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선박은 부지런히 중국으로 인삼을 실어 날랐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미국이 직접 인삼 수출에 나서게 되자 큰 타격을 받았다. 인삼은 그동안 영국이 중국으로 수출했던 주요 상품으로 큰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동인도회사는 북미삼의 물량 공세가 결국 중국 시장에서 인삼 가격의 하락을 초래하리라고 내다봤다. 동인도회사의 판단은 정확했다. 북미삼의 가격은 중국 시장에서 폭락했음에도 미국은 계속 인삼을 중국으로 가져왔다. 중국에서 인삼을 팔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때 중국물품을 사오면 큰 수익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19세기 들어서도 미국에서 인삼은 여전히 중요한 생산물이자 수출품이었다. 북미 지역에서의 인삼 해외수출은 18세기 초부터 북미삼이 발견되었을 때부터 주로 모피무역상들이 전담해왔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인삼은 미국 모피회사가 함께 전담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한국에서 전매제의 영향으로 담배와 인삼이 하나의 구성단위가 되었듯이 미국에서는 모피와 인삼이 한 쌍을 이룬다. 미국이 북미삼을 중국으로 직접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인삼 무역에서 영국은 미국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운송비로 인해 가격차가 크게 벌어진 탓이었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삼 무역에서 퇴출되었다기보다는 자발적으로 손을 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영국이 아편 무역을 활성화하면서 인삼보다 큰 이익이 나는 아편에 집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선회했다는 것이다. 영국이 미국의 인삼 수출을 의식했던 데는 미국의 팽창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미국의 서부개척이 완성되고 서부 해안을 따라 도시가 건설되는 한편,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멀리 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중국으로 향할 수 있는 지름길을 얻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서구의 신문기사에서 한국 관련 기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한국에 대한 소개에서 정치.경제.지리.문화와 더불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인삼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인삼은 자연삼이 아니라 재배삼이다. 재배삼은 야생삼에 비해서 약효는 떨어지지만 좋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가 나왔던 것은 한국의 인삼 재배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중국에서 야생삼이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명대에 중국의 인삼은 이미 고갈되었고,청은 봉금 정책을 통해 만주의 인삼을 강력히 통제했는데 그마저도 고갈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영국은 한반도 침탈과 대륙 진출을 꿈꾸는 일본에 심각한 경계심을 드러내곤 했다. 일본을 방문한 영국인들은 일본의 근대화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며 광산과 공장 등을 돌아보았다. 1871년 일본에 주재하던 영국 외교관은 일본에서 인삼 가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외교관은 인삼 가공 과정을 세세하게 적은 보고서를 올렸고 ‘Times’지는 그 내용을 기사화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직후부터 외국 신문에서는 한일 간 무역의 불평등성을 지적하는 기사가 다수 등장한다. 이런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주제는 인삼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통해 인삼 수출을 강제한다고 비판하는 내용이 기사의 요지였다. 일본은 자본력을 앞세워 개성의 인삼을 손에 넣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