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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약
성경본문 잠언 17: 22-28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23.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24. 지혜는 명철한 자의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25.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26.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이 선치 못하니라
27.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28.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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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교제하는 목사님 한 분과 대화를 하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장로님들께서 주일 예배 중에 기도를 인도하시는데 간구가 나올 때마다 교인들이 아멘으로 화답을 합니다. 아멘을 비교적 많이 하는 교회입니다. 목사님이 가만히 들어보니 교인들의 아멘 소리가 간구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간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아멘을 하는데 어떤 간구는 별로 그렇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목사님 과연 어떤 간구에 가장 큰 아멘 소리가 나오는가 한 번 살펴보셨답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온 교인들이 깜짝 놀랄만한 소리로 아멘을 했습니다. 아멘이 가장 크게 나온 간구가 나온 것입니다. 그 기도는 이런 간구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 암과 같은 악성질병에 걸리지 않고 다 건강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모임이나 축하연에서 축배를 들 때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위하여'라고 외치고는 축배를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모임은 특이하게도 '이대로'하고 축배를 든답니다. "이대로", 무슨 뜻입니까? 돈도 좀 벌고 살만큼 여유도 생겼는데 이제는 건강이 따라 주지를 않습니다. 늙어 가고 있고 쇠약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발 이대로 병들지 않았으면'하는 마음으로 "이대로"를 위치면서 축배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히 현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은 건강입니다. 건강하기 위하여 애쓰고 건강하기 위해여 기도하고 건강하기 위해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하기를 원하면서 건강의 길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특별히 무엇인가 좋은 것을 먹어야 건강 하는 줄 압니다.
주위를 한 번 살펴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소위 건강식품 홍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몸에만 좋다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먹어 치웁니다. 이렇게 먹으면 어디에 좋고 저렇게 먹으면 어디에 좋다. 무엇은 어디에 특효약이다. 세계에서 우리 나라만큼 이런 말이 많은 나라는 없습니다. 무엇이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 씨가 마릅니다.
여러분, 이 시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좋은 것 먹는다고 건강해지는 것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 먼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옛날 왕들의 수명을 집중 연구해 보았습니다.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영광을 누렸던 로마 황제들은 평균수명이 35세였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천자의 평균 수명 39 세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조선시대의 왕들의 평균 수명은 43세였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 평균수명이 짧았습니다만 그래도 당시의 평균수명만큼도 못살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저들이 좋은 것 못 먹어서 일찍 죽었겠습니까? 먹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 이상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슬을 받아서 마셨고, 불로초를 구하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천하의 보약이 소용없었습니다.
건강은 하나님의 주신 질서에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할 수 있도록 질서를 세워놓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건강하게 됩니다. 저는 건강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 전문가요 성경전문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건강의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제가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건강의 원리를 함께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세우신 건강의 질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 적당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의 식생활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식물을 먹을 것으로 주셨고, 또 홍수 후에는 동물을 음식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 주신 이 음식을 골고루 알맞게 섭취하면 건강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골고루만 먹으면 됩니다.
저는 어릴 때 소가 풀을 먹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는 이상합니다. 눈앞에 연하고 맛있는 풀이 소복한데 그것을 다 뜯어먹지 않고 계속 자리를 옮겨 다닙니다. 이쪽에서 조금 먹다가 또 저쪽으로 갑니다. 좋은 풀이 있는 곳으로 잡아끌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스스로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면서 저 먹고 싶은 대로 먹습니다. 제가 나중에 그 까닭을 알았습니다. 소한테도 다 지혜가 있어서 쓴 것 단 것 골라 먹는다는 것입니다. 편식을 하지 않고 이 풀 저 풀 골라 먹어서 중화를 시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골고루 잘 먹을 때 건강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란 하나님께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사용하라고 주셨기 때문에 사용해야 강해집니다. 중요한 아야기입니다. 사용하면 사용하는 만큼 튼튼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쓰면 그 부분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10년 전에 의사가 자기를 진찰해 보더니 "하루 두 시간은 걸어야 건강을 유지하시겠습니다"하더랍니다. 그 때는 이를 건성으로 듣고 그 뒤로도 줄곧 차만 타고 다녔더니 1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관절염에 걸려 꼼짝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안 쓰니 약해져 버린 것입니다. 몸의 모든 기관과 지체를 자꾸 사용해야 합니다. 아낀다고 쓰지 않으면 둔해지고 약해지고 어두워집니다.
