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國立古宮博物館, National Palace Museum of Korea)은 궁중유물의 연구·조사·수집·보관 및 전시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 문화재청의 소속기관으로, 조선 왕조 500년을 거쳐 대한제국까지의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 간직한 전문 발물관이다. 또한 조선(朝鮮 1392-1897) 왕실 및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1910) 황실과 관련된 유물을 보존, 전시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순종황제 어차(좌)와 순정효황후 어차(우)
순종(재위 1907-1910)과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1894-1966)가 탔던 어차로, 순종황제의 어차는 미국의 제너럴모스터가, 순정효황후의 어차는 영국의 다임러사가 제작하였다. 차체에는 황실 문장인 황금 오얏꽃 장식을 붙였고, 내부에는 오얏꽃이 수놓인 황금색 비단으로 꾸며 황실 어차로서 위엄과 화려함을 갖추었다.
황칠어좌
이 어좌는 조선시대 왕의 붉은 색 어좌와 달리 대한제국기 황실을 상징하는 황색 칠로 제작되었다.
고종황제 어진
근대기 황실 궁궐 내부 모습
대한제국기를 전·후해서 궁궐 내부는 프랑스, 영국, 중국, 일본 등에서 수입한 의자, 탁자, 커튼, 카펫 등의 가구와 장식용품으로 꾸며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가구와 생활용품 대부분은 대한제국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무늬로 장식되었다.
경운궁 현판
덕수궁의 옛이름인 경군궁의 현판은 고종의 어필로 경운궁의 즉조당에 걸려 있었다.
근대기 황실 식기
현재 남아 있는 근대기 수입도자기들은 대부분 일본의 노리타케와 프랑스 삘리뷔 등의 자기제작사에 황실용으로 주문한 것으로 황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파도무늬 욕실용품
황실에서 사용되었던 백자 욕실용품 세트로 , 발을 씻는 욕조, 세수용 물병과 대야, 오물수거 통으로 되어 있다.
일월오봉도와 어좌
일월오봉도는 산봉오리, 해, 달,물, 소나무와 같이 왕의 덕을 기리고 상징하는 주제로 구성된 병풍으로, 궁궐 정전의 어좌 뒤편이나 왕의 초상인 어진 주변, 임금이 자리하시는 곳에 펼쳐 왕권을 상징하고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다. 어좌는 궁궐의 정전과 편전의 가운데 위치하여 왕이 앉아 백관의 하례를 받고 조회를 행하며 집무를 하는 좌석을 말한다.
고종황제 어새
고종황제가 사용했던 대한제국의 국새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침탈하려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각국에 보내는
비밀 친서에 사용하였다.
어보와 금책
인원왕후의 금보
숙종의 비 인원왕후가 왕비로 책봉될 때 만든 어보로, 인원왕후는 인현왕후가 승하한 다음 해인 1702년 숙종 28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국왕의 면복
국왕이 입는 최고의 예복으로 즉위식과 비를 맞는 가례, 종묘 제례와 조회, 정조에 착용
하였다.
면류관
태조임금 초상
고종의 명으로 19세기 도화서의 화원인 종중묵이 맡아 그린 것으로, 익선관과 청색 곤룡포 차림으로 정면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 조선왕조의 창업자인 태조(재위 1392-1398)의 반신상이다.
원종어진
1923년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왕으로 추존된 조선왕조 16대 왕 인조(1623-1649)의 생부로, 왕자군만 사용할 수 있었던 백택 흉배가 달린 흑단령에 사모를 쓰고 교의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어진이다.
순종황제 초상
대한 제국 2대 황제인 순종(1907-1910)을 그린 전신상으로, 황제국의 예에 따라 면복차림인 12류관 12장복을
갖추고 있으며, 얼굴은 순종황제의 군복 차림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선원록
왕실족보로 국가에서 관리하는 왕의 친인척에 관한 인적 사항을 조사하여 기록한 것이다. 시조인 이한부터
태종의 직계만을 수록하고 있다.
정조의 화성행차 그림
정조가 1795년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사도세자의 묘소 현륭원이 있는 경기도 화성에 참배
한 후 개최한 행사 장면을 여덟 폭에 나누어 그린 병풍이다.
궁궐지
조선시대의 궁궐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이다. 숙종 대의 원본을 헌종 대에 증보한 것과 순종 대의 편찬본이 전하고 있으며, 각 전각별 위치와 그곳에서 평쳐진 중요한 정치·문화적 사건들을 기록하였다.
동궐도(복제)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궁궐그림으로, 창덕궁과 창경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 '동궐(東闕)이라 했다. 궁궐 각 전각은 물론 다양한 설치물과 조경을 자세하게 묘사해 당시 궁궐의 모습을 잘 담고 있다.
