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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및 자료실 스크랩 정읍사
청운 추천 0 조회 140 11.02.06 14: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원문 :

하 노피곰 도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를 드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졈그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쉽게 풀기 :

달하 노피곰 도다샤 (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으시어)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멀리멀리 비춰 주소서.)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장터에 가 계십니까. )
어긔야 즌 데를 드데욜셰라 (진 데를 밟을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느 곳에나 놓으십시오).
어긔야 내 가논 데 졈그랄셰라 (우리 임 가시는데 저물까 두렵습니다 )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어느 행상인의 처 (<악학궤범>권 5 무고)
연대 : 미상(백제로 추정)

▶종류 : 3장 6구의 시가
▶작자 : 어느 행상인의 처

▶주제 : 행상 나간 남편의 안전을 기원
▶의의 : 현전하는 유일한 백제의 가요. 국문으로 표기된 가장 오래된 노래.

            시조 형식의 원형을 가진 노래

* 제1장-'달'에 남편의 안녕을 청원
* 제2장-남편에 대한 야행침해(夜行侵害) 염려
* 제3장-남편의 무사 귀가를 기원


▶시적 화자의 태도 :

이 작품과 유사한 주제를 가진 작품으로 기한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부역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노래인 백제의 부전가요 '선운산가'와 박제상의 아내가 치술령에 오라가 남편을 기다리면서 부른 노래인 신라의 부전가요 '치술령곡'을 들 수 있다.

특히, '치술령곡'은 정읍사와 마찬가지로 배경 설화에 망부석(望夫石)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모티프는 김소월의 '초혼(招魂)에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가사가 전하는 오직 하나뿐인 백제의 노래이자,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장 오래된 시가이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惡地)에 보면 '정읍(井邑)'은 전주의 속현(屬縣)이었는데, 그 고을 사람이 행상을 떠나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그 아내가 산 위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리면서 이 노래를 불렀으며, 그 등점산에는 이 망부석이 남아 있다고 하다.

이 노래의 해석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위에 전하는 배경 설화의 문맥에서 보면,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순박한 마음을 달에 의탁하여 나타낸 노래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작품은 고려 조선조를 통하여 속악(俗樂)의 하나로 오랫동안 궁중에서 연주되었으며, 특히 조선조에 들어서서는 섣달 그믐달, 궁중 나례(儺禮)뒤에 처용무(處容舞), 봉황음(鳳凰吟), 삼진작(三眞勺), 북전(北殿)등과 함께 연주된 노래로 후렴구를 가지고 있다.

후렴구를 제외하면 모두 여섯줄이 되고, 이를 다시 두 줄씩 합쳐 보면 네 토막 석 줄 형식이 되어 시조의 형식과 닮아 있다.

이런 형식은 우리 노래의 기본형의 하나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연대 미상의 백제 가요. 백제 때부터 구전하여 민간에 전승된 현전하는 유일한 가요이다.

그러나 가사 본문 중 '全져재'의 '全'자를 전주(全州)의 지명으로 보고, 백제 시대의 완산주(完山州)를 신라 경덕왕 115년에 전주로 개명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동국여지승람 권 32 전주부), 경덕왕 때 이후 내지는 고려 시대 구백제지방의 민요로 보기도 한다.

또 한편에서는 <고려사> 권71 악지(樂志) 2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의 <정읍사>는 <고려사> 편찬자들의 잘못으로 돌리고, 같은 책의 고려속악조에 무고정재(舞鼓呈才) 때 <정읍사>를 가창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하여 <무고>와 <정읍사>를 동일시하고, <무고>를 만든 사람인 이혼(李混)의 생존 연대와 관련하여 <정읍사>를 고려 충렬왕 때 전후에 개성 주변에서 작사, 작곡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악지와 <고려사>의 악지가 다 같이 재래 속악에 대한 편찬 방식이 같은 점으로 보더라도, 삼국속악조에 백제 속악으로 기록된 <정읍사>는 고려 속악과 구별하여 기록한 것으로 편찬자의 잘못이 아니라 백제 속악으로 인정함이 옳을 것이다.

또 고려속악정재조에 신라때 원효(元曉)가 지은 <무애>가 들어있는 것처럼 고려속악조에 들어 있다하여 모두가 고려시대의 가요로 볼 수는 없듯이, 무공정재때 <정읍사>를 불렀다하여 <정읍사>의 제작연대가 무고를 지은 이곤의 생존연대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는 재래속악, 곧 유전악(遺傳樂)인 <정읍사>를 소려속악정재 때 이곤이 지은 무고라는 악곡에 얹어 불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악학궤범>권 25 시용향악전재조(時用鄕樂呈才條)에 <동동>·<처용가>·<정과정> 등 고려가요와 함께 실려 전하고, <고려사> 악지 2삼국속악조에도 <정읍사>에 관한 기록이 있다.

