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갈 만한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 없나요?”라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추천하는 곳이 있다. 전남 곡성의 진산 동악산(動樂山·736.8m)이다. 곡성에서 가장 높은 산은 건너편의 통명산(通明山·764.8m)이지만 이렇다 할 계곡도 없는 평범한 육산인 반면, 동악산은 정반대다.
온통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임에도 커다란 계곡을 세 곳이나 품고 있다. 동악산 북쪽 기슭에는 청계동계곡, 중앙에는 청류동계곡, 남쪽에는 원효계곡이 있다. 공통점은 암반계류다. 즉 비단옷감을 길게 펼쳐 놓은 듯한 암반 위로 계곡물이 흐르며, 낙차가 큰 폭포와 소가 즐비하다.
-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이 도림사계곡으로 알려진 청류동계곡이다. ‘삼남제일 암반계류’로 불릴 정도며 계곡 자체가 지방 기념물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도림사까지 1km 계곡 아홉 굽이에는 수많은 묵객들이 암반에 새겨놓은 각자(刻字)가 또 다른 볼거리다. 100여 명이 앉아도 될 만큼 진짜 마당 같은 암반부터 다양한 크기의 암반이 널려 있다. 여기서 미끄럼 타기를 즐길 수도 있어 한여름 알탕 산행에 제격이다. 천년고찰 도림사에서 계곡 상류 쪽으로 폭포가 두어 개 더 있다.
원효계곡은 홍색장석 맥반석으로 이루어진 계곡이다. 어떤 사람들은 “월출산 같은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산”이라고 말한다. 맥반석은 정수 기능이 있고 음이온과 원적외선이 방출되어 피로 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은 교회 수련원으로 바뀌었지만 과거 계곡 입구에 맥반석 찜질방이 있었던 것도 무관하지 않다. 원효계곡은 얼마 전까지 동물의 길은 있어도 사람의 길은 없는 곳이었다. 영화 제목처럼 ‘동막골’이라고도 불리며 삵이 어슬렁거린 흔적과 원시 야성이 살아 있는 청정지역이다.
- ▲ 사수폭포로 내려서기 직전의 암릉지대. 멀리 남원 문덕봉,고리봉능선이 보인다.
- 진입로가 다소 협소해 산꾼들 외에는 찾지 않는 곳이었지만 길을 정비한 이후 피서명당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행락객들은 대부분 하류 쪽에만 머문다. 상류로 올라가야 계곡도 넓고 줄줄이 늘어선 8개의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높이가 20m에 이르는 수직폭포, 설악산 선녀탕 같은 시퍼런 소와 와폭 등이 있는 비경지대다.
청계동계곡은 섬진강과 맞닿아 있다. 1.5km에 달하는 계곡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양대박 장군이 머물던 곳으로 그의 호 청계(靑溪)에서 계곡 이름이 유래한다. 계곡 주변은 울창한 소나무가 충분한 그늘을 만들고 있으며 바닥이 완만하고 폭도 넓어 가족형 피서지로 알맞다. 조용히 입소문 난 청계동계곡은 크게 율사골, 사수골, 묵방골로 나뉘며 그중 가장 큰 계곡인 사수골을 청계동계곡이라 부른다. 깎아지른 바위 가운데로 흐르는 계곡은 사수폭포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수폭포는 좌우 시야가 훤히 뚫려 있어 경치가 으뜸이다. 폭 30여 m 높이 10m의 담벼락 같은 암반에서 힘차게 물줄기가 쏟아진다. 아래 소는 깊지 않아 20명 정도가 물놀이하기에 좋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폭포 위쪽은 또 다른 별천지다. 매봉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긴 계곡은 세찬 물소리 때문에 고함을 질러도 모를 정도로 깊다. 암반이 끝나는 지점에서 능선으로 오를 수 있고 사수폭포 옆에서 곧장 능선에 진입할 수도 있다.
- ▲ 1 말똥 모양의 암릉. 동악산에는 동물 모양의 이채로운 바위가 많다. 2 청계동계곡의 사수폭포. 폭포 위쪽으로 깊은 계곡이 이어진다.
- 원효계곡의 음습함에 온 몸이 오싹
알탕산행으로 추천하는 코스는 청계동계곡을 들머리로 동악산과 형제봉을 거쳐 원효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청계동계곡 들머리는 섬진강변에 닿아 있다. 마을 청년회에서 관리하는 매표소 근처에 음수대와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청계 양대박 장군 기념비와 모정을 지나 사수폭포까지는 커다란 바위들이 있어 계곡미를 돋보이게 한다.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20분만 걸으면 사삼교, 작은 보를 지나면 수직폭포, 분지 형태의 넓은 암반 위 사수폭포가 있다.
