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주鄧州 단하丹霞 천연天然 선사
어느 곳의 사람인지 모른다. 처음에는 유교를 배워서 과거를 보러
장안으로 들어갔는데, 여관에서 쉬다가 홀연히 흰 광명이 방 안에
가득한 꿈을 꾸었다. 이에 점치는 사람이 공空을 터득할
상서로움이라 해석하니,
때마침 어떤 선객禪客이 나서서 물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관리로 뽑히기 위해서 과거 보러 갑니다.”
“관리로 뽑히는 것이 부처로 뽑히는 것만 하겠습니까?”
“부처로 뽑히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선객이 대답했다.
“지금 강서江西에는 마 대사가 세상에 나타나셨는데,
거기가 부처를 뽑는 도량입니다. 당신도 그리로 가시오.”
그 길로 강서로 가서 마 대사를 보자마자 손으로 복두幞頭의
이마 부분을 치니, 마 대사가 돌아보면서 양구良久하다가 말했다.
“남악南嶽의 석두가 그대의 스승이다.”
바로 남악에 가서 앞의 뜻으로써 귀의하니 석두가 말했다.
“방앗간에나 가거라.”
대사가 절을 하고 물러나서 행자들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절차에 따라 부엌일을 3년 동안 계속했다.
어느 날 석두가 홀연히 대중에게 말했다.
“내일은 불전佛殿 앞의 풀을 깎자.”
이튿날, 대중과 아이들까지 제각기 낫을 가지고 풀을 깎았으나,
대사만은 대야에다 물을 떠서 머리를 감고 화상 앞에 꿇어앉았다.
석두가 이를 보고 웃으면서 머리를 깎아 주고,
또한 계법戒法을 설명해 주려고 하자
대사가 귀를 막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는 강서로 가서 다시 마 대사를 뵈었는데,
절을 하기 전에 바로 승당僧堂으로 들어가서
성승聖僧 승당 안에 모셔 놓은 본존상을 말한다.
의 목을 타고 앉았다. 대중들이 깜짝 놀라서 마 대사에게 알리자,
마 대사가 몸소 승당에 들어와 보고서 말했다.
“나의 제자로다. 천연天然스럽기 그지없구나.”
대사가 얼른 내려와 절을 하면서 말했다.
“스님께서 이름[法號]을 내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천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 대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석두에서 왔습니다.”
“석두의 길이 미끄러운데 넘어지지는 않았는가?”
“넘어졌다면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지팡이를 짚고 사방을 다니다가
천태산天台山의 화정봉華頂峰에서 3년을 머문 뒤에 여항餘杭의 경산徑山에 가서
국일國一 선사를 뵈었다. 당나라 원화元和 때에는 낙경洛京의 용문龍門 향산香山에 가서
복우伏牛 화상과 막역한 벗이 되었다. 나중에 혜림사慧林寺에 있을 때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대사가 목불(木佛:나무 불상)을 패서 땔감으로 쓰자 사람들이 비난을 하였다. 이에 대사가 말했다.
“나는 태워서 사리를 얻으려고 했다.”
사람들이 말했다.
“나무 불상에 어찌 사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나를 꾸짖는가?”
어느 날 대사가 충忠 국사를 뵈러 가서 먼저 시자侍者에게 물었다.
“국사께서 계시는가?”
“계시기는 하나 손님을 만나시지 않습니다.”
“너무 깊고 먼 사람이군.”
“부처의 눈으로 엿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용은 용의 새끼를 낳고, 봉은 봉의 새끼를 낳는구나.”
국사가 잠에서 깨어나자 시자는 앞에 있었던 일을 보고했는데,
국사가 시자에게 20방망이를 때려서 쫓아냈다.
나중에 단하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남양 국사란 이름이 헛되지 않았구나.”
이튿날 절을 하러 가서 국사를 보고는 방석을 펴니
국사가 말했다.
“필요치 않다. 필요치 않다.”
대사가 물러서니,
국사가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
대사가 다시 앞으로 다가서니,
국사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대사가 국사를 한 바퀴 돌고 나가 버리자, 국사가 말했다.
“성인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을러지니,
30년 뒤에는 이런 사람도 만나기 어려우리라.”
대사가 방龐 거사居士를 찾아갔다가,
그의 딸이 나물 캐는 것을 보고서 물었다.
