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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 성령강림절 후 스물일곱 번째 주일예배
성경: 엡5:22-31절(신)
제목: 큰 결혼과 작은 결혼(나경수 목사)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무촌)인 남편과 아내의 부부관계는 가장 약한 관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루에 세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헤어지는 추세이며,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결혼과 가정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부부관계가 이렇게 약한 관계일까요?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될 정도로 아주 쉽게 깨어지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그런 관계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창2:24절을 인용하시며(마19:5), 그 결과를 선언하신 말씀인 마19:6절입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이처럼 주님은 하나님이 부부관계를 하나의 몸으로 창조하신 것으로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가장 강한 관계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구약성경은 하나님과 그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호세아의 부부관계로 비유하며, 심지어 결혼언약으로도 표현합니다(겔16:8-14). 호1:16-2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종말)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이처럼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을 그의 영원한 결혼으로 설명할 정도로 우리의 부부관계(결혼언약)는 아주 소중하며 강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창2:24절을 인용하는 오늘 본문도 그의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교회의 관계(영원하고 큰 결혼)에서 아내들과 남편들(작은 결혼)에게 모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부부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큰 결혼(머리와 하나가 된 몸)과 같이 아주 유사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결혼의 신성한 의미를 다시 확인하시며 서로 부부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갖기를 원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21)는 분사 절로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18)는 주동사를 수식하는 동시에 5:22-6:9절을 도입하는 이중적(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할”(21) 대상인 첫 번째로서 아내와 남편(부부)의 ‘피차 복종’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21) 관점에서 본문의 권면을 이해할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부분, 즉 아내들에게 권면(22-24), 남편들에게 권면(25-30), 그리고 결론적인 권면(31-33)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권면입니다(22-24).
1) 아내들에게 권면입니다(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여기서 아내들에게 ‘복종하라’는 동사가 없는데, 21절의 모든 신자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명령에서 유추한 것입니다.
피차 복종의 동기인 ‘그리스도를 경외함’은 그의 복음을 통하여 만물과 교회의 머리(주)가 되신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이기에(1:22-23) ‘주께 하듯’과 연결됩니다. ‘주께 하듯’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태도를 나타내지만, 이것은 ‘주를 위하여’라는 의미로서 자기 남편에게 아내들의 복종하는 동기도 됩니다. 고후4:5절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이처럼 그의 복음의 진리에 따라 주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서로 종이 되어 섬기는 것과 같이 아내는 주를 위하여 자기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아내가 주를 섬기는 하나의 방법이며, 성령 충만이며, 주님의 지혜일 것입니다.
2) 그 이유입니다(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바울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에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머리(케팔레)’는 지도자나 통치자라는 의미입니다. 고전11:3절입니다.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그러나 바울은 ‘교회의 머리 됨’을 “그가 바로 몸(교회)의 구주시니라”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그의 교회의 머리 됨’, 즉 세상의 통치자와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의 몸(교회)의 구주로서 통치자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구주’는 구원의 복음과 약속의 성령을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여 그의 소유(몸)가 되게 하셨고(1:3-14, 20-23), 현재도 그의 몸(교회)의 머리로서 그의 몸(교회)을 자라게 하시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워지게 하시는 분(4:15-16),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의 구원의 복음을 통하여 이신칭의 구원과 성화 구원과 영화 구원을 하시는 구주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그의 몸(교회)의 구주로서 머리 됨은 본문에 계속 설명됩니다(25-30).
3) 아내들의 복종 성격입니다(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여기서 ‘그러므로’는 앞에 내용의 반의적 접속사 ‘알라(그러나)’를 결론적인 의미로 번역한 것인데, 우리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23)와 같은 면이 있으나 차이가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나(차이도 불구하고)’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 됨은 그의 복음을 통한 완전하며 영원한 머리 됨이지만 자기 아내에 대한 남편의 머리 됨은 불완전하며 임시적(이 세상에서만)인 머리 됨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24)은 “이런 차이도 불구하고(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에 대한 교회의 복종이 강요된 것이 아니라 그의 복음으로 인한 마음에서 나온 자발적인 복종이라는 점에서 아내도 자기 남편에게 자발적이며 진심으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2. 남편들에게 자가 아내를 사랑하라는 권면입니다(25-30).
1) 남편들에게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권면과 이유입니다(25-27).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아내들에게 자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권면에 따라 남편들에게 자기 아내를 다스리라는 권면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지만, 오히려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는 권면(명령)이 나옵니다(24, 28).
그것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교회 사랑의 유비가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합니다. 여기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교회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주신 희생적인 사랑입니다(24).
그러므로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권면은 남편들이 자기 아내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을 하라는 권면과 분리될 수 없으며, 자기 아내에 대한 남편들의 머리 됨, 즉 남편의 권위도 자기주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서양에서는 집안에 어떤 여인이 들어오면, 남자들은 반드시 일어서야 하며, 항상 여인들이나 아이들에게 먼저 양보하여야 하며, 택시에서 내릴 때도 남편은 먼저 내려서 아내가 내릴 때 문을 열어주어야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랑을 보여주면서 아내의 머리 됨의 권위를 행사하여야 한다는 기독교 문화인 것입니다. 즉 아내에 대한 남편들의 머리 됨은 아내를 섬기는 종으로서의 권위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빌2:5-11). 그러므로 남편들로서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자기 교회를 사랑하듯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머리 됨을 그가 바로 몸의 구주이시라(23)고 설명한 것과 같이 여기서도 세 개의 목적(히나)절을 사용하여 그의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질을 설명합니다(26-27). 이는 그의 구원 복음의 목적(열매)입니다.
