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 볶는 솜씨로 커피콩을 볶다
커피가 대세다. 이미 세계 무역교역량 2위자리를 차지했다. 지구촌 모두의 노래가 된 한국가수 싸이의‘강남스타일’역시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파라솔 밑에서 유머스런 표정으로 졸다가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여자 (...)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두 얼굴의 커피라는 절묘한 대비를 통해 여유와 바쁨이라는 현대인의 양면적 삶을 동시에 그려냈다.
몇 년전 일본불교 진언종(眞言宗)의 총본산인 고야산(高野山) 성지를 찾았을 때 일이다. 사찰 진입로를 따라 양쪽에 자리한 오래된 영탑공원 안을 걷다가 돌로 만든 커다란 커피잔과 마주쳤다. 다소 생경한 광경인지라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일본유명커피 회사인 UCC그룹에서 세운 위령탑이다. 함께 한 지인은 UCC의 '우에시마(上島)커피'는 그 역사가 환갑에 이르며, UCC는 캔커피를 세계최초로 개발한 회사라는 부연설명을 했다. 이끼 낀 전통 부도와 사각형이 주종인 비석의 숲 속에서 현대적 디자인의 둥근 커피잔 영탑은 또다른 이미지 공간을 연출했다. 그 틈 사이로 과거와 현재가 말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우리의 커피문화 역시 추종적 답습형을 벗어나 새로운 방법을 곳곳에서 모색하고 있다. 기존의 핸드밀(수동으로 원두를 가는 기계)에 만족하지 않고 동양식 멧돌로 갈거나 한약재용 절구를 이용하여 찧는 방법으로 맛과 향을 배가시킨다. 커피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려는 의지의 일환일 것이다.
강릉 현덕사‘커피 템플스테이’는 사발만 한 다완(차그릇)에 반쯤 채운 커피를 말차(抹茶분말녹차)처럼 두 손으로 감싸쥔 채 마시는 예법을 선보였다. 합천 해인사 일주문 근처에서 차(茶)문화원을 운영하는 해외파 바리스타 주인장은 가마솥을 사용하여 직접 볶은 원두라고 하면서 덤으로 한잔을 더 주었다. 주방의 솥 온도를 충분히 올리지 못한 까닭에 원하는 맛을 제대로 얻지 못했노라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노천의 부뚜막에 솥을 걸고 참나무 장작불을 이용한다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그는 숨기지 않았다.
하긴 원두 볶는 실력이나 옛날 할머니들의 깨볶는 솜씨나 알고보면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에도 온도와 시간의 절묘한 조화가 깨의 고소함을 좌우하는 노하우였다. 참기름을 짜는 용도와 깨소금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볶는 온도와 시간이 달랐다. 멀리서 소포로 부쳐온 커피콩은 가게에서 마신 원두에 비해 항상 볶은 정도가 약했다.
미루어 보건데 커피 역시 바로 먹는 것과 오래 두고 마실 것은 가공법에 차이를 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입품 일색이던 커피콩 볶는 기계의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도 원래 깨볶는 기계를 만들던 회사였다. 전업의 계기는 간단하다. 고장난 독일제 커피기계를 자체기술로 고쳐주다보니 그리된 것이었다. 깨 볶는 원리나 커피 볶는 이치는 매 한가지라 별다른 추가기술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쨋거나 결론은 깨를 잘 볶을 수 있는 아주머니라면 커피콩도 잘 볶을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금 확인했다고나 할까. 그 옛날 달마대사는 참선 중에 졸린 눈거풀이 너무 무거워서 그것을 잘라 앞마당에 던져버렸다. 얼마 후 그 자리에는 차나무가 돋아났다. 잎을 우려 마시니 잠이 달아났다. 이후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자들의 잠을 쫓아주는 커피열매가 찻잎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혀를 찼다. 하지만 대세는 도인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인지라 꾹꾹 참아야 했단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