이 막을 올린다. 가즈코와 관련된 남자들이 헤엄을 치다 실종되거나, 식중독으로 사망하거나, 나무에궼 떨어져 죽거나, 총에 맞아 죽는 등 사고가 잇따랐고, 가즈코는 동시에 3명의 남편을 거느리는 생활을 겪기도 한다. 결국 이런 나날은 7년이 지나 미군의 설득에 응한 남자들이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마무리 된다.
32명의 남자들 중 이때까지 살아남은 남자들은 20명뿐이었다. 1952년, 일본에서는 아나타한 섬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관심을 끈다. 남자들 모두를 제치고 매스컴은 가즈코에게만 관심을 가지며 그녀를 ‘여왕벌’, ‘아나타한 섬의 독부’ 등으로 부르며 매도했고, 그녀를 주연으로 만든 영화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히가 가즈코는 관련 영화나 연극 등에 출연하다가 1958년 고향 오키나와로 돌아가 결혼했고, 1974년 뇌종양으로 52세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