하나님의 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꾸 일을 해야 힘이 납니다. 일한 만큼 지혜도 생기고 능력도 생깁니다. 그런데 게을러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 그 은사를 도로 거두어 가십니다. 한 달란크 받은 사람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주신 것 위에다 자꾸 더 보태어 주십니다. 더 가져라 하시고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운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주신 이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손과 발을 움직이게 만들뿐 아니라 심장을 움직이게 만들고 폐를 움직이게 만들고 온 몸 구석구석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이렇게 운동을 해서 자꾸 움직이게 해주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뇌도 그렇습니다. 운동을 시켜야 합니다. 뇌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두면 기억력이 감퇴하고 심하면 치매가 옵니다. 계속해서 뇌를 사용해야 합니다. 뇌를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여러분, 성경을 암송하십시오. 뇌가 건강해집니다. 이렇게 온 몸의 부분 부분을 움직여 운동을 하는 것이 하나님 주신 건강의 원리입니다.
셋째는 적당한 휴식입니다.
여러분, 휴식이 하나님 세우신 창조질서라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쉬라고 밤을 만드셨고, 쉬라고 안식일을 만드셨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라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 일하고 하루는 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세우신 이 휴식의 질서를 지켜 갈 때 건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 40대 남성의 사망률이 세계 제 1위라고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굶어 죽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병들어 죽는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과로로 쓰러지고 있습니다. 과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신 휴식의 질서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휴식하지 아니하면 건강할 수 없습니다. 적당하게 쉬는 것이 하나님의 질서요 그래야만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쉬는 것도 주님의 일입니다.
넷째는 마음이 즐겁고 편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요소 다 잘 갖추어도 이것 없으면 절대로 건강할 수 없습니다. 건강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의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에 말씀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이 양약이라도 심령은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의 즐거움이 양약이라, 마음의 즐거움 이상의 좋은 보약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이 기뻐하며 행복해 하며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괴로워하며 질질 짜며 살도록 만드신 것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담이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원래 인생을 지으실 때 의도입니다. 그 원래 의도대로 기뻐해야 건강하고 기뻐해야 사람답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은 그 전부가 행복과 기쁨입니다. 중심이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근엄한 그런 모습을 떠올립니다. 잘못입니다.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생활을 잔치집에다 비유하십니다. 잔치집이란 기쁨의 집입니다. 그리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속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한 마디로 죄로 인해 잃었던 기쁨을 회복시키러 오신 분이었습니다.
여러분,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뜻이 나타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여기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이 기도보다 먼저요 감사보다 먼저입니다. 기쁨이 모든 축복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건강에 음식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만 음식도 기쁜 마음으로 먹어야 몸에 이롭습니다. 보십시오. 밥상이 들어오면 인상을 찌푸리고, 소화가 잘 안되어서 배를 만지고, 밥상 앞에서 앉아 하품을 합니다. 마지못해서 젓가락으로 끄적거립니다. 이래가지고 아무리 좋은 음식 골고루 많이 먹어도 건강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음식이 몸에 이롭습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즐거움으로 해야 건강에 좋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승부욕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지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습니다. 한 번은 만만한 사람과 시합을 했는데 졌습니다. 화가 나서 한 번 더 하자고 했습니다. 다시 했는데 또 졌습니다. 또 하자고 해서 하다가 그만 쓰러져서 세상 떠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건강하려고 운동하는데 운동하다가 죽었으니 얼마나 불행한 사람입니까? 경쟁심이 문제입니다. 경쟁심이 스트레스가 된 것입니다. 운동도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기쁨이 먼저입니다.
쉬는 것도 그렇지요. 즐거워야 쉬는 것이지 쉬는 것이 짜증나고 괴롭다면 쉬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워야 합니다. 만사가 즐거워야 합니다. 기쁜 마음, 즐거운 마음이 건강의 근본입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평균 7세 오래 삽니다. 왜 여자가 오래 사는지 아십니까? 황수관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살 이유가 없답니다. 고생도 여자가 더 많이 합니다. 여자들 나이 40만 넘으면 온 몸이 쑤신다고 합니다. 그렇게 온 몸이 쑤시면서도 살기는 남자보다 더 오래 삽니다.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잘 웃고 더 잘 울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요 확실히 여자들이 잘 웃어요. 제가 설교시간에 조금 우스운 이야기를 해도 여자들은 금방 웃습니다. 남자들은 딱 이렇게 해서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웃으면 피가 맑아지고 먼역활동이 활발해지고, 또 아주 막강한 항암물질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러니 웃으면 건강할 수밖에 없고 웃으면 오래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과학적인 이야기입니까? 뼈라는 것은 거저 단순히 몸을 바치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뼈 속에는 골수가 있고 이 골수에서 피를 생산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뼈가 마르면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이런 것들이 제대로 생산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재미있는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미국의 미시간 주의 배틀 크리크라는 곳에 있는 켈록 연구소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소 안에 예쁜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강아지를 사랑했고 귀여워했습니다. 강아지도 사람들을 보면 좋아하며 꼬리를 흔들곤 하였습니다. 실험실에서 그 강아지의 뼈 속에 있는 골수를 검사해 보았습니다. 골수는 아주 건강한 핑크색이었고 백혈구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루는 연구소 안에 특별한 지시 사항이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6주 동안, 누구도 강아지에게 미소를 짓지 말고, 친절한 말도 하지 말고, 절대로 사랑을 표시해 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강아지에게는 전과 똑같은 음식을 먹였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는 점점 풀이 죽었고 기운을 잃어갔습니다. 혼자 어두운 구석을 찾아가 꼬리를 감추고 엎드려 있곤 했습니다. 그런 후 다시 강아지의 골수를 조사해 보았더니, 이번에는 골수가 갈색이 되어 있고 백혈구의 수가 뚝 떨어져 있더랍니다. 근심이 말 그대로 뼈를 마르게 한 것입니다.
