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의 글은
2016년 7월 1일 포스팅하였습니다.
궁금한 이야기 Why?는
사건의 진실을 찾아서 궁금증을 풀어갑니다.
공중파 방송의 뉴스는 사건을 보도하지만
종편의 시사 방송은 보도된 시사 뉴스를 심층 분석하며 해석합니다.
인터넷의 언드그라운드 방송은
뉴스의 보도를 정치적 목적으로 의도된 보도라며 사건의 왜곡을 비판합니다.
그런가 하면 악풀러는
주관적 관점으로 인터넷 상의 모든 정보를 부정적으로 왜곡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그나마 가장 진실한 보도로 정평난 뉴스는
Jtbc의 손석희 뉴스와 CBS의 김현정 뉴스 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좌파적 시각일 뿐.....
우파적 시각에서는 탐탁지 않습니다.
뉴스에 감성이 개입되면 감성팔이의 쇼가 되고
사건의 행간을 보도하면 진실을 왜곡하고 편향적 보도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가운데서도 메이저 방송의 뉴스는
정치적 의도와 목적을 가진 뉴스라고 인터넷의 언드그라운드 방송에서 끊임없이 비판합니다.
그러므로 뉴스 보도나 인터넷의 정보에 대한 선택은
시청자와 네티즌의 정치적 성향과 교양과 품위를 결정하는 복불복이 되었습니다.
뉴스 보도의 다른 시선은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성숙한 민주 의식의 선택일 것입니다.
시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이해는
정치적 성향과 사관을 결정짓는 논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성경 저자의 시선에 대한 신불신의 복불복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복음서의 차이는
복음서 저자의 신학적 이해와 관점을 개성있게 기록하였지만
그 상이한 차이는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의혹을 갖게 하였습니다.
복음서의 그 상이한 차이는 예수께서 가라사대...라는 말씀 가운데
실제 예수님의 말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낳았습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갸웃하며
이게 뭐지?라는 고민은 성경의 진실에 접근할 것입니다.
그러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올리는 식의 성경 이해는
성경에 대한 맹신으로 불신의 늪에 뻐지고 말 것입니다.
맹신의 이웃 사촌은 불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단과 사이비에 빠진 광신자들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족보와 누가복음의 족보가 왜 다른가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성경에 대한 질문은 곧 의혹과 불신의 금기를 깨는 실례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순전한 믿음의 사람은 성경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고
그 의혹과 불신의 금기를 깨는 실례를 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전제적 신앙은
종교적 신념의 이데올로기로 세뇌 되어 고르반 하는 신앙으로 외식하기 때문에
어떤 성경의 난제에도 불구하고 의혹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야긴이 왕이 것은 역대기는 8세, 열왕기는 18세라고 하였는데
믿음 좋은 사람은 구원받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그 난제를 의혹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대한 복불복의 신앙은 불신, 그 자체이며
맹신의 늪에 빠져서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상이한 족보는
성경의 오류를 주장하는 불신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불신의 씨앗이 된 북음서의 충돌을 방임하는 자세는
참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의혹에 대한 진실의 증거가 없으면......
의혹의 불신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계보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는
마태와 누가의 이해는 전혀 다릅니다.
마태와 누가의 상이한 이해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는 메시지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든 충돌의 복음이 아닌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소명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마태의 관점으로
누가복음의 계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오류라고 방치하고.......
불편한 진실의 불확실한 신앙으로 바람 앞에 꺼져가는 등불로 살아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마태는 그 또 다른 이름 레위로 추정해 볼 때 레위인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성취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왕으로 증거하였습니다.
레위인으로 구약에 대한 마태의 해박한 이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메시야 예언의 성취라는 관점으로 마태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마태는 다윗 왕조의 계보를 축약적으로 제시하며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다윗 왕조 가운데 여호람과 이세벨 딸 아달랴 사이에서 태어난 삼대.....
곧 아하시야와 요시아와 아마샤를 메시야 계보에서 제거함으로 다윗의 신앙을 고취하였습니다.
또한 요시야의 아들, 곧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과 시드기야를 계보에서 삭제하고
여호야긴으로 계보를 이으면서 연대기의 난제가 된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메시야 계보로 입적하였습니다.
연대기적 난제가 된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은
마태의 복음적 시선이 담긴 메시야 계보의 혁신적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는 다윗 왕조가 요시야 이후 끊어졌다는 예레미야의 탄식을 알았고
포로 귀환의 영웅으로 다윗의 신앙을 계승한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을 왕의 계보로 믿음의 입적을 하였습니다.
마태는 다윗 왕의 후손에 대한 혈통적 개념을 뛰어넘어
다윗의 신앙을 계승한 계보를 복음적 안목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하고 깨진 그릇이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의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이 사람이 자식이 없겠고
그의 평생 동안 형통하지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렘22:28-30)
또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고 하였습니다.(렘33:25-39)
또한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렘36:30)
하나님은 다윗 왕조를 멸망 시키면서도
메시야가 통치하는 영원한 다윗을 계승할 것을 계시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렘23:5-6)
또한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나의 종 야곱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 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렘30:9-11)
또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렘33:14-18)
또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렘33:19-22)
에스겔 선지자는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 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내가 그들에게 내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고 하였습니다.(겔34:22-26)
또한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준 땅 곧 그의 조상들이 거주하던 땅에 그들이 거주하되
그들과 그들의 자자 손손이 영원히 거기에 거주할 것이요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되리라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영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고 하였습니다.(겔37:23-28)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호3:4-5)
스가랴 선지자는 그 날에 여호와가 예루살렘 주민을 보호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이방 나라들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슥12:8-10)
또한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슥13:1-2)
이렇게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다윗이 다스리는 영원한 나라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요,
그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마태는 증거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해박한 레위인 마태는
구약의 메시야에 대한 그 모든 예언을 성취한 다윗의 나라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메시야로 다윗의 언약을 성취한 그 나라의 왕으로 증거를 받은 예수님은
예수님의 자기 이해를 다르게 하였습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인가?에 대한 물음은
예수님의 자기 이해에 기초한 반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며 반문 하시고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는 스스로 답하신 말씀은
누가복음의 복음을 이해하는 마스타 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마태와 마가,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모두 예수님의 말씀으로 기록하였지만
누가의 그리스도 이해를 더욱 깊게 하였습니다.