<정읍사>는 삼국 속악의 하나로 전승되어 고려와 조선 시대를 통하여 무고의 무의(舞儀) 때 가창되었고, 특히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섣달 그믐날 밤에 궁중에서 마귀와 사신(邪神)을 쫓기 위하여 베풀던 의식인 나례( 禮) 후에 거행된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에서 <처용가> 등과 함께 연주되었다(악학궤범 권 5).

이와 같이 <악학궤범>에 채록되어 악장(樂章)의 하나로 정착하게 되었으나, 중종 때에 이르러 음란한 노래라 하여 궁중에서는 폐지되고 새로 만든 악장인 <오관산(五冠山)>으로 대용하였다(중종실록 13년 4월조).

형식은 전강(前腔)·후강(後腔)·과편(過篇)의 3연체(聯體)로 되어 있으며, 후렴을 뺀 기본 시행(詩行)만으로 본다면 3연 6구의 형식이 되고, 또 각 연의 음절수가 3음 또는 4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여 시조의 3장6구 형식의 근원을 <정읍사>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이 많다. 

각 연의 후렴을 보면 제 1·3연에 해당하는 전강과 과편에는 각 2구씩 되어 있으나, 제 2연에 해당하는 후강에는 '어긔야 어강됴리' 1구 뿐이고, 음악적인 악조인 소엽(小葉)에 해당하는 '아으 다롱디리'가 없다.

그리하여 후강이라는 악조명 다음에 '전(全)'자를 붙여 후강에는 소엽 '아으 다롱디리'가 없는 것이 온전하다는 뜻으로 후강전(後腔全)이라 표시하였다는 설은 있으나

아직은 어느 문헌에도 '후강전'이라는 악조명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후가에 소엽 '아으 다롱디리'가 있어야만 완전한 것이 된다.

특히 시가 형태면에서 보더라도 <정읍사>가 백제 가요로 인정되기는 하나, 오랜 세월 고려속요와 함께 불려 오는 동안 다분히 고려적인 성격으로 변모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바, 후렴을 지니는 모든 고려속요가 예외 없이 각 연마다 꼭같은 후렴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후렴이란 언제나 꼭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므로 고려 속악과 함께 가창된 <정읍사>도 각 연마다 동일한 후렴을 지녀야만 형태상으로도 온전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후강에서 소엽 '아으 다롱디리'는 구전되는 동안 탈락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전'자의 처리는 자동적으로 가사본문인 '져재' 앞에 놓여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용은 먼저 제 1연에서 행상을 나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무사안녕을 광명과 길경(吉慶)의 상징인 달에게 기원하는 간절한 발원으로부터 시작된다.

곧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기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는지 몰라 초조하고 안타까운 불안한 마음을 달에 의탁하여 노래하되,

단순한 서정의 표출이 아니라 광명한 달에게 남편의 안녕까지 도모해 주기를 바라는 고대인의 소박한 발원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제2연에서는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행방도 소식도 몰라 애태우며, 불안과 의념(疑念)에 사로잡히려는 자신의 마음을 붙들고자 '(혹시 지금쯤)전주 저자에나 가 계시는지요'라는 가정의 의문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희구하는 가냘픈 여심(女心)의 발로로써 시작된다.

이와 같이 자위적(自慰的)인 마음의 안정을 애써 도모해 보기도 하나 남편에 대한 불안과 초조는 더욱 걷잡을 수 없어 이윽고는 '어긔야 즌데를 드디욜셰라'하고 마음 속 깊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갈등을 실토하고 만다.

이러한 심리적 갈등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안과 의구심일 수밖에 없다.

제 2연의 어절 풀이에서 첫음절을 '져재' 또는 '全져재'로 보는 두 갈래의 학설이 양립되어 있으나,

'후강전(後腔全)'까지를 악조명으로 보고 가사 본문을 '져재'로만 보기에는 음악적인 또는 시가 형태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고,

또한 '全져재'로 보는 쪽에서도 종전에는 그 뜻을 '전주저자에'로만 해석하였으나

'온 저자에'라고 보는 새로운 견해도 있다.

