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배우다
칠월 초순 비겐 후 일주문을 향하여 천천히 걷는다.
자귀나무 꽃이 참 곱다. 작은 가지 끝에 금방이라도 가볍게 하늘을 날을 듯 꽃은 분홍색 명주실을 가지런히 잘라놓은 듯 멋들어지고 아름답다.
자귀나무, 전라도 방언으로 짜구나무 또는 짜구대나무라고도 하는 콩과의 큰키나무로 낮에는 활짝 피어 있던 잎이 저녁에는 수면운동으로 가만히 오므라들어 양쪽 잎사귀들이 꼬옥 껴안는다. 마치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껴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합환목, 합혼수, 야합수, 여설목이라고도 하는데, 산과 들에서 자라고 줄기가 굽거나 약간 드러눕는다.
시골들길이나 가로수, 공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귀나무, 꽃으로 분솔을 만들어서 연지 곤지 볼에 찍으면 곱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귀나무 꽃은 마음을 녹여 주는 아름다운 꽃이기에 그에 걸맞은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황소같이 힘이 센 '장고'라는 청년이 살았다. 그런데 그는 혼인이 늦어져 늘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덕길을 넘어가다가 자귀나무 꽃이 활짝 피어있는 집이 있어 꽃이 너무 아름다워 구경하다가 그 집 처녀와 눈이 맞아 혼인하여 살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장고는 술집 과부의 유혹에 빠져 며칠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슬픔에 젖어 있던 그의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백일기도를 성심으로 드렸다. 그 정성이 통했던지 백 일 째 되던 날 밤, 아내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언덕위에 피어있는 자귀나무 꽃을 꺾어다가 방안에 꽂아두라."하였다.
다음날 꽃을 꺾어다가 방안에 꽂아 두었더니 남편이 돌아왔고 꽃으로 인해 맺어졌던 부부의 인연을 떠올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 아내와의 사랑을 회복하였다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래서 나는 자귀나무와 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읊어본다.
자귀나무 꽃
//그이는/연분홍 꽃잎을 가슴에 피우는/여설목(如說木)/
숙명인 듯/밤마다 꼬옥 껴안은/합환(合歡)의 유정(有情)은/야합화(夜合花)로 피었다가/꽃잎 따라 잎도 떠난 세월/그리워라 모질게도/사랑으로 환생한 연(緣)이어!/
그래도 남은 눈물 있어/소쩍새 울적마다 방울진 이슬 되어/자귀나무 잎새마다 앉았다 가네.//
자귀나무 꽃을 보면
//자귀나무 꽃잎 위에/보시(布施) 중인 보살 님/아련히 떠있다/
미풍에도 살포시 날을 것 같은/가벼운 몸매에 청초한 그 모습,/금방이라도 실바람에/포르르 날아/극락 가는 길로 떠날 듯하다./무지갯빛/실낱같은 꽃잎 밟으며/마음의 밭에 씨를 뿌리는 종종걸음/
108염주 목에 걸고/자귀나무 꽃잎 위에서/하늘 저편 다리를 놓는다./
떡갈나무 잎 뒤집는 장맛바람 가는 길,/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피안의 경지로 드는/열반(涅槃)의 문턱에서,/어이 하리!/사랑하는 사람아!/
억겁(億劫)을 두고 윤회(輪廻)하며/뒤돌아보아야할 애처로운 연(緣)이여!/눈을 뜨면 자귀나무 꽃/그대로여라.//
조금 더 올라가면 편백(扁柏)나무가 있고. 흔히 파리똥나무라 부르는 한국보리수나무도 있다. 편백과 측백(側柏)의 구별 방법 등을 생각해본다. 잎이 손바닥을 펼친 듯 나를 바라보면 편백이고, 잎이 옆으로 하늘을 바라보듯 서 있으면 측백나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미당 서정주 선생의 ‘선운사 동구’라는 시비도 서 있었다.
//선운사 골째기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려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피지 않했고/막걸리 집 여자의/육자배기 가락에/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이 시는 6.25 직후에 선생이 선운사에 오셔서 주모와 술을 마시며 지었다고 전해진다.
바로 30미터쯤 올라가면 선운산가비(禪雲山歌碑)가 있다.
선운산가비 뒤에 있는 저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서해바다가 바로 발아래다. 백제의 여인들이 저 선운산에 올라 군에 간 남편이 제대하여 오시는가를 기다리며 부른 노래가 바로 선운산가다. 선운산가는 백제의 5대 가요중의 하나이며, 고려사악지에 전해 내려오는데, 선운산가, 방등산가, 지리산가, 무등산가, 정읍사가 바로 그것이다.
선운산가는 선운산에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보며 군인 간 남편이 오시는가를 기다리면서 부른 노래라면 방등산가는 고창읍 동쪽에 큰 산이 바로 방장산, 옛 이름 방등산이며, 장성과 경계를 이루고, 지리산과 연계되는 첩첩 산중 방장산 뒤에 백제 때는 산적들이 많이 살았고, 그 산적들이 밤에는 인근 가까운 곳으로 도적질을 나갔는데, 캄캄한 밤에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강취하고, 머리를 만져보아 여자이면 무조건 들쳐 업고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도적에게 잡혀간 젊은 여인들이 구원을 하러 오지 않는다고 남편을 원망하는 노래가 바로 방등산가이다. 정읍사는 전주 장에 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며 부른 노래다. 정읍사를 제외한 무등산가와 지리산가 모두 그 제목만 전해 내려올 뿐 그 내용은 안타깝게도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고창에는 백제의 오대가요 중 두 개의 가요가 전해 내려온다. 이 두 개의 가요 역시 고창의 자연에 동화(同化)된 문화이리라.
선운산가비를 지나면 바로 일주문이 우리중생을 반긴다.
속계의 자연에 흡수된 백제의 가요에서 배운 것을 뒤로하고, 불국정토(佛國淨土)의 말 없음에서 말 없음의 반야(般若)의 세계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