등산로는 계곡을 건너면서부터 능선을 가파르게 오르게 된다. 25분가량 데크와 바위를 헤집고 오르다 말똥 모양의 암봉에 올라서야 제대로 조망이 터진다. 북쪽으로 남원 고리봉 문덕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 ▲ 1 원효계곡은 야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처녀지다. 2 동악산 정상 직전의 데크길. 길이 복잡하므로 이정표를 세심하게 숙지해야 한다.
- 매표소에서 출발해 3.3km 지점의 삼거리에서 첫 번째 이정표를 만난다. ‘동악산 1.5km’ 방향으로 직진해야 한다. 동악산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에 들어서면 산세가 복잡하고 크다. 자칫하면 길을 잃을 염려가 있어 이정표를 잘 살펴야 한다.
1.3km 더 가면 712m봉 삼거리에 이정표와 삼각점이 있다. 여기서 가파른 철 계단을 타고 동쪽으로 10여 분(0.5km) 가면, 높다란 돌탑과 무선탑이 있는 동악산 정상이다. 사방으로 막힘없는 최고의 조망이다. 동쪽으로 지리산 만복대와 노고단, 남쪽으로는 화순 백아산과 모후산, 서쪽으로 설산과 무등산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원효계곡으로 하산하려면 다시 712m봉 삼거리로 되돌아와야 한다. 이후 큰 기복 없는 산길 따라 2.4km 가면 배넘어재다. 커다란 굴참나무 때문에 시야는 막히지만 그늘이 좋은 산길이다. 동악산은 배넘어재를 가운데로 두 덩어리가 남북으로 놓여 있는 형국이다. 배넘어재 남쪽은 형제봉(750m)을 우두머리로 또한 훌륭한 산세가 펼쳐진다.
배넘어재에서 1.9km 가면 헬기장이다. 헬기장 도착 직전 갈림길이 있다. 대장봉(744m)과 헬기장으로 길이 나뉜다. 올라도 되고 곧장 헬기장으로 가도된다. 헬기장 옆으로 우뚝하게 솟아 있는 곳이 형제봉이다. 형제봉과 대장봉은 두 봉우리가 나란히 있어 동봉과 서봉이라 부른다.
- ▲ 사수폭포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사수폭포는 사철 수량이 풍부하며, 청계동계곡의 백미라 할 수 있다.
- 형제봉과 대장봉 사이의 헬기장에서 원효계곡까지는 무려 4km에 달한다. 어쩌면 동악산의 마무리 포인트는 이곳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좋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원시림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생태계의 모습들이 이런 곳이구나 할 정도로 고요하고 음습하다.
단독산행보다는 4인 이상 그룹산행 하기를 권한다. 마른계곡을 따라 2km 정도 내려가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시작된다. 8개의 폭포는 암반계류가 빚어낸 걸작품들이다. 보는 눈도 없다. 얼음장물에 땀을 씻고 맥반석 암반 위에 눕는다면 산의 기운이 충만함을 느낄 것이다.
- 곡성 동악산
737m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 교통 •
서울에서 곡성까지 KTX 1일 2회 운행. 용산역에서 새마을호 1일 4회 운행, 4시간. 무궁화호 1일 9회 운행, 4시간30분. 버스는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곡성으로 바로 가거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남원까지 와서 곡성으로 갈 수도 있다. 남원에서 곡성까지 버스 수시 운행, 30여 분. 운행 횟수가 가장 많은 광주 광천터미널을 거쳐 곡성까지 오는 방법도 있다. 청계동계곡 입구까지는 곡성 개인택시(061-363-6666)를 이용하는 것이 수월하다.
• 숙식(지역번호 061) •
곡성 기차마을의 제일식당(363-2955)은 백반으로 소문난 집이다. 1인분 7,000원이면 14가지 이상의 반찬이 수라상처럼 나온다. 섬진강을 끼고 있는 곡성의 일미는 참게탕이다. 깊고 얼큰한 맛이 일품이다. 압록 유원지 인근에 참게탕집이 밀집되어 있다. 청솔가든(362-6931)과 별천지가든(362-8746)이 유명하다.
• 볼거리•
곡성 기차마을은 폐선구간과 곡성역을 관광지화해 지금은 전국적인 명소로 탈바꿈했다. 장미공원, 기차카페, 요술랜드 등 다양한 테마로 구성되어 있고, 추억 속의 증기기관차를 탈 수 있다. 어른 3,000원, 어린이 2,500원. 섬진강변은 자전거, 카누, 드라이브, 캠핑 등 레저의 메카다. 가정역까지 달리는 레일바이크, 심청마을, 섬진강도깨비마을도 많이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