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억새를 배경으로 저희들끼리만 사진이라도 찍나?’ 한참을 기다리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전화했더니 친구 한 명이 넘어졌다며 돌아오라고 했다. 좁고 울퉁불퉁한 데다 위험한 길도 무사히 지나왔는데 반듯하게 뻗은 자전거 전용 도로에서 웬 사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준비가 덜 되었다고 오기 싫어한 친구였기에 더 불길했다. ‘제발 많이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 되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는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착잡한 표정으로 주변에 있는데 하나같이 말이 없다. “많이 다쳤는가? 어쩌다 그랬어?” 다급하게 묻는 내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괜찮다고는 하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른쪽 입술 언저리에서 계속 피가 나고 있었다. 보기에도 흉했다. 턱도 조금 깎여 있었다. 무릎도 내보이며 뼈가 괜찮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자네가 자전거 핸들 윗부분을 잡고 타는 것이 멋져 보여서 손을 옮기다가 그리 되었네.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마누라가 특별히 조심하라고 했는디.” 나도 로드용은 익숙하지 않아 자신이 없었는데 뭐가 부럽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곧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하면 좋으련만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택시를 부르더라도 그의 자전거를 가져갈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무릎은 괜찮은 것 같다며 서서히 가 보자고 일어섰다. 넘어진 친구가 먼저 출발하고 나는 맨 뒤에서 따라갔다. 한참을 달리다가 광주광역시에서 운영하는 ‘영산강 자전거길 안내 센터’로 들어갔다. 응급처치라도 할 요량이었다. 간단하게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으나 서투른 솜씨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입술 언저리가 두툼해서 우스웠지만 한가롭게 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한참을 달렸다. 드디어 도심 근처까지 왔으나 이번에는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 망설였다. 친구들은 집 근처에 있는 성형외과를 권했으나 나는 3월에 아내가 다녔던 병원에 가자고 했다. 얼굴에 난 상처를 흉터 없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병원은 의료진이 친절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책임감 있게 치료를 잘하는 것 같았다. 전화해 보니 하필 점심시간이었다. 오더라도 예약된 수술이 있어서 네 시 이후에나 진료할 수 있다며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권유한다. 일단 밥을 먹고 결정하기로 했다.
애초 계획대로 점심은 남광주시장에서 장어탕으로 해결했다. 이 집은 맛도 있지만 가격도 착해서 단골이 많다. “다치지만 않으면 얼마나 분위기가 좋겠는가?” 이런 농담을 할 만큼 썰렁하고 무겁던 마음이 조금씩 옅어졌다. 밥을 먹고 나니 오후 두 시가 되었다. 내가 추천한 병원이 식당에서 그리 멀지 않아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자전거는 친구의 지인이 운영하는 인쇄소에 맡겨 두고 내가 앞장섰다.
친구들은 치료를 받는 동안 기다렸다. 꽤 긴 시간이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치료를 마치고 나온 친구는 병원을 나서서 “벗겨진 피부가 없어서 상처 부위가 낫더라도 흉터가 생길 수 있다.”라고 의사가 말했단다. 그렇게 되면 이식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원래 의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말하는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다친 친구는 오랜 시간 끝까지 같이 있어 준 친구들이 고맙다고 했다. 치료해서 그나마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들은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그중 한 명은 같은 대학을 나와 교직 생활하며 가까워졌다. 그를 거쳐 다른 이와도 연결되었다. 그들은 같은 지역의 행정직 공무원이면서 동갑에다 마라톤을 즐겨서 평소에도 친했다. 나는 그들과 간간이 등산하면서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탁구로 우의를 다진다. 넷이 같은 탁구장에서 교습을 받는다. 비록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함께 어울리는 재미를 무시할 수 없어 기꺼이 감수하며 다닌다. 그러다 가끔 미리 짜놓은 짝끼리 한팀이 되어 여섯이서 복식 게임도 즐긴다.
최근에는 철인 3종 경기를 해 보겠다던 친구의 권유로 모두 중고 자전거를 샀다. 어디 그뿐이랴! ‘폼생폼사’라고 하며 자전거용 옷을 비롯한 헬멧과 선글라스, 장갑 등 필요한 용품을 장만했다. 그리고 드디어 며칠 전, 첫 나들이를 영산강 쪽으로 간 것인데 그만 사고가 나고 말았다. 승촌보를 반환점으로 무사하게 돌아왔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으니 절반의 성공과 작은 보람이라고 해야겠다. 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다. 두 번째 자전거 나들이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가까운 시일 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때는 이번의 경험이 보약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 친구들과 함께할지는 모르지만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첫댓글 선생님의 글 읽다 보니 저까지 건강해진 기분이 듭니다. 열심히 운동하며 젊게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보입니다.
좋은 시작입니다. 멈추지 마시고 추진하시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아이고, 첫 나들이가 성공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텐데 아쉽기는 합니다만 그만하길 다행이라 생각해야겠습니다.
탁구에 자전거에 등산까지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시네요.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네요.
제주도 자전거 종주를 꿈꿨는데 글 읽다 보니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전이 최고랍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경험이 보약이라셨으니 앞으로 쭈욱 즐거운 라이딩 할 수 있길 응원합니다.