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阿羅伽耶)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함안 말이산고분전시관
함안박물관 뒷편, 아라가야 600년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말이산고분군을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신청 유산 중 가장 오랜 기간 조성된 고분군이다.
말이산고분군의 무덤 변천과정과 축조방법 등을 최신 전시기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화려한 영상과 음향이 어우러진 디지털 실감 영상관은 가히 놀랍다.
디지털 실감 영상관은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을 활용
아라가야 유물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미디어아트에 접목
온몸을 감싸는 초대형 영상, 그리고 3면과 바닥에 펼쳐지는 파노라마에 몰입함으로써 스펙타클한 영화감상을 한 듯!
말이산고분군 4호분 배치도
아라가야 구덩식돌덧널무덤의 특징
3분할 공간 구성
구덩식돌덧널무덤인 말이산 4호분의 무덤방은 모두 3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운데 무덤주인의 공간을 중심으로 머리 위쪽에는 유물부장 공간이, 발 아래에는 순장자 공간이 위치한다.
무덤방의 바닥에는 둥근 강돌을 1~벌 깔았으며 양쪽 긴 벽 상단에는 각 2개소의 들보공(孔)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무덤 내부의 공간 분할선과 일치한다.
말이산 4호분 고분은 1917년 일본 이마니시 류가 발굴조사를 했다.
실제 발굴조사라기보다는 일제강점기라 완전 도굴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당시 수레바퀴모양토기, 오리모양토기, 사슴뿔장식철검 등 28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아라가야 왕릉
말이산고분군 발굴
고대 아라가야의 찬란한 500년 영화를 간직한 말이산고분군.
아라가야 왕과 귀족들의 주검을 품은 후 1,500년 동안이나 고이 지켜온 말이산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최초로 파헤쳐지는 아픔을 겪었다.
8.15해방과 근대화 과정을 거친 1986년 드디어 우리 손으로 첫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약 33년 간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아라가야의 찬란한 문화를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동안 문헌기록으로는 알 수 없었던 아라가야의 고분문화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왕묘로서의 말이산고분군 13호분
아라가야 사람들은 독창적인 고분축조기술을 바탕으로 대형분의 '고암반대 조성'과 '들보시설'이 확인되었다.
즉 쉽게 부스러지는 기반암의 지질적 특징을 활용하여 흙을 쌓는 방식 대신 암반을 깎아 거대한 고분의 아랫부분을 조성해서 무덤을 더 크게 보이게 했다.
무덤방 내 4벽면이 붉게 채색된 초대형의 무덤방이 발굴되어 5세기 말 아라가야 최고 전성기의 고분축조방식을 엿볼 수 있다.
무덤방 내에서는 장군모양토기, 목간항아리, 그릇받침 등의 토기류와 둥근고리큰칼, 말갖춤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허리띠장식(북방), 뼈장신구(왜)가 출토되어 아라가야의 활발한 대외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말이산고분군 13호분은 2018년 100년 만에 재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때 가야 최초로 별자리 덮개돌이 확인되었다.
덮개돌에서 확인된 별홈은 모두 134개로 전면에 다양하면서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그간의 연구에서 별홈의 일부가 여름철 고대 별자리를 표현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별자리는 방수(房宿), 심수(心宿), 미수(尾宿), 기수(箕宿), 두수(斗宿) 등이 있다.
이들은 현대 별자리로 은하수 주변에 있는 전갈자리와 궁수자리에 해당한다.
무덤 천장에 별자리를 표현한 예는 고구려 고분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가야무덤에서 별자리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따라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가야인들의 내세관을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