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의 관저에서 예수님과 베드로 모두에게 심문이 진행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하시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60-62절 여러 증인의 거짓 진술에 예수께서 침묵하시자 대제사장이 직접 나서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추궁합니다. 예수님은 아예 긍정하시며 종말에 심판주로 다시 올 인자 (단 7:13,14)라는 것을 밝히십니다. 그날이 오면 예수님을 심판하던 자들이 예수님에게 심판받을 것입니다. 지금은 거짓과 불의가 진리와 정의를 짓밟고 어둠의 권세가 모든 것을 주관하는 듯 보이지만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신원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니 기세등등한 악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맙시다.
53-59, 63-65절 한방중인데 산헤드린 공회가 모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주도한 심문은 밤새 이루어졌습니다(15:1). 그런데 그들은 심문 후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결론(55절. 사형)을 정한 후 심문하고 있었습니다. 뒤집힌 심문 절차나 일관성도 없고 일치하지도 않는 증언은 재판의 부당성과 그들의 악한 의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밝히는 숱한 증거들이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저열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예수님의 인격과 명예를 짓밟습니다.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경멸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거짓과 탐욕의 노예가 되면 하나님 나라와 진리를 대적하게 됩니다.
66-71절 베드로는 멀찍히(54절) 따라가더니 결국 여종의 추궁 앞에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죽는 데까지 따르겠다던 기백은 사라지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저주하며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주님의 경고보다 자신을 과신하며 깨어 기도하지 못한 베드로가 시험에서 진실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72절 세 번이나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하던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괴로워하며 통곡합니다. 자신의 악함에 대한 자책과 배신에 대한 죄책 때문에, 그런 자신을 오래 참고 사랑해주신 주님 때문에 울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아십니다. 혹독한 비난과 가혹한 자책에서 눈을 돌려 자비로우신 주를 바라보고 그분의 약속을 기억하여 속히 돌이키고 어서 일어섭시다. (매일성경, 2024.03/04, p.88-89, 공회 앞에 서신 예수님, 마가복음 14:53-72에서 인용).
① 대제사장의 관저에서 예수님과 베드로 모두에게 심문이 진행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시인하시지만,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여러 증인의 거짓 진술에 예수께서 침묵하시자 대제사장이 직접 나서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추궁합니다. 예수님은 아예 긍정하시며 종말에 심판주로 다시 올 인자 (단 7:13,14)라는 것을 밝히십니다. 그날이 오면 예수님을 심판하던 자들이 예수님에게 심판받을 것입니다. 지금은 거짓과 불의가 진리와 정의를 짓밟고 어둠의 권세가 모든 것을 주관하는 듯 보이지만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신원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니 기세등등한 악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맙시다.
② 한방중인데 산헤드린 공회가 모였습니다. 대제사장이 주도한 심문은 밤새 이루어졌습니다(15:1). 그런데 그들은 심문 후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결론(55절. 사형)을 정한 후 심문하고 있었습니다. 뒤집힌 심문 절차나 일관성도 없고 일치하지도 않는 증언은 재판의 부당성과 그들의 악한 의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밝히는 숱한 증거들이 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영향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저열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예수님의 인격과 명예를 짓밟습니다.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경멸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거짓과 탐욕의 노예가 되면 하나님 나라와 진리를 대적하게 됩니다.
③ 베드로는 멀찍히(54절) 따라가더니 결국 여종의 추궁 앞에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죽는 데까지 따르겠다던 기백은 사라지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저주하며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주님의 경고보다 자신을 과신하며 깨어 기도하지 못한 베드로가 시험에서 진실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④ 세 번이나 저주하고 맹세하며 부인하던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괴로워하며 통곡합니다. 자신의 악함에 대한 자책과 배신에 대한 죄책 때문에, 그런 자신을 오래 참고 사랑해주신 주님 때문에 울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아십니다. 혹독한 비난과 가혹한 자책에서 눈을 돌려 자비로우신 주를 바라보고 그분의 약속을 기억하여 속히 돌이키고 어서 일어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