'녀러신고요'의 해석은 그 본래의 뜻 또는 원형을 '녀러이신고요'로 풀이함이 일반적이나, '다녀신고요' 즉 '다니시는 가요'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또 한편에서는 '녀더신고요'의 변형으로 보아 '녀더시던고요→녀시던고요→가시던가요'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즌데'는 '진데', '진곳' 즉 '수렁물(진창물)이 고인 곳'으로 해석되어 이 말의 상징적인 뜻은 주색(酒色) 또는 화류항(花柳巷)을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

'드디욜셰라'는 '디디올세라' 곧 '다다면 어쩔까나'하는 근심 걱정이 쌓인 의구형으로 이루어져 표면상으로는 진데 곧 더러운 수렁물을 디디면 어쩌나 하는 표현이지만,

사실은 '(수렁과 같은) 주색에 빠지면 어쩌나(빠질까 두렵소이다그려)' 하는 속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사>악지에 "그 지아비가 밤에 다니다가 해를 범할까(저지를까) 두려워하여(恐其未夜行犯害) 수렁물의 더러움에 기탁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 바와 같이 어디까지나 직설적이 아닌 비유로써 지어진 노래이며, 또 '수렁물의 더러움에 기탁하여'라는 말이 바로 이 '즌 데를 드디욜셰라' 또는 '내가논데 졈그랄셰라'를 지적한 말인 듯하다.

'그 지아비가 밤에 다니다가 해를 범할까 두려워하여'라는 기록을 종전에는 '밤길을 다니다가 도둑의 침해나 입지 않을까 두려워하여'라고 풀이하여 피동적인 사실로 보려는 견해도 있으나 이는 마땅히 남편의 능동적인 행위로 보아야만 <고려사>의 기록과 가사의 내용이 일치하게 된다.

만약, '야행범해(夜行犯害)'를 도둑의 침해로 본다면 수렁의 더러움에 기탁한 상징적인 비유도 성립되기 어려우며 남편이 오래도록 돌아오니 않는 사실에 대한 의구심이 이유로써 성립되지 않는다.

행상인의 오랜 객지살이에서 염려되는 것은 주색잡기에 빠지는 일이니 남편의 범해는 이것을 가리킴이요,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구심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전체를 종교적 서원 형식의 노래로 보고, 제 2연도 남편에게 반문하는 동시에 대상인 달을 향하여 기원하는 것으로 보아 '즌곳을 디디지 말아지라', '행여나 디딜셰라'의 남편에 대한 의구는 달에게 '제발 즌 곳일란 디디지 않게 하여 주소서'하는 처절한 호소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즌데'를 인체 내의 국부를 상징하는 은어로 보고, '드디다'는 육축(六畜)의 교미(交尾)를 뜻하는 '드딘다'라는 방언과 상관시켜 해석하고자 하는 견해도 있다.

제 3연에서는 남편의 신변에 관한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의구심이 절정에 이르고 보니 행상을 해서 버는 돈도 재물도 아랑곳없이 한시바삐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어느 것이나(무엇이나) 다 놓아두고 한시바삐 집으로(나에게로) 돌아와 주소서'하고 절박한 하소연을 부르짖고는, 제 2구에서 다시 한숨을 돌이켜 '어긔야(이라다가 자칫 잘못하면) 내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 어두워질까(변할까) 두렵소이다그려(변하면 어쩔거나)' 하는 걱정과 자탄과 애원의 말로써 끝을 맺고 있다.

결연은 가장 이설이 많은 대목으로, 먼저 '어느이다'를 '어늬다'로 보고 '어느 곳에다가' 또는 '어디에나(어느 곳에나)'로 해석하는가 하면,

'어이다' 또는 '어쩌다(자칫하면)'로 보기도 하고, 또 '어느 누구에다' 혹은 '어느 것에다'로 해석하기도 하나 '어느 것이나 다(무엇이나 다)'로 보는 경향이 우세하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다'로 보는 중에서도 '어느 것'을 행상인의 짐이나 재물이 아닌 '남편의 불안스러운 일'인 동시에 아내인 작자 자신을 휘감고 있는 '어느 것', 곧 불안·의구·고뇌 등으로 보는 이설도 있다.

'노코시라'의 해석도 '(마음을)놓으시리라' 또는 '놓고 계신가요'로 보기도 하며 '놓으시라, 놓으십시오' 또는 '놓고 계셔지라(놓고 계셨으면 좋겠다, 놓고 계십시오)', 심지어는 '놀고 계신가요'로 보는 견해도 있는가 하면,

또 '놓고시라→노호시라→놓오시라→놓오지라→놓아지라→놓여지라'의 소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 대한 처절한 아내의 비원(悲願)이라고 생각한다면 '놓고 오시라'로 보는 것이 가장 순리적이다. 

