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다스리신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소통하시는 방식이 성령으로 현존하시는 것이고, 그 방식이 말씀과 성사와 사도직 활동에 함께 하시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중세와 근세까지 천5백여 년 동안 성사 위주의 교회로 존속해 왔음을 반성하면서 현존 양식의 균형과 조화를 꾀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말씀과 성사와 사도직이다.
이는 당시 공의회에 참석했던 볼로냐 교구의 교구장 레르카로(Lercaro) 추기경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제1회기 발언에서 ‘절름발이 그리스도론’을 설파했고 이 발언이 호응을 얻으면서 수용된 것이다. ‘절름발이 그리스도론’이란, 교회가 그리스도의 표지로 식별해야 할 ‘말씀’과 ‘성찬’과 ‘사랑’의 세 표지 가운데에서 ‘성찬’만, 성찬례는 성체와 성혈의 성사인데도 ‘성체’만 표지로 간주해 온 역사를 일별하면서, 말씀과 성찬과 사랑이라는 세 표지를 고르게 식별해야 함을 역설한 발언을 뜻한다.
또한 교회를 이해하는 표상은 사도 바오로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가르친 데서 따온 것으로서, 여기에 레르카로의 관점을 더하면,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영적 생명의 에너지를 받는 방식이 그분의 현존을 알아보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이는 일반적인 생명 현상이 ‘생존-감각-번식’의 3요소를 갖추고 있는 이치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본다면, ‘생존’ 기능은 말씀과 성사를 통해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영적 기운을 받는 전례 거행과 사목 활동에 비길 수 있고, ‘감각’ 기능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 이 기운을 전달하는 선교 활동과 사도직 활동에 비길 수 있으며, ‘번식’ 기능은 전례와 사목 그리고 선교와 사도직을 통해 새로운 입교자를 배출하는 넓은 의미의 성소자 양성 활동에 비길 수 있다.
한국교회는 현재 복음화 제3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그리스도 현존의 표지로 부각시킨 말씀과 성사 그리고 사도직을 기준 지표로 하여 우리 교회가 지난 230여 년 동안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말씀의 교회 시기와 성사의 교회 시기 그리고 사도직 교회의 시기가 거의 백 년 단위로 뚜렷한 특색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세계 교회사적인 의미: 2천 년 교회사상 선교사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교회가 생겨난 최초의 사례
2. 민족사적인 의미: 반만년 역사에서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통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여, 평화적으로 백 년 동안 박해를 견디어내고 끝내 가치를 쟁취한 최초의 사례
3. 인류 문명사적인 의미: 동서양의 문명이 통합되어 새롭게 도약하여 ‘사랑의 문명’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며, 또한 이를 위해 우리 교회가 민족의 고난 시기를 끝내고, 국운을 상승시켜야 할 시점
1784년에 최초의 신앙 공동체가 생겨난 이후 박해시대를 거쳐 선교의 자유가 허용된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때까지를 ‘말씀의 교회 시기’(1784~1886), 그리고 이 때로부터 선교의 자유는 허용됨으로써 성사 생활은 가능해 졌으나 신앙을 사회적으로 증거하는 활동은 정치적 이유로 자유롭지 못했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분단과 전쟁 그리고 독재 치하를 겪고 나서 민주화를 이룩한 시기에 방인사제(邦人司祭. 이방인 사제와 구별하여 본방인 즉 한국인 사제를 일컫는 말)들이 배출되고 교계제도(敎階制度. 교황이 임명한 주교가 사목 책임을 지는 교구가 설정되고 이 교구 안에서 본당들이 설립되어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체계적으로 성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제도)가 수립되어 교회 자립도를 높였으며 103위 성인들과 124위 복자들이 배출된 시성시복식과 제44차 세계성체대회까지 열었던 ‘성사의 교회 시기’(1887~2014)로 나누고 나서 보면, ‘말씀의 교회 시기’에는 물론 ‘성사의 시기 교회’에도 말씀과 성사의 열매로 나타나야 할 사도직 활동이 현저하게 취약함을 뚜렷하게 볼 수 있으며 따라서 현재와 향후에는 ‘사도직 교회 시기’(2015~)가 도래해야 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말씀의 교회 시기: 18세기 말 조선 사회에서 사회적 모순이 쌓이고 새로운 정신적 기운에 대한 갈망이 커져갈 무렵 이벽과 젊은 유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천주교 교리를 통해 그리스도 신앙을 들여와서 교회를 설립하였다. 