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1 / 김 종 욱
2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의 의미
인간의 본성에 관한 서양 철학사의 탐문 과정을 추적해 보기에 앞서,
먼저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의 의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인간의 본성이란 영어로는 human nature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자연상태’,
즉 인간의 자연적 성질, 다시 말해 자연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에게 주어진 성질을 뜻한다.
그런데 이 성질을 ‘근본적인 성질’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단지 ‘타고난 성질’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본성’이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
전자처럼 이해할 경우 본성은 ‘본질’이 되며, 후자처럼 이해할 경우 본성은 ‘본능’이 된다.
본질(essence)의 그리스적 어원 ousia와 라틴적 어원 essentia는
모두 ‘존재하다’는 동사의 분사형을 명사화시킨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현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한 사물이 존재하는 이상 계속해서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항상적 불변성을 함축한다.
그렇게 남아 있으면서 그 사물로 하여금
바로 그러한 사물로 존재하게끔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근원적 기체성(基體性)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그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시켜 주는 두드러진 것이 된다는 점에서,
본질은 일차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이런 성격은 그 사물이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구현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바람직한 이상의 성격을 갖는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질이란, 인간의 바람직한 상태를 가리킬 경우에는 인간의 인간다움(arete?)이고,
인간만의 두드러진 특성을 뜻할 경우에는 인간의 인간성(anthro?inon, humanitas)이다.
또한 본질은 항상 불변하는 근원적 기체이고 이런 불변의 보편자는
오직 이성적 사유에 의해서만 파악된다는 점에서는, 인간의 본질은 이성적이고 정신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을 자꾸 인간의 본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인간의 본성은 바로 인간의 이성과 정신이어야 한다는 전략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서양 철학사의 주류를 이들이 차지해온 것 역시 사실이다.
이에 비해 본능(instinct)은 자연적으로 타고난 성향을 뜻하는데,
그 어원――in(위로)+stinguere(찌르다)=찔러서 부추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구체적으로는 선천적 ‘충동’을 가리킨다.
이런 충동적 경향은 개체의 생존과 종족의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욕구(食慾, 色慾)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본능은 주로 육체적인 성향의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정신적 본질의 차원에서만 보아,
육체를 정신의 감옥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본능을 극도로 억제하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본질의 이름으로 본능을 통제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생물학에서 보면,
본능은 진화의 과정에서 생긴 종 차원의 정형화된 행동 유형으로서 유전적으로 확립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야 할 그 무엇이다.
인간에게만 있고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것이 ‘본질’로서의 인간 본성이라면,
‘본능’으로서의 인간 본성이란 다른 동물에게도 보이지만
인간에게서 그 정도가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본질상의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정도상의 양적인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된다.
이처럼 다 같이 인간의 본성을 논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인간의 본질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인간의 본능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의견 충돌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