'내 가논데'는 '내가 가는 곳(가는 길)', '나의 가는 길' 등으로 해석하면서도 <정읍사> 전편의 문맥으로 보아 '남편의 오는 길'이어야 할 것이 '내가 가는 길'로 된 점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부부일심동체설까지 나오게 되었으나 이 점을 해결하고자 한 풀이가 '내이 곧, 내 사람 가는 길'로 보는 견해이며 '내가 놀던 곳'이라는 아주 색다른 해석도 있다.

그러나 '내 가논데'는 어디까지나 내가 가는 곳(또는 나의 가는 곳)이어야 하나 그것이 오가는 길이 아닌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본다면 '내사랑 가는 곳' 즉 '사랑하는 님, 남편의 마음'으로 풀이된다. 

'졈그랄셰라'는 '저물을세라(저믈세라)' 또는 '저물게 할세라' 곧 '저물게 될세라', 그리고 '잠그랄세라(잠길세라)', '빠질세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졈글셰라'와는 달리 '졈그랄셰라'는 '저물게 할세라', 곧 사실상 '저물게 될세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나

다만 저물게 되는 것이 '날[日]'이라고 할 때에는 제 1연 '달하 노피곰 도다샤 머리곰 비취오시라'와 서로 어긋나며

또 저물게 되는 것이 '달[月]'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은 '날이 저물다'라는 말은 있어도 '달이 저물다'라는 말은 쓰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물게(곧 어둡게) 되는 것은 '나의 님' 곧 '남편의 마음'이라고 보아야만 모든 어려움이 없어진다.

또한 '내 가논데'를 '내가 살아가는 곳, 즉 인생의 전도(前途)'로 보고 '졈그랄셰라'는 '저무는 일이(심상 또는 생활에 어둠이) 없게 하여 주소서'와 같이 이것 또한 종교적 서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제 2연의 '즌데를 드디욜세라'와 함께 어법상의 의구형(ㄹ셔+라)은 의구형 그대로 받아들여 해석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이후 구백제() 지방의 노래로 짐작된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이며,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요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내용은 정읍현()에 사는 행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혹시 밤길에 위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나타낸 노래이다. 

형식은 3연 6행이며, 조선시대에
궁중음악으로 쓰였다. 《악학궤범()》 권5에 실려 전하는 가사이다. 

 

 

원왕생가(願往生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월하이저역

서방염정거사리견

무량수불전내

뇌질고음다가지백견사립

서음심사은존의희앙지

양수집도화호백량

원왕생원왕생

모인유여백견사립

아사차신유야치견

사십팔대원성견사거 - 양주동 해독

 

달이 어째서
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
무량수전 전에
보고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
서원 깊으신 부처님 우러러 바라보며
두 손 곧추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아아, 이몸 남겨두고
48대원 이루실까     
                                                    - 김완진 역

 

- 현대어 풀이1

 

달님이시여, 이제

서방까지 가셔서

무량수불 앞에

일러다가 사뢰소서

다짐 깊으신 불존에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릴 사람 있다고 사뢰소서

아아, 이 몸을 버려 두고

사십팔대원 이루실까

 

- 현대어 풀이2

 

달님이시여

서방정토까지 가시려는가

무량수 부처님 앞에

일러 사뢰옵소서

맹세 깊으신 부처님에게 우러러

두 손을 모아

왕생을 원하여 왕생을 원하여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옵소서

아아, 이 몸 남겨두고

마흔 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

dia_bluve.gif 요점 정리

 

circle01_red.gif 지은이 : 광덕

circle01_red.gif 연대 : 문무왕(661-681)
circle01_red.gif 갈래 : 10구체 향가, 기원가(祈願歌), 불교 신앙의 노래
circle01_red.gif 성격 : 기원적, 불교적

circle01_red.gif 구성 : 1- 8행에는 화자와 달의 대화가 나타나 있음

1 - 4행 : 달님에 대한 당부 - 달님에게 기원(간접 청원)

5 - 8행 : 극락왕생에 대한 간절한 염원 - 극락왕생 염원(직접 청원)

9-10행 : 소원미성취에 대한 염려 - 소원 성취에 대한 염려(청원의 심화 확대)

circle01_red.gif 제재 : 극락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달
circle01_red.gif 표현 : 비유법, 상징법, 설의법, 돈호법, 숭고미(
절대자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외경심을 형상화하는 미의식)
circle01_red.gif 의의 : 아미타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서방 정토에의 왕생을 염원한 서정 가요
circle01_red.gif 주제 : 아미타불에게 귀의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서방 정토로의 극락왕생(
極樂往生 :  죽어서 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남) 희구

dia_bluve.gif 내용 연구

 