“거사께서 계시는가?”
딸이 광주리를 놓고 손을 모으고 섰다.
대사가 또 물었다.
“거사께서 계시는가?”
딸이 다시 광주리를 들고 떠났다.
원화元和 3년에 천진교天津橋 위에 누웠는데, 때마침 유수留守인 정공鄭公이 나왔다가
그를 꾸짖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관리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사는 느릿느릿 말했다.
“일 없는 중이외다.”
유수가 기이하게 여겨서 비단 피륙과 옷 두 벌을 받들어 올리고,
날마다 쌀과 밀을 바치니, 이로부터 서울 장안이 흔연히 귀의했다.
원화 15년 봄이 되자, 문인들에게 고했다.
“나는 이제 산속[林泉]에서 여생을 마칠까 하노라.”
이때에 문인인 영제令齊와 정방靜方이 남양의 단하산丹霞山을 점찍어서 암자를 짓고 섬기니,
3년 동안 학인들이 3백 명이나 모여서 큰 선원을 이루었다.
대사가 상당하여 말했다.
“그대들이여, 집안의 하나의 신령스런 물건을 절실히 보호하라.
그대들이 이름을 짓거나 모양을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다시 어찌 천거되고 천거되지 못함을 말하겠는가?
내가 지난 날 석두 화상을 뵈었더니, 그도 역시 이 일을
잘 보호하라고 가르치셨으나, 이 일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은 제각기 하나의 앉을 자리가 있거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랴? 참선은 그대들이 알 수 있는 것이라 하겠지만,
부처야 어찌 이룰 수 있겠는가? 부처라는 한 글자는 영원히 듣고 싶지 않다.
그대들은 잘 살펴보라. 선교방편善巧方便과 자慈․비悲․희喜․사捨는
밖으로부터 얻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집착할 것도 아니다.
선교는 문수文殊이고
방편은 보현普賢인데,
그대들은 또 무엇을 찾아 헤매는가?
경經에 의존하지도 말고,
공空에 떨어지지도 말라.
요사이의 학자들이 소란하게 구는 것은
모두가 참선하고 도를 묻고 따지는 일이지만,
나의 이곳에는 닦을 도도 없고 증득할 법도 없다.
한 번 마시고 한 번 먹음에 각기 스스로의 분수가 있으니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곳곳마다 이러함이 있으니,
만약 알아채기만 한다면 석가 그대로가 범부이리라.
그대들 스스로가 잘 살필 것이니,한 소경이 뭇 소경을 이끌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며,
말판 색깔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두운 한밤중에 주사위 놀이[雙陸]를 하는 것과 같은 짓을 하지 말라.
어찌 하여야 무사하겠는가. 진중하라.”
어떤 스님이 참문하러 왔다가 산 밑에서 대사를 보고 물었다.
“단하산은 어디로 갑니까?”
대사가 산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새파랗게 아득한 곳이다.”
“단지 그것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진정한 사자의 새끼라면 한번 건드림에 얼른 움직인다.”
대사가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잤는가?”
“산 밑에서 잤습니다.”
“어디서 밥을 먹었는가?”
“산 밑에서 먹었습니다.”
“그대에게 밥을 주는 사리闍梨가 눈을 갖추고 있던가?”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장경長慶이 보복保福에게 이야기하고 묻기를 “밥을 주어 먹이면 감사를 받을 분수가 있거늘,
어째서 눈을 감추지 못했을까?”라고 하니, 보복이 말하기를 “준 놈이나 받을 놈이 모두 당달봉사로세”라고 하였다.
장경이 말하기를 “그 기용機用을 다할 때에는 어찌하겠는가?”라고 하니, 보복이 말하기를
“나를 눈멀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현각은 말하기를 “말해 보라. 장경은 단하의 뜻을 밝혔는가,
아니면 자기살림을 활용했는가?”라고 하였다.]
대사가 장경長慶 4년 6월 23일에 문인들에게 말하였다.
“목욕물을 데워라. 나는 떠나야 한다.”
그리고는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신을 신은 뒤에 한 발을
내딛었는데, 발이 미쳐 땅에 닿기도 전에 입적하니 수명은 86세였다.
문인들이 돌을 다듬어서 탑을 세우니, 시호를 지통智通 선사라 하고 탑호를 묘각妙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