첫째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26)입니다,
여기서 ‘물’은 세례를, ‘말씀’은 복음의 진리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하사’와 ‘거룩하게 하신다’가 부정과거로서 그의 복음과 세례를 통하여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둘째는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서”(27a)입니다. 여기서 ‘세우신다’가 가정법 목적절에서 부정과거로서 현재(4:15-16)와 미래(계22:9-27)에 일어날 사건의 사랑을 가리킵니다.
셋째는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해서”(27b)입니다. 여기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는 현재형으로 현재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에게 하시고 있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골1:22-23절입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그의 복음을 통하여 교회(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우리는 특히 남편으로서 그의 희생적인 사랑과 같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 남편들에게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는 권면입니다(28-30).
먼저 28절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원문은 “이와 같이 남편들도 그들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기를 빚지고 있다”입니다. 여기서 ‘이와 같이’는 앞에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남편들이 자가 아내를 사랑하는 빚에 대한 권면의 근거를 ‘이와 같이’가 가리키는 그리스도의 교회 사랑(25-27)에다 일반 사람의 자기 몸을 사랑하는 일반적 경험(28)을 더하여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이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 아내를 미워하는 자는 자기를 미워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제 그 이유인 29-30절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고 보호하기 때문이다”(29a)라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몸의 지체임이기 때문이다”(29b-30)입니다. 여기서 ’우리‘(30)는 바울과 교회의 성도들(우리)을 가리킵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은 사람들의 자기 몸의 사랑(29)과 그리스도의 자기 몸(교회) 사랑의 유비를 결합하여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고 남편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우리 남편으로서 자기 아내를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3. 남편과 아내에게 결론(요약)적인 권면입니다(31-33).
먼저 권면의 근거입니다(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여기서 ‘그러므로(안티 투투)’는 ‘이것 때문에’라는 의미인데, ‘이것(투투)’이 바로 앞에 있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30)를 가리킵니다(1:23, 4:16). 즉 그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그의 몸의 지체들”인 그리스도와 우리(교회)와의 영원한 결혼 때문에 창2:24절의 인용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는 결혼제도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의 복음을 통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영원한 큰 결혼이 우리의 작은 결혼의 원형이며, 우리의 결혼은 그것을 나타내는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창2:24절의 인용인 31절에 대하여 “이 비밀이 크도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비밀’은 이전에는 감추어진 하나님의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것을 의미한 것으로 그의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를 영원히 하나가 되는 영원한 연합(통일)을 가리킵니다(1:9, 3:3, 4, 9, 6:19). 1:9-10절입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죄는 분열하지만, 죄를 그의 피로 제거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복음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밀’(32)에서 ‘이(투토)’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하나가 되게 하는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이 있는 창2:24절의 인용인 31절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분명히 창2:24절과 그 인용인 31절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되는 우리 결혼을 의미합니다(마19:6, 고전6:16). 바울은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된 ‘그러나’를 사용하여 창2:24절과 그 인용인 31절이 그의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영원한 큰 결혼(한 몸이 됨)의 비밀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합니다(32).
이제 이것에 근거하여 남편과 아내에게 결론적인 권면입니다(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문장의 앞에 있는 ‘플렌’이라는 부사는 일차적으로 ‘그러나’라는 의미이지만, 여기서와 같이 지금까지 남편들과 아내들에 대한 권면들을 마무리하거나 요약 강조하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행20:23, 고전11:11, 빌3:16, 게2:25).
바울은 남편들에게 자기 아내를 이렇게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원문에 ‘이렇게’가 있습니다. 이것은 28-30절의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는 남편들의 권면을 가리킵니다. 즉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는 결론적인 권면입니다.
또한, 아내들은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어떤 자기 남편일까요? 이렇게 자신같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입니다. 아내들은 그런 남편을 존경하며 순종하라는 결론적인 권면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 결혼의 신성한 의미와 부부의 서로에 대한 바른 자세에 대하여 이해하였습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정의 문화 속에 살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의 부부관계는 겉모습은 그 전통을 긍정하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즉 아내에 대한 남편의 머리 됨은 그리스도와 같이 아내를 섬기는 종으로서의 권위이며(막10:42-45), 그의 십자가의 복음이 이것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고후4:5).
성도 여러분,
그의 복음에 의하여 서로 섬기는 종의 자세로서 우리 주를 위하여 아내들은 자기 남편의 일시적인 머리 됨을 존경하며 순종하시며, 남편들도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과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같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세월이 가면 갈수록 부부 사이의 사랑이 식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깊어지고 강해질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의 몸(교회, 우리)의 구주로서 이것을 계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이것이 새 언약 구원의 축복입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가 흔들려도 주님은 새 언약대로 우리 부부관계에 하실 것입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