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살이
회사 생활을 청산하고, 제주에 내려왔다.
일탈 혹은 도피 아니면 새로운 시작
그것도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인생의 한 일부분이겠지.
3개월의 제주 여정
혹은 더 오래 머물 수도 있을 제주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으려한다.
네 번째 이야기 : 환상숲 곶자왈공원이 들려주는 숲 이야기, 살기 위한 숲속 전쟁
제주 곶자왈 : Jeju Gotjawal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제주어 '곶'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이 합쳐져 만들어진 고유어다.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한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제주도의 독특한 숲으로 형성된 용암에 따라 크게 4지역에 걸쳐 분포하는데, 한경-안덕 곶자왈지대, 애월 곶자왈지대, 조천-함덕 곶자왈지대, 구좌-성산 곶자왈지대가 있다.


환상숲 곶자왈공원 : Hwansang Forest
환상숲은 도너리 오름에서 분출하여 흘러내려온 용암의 끝자락에 위치하여 형성된 곳으로 세계 자연유산인 지질공원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생태공원으로 매 정시마다 숲 해설이 진행돼 곶자왈을 조금 더 깊게, 자세히 알 수 있다.


숲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언제나 숲이 좋았다. 숲이 들려주는 바람 소리, 새소리, 곤충 소리, 그리고 여름철에 들려오는 개구리울음소리까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았다.
성인이 되고 일 때문에 서울로 내려왔다. 서울에선 흔히 듣던 자연소리보단 인위적인 소리들이 더 흔했고, 더 이상 자연이 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자연이 들려주었던 소리를, 그리고 숲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그런지 제주살이를 하는 와중에 바다보단 숲을 더 찾았고, 숲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조금 더 귀 기울였다.


곶자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는쇠 고사리
그중 곶자왈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북방한계(열대식물이 북쪽에서 자랄 수 있는 한계지점) 식물과 남방한계(한대식물이 남쪽에서 자랄 수 있는 한계 지점) 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숲인 곶자왈은 내가 느끼기엔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다. 생존을 위한 식물들의 본능을 알 수 있는 숲. 그게 곶자왈이었다.

바위를 뚫고 자라는 식물들과,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들
곶자왈의 나무들은 올곧게 뻗은 나무보단 구부러지고, 이리저리 난잡하게 뻗은 나무들이 많았다. 이유인즉슨 햇빛을 받기 위해 그 방향으로 기를 쓰고 뻗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올곧게 뻗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살기 위해 구부러졌다. 또, 덩굴들은 높이 뻗은 나무들을 타고 올라가며 햇빛을 받기 위해 기를 썼고, 다른 여러 식물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기를 썼다.
하지만, 모두가 생존할 수 없듯이, 도태된 나무들은 죽어가고 있었고, 그 죽은 나무 자리에 새로운 나무와 식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었다.
곶자왈은 탄생과 죽음이 끊임없이 공존하며 나무들이 살아 있는 생명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숲이었다.
곶자왈 숲은 난잡하지만 식물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 수 있었고, 천천히 끊임없이 살기 위해 전쟁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사는 방식이 결국 우리의 생존 방식과 다를 것이 없음을 느꼈다.

곶자왈에선 아바타에 나올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덩굴에 먹힌 나무들은 죽고, 다시 새로운 나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야기를 끝으로 환상숲 곶자왈공원엔 전쟁터 같은 숲 이외에도 재밌는 요소가 있는데
정각마다 있는 숲 해설과 숨골이라는 곳이다.
이 숲을 운영하는 가족이 들려주는 해설은 모르고 넘어갈 뻔했던 요소들을 모두 캐치해 주고, 숲과 인생에 관련된 명언들로 감동을 더 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 숲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숨골은 지하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데, 더운 여름 찝찝함을 한 번에 날려줄 자연이 주는 시원한 바람에 한 번 더 반할 수 있다.

숲과 이야기가 공존하는 환상숲 곶자왈공원

다섯 번째 이야기 : 성스러운 숲 사려니숲길이 들려주는 숲 이야기, 공존과 평화
사려니숲길
비자림로의 봉개동 구간에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사려니 오름까지 이어지는 숲길이다.
총 길이는 15km 정도로 전형적인 온대성 산지대에 해당하는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수종이 자란다.
그중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울창하고 넓게 펼쳐저 장관을 이룬다.

사려니는 '살안이' 혹은 '솔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 쓰이는 '살' 혹은 '솔'은 신성한 곳 또는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뜻으로 즉 사려니숲길은 '신성한 숲길'이라는 뜻을 가진다.
사려니 숲길은 이름에 걸맞게 높게 뻗은 삼나무들이 성스러운 느낌을 주고, 화산송이가 깔린 붉은 길은 비범한 기운을 주었다.

사려니숲길은 전쟁터 같던 곶자왈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숲이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자란다. 골고루 빛을 받고, 골고루 비를 맞으며 천천히 자신의 영역을 확립해 올곧게 자란다.
사려니숲길을 걷다 보니 문득 곶자왈과 가장 대조되는 숲이 이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과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환상숲 곶자왈공원과 평화와 따뜻한 기운을 풍기는 사려니숲길 확실히 두 숲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두 숲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둘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끝임없는 경쟁속에 살아가는 곶자왈공원은 나무들이 휘어지고, 구부러져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었으며,
평화로움 속에 살아가는 사려니숲길의 나무들은 올곧게 아름답게 그렇지만 천천히 자라
함께 가는 것의 소중함을 알려주었다.
나는 이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 번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숲은 항상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가끔 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하고,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도 하며 치유해 주기도 한다.
두 숲은 내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었고,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행복한 정답을 얻었다.

함께 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준 사려니숲길

숲에서 태어나 숲을 사랑하는 여행하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