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이 윤 자
한창 젊은 나이에 우리 부부는 등산을 많이 다녔다. 사십 중반이나 오십 초반쯤인 것 싶다. 오늘은 가까운 가야산으로 출발하였다. 배낭에는 물, 도시락, 간식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기호식품 등 먹을 것과 등산에 필요한 장비 등 꽤 가방은 무겁지만 상쾌하게 출발을 하였다. 충남 가야산은 편마암으로 구성되고 위치는 예산 덕산면, 서산 운산면, 해미면, 3개면에 걸쳐있다. 덕산 면의 첫 입구는 주차장 근처에 대원군 아버지의 남연군묘가 있다. 남연군묘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로 높은 언덕에 반구형 봉분이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앞에 비석과 석물이 서 있다.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것을 1846년 이곳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쓴 이유는 아버지의 묘를 도굴하려던 사건이 있은 이후 강경하게 양이들을 배척하고 천주교를 탄압하였다고 한다.
가야산의 높이는 678m로 석문봉, 옥양봉, 등으로 올라가는 등산 코스가 있다.
오늘은 봄 5월 꽃 철쭉이 한창인 옥양봉 숲길 등산 코스를 선택하였다. 헉헉거리며 한참 올라오니 숲 속에는 새소리와 철쭉,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붉게 물들어 있다. 청명한 날씨에 남편과 등산하기 딱 알맞은 날씨이다. 우리는 쉬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커피와 과일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애들에 대한 희망, 사회에 대한 걱정, 주변 사람들에 대한 소식 등 이야기를 공유했다. 깊은 산속은 아늑하고 새들의 노랫소리만 들릴 뿐 조용한 분위기로 오래간만에 부부의 정을 나눌 수 있었다. 갑자기 남편의 큰 한숨 소리가 땅이 꺼질 듯 들려온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남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아! 이럴 때 사랑하는 애인과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심한 듯 무슨 절규인 듯 한탄 같다.
이건 또 무슨 상황! 그리고 내게 계면 적은 웃음으로 픽 웃고 있다.
더 기다렸다.
아무 이야기가 없는 남편에게 위로를 했다. 한 번 만나보세요. 다시 만나면 그 여자 분도 얼마나 반갑겠어요. 속으로 ‘흥 만나봐! 찌글찌글 하지, 별 수들 없을 걸 첫사랑은 만나는 것이 아니래 이 바보 양반아’ 착한 척하며 만나 환상을 깨 주어야지, 심술을 부린다. 아내의 넓은 마음에 미안한지. ‘만나긴!’ 한다. 나도 애인이 있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약을 올려주었다. 남편의 평온하던 표정은 왠지 삐져 있다. 모른 척 앞장서서 올라가고 모른 척 뒤를 따라간다. 저만큼 앞서가던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옥양 폭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야산도 수억 년 흐르는 자취가 장엄하다. 가파르게, 평평하게, 산 위에서 졸졸 흐른 물이 계곡을 이루고, 암석, 토양, 우거진 나무들이 얼굴을 마주 하고 속삭인다.
능선에는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에 저항력이 강한 암석들은 토양 층위로 저 마다의 모양을 뽐내고 있다. 능선을 오르며 내리며 크고 작은 바위들, 모두 등산의 묘미를 느낀다. 등산은 올라갈 때도 어렵지만 내려올 때도 미끄러워 급경사를 조심해야 한다.
옥양 폭포에 도착하여 나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아유! 힘들어’하며 물병을 꺼내 남편에게 건넸다. 우리를 보고 있던 어느 아저씨가 남편을 갑자기 나무란다. ‘여보 키도 크고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어떻게 약한 여자에게 가방을 지우고 등산을 다니느냐! 보아하니 아주머니는 체격도 작은 분이구만, 하고 남편을 나무란다.’
속으로 쌤통이지만 겉으로는 점잖은 체면에 두 사람의 귀추를 바라보고 있었다.
뜻 밖에 남편은 웃으며 ‘가방 이리 줘, 내가 멜게’ 갑자기 너그러운 남편이 되었다. 그리고 아저씨와 악수를 한다.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
모여 있는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그 아저씨도 멋있고 이 아저씨도 멋있다고 여자들은 호호댄다. 커피를 한 잔 마시라고 따라준다. 남편은 나에게 먼저 먹으라고 건넨다. 집에 돌아와 나는 ‘남편에게 당신 오늘 멋있던 대요’ 말하니 ‘시끄러워 물이나 한 잔 줘’ 다시 낯설지 않은 남편의 모습니다.
가야산의 또 한 자락에 있는 개심사(開心寺), '마음을 씻고 가는 절'이라는 뜻‘이 나의 인내심을 다독다독한다.
산은 계절마다의 매력을 갖고 있다. 겨울의 가야산은 서해 편서풍의 기류를 타고 형성돼 이루는 구름바다를 이루어 설경을 더 아름답게 한다. 눈 덮인 숲은 동화 속이다. 눈 속의 요정이 금방 나를 맞아 줄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눈 속에서 살고 싶다.
지금은 현실뿐이다. 평소에는 남에게 뒤지지 않지만 미끄러워 실력 발휘할 수 없다. 차츰 일행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만, 남편은 젊고 예쁜 부인들과 특유의 유머로 유쾌하게 웃으며 어느새 보이지도 않는다. 나는 미끄러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사이 시간이 많이 흘렸다. 마누라 존재는 까마득히 잊고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남편의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웬만한 등산을 해 본 사람은 충남의 산은 방향을 찾을 수는 있다. 경상도의 산은 옆길 하나만 잘 못 들어도 타군이고 타도가 되므로 길을 잘 알고 조심해야 한다.
나는 아래를 향하여 하산하는데 눈이 오고 오후가 되어 등산객이 없다. 핸드폰도 없고 주머니에 돈도 없어 매우 난감하였다. 산속은 빨리 해가 떨어지기 때문에 좀 일찍 하산을 해야 된다. 그럭저럭 목적지로 하산을 하니 일행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엉엉 울 수 도 없어 두리번거리며 혹시나 하며 사람을 찾던 중 부부 등산객을 만나 사정 이야기를 하여 전화를 빌려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집에 도착하여 사워를 끝내고 휴식 중 이시다.
‘차비가 없어요.’ 생각보다 빨리 와서 고분고분 나를 모신다.
어디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 화를 내기도 싫어 그 날 조용히 보냈다.
그 후 나는 비상금 주머니를 차기 시작했다. 전화도 꼭 챙기고, 나는 내가 나를 챙기고, 아끼고, 자존감을 갖고 살기로 했다.
‘40대~50대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합하여 삶을 창출하는 시기이고, 70대에는 '해마다', 80대에는 '달마다', 90대에는 '날마다' 늙는다고 원로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저서에서 읽었다.
지난날 허송세월하고 현명하게 살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 텐데 무척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우리의 동상이몽은 관념의 차이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노력이필요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행운을 주며 기적을 만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