달님[서방정토의 사자로 여김]이시여

서방정토까지 가시려는가

(가시거든) 무량수불 앞에

일러 사뢰옵소서

맹세 깊으신 불전에 우러러

두 손을 모아[기도하는 자세로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말함]

왕생을 원하여 왕생을 원하여[시적 화자의 간절한 소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시어]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뢰소서

아아, 이 몸 버려두고[남겨두고]

마흔 여덟 가지 큰 소원을 이루실까.[설의법을 통해 시적 화자의 강한 내면적 의지를 드러내고, 시상을 마무리지으면서 시적 화자의 기원이 심화, 확대되고 있고, 시적 화자는 아미타불의 중생 구원에 대한 약속을 환기시켜 간접 위협과 명령을 행하고 있다]

 무량수불은 서방정토에 있는 아미타불로서, 이 부처에게 염하면 극락 세계에 간다고 했다. 원왕생가의 화자는 '달'로 하여금 서방의 극락 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도록 청원을 하고 있다. 따라서 '무량수불'은 화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상이다.

circle01_red.gif 사십 팔대원(四十八願) :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본원(本願). 아미타불이 과거세(過去世)에서 수행할 때에 법장 비구(法藏比丘)가 되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앞에서 48가지의 원을 세우고, 그것이 실현될 때라야 성불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그는 무한한 노력 끝에 복덕(福德)을 쌓아 그가 목표한 극락세계를 완성하였다. 이 서원(誓願)의 하나하나는 모두가 남을 위하는 이타행(利他行)으로 되어 있는데, 곧 대승 보살행(大乘菩薩行)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 48원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즉,

① 아미타불 자신에 대한 것,
② 아미타불의 국토[極樂]에 대한 것,
③ 그 불국토(佛國土)에 태어난 이에 대한 것,
④ 앞으로 극락세계에 왕생(往生)하려는 이에 대한 것 등이다.

 정토(淨土)사상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부처와 또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거주한다는 청정한 국토. 중생이 사는 번뇌로 가득 찬 고해(苦海)인 현실세계를 예토(穢土)라고 부른 데 대한 상대어이다. 시방(十方)세계에 제불(諸佛)의 정토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1세계에 2불(佛)이 병립해서는 안 되므로 제불이 나타날 국토가 현실세계 외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논리인데, 특히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서방 극락세계, 약사불(藥師佛)의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를 정토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선종(禪宗)에서는 “오직 마음이 정토요, 자신의 마음이 미타(彌陀)”라고 하여 사람들이 본래 갖추고 있는 일심(一心) 외에 정토는 없다고 말한다.

dia_bluve.gif 이해와 감상

 달에 관련된 문학 작품은 많다. 예를 들면 고대시가인 '정읍사'에서는 남편의 안위를 돌봐주는 달로 나타나고, 향가인 '원왕생가'에서 달은 기원의 대상이며, '찬기파랑가'에서는 우러름의 대상으로, 기파랑의 인품을 '달'에 비유했으며, 이조년의 시조에서의 '달'은 봄밤의 애상적 정서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호우의 시조에서의 '달'은 서정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달이며, 장만영에서의 '달·포도·잎사귀'에서는 생명력과 미적이고 애수어린 낭만적인 달이고, 나도향 '그믐달'에서의 달은 화자의 심정을 토로하는 달이며, 윤오영의 '달밤'은 고요한 밤의 정경으로서 그리고 자연과 합일하는 존재로서의 달로 나타난다.

 달은 이처럼 작품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고 중국의 시성 '이태백'은 '달'을 건지려다가 죽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달이 얼마나 작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학적 소재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달은 어두운 밤에 등장하고 그 달은 어두움을 밝혀 주는 광명의 달이며, 신적인 달이다. 이 달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고뇌의 바다를 밝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여기 '원왕생가'에서 광덕은 아미타불에게 귀의하고자 하는 마음을 달에게 의탁하고 있다. 이 노래에서 서정적 자아가 그리는 대상은 아미타불이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의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을 희구하고 있다. 그런데 달은 차안과 피안을 오고 갈 수 있는 불법(佛法)의 사자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시적 자아는 가슴 깊은 신앙심이 아미타불에게 전하여 지기를 달에게 기원하고 있다. 즉 달을 통해 서정적 자아의 불교적 신앙심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해와 감상1

