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의 구름지마을
자식이 없어 걱정인 구름지마을 부부
고려시대 예종 때의 일이다.
구름지 마을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행복하게 사는 한 부부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조그마한 초가집에 거주하였다.
부부가 거주하는 초가집 앞뜰에는 계절에 따라서 예쁜 꽃들이 피워 나고, 부엌 앞 장독대에는 장독 몇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살림살이는 비록 가난하였지만, 부부는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과도 서로 바쁠 때는 자기 일처럼 도우면서 정답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에게도 걱정거리가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식이 없다는 것이다.
부부는 자신들에게 자식이 없는 것은 모두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뒤뜰에 조그마한 제단을 정성스럽게 차려놓고 아침과 저녁으로 옥황상제에게 자식을 갖게 해달라는 치성을 드렸다.
부부가 집 뒤뜰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정성을 들이기 시작한 지 몇 해가 되는 어느 겨울날 밤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내리더니 청룡 한 마리가 부부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제단에서 치성을 드리고 있는 부부의 무릎에 아름답고 향기가 좋은 꽃 한 송이를 떨어뜨리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그것은 꿈이었다.
“희한한 꿈도 다 있네!”라고 부부는 여겼다.
그런데 그날부터 부인이 태기가 있더니 시간이 지나서 예쁜 딸을 출산하였다.
부부는 매우 기뻤다.
그리고 이들 부부와 같이 마을에 살던 이웃들도 모두 마을에 경사가 났다며 축하해 주었다.
부부는 딸의 이름을 꿈에서 용이 꽃을 놓고 갔기에, ‘용란’이라고 짓고, 뒤뜰에 차려놓은 제단에 가서 옥황상제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용란에게 그늘을 만들어 준 오색구름
부부는 어렵게 얻은 딸인 용란을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다.
용란도 부부의 정성 때문에 아무런 문제없이 잘 자랐다.
부부는 가는 곳마다 용란을 데리고 다녔다.
밭에 일하러 갈 때도 데리고 가서 그늘에 눕혀 두고 밭일을 하였다.
해가 움직이면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주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은 밭에서 일하다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밭일에 열중하느라 용란을 그늘로 옮기는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한참 지났는데, 큰일 났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담!”이라며 용란이 햇볕 아래 있을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서둘러 용란을 눕혀 놓았던 나무 아래를 바라다보았다.
부인은 용란이 ‘뜨거운 햇볕 아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용란은 그늘에서 잘 자고 있었다.
분명 ‘햇볕에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라며, 부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위에서 오색구름 한 조각이 용란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부부는 신기해하면서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여보, 참 고마운 구름이지요.”,
“글쎄 말이요. 참 희한한 일도 다 있구먼.”
부부가 오색구름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을 때, 고려 예종이 백성들을 살피러 다니다가 그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예종은 하늘에 떠있는 오색구름을 상서롭게 여겨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신하를 시켜서, “아름다운 색채로 무지갯빛을 내는 저 구름 아래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아보고 오너라.”라고 하였다.
예종의 명을 받은 신하들은 오색구름이 떠있는 곳 아래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예쁜 아기가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위에서는 난초 향이 나는 것이었다.
난초 향을 맡은 신하들은 모두 난초 향에 취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종에게 돌아와 자신들이 본 것을 모두 아뢰었다.
신하들의 말을 들은 예종은 “그것 참 이상한 일이로다. 이 일은 좋은 징조임이 틀림없다. 여봐라! 그 아이를 궁중으로 데리고 가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궁중으로 들어간 용란은 성장해서 예종의 며느리이자, 인조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마을이라고 해서 ‘구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곧 「오색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준 경상북도 상주의 구름지마을」은 ‘구름지’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고려 인종비(妃)의 신비로운 탄생에 설명하는 탄생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