당가 천장 장식
당가 내부의 천장에는 왕의 존엄을 상징하는 동물인 용이나 봉황을 조각해 부착했다.
잡상
잡상이란 기와지붕 위 추녀마루에 흙으로 빚어 올린 작은 장식기와로 궁궐의 재앙을 막아주기를 기원하며 만든 것이다.
경회루 연못 출토 청동용
1997년 경복궁 경회루 연못의 준설 작업 도중 출토되었다. <경회루 전도>에 의하면 경회루는 불을 억제하기
위해 <주역>의 원리에 따라 지어졌다고 하는데, 화재방지를 위하여 청동으로 만든 용 두 마리를 연못에 넣었
다고 한다.
'수'자를 새긴 육각형 은판
경복궁 근정전 중수공사 때 상량문과 용그림을 그린 부적 등과 함께 발견되었다. 각 모서리마다 육각형을 서로 붙이면 세 개의 '수水'자가 모여 넓은 물의 모양을 나타내는 '묘淼'자가 되는데, 화재가 나지 않기를 기우너하는 뜻으로 만든 것이다.
영친왕 곤룡포
곤룡포는 1444년(세종26)부터 조선 말기까지 평상시 집무할 때 착용하엿던 의복이다.
영친왕비 적의
적의는 조선시대 최고 신분의 여성을 위한 복식으로 조선말기까지 궁중 대례복으로 사용
되었다.
영친왕비 대삼작노리개
산호·쌍나비·불수를 주제로 만든 노리개 세개를 하나로 꿰어 옷 위에 착용하는 장신구다. 궁중에서 왕비의 대례복에 착용하였다.
쇠뿔장식함
연잎 모양 큰 벼루
조선왕실에서 아용하던 연잎 형태의 벼루로 목제 뚜껑을 작추고 있는데 뚜껑 윗면에는 구름 속을 나는 다섯 마리의 용이 자개로 장식되었다.
비단 바른 책장
배나무로 만든 열개를 제외한 전면에 비단을 발라 만든 책장이다.
자경루(복원)
조선시대 왕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각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주로 해시계와 물시계를 이용하였는데, 트그히 물시계는 물 증가량 또는 감소량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24시간 작동이 가능하였다. 자경루는 세종 임금의 명으로 장영실이 완성하엿으며, 1434년 경회루 남쪽 보루각이라는 전각에 설치하여 국가의 표준시계로 삼았다.
오목해시계
청동으로 만든 반구형의 해시계로 '솥' 모양의 '해시계'라는 뜻으로 양부일구라고 불렀다.
고종·명성황후 가례도감의궤
고종(1852-1919)과 명성황후(1851-1895)의 혼례 과정을 기록한 의궤로, 혼례의 전 과정과 구체적인 절차를 비롯해 각종 기물들의 규격, 물품의 종류와 수량, 관청 간의 업무 협조 과정 등 가례의 준비와 진행에 대한 모든 사항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연
조선시대 대비, 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이 행차 때 탔던 가마로, 지붕, 몸체, 가마체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각각 분리할 수 있다.
가교
조선시대 왕, 왕세자 혹은 왕실 어른이 장거리 행차 때 탔던 가마로, 가마채를 말의 안장에 연결하여 두 마리의 말이 앞뒤에서 끌고 가는 형태다. 주칠을 한 몸체는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 다양한 길상문(吉祥文)을 새겼고, 창은 겹창으로 지붕에서부터 검은 비단 휘장을 내려 창문을 가렸다.
청룡기
청룡기는 조선시대 국왕의 의장에 사용되던 오방기(五方旗) 중 하나로 동쪽을 상징하는 청색이
사용된 깃발이다.
황룡기는 조선시대 국왕의 의장에 사용되던 오방기(五方旗) 중 하나로 중앙을 상징하는 황색
깃발이다.
정축기
대한제국 시기에 왕이 행차할 때 사용된 의장기로 부적문을 그린 육정기 중 하나이다.
철종국장도감의궤
1863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한 철종의 국장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의궤로, 국장의 진행 과정과 소요 제정,
인력의 동원, 사용한 제기 및 의장 등 다양한 정보를 수록하였다.
종묘친제규제도설 병풍
종묘 정전과 영녕전의 배치, 연중 종묘에서 행하는 여러 제례의식 및 제수와 제기의 배치를 가각 그림으로 그리고 그 아래에 관련된 내용을 글로 쓴 8폭 병풍이다.
종묘 신실
종묘는 하나의 칸을 여러 신실로 나누어서 왕과 왕비의 신주를 함께 모신 곳으로, 정전에는 19개의 신실에 신주
49위가, 영녕전에는 16개의 신실에 34위가 모셔져 있다.
출처: 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