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이수곤 교수가 서울시 지반정보 관리시스템에서 누락됐다고 주장하는 ‘땅속지도’ 이미지들. 이 이미지들은 1996년부터 1998년에 걸쳐 진행한 '서울의 지반 정보 관리 시스템 개발 연구 종합보고서' 에 포함됐으나, 사이트 구축 콘텐츠에서 빠졌다는 것.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그림 8.1 Vector 데이터로 구축된 지질도', '그림 8.11 서울 전체의 파쇄분포도', '그림 8.5 서울 전체의 지질구조도(Geo-Seoul CD-ROM에서 격자 data로 나타남)', '그림 8.8 서울 전체의 암반선 분포도' / '서울의 지반 정보 관리 시스템 개발 연구 종합보고서(1998)']
[경제산업팀 이동훈-임재랑-이아리따] = 아스팔트가 내려앉고, 건물이 기울고... 최근 서울 잠실이 ‘지반공포’에 휩싸였다. 이 가운데 ‘서울 땅속지도’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어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16년 전에 제작됐지만 건축행정에는 제대로 쓰이지 않는 서울 땅속지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본다. 오늘날의 지반 대란과 땅속지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서울시 땅속 지도, 1998년 용역 연구 사업으로 제작
서울 땅속지도는 16년 전에 이미 제작됐다. 일명 ‘땅속지도’로 불리는 '서울의 지반 정보 관리 시스템 개발 연구 종합보고서(1998)'는 지질의 특징과 암반 분포, 지하수 위치 등 서울 땅 밑 상황을 분석해 종합적으로 담아낸 자료다. 안전한 도시 계획을 위해 땅 밑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다른 국가들에겐 1980년대부터 진행해온 상식적인 절차다. 이 지도는 서울 곳곳의 토목공사 때 뚫었던 7800여 개 시추공 작업 결과를 분석해 만들었다.
서울시는 1996년부터 1998년에 걸쳐 이 작업을 용역 연구로 진행했다. 영국 요크(York) 지역의 ‘땅속지도’를 제작하는 연구로 석사 학위를 딴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이수곤 교수가 프로젝트 책임자였다.
[석사학위 논문 ‘Engineering geological mapping in Gildersome and Morley, South West of Leeds을 들고 있는 이 교수 / 이하 사진=위키트리]
이 보고서는 시추 조사 결과를 종합한 제7장과 이를 기반으로 서울시 땅 속을 분석한 제8장으로 구성됐다.
이 교수는 “핵심은 당연히 8장이다. 흙의 깊이, 암반선 분포도, 지하 수위 분포도, 암반 파쇄 분포도 등 총 네 가지를 분석해 종합적으로 서울의 땅 밑을 보여준 자료다. 이게 땅 속 지도”라며 보고서를 이 교수는 직접 보여줬다. 바로 이 내용이 서울시 지반 관리시스템에선 빠져있다.
그는 “영국 요크 지역에도 지금 잠실과 매우 유사한 싱크홀이 발생했다. 나는 당시 시추 조사를 통해 암반 상태와 지하수 분포, 지질 상태 등을 담은 땅 속 지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2억 원 들여 만든 땅속지도, 행정엔 무용지물
서울시는 2억 원을 들여 분석한 서울 땅 밑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을까. 특히 모래층 20m에, 연일 싱크홀 공포까지 휩싸인 송파구의 사정은 어떨까. 조사에 따르면 활용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2일 송파구청 건축과 잠실동 건축 승인 담당자는 “국내에서 건축 허가 시 지질정보시스템은 활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담당자는 “건축 허가 시 해당 지반, 지질 등을 고려해 건축 가능성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며 “법적으로 검토해야 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건축은 설계사가 설계를 할 때 감안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어떤 땅에 어떤 공법을 할지 정하는 것은 우리가 확인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건축 허가처는 해당 지반 사항이나 서울시 전체 지질을 고려하는 등 총괄 평가를 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역시 같은 입장이다. ‘법에 그런 규정이 없어서...’라는 궁색한 답변이다. 지금 잠실 주민들이 느끼는 공포감에 비하면 비현실적이고, 또 석연찮은 답변이다.
현재 서울시가 제공하는 '서울시 지반정보 관리시스템'은 지난 16년 간 일반인을 포함해 모두 40여만 건 조회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이교수가 "핵심"이라고 말하는 8장의 내용은 다루고 있지 않다. 시추정보를 종합한 7장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시스템을 활용한 건축 허가 절차, 법적 시스템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건축 행정이 관련 법률과 규정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고려할 때, 서울시가 ‘땅속지도’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히딩크가 필요하다" 외국 전문가들 들어와야
[이수곤 교수 "정부와 온 국민이 함께하는 재난안전처 마련 시급" / 위키트리]
‘우면산 산사태’, ‘세월호 사건’, ‘판교 환풍기 사고’, ‘잠실 싱크홀’ 등 연이어 발생하는 사고에 어느 때보다 안전불감증에 대한 반성이 촉구되고 있다.
세계 제일의 국가 안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홍콩, 이탈리아 등도 여러 명의 사상자가 나온 재해를 겪은 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홍콩의 ‘GEO(Geotecnical Control Office)’, 이탈리아 ‘국가방재청 통제본부’가 그 예다. 이들은 전국의 ‘땅속지도’를 만들어 각 지역마다 고려해야 할 건축 공법을 분석한다. 이는 건축 허가를 받는 데 필수요건이다.
이 교수는 “국민재난처, 안전처도 축구에서 히딩크가 그랫던 것처럼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 들어와야 한다"며 “땅속지도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우리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관피아 때문에 시스템이 변화할 수 없는 것"이라며 “세계에서 전문가들이 들어와야 일부 전문가들과 공무원들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국민재난처가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중요하다”며 “(잠실 싱크홀 등 사고가 발생한) 지금이 오히려 기회다. 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행정 편의주의나 관피아 같은 장벽을 넘어서 안전을 위한 행정이 이뤄져야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