신라 문무왕(文武王) 광덕(廣德:?~?)이 지은 10구체 향가로 광덕은 짚신을 삼아서 살았는데 아내는 분황사 종이었고 광덕의 친구 엄장은 농사를 짓고 살았다. 광덕이 죽어 서방정토로 가자, 엄장은 광덕의 아내를 차지하려 했다. 그러자 광덕의 아내는 광덕이 평소 정좌하고 불도를 닦으며 한번도 동침하지 않았다 하며 엄장을 꾸짖었다. 엄장은 크게 뉘우치고 원효(元曉)에게서 쟁관법(錚觀法)을 배우고 마침내 서방정토로 갔다고 한다. 이 노래는 일찍이 광덕이 부른 노래로 되어 있는데 귀족불교를 넘어서서 평민에 이르는 화엄사상이 흐르고 있다. "달이 어째서 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무량수전 전에 보고의 말씀 없이 사뢰소서"로 시작된다. 서방정토사상을 읊은 축도의 노래로, 달을 서방정토의 사자(使者)에 비유하여 불교의 신심을 노래했다. 〈삼국유사〉 권5 광덕 엄장조에 실려 전한다.

이해와 감상2

신라 문무왕 때 광덕(廣德)이 지었다는 10구체 향가. 삼국유사 권5 광덕엄장조(廣德嚴莊條)에 노래의 유래에 관한 배경설화와 향찰로 표기된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작자에 대해서는 광덕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나 광덕의 처, 원효, 민간 전승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배경설화〕

수록문헌에 따르면 문무왕대에 사문(沙門)인 광덕(廣德)과 엄장(嚴莊)이라는 두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왕생(往生)할 것을 약속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생활에만 전념하던 광덕이 먼저 죽자,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함께 유해를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그 일을 끝낸 뒤, 엄장이 광덕의 아내에게 동거하기를 청하자 그이가 이를 허락하였다. 밤에 엄장이 정을 통하려 하니 광덕의 아내는 정색을 하면서 말하기를,
죽은 남편은 10여 년을 같이 살았으나 한 번도 동침하지 않고 오직 수도에만 전념하였는데, 지금 당신은 이런 추한 행동을 하려 하니 정토를 구하기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엄장은 부끄러움을 느끼며 물러나와 몸을 깨끗이 하고 크게 뉘우쳐 한마음으로
()을 닦은 결과 엄장 또한 서방정토로 왕생하게 되었다.
그 부인은
분황사(芬皇寺)의 비(婢)인데, 실은 관음보살의 십구응신(十九應身)의 하나였다. 그런데 광덕에게 일찍이 원왕생가라는 노래가 있었다.고 한다.
배경설화의 이 문맥 때문에, 즉 광덕이
지었다라고 분명히 기술하고 있지 않고 그냥 있었다라고 적혀 있기 때문에, 작자에 대해 광덕으로 규정하는 견해와 그 아내가 지었다는 견해, 민요적인 전승가요였으므로 집단이 공동으로 지었다는 견해, 원효(元曉)가 지었다는 견해, 불교신앙에 투철한 상층 지식인(불승 또는 귀족)이 지었다는 견해 등 여러 갈래로 엇갈려 있다.
이 가운데 배경설화와 이 노래가 생성배경을 함께 한 동일 문맥으로 볼 경우, 광덕이 지었다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으며, 이와 달리 배경설화와 노래가 각각 달리 생성되어 전승되다가 뒷시대에 와서 임의로 결합되었다고 볼 경우 정토신앙에 투철한 불승 또는 귀족이 지었으며, 광덕과는 무관하다는 견해도 일리가 있는 학설로 대두되어 있다.

