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1일 일요일, 바이크 손대장과 단둘이 양평 금왕산 MTB 코스를 답사하기로 했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나 전철에 몸을 싣고 응봉역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하니 바이크 손대장과 밴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싣고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계정리를 향해 출발했다.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산세가 험하기로 소문난 금왕산 임도다. 산길을 달리려면 단사호장(簞食壺漿), 즉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광주원주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면서 바이크 손대장이 준비한 이른바 '이명박 김밥'으로 간단하게 아침밥을 먹었다.
동양평IC를 빠져나와 양동면으로 들어서니 '양평 부추는 우리의 자랑이다'라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양동면은 이웃 지평리와 더불어 의병의 역사가 깊은 고장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평범한 농민들이 의병으로 일어나 애적과 맞서 싸웠던 의로운 땅이라는 생각에 오늘의 라이딩이 단순한 자전거 여행만은 아니라는 마음도 들었다. 양동면사무소에서 횡성 계정리 방향으로 달리자 원삼산교가 나타났다. 다리 앞에는 '수목장 별의 숲'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계정천을 따라 올라가니 계정3리 제1대월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자전거를 내리고 양동면 MTB 자전거 안내도를 확인한 뒤 오전 9시 15분, 드디어 금왕산 임도 라이딩을 시작했다. 금왕산은 양평군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한 산으로 해발 487,7m이며, 양동면 금왕리와 계정리 사이에 솟아있다. 금왕산의 모산은 양평군과 홍천군, 횡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금물산(791m)이다. 금물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바로 금왕산이다. 금왕산 MTB 코스는 크게 세 구간으로 나뉜다. 제1코스는 대월교에서 스무나리고개까지, 제2코스는 스무나리고개에서 거슬치고개까지, 제3코스는 거슬치고개에서 양동면사무소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한적한 시골마을 대월길로 접어들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대월'은 골이 깊고 크며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약 1,6km를 달리자 차량 진입을 막는 차단막이 나타났다. 사실상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임도 라이딩이 시작되는 셈이다. 표고 250m- 350m의 산허리를 따라 개설된 임도는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졌다. 노면은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깊게 패여 있었으며, 자갈고 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페달을 밟을 때마다 온몸이 들썩거렸다. 자전거의 중심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계속되는 오르막이 우리를 지치게 했다.
바이크 손대장은 오늘따라 힘에 겨운지 이마에는 땀이 비오듯 흐르고 숨소리도 거칠었다. 아직 몸상태가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시간에 쫒기지 않기로 하고 자주 자전거를 세워 호흡을 가다듬었다. 산악 라이딩에서는 체력 안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떡이나 고구마 같은 간식은 가급적 먹지 않고 물을 마시며 페이스를 조절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은 한여름 자전거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 그리고 나무가 뿜어내는 싱그러운 기운은 지친 목과 마음을 씻어주는 자연의 청량제였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임도에서 새소리와 자전거 두 바퀴 소리만 들릴뿐 사방이 적막했다. 빽빽한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 방향감각마저 흐려졌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이 비치는 하늘과 끝업이 이어지는 숲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고요함 속에서 마음은 편안해 졌다. 대자연을 마주하면 사람의 마음은 저절로 평심서기(平心舒氣), 즉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운을 편안하게 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자연을 벗 삼는 자전거 여행을 좋아한다. 약 7km를 달렸을 무렵 처음으로 1km 가량의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그동안 오르막과 씨름했던 우리에게는 기다리던 선물이었다. 나는 신이나서 휘파람까지 불며 신나게 내려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시 오르막이 시작됐다. 약 10km지점에 이르자 임도에 아스팔트 노면이 나타났고, 하늘숲 추모원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약 3km를 더 올라가야 추모원 안내센터가 나온다. 하늘숲 추모원은 산림을 활용한 자연장지로 조성되어 있었고,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다. 수목마다 색깔별 표시가 되어 있어 어느 구역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뜻밖의 숙연한 순간을 맞이했다.
바이크 손대장의 처남이 수목장으로 이곳 제10구역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그곳에 머물렀다. 바이크 손대장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산속의 고요함 속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분향 냄새가 더욱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그때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뻐꾹, 뻐꾹. 그 소리가 어찌나 애잔하게 들리던지, 마치 먼저 떠난 영혼을 위로하는 자연의 조문처럼 느껴졌다. 산새의 울음소리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이는 순간이었다. 추모원 쉼터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단풍나무와 흐드러지게 피어난 금계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곳이 바이크 손대장이 아끼던 강아지 애니가 묻힌 장소와 너무나 비슷했다. 바이크 손대장은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하늘숲 추모원 입구에 자리한 스무나리고개는 강원도 횡성군과 경기도 양평군의 경계다. 예로부터 인적이 드물고 산적이 출몰하던 고개였다고 한다. 횡성에서 한양으로 가던 사람들이 혼자서는 넘기 어려워 스무 명가량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스무나리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현재 오크밸리 노스콘도 쪽이 '윗스무나리, 횡성에서 오크밸리로 넘어오는 쪽이 '아래스무나리'라고 한다.
어느덧 시계는 1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때가 훨씬 지났지만 우리는 제대로 된 식사 대신 음료수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제2코스인 거슬치고개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출발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져 힘이 들었지만, 이후에는 짧은 업힐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제1코스보다는 조금 수월했다. 그러나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급경사와 급커브가 연이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리막이 오르막보다 더 힘든 순간도 있다. 속도가 붙은 상태에서 작은 실수 하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를 잡고 노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그런데 바이크 손대장은 어느 순간부터 다시 활기를 뒤찾았다. 몸이 풀린 모양이었다. 연양갱을 먹고나니 몸 상태가 좋아졌다면서 다음부터는 꿀물을 준비해야겠다고 하였다. 역시 산악 라이딩에서는 적절한 에너지 보충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약 23km 지점에 이르자 임도 양쪽으로 북숭아과수원이 나타났다. 탐스럽게 영근 복숭아들은 하나같이 흰 봉지에 싸여있었다. 약 27km에 이를 즈음에는 만만치 않은 시멘트 포장 언덕길이 앞을 가로막았다. 경사가 무려 18-20도에 이를 정도로 가팔랐다.
이럴경우에는 자전거를 끌바하는 것이 상책이다. 언덕을 넘어서자 비단길처럼 매끄러운 내리막이 펼쳐졌다. 우리는 신나게 내달렸고, 어느새 거슬치고개에 도착했다. 장장 6시간 동안 30km를 달린 셈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제3코스에 들어서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흘러 배가 고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제3코스를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밴에 자전거를 싣고 횡성으로 이동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횡성의 한우였다. 우사랑 한우고기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했다. 꽃등심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러운 육질이 살살 녹았다.
오랜 시간 산길을 달린 뒤라 그런지 그 맛이 더욱 각별했다. 나는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이날만큼은 시원한 막걸리 석 잔을 마셨다. 식당 여사장님의 친 오빠가 육사 39기라며 나보고 한참 대선배님이라고 하면서 덤으로 도토리묵까지 선사했다. 맛있는 음식과 정겨운 대화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귀경길에 금왕산이 잘 보이는 곳에서 금왕산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겼다. 우리가 달린 금왕산 임도 라이딩은 성동고 16회 바이콜릭스도 아직 가보지 못한 코스였다.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자랑스러운 라이딩이었다.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자연 속을 달리며 웃고 떠드는 시간이야말로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