이 선비들이 세례를 받고 나서 교리를 교육하고 성사를 거행하는 성사조직을 운영하면서 커다란 선교 성과를 거두었으나, 교회법상 사제 서품을 받지 않은 평신도들에 의해 이루어진 이 움직임을 보고받은 북경 구베아 주교는 자칫 신생 한국교회가 보편교회로부터 이단적인 교회로 발전할 것을 우려하여 ‘가성직자단(假聖職者團)’이라고 단죄하고 즉시 해체할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반세기 전에 중국교회에 내려진 ‘조상제사금지령’까지도 적용하고자 하는 바람에, 신생 한국교회는 쑥대밭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 백 년 동안 진행된 박해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 교우들은 초기 지도자들이 한글로 지어 놓은 ‘주교요지’(主敎要旨. 이벽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받아 정약종 아우구스티노가 지음) 등의 교리서와 한글로 된 천주가사(天主歌辭) 등을 비롯하여 150여 종(種)에 달하는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 - 명말明末에서 청초淸初에 이르는 16세기말부터 18세기말 사이에 중국에서 선교宣敎하던 서양 선교사들과 일부 중국학자들이 천주교의 전파와 서양문명의 소개·전달을 목적으로 서양의 종교·과학서를 한문漢文으로 변역하거나 직접 저술한 서적들을 일컫는 말 - 등 하느님 말씀에 의해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었기에 신앙을 포기함이 없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교우촌을 세워가며 신앙생활을 영위하였다. 성사 생활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교리와 성경 등 말씀에서 받은 기운으로 박해까지도 이겨낸 이 시기를 우리는 ‘말씀의 교회 시기’라고 부를 수 있다.
1. 교회가 로마화된 고대 이래로, 중세와 근세 천5백여 년 동안 가톨릭교회는 성사 위주 였던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선교사 없이 복음이 조선에 전파되면서 말씀 위주의 교회가 탄생하였다.
2. 한국천주교회의 고유한 특징 네 가지:
- 자생적인 교회 설립과 진리 탐구의 지성적 노력
- 가성직자단의 성사 활동으로 놀라운 선교 성과를 거둠
-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전국에 교우촌을 건설
- ‘입술 배교자’와 치명자 후손들에 의한 순교정신 계승 노력
성사의 교회 시기: ‘가성직자단’으로 단죄된 초기 한국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은 이 조직을 해체한 이후 꾸준히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여 중국인 선교사 주문모 야고보를 비롯하여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을 파견받을 수 있었으며, 이 선교사들이 방인 사제 양성에 힘쓴 결과로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 등이 중국에서 사제로 서품받고 조선에 입국하여 전국 교우촌을 순방하며 성사생활이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서품 직후 1년 남짓 활동하다가 치명한 김대건 이후 최양업 혼자서 전국의 교우촌을 순방하여 성사를 집행했으므로, 박해시기 동안에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성사생활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1886년 프랑스 선교사의 활동 자유를 명시한 한불상호통상조약이 체결됨으로써 박해가 종식된 이후 또 다른 백 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방인 사제들이 양성되고 교계제도가 수립되었으며 수도회들과 본당들도 다수가 설립됨으로써, 한국교회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 전성기를 상징하는 교회 행사가 있었으니,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1981), 천주교 200주년 신앙대회와 103위 순교자 시성식(1984),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1989), 124위 순교자 시복식(2014)이 그것이다.
- 2022년 현재, 전 세계 가톨릭 한국인 선교사 현황: 아메리카 264명, 오세아니아 32명, 유럽 137명, 아프리카 92명, 아시아 346명 등 모두 891명이다. 그 구성을 보면, 수녀 598명, 수사 105명, 선교회 파견 81명, 교구 사제 97명, 평신도 10명이다.
- 한국의 국력 신장 현황: 경제력 세계 10위권, 국방력 세계 6위, 한류로 알려진 한국 문화 대유행.
