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만한 물가가 있는 관포교회에서 드리는 새벽이슬 같은 이야기 (주일저녁예배)
성령님이 임하시면
설교 : 조용안 목사
날짜 : 2020. 9. 26.
본문 :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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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조용안 드림
복음 전도는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이스라엘의 회복, 로마로부터 독립이 더 급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 시급한 과제를 제시합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땅 끝까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관심은 종말의 시기가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한 복음 전파에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오직 성령님의 권능과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열방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때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심판주로 이 땅에 재림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리에서 부활의 증인으로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첫째, 복음을 위한 권능
본문 8절(표준새번역)에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역개정성경에는 “오직”으로 표준새번역에는 “그러나”입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 회복이라고 동문서답할 때 예수님은 “그러나” 다시 한번 확실한 예수님의 비전을 선포하십니다. 증인이 되려고 하면 반드시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권능을 받으려면 성령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권능’은 세상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능력도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할 것이요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오! 이 기쁨 주님 주신 것이라고 감격의 찬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령님의 불이 꺼진 찬송은 세월아 네월아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정말 고생입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정말 괴롭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찬송은 뜨거워서 펄펄 끓습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똑같은 설교를 듣는데도 별 감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며 반응이 다르고 눈빛, 언어, 생각이 다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화형당하면서도 찬송합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했던 손양원 목사님, 이런 능력, 이런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5, 59-60). 사랑하며 용서할 수 있는 능력, 원수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 능력은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성령님을 통한 권능은 불신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권능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18-20). 사마리아의 시몬처럼 돈과 이 권능을 바꾸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창한 말솜씨도 없던 베드로를 통해 3천 명, 5천 명, 남녀의 큰 무리,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회개하고 주께로 나오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성령님의 권능은 전도하기 위한 구체적인 능력입니다.
둘째, 복음의 증인
본문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임하신 목적은 모든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증인’은 순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순교가 각오되지 않으면 바른 증언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훌륭한 증거자였던 스데반, 야고보, 베드로, 바울 그리고 수많은 복음 전도자들은 순교로서 증언을 마쳤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성령님의 권능을 받고 복음을 증언했던 바울은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서 삶에 하나하나 써 내려가는 삶을 살려면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은 사도행전 핵심 요절입니다. 주동사가 2개가 나옵니다. 권능을 받고 또 하나는 증인이 되리라입니다. 지명은 4곳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입니다. 행 1장에서 8장까지는 예루살렘에 복음이 전해집니다. 그다음은 온 유대 그리고 13장부터는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집니다. 예수님은 명령을 주시면서 그들이 살고 있는 구체적인 지명을 언급하심으로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지금 현재 내가 처한 이 세상에서 구체적인 증거의 삶을 오늘부터 사는 것입니다. 땅 끝 선교는 예루살렘부터입니다. 내 가정부터 시작이라고 하십니다. ‘되리라’는 되어라가 아닙니다. ‘되어라’하면 내가 되고자 힘써도 인간의 능력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되리라’는 성령님께서 권능을 내게 입히시면 증인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롬 1:16). 성령님이 주장하시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부끄럽지 않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살려주는 일이므로 부끄럽지 않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비전
본문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전은 온 인류를 대상으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리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라고 하는 제자들의 정치적인 욕망도 명예도 물질도 꿈이 될 수 없습니다.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2-33).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도 성도가 가져야 할 진정한 목적이 아닙니다. 내가 잘됨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사도행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사도행전을 꿈꾸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 전함으로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온 세상 위하여 나 복음 전하리 만백성 모두 나와서 주 말씀 들으라 죄 중에 빠져서 헤매는 자들아 주님의 음성 듣고서 너 구원 받으라 전하고 기도해 매일 증인 되리라 세상 모든 사람 다 듣고 그 사랑 알도록” 다른 사람이 부르니까 한번 불러본 찬송입니까? 아니면 나의 신앙고백입니까? 주기도문에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은 일용할 양식을 구함보다 먼저입니다. 예수님의 비전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복음으로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전으로 성도에게 주신 사명이요 삶의 목표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세상 사람들은 인간이 주인 된 세상을 살지만 그리스도인은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 자리까지라도 살아도 죽어도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본받으라고 하십니다.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역사를 위하여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전을 위한 약속입니다.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으면 사도행전의 역사가 우리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예수님의 비전을 가진 자는 경주하듯이 주를 바라보고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태도는 어슬렁거리며 따라가는 행동이 아닙니다. 운동장에 육상선수처럼 직진 인생이어야 하며, 투쟁, 싸움, 침노하듯이 달려야 합니다. 세상은 성공해도 인생에 망한 사람은 많습니다. 참된 승리는 예수님을 닮아 영생으로 이끄는 비전을 가지고 십자가를 잘 질 때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비전을 닮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묵상(하가)'은 깊이 생각하다,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이 말씀 앞에서의 내 모습이기 원합니다.
댓글은 사귐입니다. 댓글은 영의 생각입니다. 댓글은 믿음 생활의 동력입니다. 말씀댓글에 참여하시면 말씀의 풍성함이 더하여집니다. |
@ 아멘.
@ 주일 말씀을 듣고 말씀, 댓글 일기를 쓰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명기 33:29).~♡♡
@ 복음을 위한 권능.
기쁨과 평안이 임한 제자들처럼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뜨겁게 펄펄 끓는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겠습니다.
@ 복음의 증인.
성령이 임하신 목적은 복음의 증인됨이었기에 내 삶의 현장에서 오늘부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 예수님의 비전.
예수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되어 어슬렁거릴 것이 아니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새겨듣고 사도행전의 성령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한 주가 되길 원합니다.
복음 전도가 부끄러우면 성령이 임하지 못한 것이고 부끄럽지 않으면 성령 충만함입니다.
나의 모습이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령 받기를 사모하겠습니다. 성령님 나의 열정을 뜨거움으로 회복시켜주십시오.
복음의 씨앗을 열심히 뿌리며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내가 서 있는 곳에서부터 성령의 역사로 권능을 받고 증인의 삶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기 위해서는 성령 안에 거하는 삶 되길 원합니다.
@ 성령께서 주시는 권능, 평안을 받아 내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한 주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령이여 임하소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복음의 증인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비전이 나의 비전 되게 하시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전력 질주로 골인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이방인들이 구하는 생각을 하기보다
주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성령님 임하길 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