마태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였지만
누가는 다윗이 주라고 고백한 그리스도를 마태와 다른 메시야 계보를 통해서
여자의 후손이라는 창세기의 원복음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가는 언약을 성취하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한 마태와 다르게
창세기의 원복음인 여자의 후손을 귀납법적으로 추적하여 여자의 후손인 나사렛 예수를 증거하였습니다.
안디옥 출신의 누가는 바울의 동역자로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으며
이방인 곧 헬라인을 위한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성령의 영감으로 광범위한 자료를 검증하여
여자 후손 계보로 나사렛 예수를 증거하여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을 선포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묻혀진 여자의 후손을 나사렛 예수로 증거한 누가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천하 만민의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마태와 누가의 다른 관점은
메시야의 계보가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 독자를 위해서는 마태 복음이 효력이 있지만
헬라인 독자를 위해서는 누가복음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방인이 마태복음을 이해할려면.....
레위인 수준의 구약 성경의 이해가 필수적일 것입니다.
오늘날 수 많은 설교자들이 마태 복음을 엉터리로 설교하는 것은
레위인 수준의 구약적 이해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모세의 울법과 선지자의 글을 성취한 메시야인 그리스도 예수를
영원한 다윗 왕인 천국의 통치를 예수의 복음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과 함께 동역하면서
이방인의 전도를 위해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증거한 누가의 선택은
탁월한 복음의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하였습니다.(눅20:41-44)
여자의 후손이라는 그리스도의 계보를 통한 나사렛 예수의 증거는
아브라함을 축복한 창세기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서 영원한 대제장이라는
말씀으로 증거한 히브리서의 증거와 유사합니다.
창세기의 미스테리인 여자의 후손이 나사렛 예수로 증거되고
창세기의 멜기세덱이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증거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해는
아론의 계열과 모세의 율법을 그림자와 모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모세의 율법을 통한 시내산 언약의 이스라엘은 하갈의 언약이니 종노릇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어사에서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고 하였습니다.(갈4:19-27)
여자의 후손에 대한 바울의 이해는 육체를 다라 난 종의 언약, 곧 율법이 아니라
자유하는 여자의 언약, 곧 사라의 이삭과 같은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의 자유자,
곧 우리의 어머니인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의 극단적 비유는 바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주장했다면
아마도 이단의 괴수로 몰렸을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대한 이해는
바울과 히브리서 기자와 동일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드린 죽은 자의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산 자의 십일조와 대비하면서
영원한 제사장이신 우리 주 얘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성경에 대한 이해를 올바로 하면...육체를 따라 난 종의 언약에 매이지 않고
진리의 성령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음으로 천국의 자유를 누립니다.
갈라디아서나 히브리서의 관점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를 진단하면....
종의 언약이라는 종교적 관습에 매여
죽은 자의 십일조와 산 자의 십일조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는 질문으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며 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통상적인 다윗의 자손이라는 개념을 뛰어 넘고 종의 언약인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는
예수님의 완전한 자기 이해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자기 증거로 아브라함보다 먼저 잇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고 하였습니다.(요8:56-59)
유대인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예수님을
오늘날 교회는 과연 이해하고 있을까?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하는 참된 복음에 대한 그 믿음을 잃어버린
혼돈하고 공허한 종말론적인 시대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태가 증거한 영원한 다윗 왕인 그리스도 예수를 알지 못하고
누가가 증거한 여자의 후손인 나사렛 예수를 알지 못하며
바울이 증거한 육체를 따라 난 종의 언약과 진리의 성령으로 자유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히브리서의 말씀대로 죽은 자의 십일조와
산 자의 십일조 개념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모습은 이단과 사이비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 공생애의 유대인들은 복음서의 예수님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여
십자가에 못 박았고 사도행전의 유대인들은 사도와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복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유대인들이 도무지 깨닫지 못하였던
그 복음서와 바울의 복음을 깨닫고 있는가?
그러나 인터넷의 설교 영상을 나름 검증해 보면 ......
오늘날 대부분의 예배 설교는 복음서와 바울의 복음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의 증거와 그 신앙도 계시의 복음으로 선포되지 않고
구약의 메시야 복음이 전혀 선포되지 않고 있으며
그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성취한 복음서와 바울의 복음이 증거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태 복음의 계보와 누가 복음의 계보가 서로 구별되나
같은 예수의 계보인 것을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증거하지 못하는 교회의 강단은
다른 심오한 복음의 말씀도 증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강단의 설교는 주 예수의 복음으로 선포되지 않고
인본주의와 범신론적 무속신앙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