〔원문 및 해석〕

이 노래의 원문과 현대어 풀이는 다음과 같다.
원문
月下伊底亦 西方念丁去賜里遺無量壽佛前乃 惱叱古音多可
白遣賜立誓音深史隱尊衣希仰 兩手集刀花乎白良願往生願往生 慕人有如白遣賜立阿邪此身遺也置遣 四十八大願成遣賜去
현대어 풀이
달이 어째서
서방까지 가시겠습니까.
무량수전 전에
보고의 말씀 빠짐없이 사뢰소서.
서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두 손 곧추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아아, 이몸 남겨 두고
48대원 이루실까(金完鎭 譯)
이 노래는
도천수관음가 禱千手觀音歌와 더불어 신라시대 기원가(祈願歌), 곧 기도하는 노래의 한 전형을 보여 준다. 기원가의 어법은 예배대상에 대한 청원이나 탄원 및 기구(祈求)·고백의 어법이 중심이 되는데, 이 작품도 바로 이러한 어법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예배대상은 무량수불로 되어 있고, 아미타신앙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무량수불은 곧 아미타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소재로 선택 된
은 기도자(서정 자아)가 있는 현세와 극락정토인 서방을 잇는 중개자로 나타나 있다. 혹은 서방정토의 사자(使者)로서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다.
노래의 첫 부분을
이라는 대상의 초월적 힘에 기대어 시작하면서, 제3·4구에서 기도자는 자신의 청원을 달에게 부친다. 무량수불전에 자신의 뜻을 아뢰달라는 부탁이다.
그 소원이 무엇인지는 잠시 유보함으로써 긴장을 유발한다. 이어서 제5
8구에 자신의 청원이 서방정토로 왕생하는 데 있음을 합장의 자세로 경건하게 아뢴다.
특히, 제5구는 아미타불에 대한 경배가 드러나고 있지만
서원 깊으신이라는 관형구로 제시되어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단순한 외경이 아니다. 아미타불이 법장보살(法藏菩薩)로 있을 때,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에게 맹세한 중생제도(衆生濟度)의 서원을 상기하도록 하여, 기도자 자신을 왕생하게 하는 일에 아미타불을 묶어 놓으려는 강한 의지까지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노래의 핵심, 곧 주제는 제7구에 집약되어 나타나 있다. 비록 함축적인 어휘로 표현되었지만 현실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투영되었다고 보겠다. 이것은 세속적인 삶을 다 끝낸 뒤의 소망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현세를 초월하겠다는 절대절명의 청원으로 여겨진다.
맨 끝의 2구는 일종의 독백형식이면서 제5구에서부터 계속되어 온 기원의 연장이자 그 심화확대라는 견해와 의문형으로 끝내어 설의법(說疑法)의 가면을 썼으나 내면으로는 강한 명령법과 접맥되는 위협의 요소가 숨어 있으므로 주술적인 의지가 함축되어 있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조건절을 수반한 반어의문문을 사용하고 있으며, 드러난 대로 읽으면 원망이라고 하겠으나 앞의 문맥과 연결시켜 읽으면 나의 왕생수행을 아미타불께 품신하여 나를 제도해 달라고 강하게 청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신라인의 세계관이 불교와 샤머니즘이 습합한 것처럼, 이 노래 또한 달이라는 중개자를 통하여 주술적 어법을 빌려 정토왕생을 희원한 노래로 보기도 한다.
또 달을 대세지보살의 응현으로 보아 시적 자아가 서방정토에 왕생하고자 달로 응현된 대세지보살로 하여금 아미타불께 빨리 품신하여 주고, 왕생시켜 달라고 청원하는 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경우 원왕생가의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은 관련 설화의 관음보살과 함께 아미타 삼존을 완결한다.
이 작품은 신라불교가 귀족불교의 한계를 넘어서 일반 서민에까지 아미타신앙으로 확산되어 대중불교로 전환되는 배경으로, 현세의 고난을 이겨내고 내세의 극락으로 왕생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기도 형식으로 담은 기원적 서정가요로서, 주목되는 향가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鄕歌解讀法硏究(金完鎭, 서울大學校 出版部, 1981), 新羅淨土思想의 展開와 願往生歌(金東旭, 中央大學校論文集 2, 1957), 新羅鄕歌의 語法과 修辭(李在銑, 鄕歌의 語文學的硏究, 西江大學校 人文科學硏究所, 1972), 願往生歌의 生成背景(成基玉, 震檀學報 51, 1981), 願往生歌(朴魯, 新羅歌謠의 硏究, 悅話堂, 1982), 원왕생가의 문화사회학적 시학(이도흠, 畿甸語文學 제7집, 1992), 願往生歌(張珍昊, 新羅鄕歌의 硏究, 형설출판사, 1993), 원왕생가(양희철, 삼국유사 향가연구, 태학사, 1997).(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dia_bluve.gif 심화 자료

circle01_red.gif 달 숭배(崇拜) moon worship

 달 속에 있는 신이나 달의 상징 또는 인격화한 형태를 숭배하거나 공경하는 것으로 달의 성스러움은 삶과 우주의 기본 리듬과 연결되어 있다. 여러 시대와 문화에 걸쳐 두루 퍼져 있는 달 숭배 현상은 풍부한 상징과 신화를 낳았다.