- 한국천주교회의 위상: 대한민국의 국력은 해방 이후 70년의 성과이지만, 한국천주교회는 초창기부터 독보적이었다.
그 열매로, 2020년말 기준으로 전국 14개 교구에서 신자 수 5백만을 헤아리고(592만 3300명), 본당은 17백 군데가 넘으며(1767개), 성직자는 5천 명이 넘고(주교 포함 5578명), 수도자는 남녀 합해 1만 명이 넘는다(169개 수도회, 11778명). 이로 인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는 데 있어서는 물론 성체성사를 비롯한 성사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어진, ‘성사의 교회 시기’를 한껏 구가(謳歌)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현상은 아시아 지역 교회는 물론 서구교회까지를 통털어 비교해 보아도 괄목할 만한 성장세이다. 최근 한류 현상이 대한민국의 문화를 전 세계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경제 선진국에 이어 문화적으로도 선진국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교회는 한국의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성장보다 더 뛰어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입교자는 물론 성소자와 서품자가 드문, 아시아교회를 비롯한 서구교회가 한국교회를 부러워하고 보편교회가 한국교회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배경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은 외형상 통계로 비추어 본 분석의견일 뿐이고 내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외적 성장에 못 미치는 내적 성숙을 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과제는 많다. 현재 한국교회는 서구교회가 부러워할 정도로 서구화에는 성공한 편이지만, 초창기에 비추어서도 한국인들의 심성과 문화, 사회와 역사의식에 있어서 토착화 진도가 퇴보되어 있다. 지식인 계층이나 청년 계층, 노동자 농민과 빈민 등 소외 계층이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나 문제의식을 품어 안기에도 역부족인 현실은 사회 현실을 탓하기에 앞서 교회의 복음화 역량으로 마땅히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이는 앞선 토착화가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토착화 과제인 데 비해 상황적 토착화의 과제에 속한다.
보편교회가 아시아 복음화에 있어서 한국교회에 기대하는 여망에 있어서나 한국교회의 숙원인 민족 복음화에 있어서도 준비해야 할 교회 쇄신적 과제는 산적해 있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교회의 위상은 밖으로 서구 및 아시아 지역 교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다는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기준에 비추어 절대적으로 평가하자면 높은 점수로 평가되기가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그러니 이 모든 지표를 해석한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말씀과 성사의 교회 시기를 넘어 이제는 말씀과 성사의 열매인 사도직 교회의 시기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성서 읽기와 필사, 성서 사도직 등이 활성화되어 온 결과로 신자들 안에서 성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말씀을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성서에 담긴 말씀의 맥락을 짚어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신자들의 신심운동도 서구교회에서 유래된 일부 신심운동에 치우쳐 있어서 한국사회에 고유한 문제를 끌어안기에는 독창성이 부족하다. 특히 서구에서 도입된 신심운동은 발생지에서 생겨났던 취지와 달리, 중산층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어서 중산층 복음화의 과제를 떠안고 있다.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 중산층이란 복음적인 관점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로서 청빈을 목표로 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을 통한 통공을 이룩해야 복음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한국교회의 중산층 신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자선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지표가 뚜렷하다. 이런 의미에서 중산층 복음화를 위한 신심운동이 생겨나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박해시대 교우촌에서도 일상화되었던 가정 기도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로 보인다. 이는 중산층 복음화를 위한 신심운동의 과제와도 직결된 것인 동시에 미래 세대의 복음화 과제나 청소년 사목의 활성화도 연결되는 과제이다. 한국 사회 중산층 특유의 서구화 편향 현상에서 개인주의화 성향도 두드러지는데 이것이 신앙생활도 가정 중심이 아니라 개인 위주로 굳어진 탓이 크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국교회가 최근 보여주는 현실은 다른 지역 교회들에 비해 뒤처진 것이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보편교회가 요청하는 교회 쇄신의 흐름에 비해서 지지부진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고, 한국교회의 잠재적 복음화 역량이 나타나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는 외부적 처방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확신과 이를 증거하려는 열성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진단한다. 이 열성이 되살아날 때라야 중산층 복음화와 가정 복음화의 과제도 해결의 서광이 비출 수 있으리라고 진단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