언젠가 [건강 다이제스트]지에서 이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화를 낼 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입김이 세어지고 거품도 생기지 않습니까? 그 입김을 받아서 영하 100도로 급랭을 시키면 액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같은 방법으로 웃는 사람의 입김도 액체로 만들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화를 낸 사람의 것과 웃는 사람의 것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화를 낸 사람의 침륜액은 고동색이나 검은색을 띠는 반면에, 기쁨으로 활짝 웃는 사람의 입김으로 만든 침륜액은 푸른색이나 흰색을 띄었습니다. 그리고 두 침륜액을 각각 실험용 쥐한테 주사해 보았더니 화를 낸 사람의 침륜액을 주사한 쥐는 2시간만에 죽어 버리고, 기쁘게 웃는 사람의 침륜액을 주사한 쥐는 더 활력 있고 생기 있게 지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화를 내고 스스로 독을 만들어 마시는 것입니다. 웃으며 기뻐할 때는 스스로 보약을 만들어 먹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즐거움이 양약입니다. 우리에게는 온몸이 달아오를 정도의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에서부터 솟아나는 기쁨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어디서 이 즐거움을 얻느냐는 것입니다.
이 삭막한 세상 어디에서 이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몇 가지만 생각해봅시다.
먼저 일 속에서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삽니다. 일은 우리의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하면서 기뻐해야 인생을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일하는 것이 고달프고 힘든 것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러분 내가 하는 그 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기뻐해야 합니다.
둘째는 더불어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혼자만 기뻐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못 가진 것을 자기가 꼭 가져야만 좋아하고,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면 배아파서 못 견딥니다. 특히 여자분들 중에는 애써 좋은 옷을 한벌 해 입고 나갔다가, 어쩌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옷 입은 것을 보면 다시는 그 옷을 입지 않는 사람 있다고 합니다.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비싼 옷이 비싼 이유가 한 벌밖에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고약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입은 옷을 다른 사람이 입었을 때 "야 좋구나 너도 입었구나 나도 입었다. 우리 함께 기뻐하자."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함께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할 줄 모르니 늘 배가 아픕니다. 함께 행복하며 함께 즐기는 것, - 여기 기쁨의 원리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은 주님과 그 사람과의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가장 기뻐할 일은 바로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가 주님과 혼인하는 것을 보고 내가 기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잔치집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는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서 잔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먼저 믿은 성도들은 처음 믿는 사람 한 분 한 분을 맞이할 때 정말 기뻐하고 그를 돕는 일이 즐거워야 합니다. 이것을 기뻐할 줄 모른다면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 한 심령이 회개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도 기뻐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기쁨으로 충만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교회의 모습입니다.
마지막 주님 안에서의 기쁨, 주님 주시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말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잔치를 베풀어 놓고 한 말이 아닙니다. 감옥 안에서 한 말입니다. 세상 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일에 쓰임 받습니다. 이대로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기뻐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 곳에서 기쁨이 샘솟고 있습니다. 이런 기쁨이 우리에게 넘쳐야 합니다. 구원 받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자유롭게 주님 섬기며 살고 있습니다. 이대로고 너무 행복합니다. 기쁨이 충많해야 합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십시다. 건강은 마음이 즐거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 기뻐하며 사십시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십시다. 일을 하면서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과 함께 기뻐하고 특별히 죄인이 구원 받는 것을 볼 때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말씀십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저희들에게 기쁨의 축복을 주시고 이 기쁨을 통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주신 기쁨을 소홀히 하고 세상의 헛된 기쁨을 찾았고 기쁨을 버려둔채 건강하기를 원했던 미련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 안에서, 주님 주신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주님 맡기신 일들을 통해 기뻐할 줄 알게 하옵소서. 남과 함께 기뻐하는 슬기를 주시고 죄인이 구원받는 것을 볼 때 기뻐하게 하옵소서. 이 기쁨을 통해 건강을 지키게 하시고 건강한 몸으로 다시 주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 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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