 사람들은 달을 우주의 율동적인 생명과 관련하여 생각했고 모든 생명의 변화를 다스리는 것으로 믿었다. 달이 차고 기우는 순환과정을 보고 많은 이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 영혼이 올라가는 죽은 자의 땅이나 재생의 힘을 달과 연관지었다. 달이 생명의 순환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달과 운명을 연관지어 생각하도록 했다. 달의 신화는 특히 달이 사라지는 시기를 강조한다. 달의 순환에서 3일간의 어둠과 일식은 달을 집어삼키거나 잡아먹은 다음 결국 다시 토하거나 다시 살려놓는 괴물들간의 싸움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보통 해석된다. 그믐은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는 활동(특히 식목이나 성교)에 대해 엄격한 금기가 필요한 유해한 기간으로 해석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의례 행위의 일부로 달을 공격하는 자를 겁주어 쫓기 위해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한다.

 달과 달의 순환을 인격화한 신들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다. 원시 수렵문화에서 달은 지극히 남성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여성들은 달을 아주 악하고 위험한 존재로 생각한 반면 농경사회의 전통 속에서의 달은 일반적으로 여성이며 식물 생장과정의 자비로운 주재자로 여겨졌다.(출처 :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circle01_red.gif 박목월의 '달'

 첫번째 개인 시집 《산도화》에 실린 3연 10행의 자유시로 그리움의 서정을 표현하였다. 제1연의 하얀 달밤에 핀 배꽃 사이로 비치는 달은 우리 민족의 정한(情恨)을 담은 색깔이다.

 제2연의 ‘불국사 언저리’ 역시 우리 민족의 애환이 담긴 공간적인 배경이다. 다시 제3연의 ‘반쯤 가리고 가는 달’은 체념과 그리움의 서정을 재확인하는 신화적인 공간이다.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 내동면(慶州郡 內東面)
혹(或)은 외동면(外東面)
불국사(佛國寺)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박목월의 '달'은 배꽃과 달의 만남을 그린 작품이다. 천상의 꽃인 달과 만난 지상의 배꽃은 얼굴을 반쯤 가리고 함께 길을 간다. 잔잔한 슬픔과 밝은 생명력이 교감하는 공간의 승화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소재로 전통적인 정서를 민요조의 운율에 담아, 서정으로 일관하는 그의 시가 여기서도 은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circle01_red.gif 배경설화

 문무왕때에 불도에 광덕과 엄장 두 사람이 있어 퍽 친근하였다. 그들은 평소에 누구든지 먼저 극락정토에 갈때는 서로 알리기로 약속했었다. 광덕은 분황사의 서쪽(혹은 황룡사의 서거방(西去方)에 있었다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에 은거하며 신을 삼아 생활하였는데, 아내가 있었다. 엄장은 남악(南岳)의 암자에서 화전을 경작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노을이 붉고 솔 그늘이 고요히 어둠에 잠기는 저녁때였다. 엄장의 집 창밖에서 '광덕은 지금 서방정토에 가니 그대는 잘 있다가 속히 나를 따라 오라.'는 소리가 났다. 엄장이 문을 열고 나가 보니 구름 밖에 하늘의 풍악 소리가 들리고 땅에는 광명이 드리워 있었다. 이튿날 엄장이 광덕의 집에 가보니 그는 과연 죽어 있었다.

 광덕의 아내와 함께 장의(葬儀)를 마친 엄장은 광덕의 아내와 합의하에 동거하게 되었는데, 저녁에 같이 자며 관계하려 하니 여자가 거절하며 말하기를 "스님이 정토(淨土)에 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마치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얻으려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또 말하기를 "광덕은 나와 10여 년을 같이 살았으나 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었고, 저녁마다 단정히 앉아 염불을 하고, 혹은 16관(十六觀- 중생이 죽어서 극락에 가기 위해 닦는 16가지 방법)을 행할 뿐이었습니다. 16관에 숙달하자 달빛이 문에 들면, 그 빛을 타고 올라 앉았습니다. 정성이 이 같았으니 어찌 극락에 가지 않겠습니까?

 무릇 천 리를 갈 사람은 그 첫걸음이 규범이 된다는데, 이제 스님의 관을 보니, 동쪽으로 간다 할지언정 극락으로 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 하였다. 엄장은 부끄러워 물러나 원효법사를 찾아가 법요(法要)를 간청하였다. 법사는 정관법(淨觀法- 이미 생각의 더러움을 깨끗한 몸으로 번뇌의 유혹을 끊는 것)으로 그를 유도하였다. 엄장은 이에 몸을 깨끗이 하고 잘못을 뉘우쳐 스스로 꾸짖고, 한 마음으로 관을 닦으니 역시 서방정토로 가게 되었다. [출전{삼국유사} 권5, '광덕 엄장조(廣德嚴莊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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